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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때... (시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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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공동번역>

12:1 야훼여! 도와 주소서. 믿음 깊은 자 한 사람도 없사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사옵니다.
12:2 입만 열면 남 속이는 말이요, 입술을 재게 놀려 간사한 말을 하고 속 다르고 겉 다른 엉큼한 생각뿐입니다.
12:3 야훼여! 간사한 모든 입술 막아 주시고 제 자랑하는 모든 혀를 끊어 주소서.
12:4 저들은 말합니다. "혀는 우리의 자랑, 제 혀로 말하는데 누가 막으랴?"
12:5 "없어서 짓밟히고, 가난해서 신음하니 나 당장 일어서리라.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리라." 야훼의 말씀 이러하시니
12:6 야훼의 말씀이야 진실된 말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녹여 걸른 순은입니다.
12:7 야훼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이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소서.
12:8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립니다. 더러운 자들이 판을 칩니다.

<현대어성경>

12:1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다윗의 노래. 팔현금에 맞추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부르는 노래] 건져 주소서, 여호와여 ! 착한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고 정직한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12:2 사람마다 서로 거짓말을 둘러대고 입발린 말로 속이기를 밥먹듯 합니다.

12:3 아, 여호와여 간사하게 알랑거리는 저 입을 다물게 해주소서. 제 잘난 자랑만 하고 뻐기는 저 입술을 막아주소서.

12:4 `말로 해서 안될 일이 무엇이람. 하고 싶은 말 내 입으로 하는데 누가 하지 말라 말릴 수 있담' 하고 저들은 지절거립니다.

12:5 그러나 여호와 말씀하시기를, `가진 것 없어 서러움 당하는 이들, 오갈데 없이 가련한 이들 애달아 부르짖는 탄식 소리 내가 다 들었으니 이제 나 일어나리라. 저들 편안히 살게 하리라.' 하시니

12:6 여호와 하시는 말씀 미쁘시어라. 흙도가니 속에 일곱번 들어갔다 나온 은보다도 더 참되시어라.

12:7 여호와여, 흉악하게 못된 짓 일삼는 것들이 삼지사방에 두루 돌아다니고 더러운 짓 하는 것들은 그런 것 보고 잘하였다 박수 칩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켜 주소서. 이런 무리들에게 당하지 않게 살펴 주소서.

12:8 (7절과 같음)

먼저 <8절>의 비루(鄙陋)함이란, 더러울 비(鄙), 추할 루(陋)해서 더럽고 치사하다는 뜻입니다. "야,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높은 자리 잘도 올라가고 악인이 판을 치는구나" 이런 탄식입니다.

다른 번역들을 한번 읽어 볼까요? 여러분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한번 느껴보십시오.


▆ 공동번역과 현대어성경 읽고.

이 시편에서 여러분은 어떤 뉘앙스를 받습니까? 이렇게 노래하는 다윗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느껴지십니까?

착한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고 진실한 사람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그대로 믿으면 순진한 바보가 되는 세상, 모두가 다 자기 이익에 따라 으스대든지, 아첨하든지 난리를 치는 세상, 온갖 못된 짓 다하면서 나중에 딴 소리하고 "어때 나 똑똑하지?" 잘난 척하는 세상의 모습에 마음이 상한... 상심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시12편은 세상의 악의 모습, 더럽고 치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상심, 슬픔, 탄식의 정서를 토로한 노래입니다.

마치 <롬3:10-18>에서 사도 바울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렇게 탄식한 것과 비슷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

어느 사람이 인터넷에 다니는 포르노 사이트를 수집을 했답니다. 3개월동안 잠도 안자고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은채, 꼬박 봐야 한번 튛어볼 분량을 모았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이 사람 하는 말, "아직 다 못 모았는데요.."

메일박스를 열면, 쌓여있는 음란 광고물들, 온 세상에 음란에 물들어 버린 것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우리 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빈부차이로 인한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큽니다. IMF때 기업의 빚들이 나라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니, 나라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기업들이 빚을 극복하고 잘 서라고 했는데, 어제, 그제 뉴스 보셨습니까?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를 증명해 주듯이, 국민들의 혈세를 모은 공적 자금을 개인 사치에 쏟아 붓는 사람들, 1,700평짜리 호화 주택을 사고 그 안에 법당까지 차려놓고 옥탑방은 명품관이고 지하방은 골프 연습장이고 2층은 파티장이고 차려 놓은 모습을 보면 정말 혀를 끌끌 차게 합니다.

자기 전 재산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앞머리만큼 뺀질뺀질한 입술을 놀리면서 뒤에서 몇 백억 몇 천억 주무르는.. 이런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라는게 부끄럽지요, 그래서 정말 이 나라 살기 싫다 싫어,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세계인구의 5명 중의 하나, 20%는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인구의 5%는 아사 직전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신시성의 한 음식점에서 하루 저녁 식사가 5,500만원인 식당이 개업을 했습니다. 그 식당에 예약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제일 깨끗한 모습을 기대하는 곳이 종교인들인데, 요새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불교의 사찰이 검은 돈 세탁하는 통로가 되고, 천주교의 신부님이 어린이 성추행으로 재판을 받고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은 돈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젠 아예 낙인이 찍혔습니다.

