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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묘막측 하신 하나님 (시 13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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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손상률 목사 (후암교회)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사람들은 흔히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서 ‘과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거나 ‘신기(神技)에 가깝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이나 한계를 넘어선 경우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지금도 세계의 문화적 유산 가운데 불가사의(不可思議)로 표현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기술을 이해할 수도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창조 주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작품들 앞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대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여기 다윗은 그저 「신묘막측」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신기하고 오묘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도 거대한 우주를 논하고 무한대의 만상을 다 들먹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기 하나를 하나님 앞에 비춰 보면서도 이렇게 탄복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13-14절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지혜가 출중하지 못해서 역사나 과학이나 철학을 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무능함을 고백하였습니다(고후 11:30). 그러나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하심에 감탄하면서 그는 항상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헤아리며 거기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고전 15:10). 이 시간 우리는 나의 삶 속에서 신묘막측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 신묘막측의 내용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이나 행동까지 모두를 하나님의 목전에서 조명해 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기 다윗은 성령의 지혜로  자기의 삶 속에 비춰진 하나님의 간섭과 그 깊으신 섭리를 깨달으면서 과히 신묘막측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로마서 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2:3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의 근원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지혜는 매우 미미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주의 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이나 삼라만상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가 지으신 피조물에 대하여는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고 계시는 것이 너무나 세밀하고 정확하다는데 놀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1-4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을 초월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66:1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가 지으신 우주만상을 다 품으시고 하늘과 땅 어디든지 편재하시는 분입니다.
본문 말씀 7-10절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공간의 경계를 의식한 나머지 장소만 이동하면 하나님의 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나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맙니다(욘 1:17).

(3)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그의 창조사역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있으라”고 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욥기 37:5-6에 보면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37:23에는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태어나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신체적 기능이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솜씨와 능력이 개입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본문 말씀 13-14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


Ⅱ. 신묘막측의 적용

마술사나 요술쟁이의 경우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며 돈을 버는데 이용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특기가 있을 때 그것을 출세의 도구로 활용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신묘막측한 능력을 가지고 그의 선하신 목적에 사용하십니다.

(1)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적용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있습니다.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 가브리엘이 꿈에 나타나서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현몽해 주었습니다.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동정녀(童貞女)가 잉태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을 하심에 대하여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마 1:21). 예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나 무덤에서 살아나신 일, 승천과 재림 모두 다 인간이 볼 때는 신묘막측한 일이지만 결국 이런 일을 통하여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 적용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세심한 부분까지 개입하시면서 이를 주관하셨습니다. 일찍이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근거로 하여(창 15:13-15) 그 후손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마다 하늘의 양식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메추라기를 보내 고기로 먹게 하였으며 반석에서 샘이 솟아나고 밤낮으로 번갈아 가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며 보호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신 것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다윗왕 이후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고 신정국가를 수립하여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세계를 유랑하는 불행한 민족이 되었으나 그들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나게 하였습니다(마 1:1). 예수 그리스도 이후 성령의 능력으로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구별 없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날 지상 교회를 통하여 전개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삶 속에서 선하게 적용됩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인생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롬 14:7-8).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을 통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작용하십니다(롬 8:28).
옛날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 앞에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라고 간증하였습니다(창 50:20).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도 이스라엘과 함께 겪은 사십 년 광야 길을 회고하면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고 하였습니다(신 33:29).
사도 바울은 자기 몸에 있는 가시 곧 사단의 사자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를 발견하고 오히려 감격해 하였습니다(고후 12:7-10).


Ⅲ. 신묘막측의 신앙

성경 소요리 문답 제 4문답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하심과 신묘막측하신 성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고백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다윗은 한나라의 제왕 군주로서 모든 권세를 행사하였습니다. 그 당시 자기의 나라 안에는 어느 누구도 왕권에 도전하거나 거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7절에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사람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거나 거기 맞설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15-23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에게서 낳은 아들이 병으로 앓다가 죽은 일이 있습니다. 다윗은 일주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으나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다윗의 태도를 보면 “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하고 깨끗이 승복하였습니다. 또 사무엘하 16:10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도망가고 있을 때 시므이가 티끌을 날리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 기가 막히는 현장에서도 그는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하고 담담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합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이의 성격과 식성, 잠버릇, 건강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찰해왔기 때문에 거의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성격적 결함이나 신체적인 장애가 있을 때 본인은 애써 감추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약점 때문에 자식이 어려움 당할 것을 생각해서 그것을 보완해 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럴 경우 자식이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감찰하고 아신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앉고 일어서는 것과 생각하는 것까지도 알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계획하고 행하고자 하는 일에 미리 대비하시며 길을 인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시 23:2). 지혜자 솔로몬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6:1). 그러므로 그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잠 16:3).

(3)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와 능력이 그의 구원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로마서 11:33-36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신 능력을 실감하는 다윗은 그의 평생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편 30:4-5에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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