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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주시는 권능 (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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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시작하면서

오늘은 성령감림절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시고 그들을 떠나가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 속에 성령님이 오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오늘은 '성령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지난 본문에서 성령의 기본 사역이 곧 거듭남이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 교리는 단순한 존재론적 이해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중생의 교리는 구체적인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power)을 받는다."  오늘 본문에서 그 권능을 3가지로 생각해봅니다

1. 땅 끝까지 가는 권능을 주십니다

기독교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나라의 종교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문화적으로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이 권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의 땅 끝은 스페인으로 보았는데, 사도 바울은 그 곳까지 가려는 선교적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음이 로마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롬 15:28). 비록 선교적 이유는 아니더라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이런 개척자 정신을 서구 사람들에게 심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정신은 곧 개척 정신이 되었고 그 정신이 신대륙을 발견케 했고, 죽음을 무릎서고 지구의 곳곳을 찾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곧 자연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 동기가 되었고, 이제는 지구를 넘어서 우주를 탐험하는 과학으로 발전케 되었습니다. 곧 '땅 끝까지?' 란 의미는 공간적 이동의 능력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을 이기게 했고, 인간의 능력을 엄청나게 부양하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주 탐험은 하나님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구 밖이 하나님의 세계란 생각은 원시적 세계관입니다. 우주 어느 것도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가 언제까지 연장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 세계 끝까지, 즉 우주의 끝까지 인간이 다다르도록 되기를 원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땅 끝까지"는 '사람이 사는 어느 곳이나'란 의미가 있습니다. 까닭은 복음의 증인으로써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렇습니다만 좀더 적극적인 의미로 지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벗어나 미래의 자리까지 나아간다고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까닭은 성령은 창조시에 모든 것을 있게 하신 창조주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피조물의 범위 어느 곳이나 성령은 나아가로록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받으면 이런 권능을 얻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무조건 땅 끝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갈 수 있는 권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아갔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나아갑시다.

우리 자신은 미약한 흙에 불과하지만 성령이 오셨으니 권능을 가지고 도전합시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나갑시다. 스스로 한계지웠던 그 선을 뚫고 나갑시다. 우리의 범위를 널핍시다.     

꿈을 가집시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룰 수 있는 권능을 주십니다. 여자, 노인 등의 자리를 털고 일어납시다. 장애인, 병약자, 실패자, 열등자의 의식을 벗어버립시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앉은뱅이에게 임하셨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도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시다.
   
2. 담(차이 = 문화, 인종, 언어, 습관 등)을 뛰어 넘는 권능

우리가 다른 나라로 가보면 공간이동에서 느끼는 단순한 다른 곳이 아니라 다른 세계란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첫째로 언어가 다릅니다. 그래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생김새가 다릅니다. 그래서 쉽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음식이 다릅니다. 그래서 식탁의 교제를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공기의 냄새조차 다릅니다. 그래서 향수병이 듭니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담이 되어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담을 넘지 못하고 물러서거나 포기합니다.

출애굽의 여정에서 약속의 땅을 정탐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드러납니다. 자기들과 비교하면서그들을 네피림(거인)이라고 부르며 그 담의 높이에 짓눌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 위압감뿐 아니라 그들과 섞이어 살려고 하니 준비되지 못한 두려운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의 차이에서 뿐 아니라 같은 나라안에서도, 아니 이웃에서도 나와 너의 차이를 크게 느끼며 짓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나라로 인정받는 곳이 곧 미국일 것입니다. 미국의 건국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고 지금껏 그렇게 발전하여 왔습니다. 물론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미국 문화가 곧 햄버그 문화입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마치 햄버그처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교회를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

실제로 성경은 갈릴리의 어부였던 베드로와 그 일행들이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곧 성령이 주신 권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그들은 일생 갈릴리 지경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촌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헬라어나 로마어를 할 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도시의 세련된 사람들이나 귀족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는 교양은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헬라로 나가고 로마로 나갔던 것은 곧 성령이 주신 능력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동서가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노사가 갈등을 극복하기 어려워하고, 신구 세대간 대화의 벽을 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이혼율이 높아져가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가족이란 공동체 의식을 나누지 못하여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담을 쌓고 지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다원주의 시대를 맞아서 더욱 성령의 권능을 얻어서 이 차이를 극복하는 주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의 행동규범이 갈등구조를 허무는 화평케 하는 도구들로 쓰임 받아야겠습니다. 
     
3. 사선(死線)을 넘는 권능

오늘 말씀의 결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증인의 길은 당시 목숨을 걸고 하는 결단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당시 '예수쟁이'는 곧 '사자 굴로 가는 강제 승차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증인으로 나서는 것은 자기 정신으론 나설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될 것이며 그러면 '너희가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꾼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삶인지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기호로, 나의 취미로, 나의 결심으로, 나의 생업으로는 예수를 증거하는 예수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자기를 죽이는 포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제 대구 학원복음화 협의회에서 2004년도 전도 집회('04 Evangel Festival)를 동신 교회당에서 열었습니다. 대학 청년들 약 1,500여명이 운집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약 3천만원 정도의 집회 경비가 들었습니다. 한동대학교의 연극 공연팀(CCD)이 초청되었고, 전국 학복협 공동의장이신 서울 예수 마을 교회 이 승장 목사님이 설교하시기 위하여 주말에 대구까지 내려오셨고, 대구의 많은 교회 대학부 지도자와 선교 단체 간사들이 수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저는 대회장으로 뒤에서 기도만 하다가 당일 가보니 엄청 준비가 잘된 집회였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투자한 시간, 물질, 몸의 수고가 엄청난데도, 자원 봉사들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감격 속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대행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경산 중앙 교회가 초청 전도 집회를 했었는데, 목표가 1만 명 초청이었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초청 작정서를 낸 것이 10만 명이 넘었답니다. 교인들이 초청 받아 온 손님들에게 줄 선물들을 지원하였는데 5천 만원 이상이 모금이 되었고, 당일 오신 분이 7천명 가까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런 전도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큰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마무리 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과 사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역사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면 교회는 시험에 빠지고 맙니다. 성령이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찬양대원들에게, 순장들에게, 전도회 회원들에게, 당회원들에게, 우리 교역자들에게 충만하게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성도들의 삶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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