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정복하라 (시 8:3 ~ 9)

  • 잡초 잡초
  • 383
  • 0

첨부 1


- 설교 : 강구원 목사

"신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들어온다 그것은 우리들과 영원과의 사이에는 장벽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의 인과(因果)는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함이다."라고 한 '에머슨'(Emerson)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러시아의 문호이며 기독교적 겸양과 인종(忍從)을 러시아 국민의 고유한 미덕이라고 주장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어머니 태 내에서 벌거숭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벌거숭이로 흙에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자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러나 인자라고 하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인간이나 사람보다는 보편성에 있어서 지명도가 낮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표현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인간 혹은 사람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가리켜

이사야 40장 6-7절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62편 9절에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4장 14절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약하고 쓸모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사랑하시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탁월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Ⅰ. 문화적인 사명입니다.

문화란 인간의 교양적 행동의 향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정신적, 도덕적, 생활적인 모든 국면에 세련된 진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인간 속에 잠재하여 있는 여러 자원의 가능성을 개발하여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해야 함은 물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문화적인 사명을 맡았습니다.

1) 통치의 사명입니다(왕적 사명).
본문 8장 6절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2장 8절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배권에 만물을 종속 시켰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 지배권을 상실했습니다. 만물의 통치권을 상실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지배권이 회복되도록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인간 통치의 영역은 전 세계적이며 우주적입니다. 땅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중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로에 다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2-23절에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키시고 세상의 것을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는 왕적인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2) 개발의 사명입니다(선지자적 사명).
본문 8장 6절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28절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인 사명을 건강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인간 활동과 사람의 최선의 방법인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공학, 농학 등 모든 분야에 자신의 잠재되어 있는 달란트를 개발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성화시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3) 바치는(드림) 사명입니다(제사장적 사명).
본문 8장 6절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만물을 우리의 소유로 주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것으로 지정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22-23).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23).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3절에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처럼 자기 자신을 드려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드림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몸』은 인간의 구성 요소인 물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몸』은 영이 상실된 몸을 의미하지 아니합니다. 몸으로 실제적인 도덕적 성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으로 이어지는 산 제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 죽었던 인간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이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온전한 삶의 태도가 바로 산 제사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문화인입니다.
왕 같이 다스리는 문화인입니다. 선지자 같이 개발하고 먼저 취하는 문화인입니다. 제사장처럼 내 가진 것을 모두 드리는 문화인입니다.

Ⅱ.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사명입니다.

1) 성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본문 8장 3절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 같은 표현은 우리의 이해를 돋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천지 창조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입니다. 이 천지 창조에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의 독자적 창조입니다.

2) 성자 예수님의 구속입니다.
본문 8장 9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4절에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천지 창조의 영광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피조 세계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했습니다(롬 5: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 5:10).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Ⅲ. 선교적 사명입니다.

1) 보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교사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예수께서…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선교 명령을 발하였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도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2) 보냄을 받는 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라고 했습니다. 또 14절에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냄을 받은 자', 또는 '전파자'는 선교사 곧 전도자를 의미합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롬 10:17).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롬 10:17). 하나님은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하여 전도자(선교사)를 보냅니다. 그래서 선교사(missionary)란 이름의 뜻이 바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보냄을 받는 선교사는

(1)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은 예수 구원입니다(롬 10:9). 이 예수 구원을 전파하는 말씀이 곧 복음입니다. 이 말은 선교의 내용이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2) 아름다운 발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는 곧 저들이 복음을 전하러 몸소 가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저들은 가야 합니다. 저들의 발은 좋은 소식을 운반하는 기구입니다.
낙심된 자들에게 기쁨과 소망의 소식을 전하러 가는 배달부는 그 소식을 받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발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 2-3절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3) 살리는 입술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잠언 16장 24절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8절에는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로마서 10장 15절에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6절에는 『우리가 전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두 주 예수의 구원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입을 의미합니다. 전도(Preaching)는 곧 발과 입의 기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①"땅을 정복하라"(창 1:28), ②"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 13:14), ③"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욘 1:2), ④"내 집을 채우라"(눅 14:15-24), ⑤"눈을 들어 밭을 보라"(요 4:27-38), ⑥"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행 9:6), ⑦"일어나 잡아먹으라"(행 10:13), ⑧"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 등등의 말씀들은 복음 전파의 사명적 명령입니다.

