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의달] 그리스도인의 가정 (시 128:1-6)

  • 잡초 잡초
  • 255
  • 0

첨부 1


시편 128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사람과 그 가정이 받게 되는 복에 대하여
5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복은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道)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손이 수고한다"는 것은 일이나 직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道)에 행하면
일에 있어서의 복, 직업에 있어서의 복이 있을 뿐 아니라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손으로 수고하지 않고 어떻게해서라도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매주 복권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사는 삶은 바른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도 손으로 수고합니다.
  복권을 사서... 손으로 쓰고... 손으로 긁고... 손으로 수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손으로 수고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찌니라.

지난 주일 우리교회 청년 2부에서 직장 세미나를 가졌는데 반응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때 강사로 오신 교수님은 이런 요지(要旨)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터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될 정도로 성실히 일해야 한다!

저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뿐만 아니라 강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신 그 내용도 아주 좋았는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일을 하게 하시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예로 든 성경 구절은 이것입니다(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 할 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 주님께 하듯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모든 일을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 할 뿐만 아니라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열심히 일하면서 주님께 하듯 일한다면
어떤 결과에 이르겠습니까?

당연히 본문 2절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틀림없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며..
그리고 일을 통한, 직업을 통한 형통의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다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사람과 그 가정이 받게 되는
둘째복은 3절에 나와있는 복으로서... 가정의 복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후회없고 보람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일이지만...
사람은 일만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일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이 땅에 태어난 것이며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이고 원론적인 질문인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났으며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전제가 분명할 때 우리 인생은 기초가 튼튼하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도... 살아가는 방법도... 그리고 삶의 최종 목표도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갈 때 가치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이나 그 가정에 주어지는 복
그 두번째는 가정의 복입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다 잘아는대로 기본적으로는 아빠와 엄마와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큰 가정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손주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좀 더 큰 가정은 그외 여러사람들로 가정이 구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고..
그 구성원들이 그 도에 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결실한 포도나무나 어린 감람나무는 어른이나 아이의 상태에서
가장 탐스런 상태, 가장 멋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면 4절 말씀처럼 이같이 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복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복에 대하여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며 추구하는 복은 대체로 일치하는데
찬송가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495장 3절).

  높은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그 도에 행하는 가정이라면
그 집의 환경이 초막이든 궁궐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부부로 맺어주시는 광경이 나타나는데
아직 인간이 죄를 짓기 전으로서... 그때 아담은 아내 하와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데
그때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창세기 2:23-25).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서로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게 되면
부부의 모습도, 부부의 사랑도, 부부의 인격도 아름답고 근사하고 심지어 거룩하게 된다!!

참 신앙을 가지게 되면... 그리고 온 가족이 참 신앙 안에 거하게 되면
이 말씀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그 관점이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가정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가정이고 그 도에 행하지 않는 가정일 때
그 가정 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기대와 감사 속에 바라보며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로 보이고 자식은 미래의 희망으로 어린 감람나무처럼 보일 것인가
아니면 헛점만 보이고 서로 판단하고 정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보일 것인가?

이점은 자명(自明)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이점인 것입니다(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道)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다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사람과 그 가정이 받게 되는
셋째복은 5절에 나와있는 복으로서... 시온의 복입니다. 5절 앞부분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찬송가 248장은 주로 신년 벽두에 잘 부르는 찬송으로서
그 가사에는 시온의 영광, 시온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찬송가 248장 1-2절).

