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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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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목사 (남서울교회)

한 어린 소년이 농부인 아버지와 마을에 가보기 전까지는 농부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마을에서 엔지니어가 일하는 것을 보고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에 변호사 사무실을 가게 되었는데 변호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보게 되었을 때는 또 다시 마음을 바꾸어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군인을 만나니 군인이 되고 싶고, 항해사를 만나니 항해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농부, 엔지니어, 법률가, 항해사, 군인, 의사, 목사 중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그가 기도드리는 중에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왜? 너는 그 모두가 되어 보고자 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 소년이 대답합니다. "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때 들려오는 음성이 "그들의 교사가 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어떤 아이는 책을 쓰게 될 것이고, 어떤 아이는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수술을 잘 하게 되고, 또 어떤 아이는 설교를 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네가 그들의 교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사란 참 보람 있는 직업입니다. 저에게 딸이 세명이 있는데, 그 중에 두 딸이 교사입다. 그들이 그렇게 교사로 일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인 저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무엇을 전공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겠느냐고 했을 때 서슴치 않고 저는 교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교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교직 과목을 이수하고 교생실습까지 다 받아 교사로서의 자격 조건을 다 갖추어 두었던 것은 그 이유 입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서의 교사의 위치는 생각보다 못합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중·고교 교사들과 학생 부모들 438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중에 72%가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런 조사를 볼 때 옛날부터 우리 사회에 내려왔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오랜 미덕은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교육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땅에서 교육을 제일 잘하는 민족을 들라 하면 유대민족을 드는데, 그들의 교사에 대한 인식은 대단합니다. 유대인의 오랜 지혜가 담겨 있는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교사가 함께 감옥에 갇혔는데 그 중 한 사람만 구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교사를 데리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에게는 지혜와 지식을 전해주는 교사가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교사들을 귀중히 여기는 태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교육을 지킬 수 있었고 그 교육의 힘이 오늘날의 유대민족을 이룬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교육인데, 그 교회의 교육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보려면 그 교회의 교사에 대한 인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의 주일학교 교사의 이름을 아는가? 그 분들에게 일 년에 한번이라도 문안을 하고 연락을 하는가?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감사의 편지나 전화를 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6절 말씀을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라고 하는 뜻은 주일학교 학생들만 말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나와서 어떤 모양에서든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우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는 목사님들을 도와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역을 인도하시는 구역장들입니다. 그들도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입니다. 거기다가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모든 좋은 것’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물론 물질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이란 물질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영적인 것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좋은 것, 다시 말해서 기도의 지원입니다. 이런 것들을 함께 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가르치는 자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 교회 교육은 올바로 설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사에 대한 무관심과 비판, 그리고 소홀히 여기는 것들은 교회 교육에 큰 해를 끼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딤전 5:17에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하고, 또한 히13: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합니다.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 교회는 맡은 교육적인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여기 7절과 8절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교육이란 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 보니까,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으로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 성령으로 심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복음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학생들 마음속에 복음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면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 년을 생각하거든 꽃을 심고, 10년을 생각하거든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생각하거든 사람을 심으라. 그러나 영생을 생각하거든 복음을 심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 여러분들, 우리가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여러분의 경험과 지식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두“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말슴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학생들이 영생을 얻게 해야 합니다. 이 땅에는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위해 심지 않고 육체를 위해 심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즈음 세상 교육이 다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교육도 이 세사 d사는 동안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교육의 효과는 이 땅과 함께 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심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우리 교사들이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낙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금방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심은 것은 거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끝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병사가 적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군목은 군인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유언을 물었습니다."제 어머니에게 전해 주십시오. 아들은 고통 없이 기쁘게 죽었다구요." 잠시 후 어린 군인은 무슨 중요한 것이 생각난 듯 숨을 헐떡이면서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학교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해주십시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구요. 그리스도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전해주세요."

군목은 어린 군인의 유언에 따라 교회학교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고, 얼마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주일학교 교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교사직을 해 왔지만 내가 가르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낙심이 생겨서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아보고 회개했습니다. 저는 다음 주일에 다시 목사님을 찾아가 주일학교 교사직을 복직시켜 달라고 부탁할 것이며 평생 이 직분을 감당할 것입니다. 나의 이 직분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 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 교사와 같이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낙심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일을 하는 데에는 낙심이 찾아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는 이 선한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때가 이르면 거둔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시편 126편에“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합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힘을 내시고 끝까지 맡겨진 교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사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에는 기회라는 것이 있다. 그 기회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잡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희랍 신화에서는 기회의 여신을 앞에는 털이 많지만 뒤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지나가기 전에 꼭 붙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일을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될 때가 기회입니다. 아직도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따르고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 때가 기회입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이 세상의 죄악에 물들고 양심이 마비되기 전 까지가 기회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살려야만 합니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후회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우리들 자신에게도 교사로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젊을 때 가르치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 무언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우리에게 가르칠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해롤드 휘켙이라는 분이 쓴 글에 임종을 앞둔 어떤 부유한 기업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에게 목사님이 심방 왔을 때 그가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가 10년 전에 목사님으로부터 주일학교 9살 반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때 자기가 너무 바빠서 그 교사직을 수락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가장 후회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만일 자기가 목사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면 지금쯤 적어도 100여명의 영혼은 천국으로 인도했을 터인데 자기가 그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썩어질 보화만을 위해서 투자하고 살아 온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영원을 위해 심을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들의 자녀들을 우리들이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때에 힘써 일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고, 가르치는 자는 성령으로 심고 낙심하지 말고 가르칠 수 있는 때에 열심히 가르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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