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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행복을 찾으십시오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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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이렇게 행복을 찾으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돈을 통해서 행복하기를 원합니다.그러나 돈을 소유하는 시간부터 돈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불안으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돈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을 통해서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식을 소유한 더 삶에 고민이 많아집니다. 지식은 사람을 행복하기보다는 더 고민스럽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모의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은 소멸하고 맙니다. 대통령같은 권세가 있으면 행복할 것같지만 내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남의 간섭받지 않고 사는 사람을 오히려 부러워하게 됩니다.오히려 권세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있기 때무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권세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미인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정한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종종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행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좋은 아내를 만날 때 행복합니다. 좋은 남편을 만날 때 행복합니다.그러나 그 행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습니다.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은 내가 좋을때 상대방이 좋은 만남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조건이 충족되어야 오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을 되찾는 한 아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들은 불행하였던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회복되게 됩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어느날 아버지에게 독립을 요구합니다.
독립하면 더 이상 아버지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저도 어렸을 적에 빨리 커서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사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요구합니다.그런데 이 아버지는 인격적인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들이 인격적인 아버지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모르고 오히려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갖고 먼나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아버지가 모르는 곳으로 갔습니다.그곳에서 이 아들의 삶은 불행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아버지를 의미합니다. 여기 둘째아들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행복을 잃어버린 시작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되는 이 사건의 둘째아들을 자신의 모습으로 한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아버지를 떠나 멀리 다른 나라로 간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을 떠나 멀리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에는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본능을 좇아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준 돈으로 먹고 마시고 실컷 즐겼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 삶을 허랑방탕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추구하였던 행복과는 더 거리가 먼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가지고 있던 돈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친구들도 하나씩 둘씩 떠나고 결국 혼자 남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당장 밥을 한끼 해결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는 불행한 삶의 처지가 되었습니다.잃어버린 행복 어떻게 행복을되찾을 수 있습니까? 오늘 함깨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스스로 돌이킬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여기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한마디로 이 말은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바로 스스로 돌이키는 결단 즉 회개로 찾아옵니다. 회개라는 말은 방향을 돌이키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여기 둘째아들이 불행한 것은 결국 아버지를 떠나 잘못된 인생의 방향으로 갔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결국 둘째아들은 자기의 인생의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고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오늘 세상에는 2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속도로 행복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방향으로 행복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열심히 속도를 냅니다. 지식을 쌓으려고 열심히 속도를 냅니다. 권세를 얻으려고 열심히 속도를 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가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바른 방향입니다. 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천천히 가더라도 행복한 것입니다. 종종 열심히 살았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뒤늦게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돌이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둘째 아들이 돌이키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라고 합니다.
여기 먼저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시간부터 찾아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할 줄 아는 깨달음을 저는 행복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의 문제,잘못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보통 3가지의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은폐입니다.
죄를 범하고 나서 죄를 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은폐를 합니다. 거짓말로 은폐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은폐하려고 합니다. 점점 죄를 은폐하는 수법도 얼마나 발달되었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음주 단속에 걸리자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그런데도 결국 붙들려서 혈중 알콜정도가 심해서 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주단속에 걸리자 차에서 내려 풀을 뜯어먹고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결국 구토까지 하였지만 결국 음주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어떤 치과의사는 여자들을 마취시키고 성폭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신고를 못하도록 협박을 하다가 결국은 경찰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성경에 다윗같은 사람도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남편이 있는 부인을 간음하고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다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를 하나님께 드러내고 인정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아버지 내가 죄인입니다”인정하고 나오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이런 삶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죄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 전가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잘못된 것은 부모 탓이라고 하고 세상 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평생에 마음에 한을 품고 쓴뿌리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더 힘든 부모를 만나고 더 힘든 환경을 만나고 잘 이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항상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마귀의 방법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이 죄를 추궁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의 탓으로 돌립니다. 하와는 뱀의 탓으로 돌립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입니다. 마귀는 자꾸 전가합니다.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들어가고 하나님을 알 수록 자기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자기의 책임을 고백합니다.

세 번째 많이 쓰는 방법이 합리화를 시키는 방법입니다.
“내가 물론 잘못했지만 나만 잘못한 것은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잘못한 거야”라고 자기의 죄문제를 피하려고 합니다. 가령 아버지를 나간 둘째 아들이 자기를 합리화시킨다면 이렇게 할수 있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나를 붙잡지 않으셨어요.내가 집을 나간다고 할때 좀 야단도 치시고 하셔서 나를 붙잡았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