  1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2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같이 누리겠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 도에 행하며 살면... 바로 이와같은 은총과 복이 임한다는 것인데
그가 바로 얼마 전까지 처한 상황이 어떠했든... 이제는 시온의 영광이 비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시온이란 원래 예루살렘 남동쪽의 언덕 위의 있는 여부스인의 성읍이었지만
BC 10세기 다윗이 이 성읍을 빼앗고 수도(首都)로 정하고
여기다 다윗의 궁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삼하 5:11) 여기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후 이 시온은 한 성읍의 개념을 떠나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적인 성읍이 되었을 뿐 아니라
거룩한 성읍,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읍이 되었는데 성경에는 시온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신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찌어다 할렐루야(시편 135:21).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시편 134:3).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시편 99:2).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편 84:7)

뿐만 아닙니다.
이 시온에서 주시는 힘, 그 축복을.. 성경은 간단하게 이렇게 표현합니다(이사야 46:13).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죄인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선물이며 축복인 구원을 어디서 베풀리라 선언하시는가 하면
바로 이 시온에서!! 베풀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시편 18:1-3)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다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사람과 그 가정이 받게 되는
넷째복은 5절 후반부에 나와있는 복으로서... 예루살렘의 복입니다. 5절 후반부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지리적으로 보면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거의 비슷하고
크기로 보면 예루살렘이 훨씬 클 뿐 아니라 지금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는데
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입성하면서
여리고와 아이 등과 함께 점령되었던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후 이 예루살렘은 수많은 외적의 침입 속에
여러 나라들의 손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는데
로마의 손에 들어가기도 했고..
한때는 아랍인들에게 점령당해 예루살렘 한 복판에 금박으로 된 모스크를 짓기도 했으며
여러 차례 십자군 전쟁을 거친 이후 한때 예루살렘은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친 예루살렘은 1948년 영국이 철수하자
이스라엘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수도가 되었는데
예루살렘의 도시의 특징은 가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도시 한 복판으로 흐르는 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한 시내(강)가 있어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한다 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시편 26:4-5).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루살렘에 가보면 아무리 봐도 시내(강)가 없는데
성경말씀에 표현하는 한 시내와 또 그 시내도 나뉘어 흐른다는 그 시내가
무슨 시내인가 하면... 우리의 눈으로 보여지는 시내가 아니라 영적인 시내!!
즉 하나님의 말씀의 시내!! 은혜의 시내!! 축복의 시내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말씀의 도시, 은혜의 도시, 축복의 도시가 되었는데
이러한 예루살렘의 복이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나 그 가정에 복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사람과 그 가정이 받게 되는
다섯째복은 6절에 나와있는 복으로서... 자식을 보는 복입니다. 6절 후반부입니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 부분을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 다섯번째 복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께 약속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연상케 하는데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출애굽기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하신 것이.. 
자식의 자식을 본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며 산다면
그 복이 우리 당대에만 미치다가 만다거나..
아니면 자식 정도에 까지는 미치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 자식을 보면서.. 그 복이 대대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그 복이 천대까지 계속 계속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이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풀다보니 또 이 말씀은 시편 1편을 연상케 합니다(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마치 오늘의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그런데 이제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복이라고 하는 것도 좋고.. 천대 만대 복 받는다는 것도 좋은데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복들을 받게 된다는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나 자격은 무엇인가
이점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무지무지한 복을 그냥 공짜로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1절 말씀은 다 같이 소리내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자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2개 등장하는데
하나는 경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에 행한다는 것으로서 이 2개의 중요한 개념은
마치 큰 그릇과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복을 담을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개념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는데
먼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치 십계명의 1, 2 계명과 같습니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단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그 하나님만 믿고 섬길 뿐 아니라 그를 최고로 섬긴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외 모든 신들은 잡신입니다. 졸개신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거기다 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거기다 뭘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복도 주시고 화도 주시는 분으로 알고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만 경외하는 것인데... 그러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도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도에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만 하고..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그 다음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발로 몸으로 삶으로 인격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에 행한다는 것은 그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길 위에 서고
그 길을 따르며, 그 길의 끝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에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간혹보면 그저 교회에 이름을 등록만 하면 하나님의 복이 저절로 굴러 떨어질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저는 오늘의 이 말씀을 특별히 준비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이 약속, 이 축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여러분 가정의 것으로 만드는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