세상에 잘 사는 사람들 보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철면피처럼 목소리 크든지, 뱀처럼 간사하든지... 그래서 자신의 죄악은 철저히 숨기고, 근사하게 말을 잘해서, 나팔을 잘 불어서 포장을 잘 하는 것이 성공의 첩경처럼 보입니다. 순박한 사람, 순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리 채이고 저리 차이고 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살고 싶지 않은, 지구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 대중가요 중에 이런 노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산다 야야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 판친다 인생살면 십팔시
화살같이 속히 강산 정신을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싱글벙글 싱글벙글 도련님세상 방실방실 방실방실 아가씨세상
염감상투 삐뜨러지구 할멈신발 도망갔네 허허~~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이 아닙니다. 눈물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김정구씨가 축음기 시대에 불렀던 가사와 똑같은 가사입니다. 말하자면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옛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요지경 세상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세상은, 그 내면을 들춰보면, 어느 때나 가히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습,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실에 환멸을 느낄 때, 당신은 어떻게 행하시겠습니까?

오늘 다윗의 노래는, 환멸을 느끼게 하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깨우쳐 줍니다. 세상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세상 모습 따라 망가지지 말고 도리어 세상을 고발하십시오<1-4절>. 맹한 사람들, 생각없고 의식없는 사람들이 제일 쉽게 보이는 현상이 '다른 사람 따라하기'이고 눈에 보이는대로, 느낌에 좋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관, 의식이 확고히 서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부초(浮草)처럼 세상 물결에 밀려 다니며 살고 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교인이 신입사원 환영회에 갔습니다. 과장, 부장이 술을 마시라고 술을 따르라고 하자, 처음에는 술 못한다고 빼다가 결국 모기만한 목소리로 "저 교회 다니거든요~" 말했습니다. 그 말에 과장, 부장이 술 권하는 것을 주춤합니다. 그 광경을 보던 상무님이 술잔을 들고 이 교인 앞으로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하지요?  "나도 장로야~ " 장로도 그러는데, 내가 무슨 청교도라고.. 그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그 핑계로 뭐라고 그럽니까? 대통령도 그러는데, 남들은 나보다 더 난리인데, 왜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잡아갑니까? 목사도 돈 밝히는데,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자기도 무너지곤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당신은 망가지지 마십시오. 세상이 요지경 난리를 치고 개판을 보인다고 하여도 당신 자신은 망가뜨리지 마십시오.

우리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다른 사람들, 세상의 모습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시지 다른 사람이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지 다른 사람 하는대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 멧세지를 단 한 구절에 꼽아 보라면, 저는 이 구절, <롬12:2>을 꼽겠습니다. 로마서의 결론적 핵심 멧세지가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르게 사십시오. "남들도 다 그러는데...", 하며 무너지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맹한 답습을 거부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십시오.

세상의 모습 따라하지 말고 도리어 세상의 요지경 모습, 환멸을 느끼게 하는 거짓과 악으로 포장된 세상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고발하십시오. 오늘 본문 <1-4절>은 다윗이 세상의 개탄스런 현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 건져 주소서, 여호와여 ! 착한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고 정직한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서로 거짓말을 둘러대고 입발린 말로 속이기를 밥먹듯 합니다. 아, 여호와여 간사하게 알랑거리는 저 입을 다물게 해주소서. 제 잘난 자랑만 하고 뻐기는 저 입술을 막아주소서. `말로 해서 안될 일이 무엇이람. 하고 싶은 말 내 입으로 하는데 누가 하지 말라 말릴 수 있담' 하고 저들은 지절거립니다. "

당신의 마음에서 세상의 죄악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미워하면, 당신의 삶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당신의 마음에서 악을 악이라 규정하지 않으면, 당신의 삶은 쉽게 악에게 동화됩니다.

비전은 거룩한 불만에서 시작되며 용기는 악에 대하여 "No"라고 거절하는 데에서 길러집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는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뜻없이 무릎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이 정신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녀가 아닙니다. 사랑이 악에게 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기를 추구하십시오.

세상에 환멸을 느낄 때, 망가진 세상의 모습을 핑계삼아 당신 자신도 망가뜨리지 말고, 무너뜨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고발하십시오.

둘째로, 세상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때,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거나 냉소의 뒤안길로 새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5-7절>.