그러나 오늘 둘째 아들은 돌이켰습니다. 자기의 죄를 은폐하거나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럴 수 있는 것임을 합리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였습니다.우리가 어떤 죄인이든지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다루어가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키울때 불순종하는 것처럼 속상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어린 자녀가 부모를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우리는 자녀들을 징계를 합니다.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기 약속의 자녀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이내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가 용서하십니다.
돌이키는 것이 복입니다. 돌이키는 자에게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잘못을 돌이키고 죄를 돌이키는 것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국의 한 묘지 비문에 이렇게 써있다고 합니다.
“나는 죄를 지었다
나는 회개하였다.
나는 믿었다.
나는 사랑했다.
나는 휴식한다.
나는 장차 다시 일어선다.
나는 장차 왕노릇한다“
여기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시작이야말로 우리가 장차 주와 함께 다시 일어서고 주와 함께 왕노릇할 수 있는 열쇠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돌이킬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축복이 주어지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행복하려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합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둘째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실천하였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돌아가야지 하고 마음으로만 결심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돌아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옳기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실제의 일로 여긴다고 할때 돌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둘째아들의 경우와 같을때 분명히 가까운 친구들이 방해하였을 것입니다.
“돌아가도 소용이 없어, 절대로 너의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거지꼴로 돌아가.창파하지도 않아.자존심이 상하지 않겟어”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결코 모든 상황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것은 정리하고 포기하고 결단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적은 가까운 곳에서 돌아가는 선택의 결단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몇가지 결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나중에 믿겠다는 분들입니다.
가끔 전도를 하고 “예수믿으세요,교회오세요”라고 하면 그런 분이 있습니다. ‘내가 믿기는 믿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는 것“입니다. 좀 더 있다가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 인생을 유혹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음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원하십니다. 지금이 구원받을만한 때요 지금이 은혜의 날입니다.

다음에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때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술 다 끊고 담배 다끊고 죄를 다 청산하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가고 교회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평생 못끊으면 평생 못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담배 끓기가 쉽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이주일씨가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이 폐암걸리고 나서 티부이에 나오는데 코메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광고로 나왓습니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라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분들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담배피운다고 다 죽나 뭐“하면서 그것을 끓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단 담배 술의 문제만 해당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문제 때문에 해결사되시는 주님이 필요한 것이지 문제없으면 주님도 필요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는데 문제와 짐을 다 해결하였다면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불완전한 모습 죄인된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런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십니다. 술,담배 그대로 하시면서 주님께로 나아와서 주님을 만나면 버릴 것들은 그때 버리게 됩니다. 마음에 각오가 일어나는 그 순간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주십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받는 날이요 지금이 바로 구원받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는 결단을 할때 아버지만 생각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꼭 하나님께로 나아올때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방해꾼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나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유는 너무 교회에 가짜가 많다는 것입니다. 너무 교회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위선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기가 싫고 교회가 싫다라고 합니다.
사실 꼴보기 싫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그런데 세상에서 꼴보기 싫었던 사람이 교회에 있을때 정말 걸림돌이 됩니다. 교회에 와보니  영 아니구나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잇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피해 저교회를 가봅니다. 그런데 곰을 피하다가 호랑이 만나는 격으로 더 극적인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눈을 돌려서 명품같은 사람을 보기를 바랍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타는 자동차가 매일 얼마나 많은 사고가 일어납니까? 그렇다고 자동차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들이 자동차 사고를 내어도 다시 새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닙니다. 때로 우리 주변의 의사들이 돌팔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병원이 필요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의사들이 다 돌팔이는 아닌 것입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도 이 세상에는 종교적인 가짜가 많은가? 그 이유는 진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혹시 아직 하나님께로 아직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분은 성경을 걸고 넘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진짜 사실인지 자기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 확신이 서면 그때 하나님께로 나오겟다고 합니다. 목사인 저는 아직도 성경을 다 모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평생 연구하여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3.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여기 아버지와 둘째아들이 만나는 모습이 소개됩니다. 행복을 회복하는 모습입니다. 자녀에게 가장 큰 행복은 아버지를 만날때입니다.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은 인생의 주이신 하나님을 만날때입니다.
물론 여기 아들은 집을 나가 완전히 거지가 된 실패한 아들입니다. 냄새가 납니다. 보기가 싫은 모습입니다. 남들 앞에 내 놓기가 창피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아들을 어떻게 영접합니까?
멀리서도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알아봅니다.
저는 멀리서 많은 아이들이 가는 중에 누가 우리 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많은 소리가 들려도 누가 우리 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옷만 보아도 우리 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보다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보다 더 잘 우리를 아십니다.
아직 상거가 먼데 라는 것은 사람을 분간할 수 없는 먼거리입니다. 그러나 그 먼거리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보지 못하였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보았습니다.피곤한 탕자,굶주린 탕자,거지꼴이 된 볼품없는 아들입니다. 이 아들은 집이 가까울수록 또 그 속에 죄책감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대할까”“내가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 얼굴을 볼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를 보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보십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를 신묘막칙하게 지었습니다.시편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칙하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셧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전도구로 하나님은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통하여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기 백성들을 받아주십니다. 무조건적으로 그를 받아 고쳐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인 칼바르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수만은 기자들이 세계적인 신학자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당신이 세계적인 석학으로 한평생  신학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그에게서 대단한 신학적인 문제를 기대햇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신학자는 뜻박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십니다.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더군요”.

오늘 둘째아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나를  기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사랑하십니다.이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가장 귀한 것들을 다 내어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어주신 가장 큰 선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셧습니다. 그리고 나를 죄와 허물에서 건저주셨습니다. 이 사랑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사랑이야기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과거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됩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모든 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과 범사가 주 안에서 풍성하도록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사랑받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영원한 사랑받는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사랑을 우리 모두가 일평생 받아 누리시는 행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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