로마서 10장 14절에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엡 2:12; 롬 6:23).
이렇게 하나님의 선교에는 보내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전파하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보낸 자를 받는 불신앙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합니다(롬 10:13-14).

갈보리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 전 교인이 모두 선교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사의 입이 되고 발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고 직접 파송하는 일입니다.
선교사업은 오늘 우리 교회의 존재의의이자 교회 설립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이기면 살고, 지면 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의 선제공격이 필요합니다. 지금 중국, 베트남, 몽골 등은 현대화 작업 때문에 문호를 계속해서 개방하는 중입니다. 한국 교회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기회를 선용하여 복음을 던져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과 세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갈보리선교회 회원 여러분!

선교운동은 거저 받은 자가 거저 주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선교는 빚진 자가 빚을 갚는 행위입니다. 여기에는 철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운동입니다.
한국에는 여러 교단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단은 교회분포에 있어서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작은 교단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선교의 열정만은 어느 교단 못지않습니다. 최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 교단은 교회 수에 비할 때 제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무엇보다 선교 현장에 108개 교회가 있고, 13,000명이 넘는 성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국민일보(2004. 4.19(월), 제47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국 교회가 6,832가정 1만 2,159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대비 250가정 545명이 증가한 수치다. 중국, 일본, 몽골 등 동북아권 선교사는 전년 대비 430명 증가한 반면 이슬람권인 중앙아시아 및 중동 선교사는 각각 117명, 37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교단선교부 및 선교단체 100곳을 대상으로 선교사 파송현황을 조사한 데 따른 것이다.

교회당 파송 선교사 비율은 예장고려가 0.33명으로 가장 높았고 그 뒤로 예장합신 0.25명, 예성 0.21명, 예장대신 0.20명, 기침 0.18명, 예장개혁성내 0.17명, 예장합동 0.16명, 기감 및 예장고신 0.15명 등으로 나타났다. 예장합동과 기감은 많은 교회 수와 성도 수에 비해 교회당 파송 선교사 수가 전체평균치(0.14명)보다 크게 많지 않았다. 예장통합은 0.11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교회가 아직까지 해외선교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줬다."

이 기사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에 살다가 20년 전에 미국(LA)으로 이민 간 저의 친척 한분이 우리 교단 선교현황을 보고 감격해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 동안 형편이 닿는 대로 우리 교회 선교를 위해 매월 선교비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달에 보내온 선교비는 선교 재정으로 이미 교회에 입금(600불)되었습니다. 금주에 보내온 1,000불도 입금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에 교회봉사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선교에 대해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순교적 신앙노선에 매력을 느끼는 성도입니다. 자녀들은 장성해서 아들은 버클리대학 공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딸은 UCLA 인문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Law School을 입학했습니다. 그는 힘주어 저에게 약속하기를 이제 돈을 버는 대로 갈보리교회 세계선교 운동에 마지막 생을 마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총회는 오는 7월 5일부터 8일까지 속초 하일라비치에서 제 1회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미 6월 10일까지 일차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제 3세계 선교사들이 다 모이는 가운데 우리의 선교의지를 재천명하는 기회를 삼고자합니다.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 2,000만원 정도는 지원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세계선교에 축복을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 교회 목표인 3·1·3·1운동에 마지막 1에 대한 목표를 기필코 달성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① 3년(2006년) 안에 1,000명의 재적교인을 모으자
② 3년(2006년) 안에 1동의 건물을 교회당 용도로 매입하자
③ 3년(2006년) 안에 선교사 1명(미화 2,000불)을 단독으로
파송하자
④ 3년(2006년) 안에 신학교 교수 한 분의 생활비(월250만원) 를 지원하자"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이 중에 목표 하나는 목사관 구입으로 이미 달성한 셈입니다. 우리는 이제 셋 중에 하나를 또 달성해야만 합니다. 3년 안에 재적교인 1,000명을 모으는 일은 쉽게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모두 지켜봅시다. 앞으로 2년 반 뒤에 2006년을 결산할 때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남겼는가를 말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 우리의 삶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을 위한 삶이라고 하면 정말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삶은 이 땅에 모든 생태계에서 필연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되는 부메랑적 삶입니다. 그 때는 우리의 행한 일이 따라 온다(계 14:13)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다음은 한국 기독교 총회에 가입된 60개 교단과 16개 기독교단체 중에 선교에 주력하는 14개 교단의 선교 현황입니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