기가 막힌 모습을 당했을 때에, 사람들이 쉽게 보이는 반응은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거나 냉소의 뒷길로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뭐, 세상이 다 그런 것이지.." 도통한 사람마냥, 주저 앉지 마십시오. "나 하나 움직인다고 이 세상이 무슨 변화가 있겠냐..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이기와 냉소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가 민주화의 진통을 앓던 70년대, 80년대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 선교단체들이 소위 구원,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도피했습니다. 마치 천국행 티켓을 예약해 놓듯이, 구원의 확신만 남발하고, 삶은, 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이기적으로 살아왔을 때, 그래서 결국 어떤 열매들이 나왔습니까? 자기 교회 우상화이고 목회 세습이고 소위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마다 다들 재정 비리로 분열의 추태를 보입니다. 물량주의, 배금주의... 바알의 우상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서 등 돌림을 받고 있는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교회는 개인의 복받기 위한 사람들, 한민족에게 또 하나의 샤마니즘으로 전락해 가고 정적 의에 굶주린 사람들, 거짓을 미워하는 사람들, 올곧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찾지 않는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세상이 기가 막히고 난감하다고 도피하는 것이 좋은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가막힌 모습, 환멸스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뜻은 도망가라는 뜻이 아니고 그 모습에 불만을 넘어 거룩한 비전을 품으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도피하면 훗날 반드시 소명을 외면한 열매를 거둡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하신 것, 기억하십시오. <요17장> 대제사장으로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왜 보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환멸의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주저앉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도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주저앉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도전합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얼굴과 능력을 구하십시오.

오늘 시12편의 5절부터는 이런 뉘앙스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무고히 압박당하는 사람, 연약한 자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손을 보시고 그들을 보호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 일곱 전 단련한 은같아서 절대로 변치 않고 약발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악의 힘에 눌리는 저희들을 지키시고 보존해 주십시오." 약속을 주장하며 탄원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나님, 그냥 지내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이 꼴 못봅니다. 저도 못보겠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치사한 꼴을 보고 계십니까? 말도 안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찾고 기도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의 환멸스런 모습 앞에서 낙심하고 냉소로 지내는 사람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사람과 어느 사람이 더 행복할 것같습니까? 어느 사람이 더 잘 살 것같습니까? 어느 사람이 더 힘있게 살 것같습니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거룩한 가치를 위하여, 꿈을 위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 사는 맛을 느낍니다. 물론 고난은 더욱 당합니다. 손해보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환희를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세상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때, 환멸의 세상을 향해 도전의 의지를 세우십시오<8절>.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여러분은 이 <8절>의 뉘앙스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여전히 비관적인 탄식으로 들리십니까?

기록된 글에서는 뉘앙스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시편은 거의 모두가 다 해피엔딩입니다. 처음에는 신난스런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그 마음에 먼저 응답해주기고 만져주시는 은혜를 입어서 기도를 마칠 때면 소망과 자신감이 넘치는 마음으로 끝맺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비춰본다면, 이 <8절>도 비관적인 탄식, "야, 세상에는 그래도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판을 치는구나, 세상은 어쩔 수 없구나, 어쩔 수 없어.." 이런 비관과 절망이 아닌 것같습니다.

도리어 "세상 참 난리구나. 어디 한번 세상아 해 볼테면 해봐라" 이 거슬러 올라가는 정신이 배어있음 직합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터튤리안이 고백했듯이, "세상이 나를 버렸다구, 좋다 그러면 나도 세상을 버렸노라" 이 기백의 노래에 가까운 것입니다.

예) 신입생 환영회 - 민주화의 진통을 겪던 20여년 전에 어느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의 일입니다. 그 때는 선배들이 사발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신입생들 앞에 짬뽕 사발을 하나씩 놓고 한 사람씩 마시게 합니다. 선배들의 기세에 눌려 꼼짝없이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씨뻘개지면서 사발을 들이키고 있습니다.

한 학생 앞에 선배가 술을 따르려고 주전자를 들고 오자, 이 학생, 사발을 엎고서 말했습니다. "민주화의 투쟁을 하시는 선배님들, 아직도 이런 퇴폐적인 방식으로 신입생을 환영하십니까? 선배님들에게 실망했습니다. 나는 이 퇴폐적인 환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 신입생, 고등학교 때에 교회를 통하여 의식을 반듯하게 세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물론 그 자리에서 고함을 치고 건방지다고 한대 치려고 달려드는 선배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대학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기백이 요구됩니다. 잘못된 것에 대하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소신을 펼칠 수 있는 담대함... 세상의 모든 사람이 기회주의자의 가면을 쓸 때에, 정직을 굽히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예) 정직하면 손해 많이 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때에 정직이 힘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이 기백은, 환멸적인 세상의 모습에 동화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하나님께 세상을 고발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 도전의 정신을, 세상을 이기는 정신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의 대빵이 이겼으면 우리는 다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사람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upside down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가치관이, 문화가 뒤집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당신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도피자로, 세상의 시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혁자로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임을 알았다면, 세상을 향한 도전의 의지를 세우십시오.

내 삶도 못추스리는데, 세상을 향한 도전?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다윗이 세상의 환멸스런 모습에 무너지지 않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기는 기백으로 응답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기는 정신과 비전으로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에,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를 얻습니다. 기도할 때에, 환멸스런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역사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광야에 꽃피고 거짓과 오만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회개의 물결, 부흥이 일어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살기 싫어지고, 환멸을 느끼게 할 때에, 그냥 주저앉지 마십시오. 그냥 세상 가운데 뭉개고 있지 마십시오. 나하고 내 가족만 평안하면 되었지...이기의 울타리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하나님께 당신의 세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통치를 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응답을 힘입어 세상의 변혁을 향한 도전의 기백을 세우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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