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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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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2004.06.06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시련이 많았습니다. 이방인 로마 사람의 핍박보다 유대인의 괴롭힘이 더 힘들었습니다. 지난번에 바울의 회개(행9:1)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에 신임이 두터운 바나바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가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교회에 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지도자들에게 바울을 소개했습니다. 이 사람은 핍박자 사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회개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사도로 부르셨다고 소개했습니다. 내가 보증을 서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나바의 말을 듣고서야 바울을 사도로 인정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전도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 해서 사도행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주로 앞에서는 베드로의 사역이 나옵니다. 그 다음은 대부분 바울의 기록입니다. 그의 회개와 1.2.3차 전도여행기사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바울행전”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행전”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파란만장한 바울의 선교장면이 나옵니다.

기독교회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합니다. 가장 큰 일을 합니다. 외국선교를 합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지시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다섯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선지자와 교사였습니다. 바나바, 시므온 우레네 사람 루기오, 갈릴리 자방의 통차자인 헤롯과 함께 자란 미나엘, 그리고 사울이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금식할 때였습니다. 성령께서 “너희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라.”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 기도하고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선지자는 한 교회를 담임하지 않고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사는 한 교회에서 교인들을 지도하는 오늘의 목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니게르란 로마이름으로 보아 로마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나인은 일종의 왕족이었습니다.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뛰어난 랍비였습니다. 이렇게 출생지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복음으로 하나 되었습니다. 앞의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는 선지자인 듯 합니다. 마나엘과 사울은 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권면을 주로 했습니다. 교사는 가르침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나 하는 일이 거의 같았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도 바나바와 같이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맨 처음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였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지시였습니다. 금식기도하고 선교사를 안수하여 파송했습니다.

Ⅰ. 기독교는 선교하는 종교입니다.

요즈음 광고회사의 힘이 대단합니다. 어떤 사업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습니다. 물론 튼튼하고 편리하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품을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상품이 잘 팔리고 못 팔리는 것은 선전에 달려있습니다. 지난번 4월 15일에 국회의원 선거를 했습니다. 연설, 토론을 방송에서 다 했습니다. 길거리나 운동장에서 합동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현수막도 걸지 않습니다. 방송의 힘의 기아 절대적입니다. 연사들은 옷, 넥타이... 화장을 합니다. 엄청난 돈을 내면서 상품을 선전합니다. 간판, 방송, 신문, 인터넷, 잡지.. 동원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첫 독립총회를 조직했습니다. 첫 번째 결정은 전국에서 추수감사헌금 전액을 선교비로 총회에 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을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제주도 가면 통합 측에서 이기풍 목사님 기념관을 지어놓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방방곳곳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비록 여러 가지 미숙하지만 성령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선교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상명령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선교는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우리가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120여 년 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복음을 수출하는 1등 선교사 파송의 나라입니다. 세계교회가 우리나라 교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합니다. 한국 선교에 대한 연구로 수백편의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습니다.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선교는 생명운동입니다. 선교는 살리는 운동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몸을 바쳤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 없이 겪고 넘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인간은 낙원을 잃은 실향민입니다. 행복을 잃었습니다. 모두를 잃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늘 고통과 눈물입니다. 불안과 공포, 초조가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목사는 일종의 중매쟁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라틴어로 목사를 폰티팩스라 합니다. 폰티팩스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명의 사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도 그렇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했습니다. 선교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언어와 관습이 다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의 가치는 온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합니다. 선교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선교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선교하면 복 받습니다. 어떤 개척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를 했습니다. 그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선교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미룰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응급환자를 다루는 의사를 압니다. 시간을 다툽니다. 이와 같이 지금 시급한 일은 선교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국내도 전도할 곳이 많은데 뭐라고 외국에 까지 가야하느냐고 합니다. 그렇다고 국내 전도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실직자 많습니다. 이북사람에게 돈, 비료, 쌀 다보내야하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이유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을 베풀어야합니다. 우리는 보다 넓고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Ⅱ. 선교는 복 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받는데 많은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도 있습니다마는 나도 언젠가는 그만한 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다는 것은 언제나 신나고 기분 좋은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는 교회였습니다. 언제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흐르는 물이 살아있는 물입니다. 우리의 피도 심장에서부터 돌아야 합니다. 피의흐름이 멈춘다는 것은 생명의 멈춤입니다. 복음도 이래야 합니다. 선교는 축복받은 사람이 하는 입니다. 어느 교회라도 봅시다. 선교하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교회란 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핍박에 늘 불안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의 괴롭힘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개종한 유대인들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늘 율법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예루살렘 종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거기서 정확한 답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습니다.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늘 바빴습니다. 그들은 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선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그저 받았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인간은 전적 무능력합니다. 전적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선택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는 합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음이 왔음을 압니다.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중대한 결단을 하신 것입니다. 외아들 예수님을 희생시키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전도라 합니다.

이처럼 선교, 전도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옥도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옥은 줄을 래야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벌레도 죽지 않는 이상한 곳입니다. 그 곳에서 고통 받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거기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그 곳은 누구도 봐 주는 곳이 아닙니다. 죽는다면 오히려 좋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100년 남짓 삽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문제는 전부라고 믿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은 늘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일부분에 불과 합니다. 사람은 들풀입니다. 그 영광이 들풀의 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소멸됩니다. 꿈과 영광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그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 요즈음에는 길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길 잃지 않도록 세워진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가면 위험합니다. 이쪽으로 가면 안전합니다. 라고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하셨습니다. 지금도 길 잃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가면 위험합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길 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이는 영광이자 축복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기독교 역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오직 선교사 파송 때문입니다. 그 교회가 정말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복 받습니다. 선교하는 개인이 복 받습니다. 선교는 우리가 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이 받는 것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범죄조직을 마피아(Mafia)라 합니다. 원래 이 뜻은 “아름다움, 자랑”을 뜻하는 시칠리아 말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소설가 마리아 푸조가 1969년 출판한 대부(The Godfather)덕분입니다. 이탈리아 갱 두목 ‘돈 콜레오네’집안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요즈음은 우리나라에서는 범죄 조직이 아닌 정부 관료들의 조직 이기주의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위한 마피아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를 위해서는 복음적인 교단끼리 연합해서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서로 앞장서서 선교를 위해 돈, 시간(기도), 몸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말 좋아 하시는 일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우리 서로 격려하고 밀어 주어 세계선교의 머릿돌이 되어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6.6 주일 낮 설교 -박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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