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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락방으로 올라갑시다 (행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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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

사람을 평가할 때 여러 가지로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신분을 가지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지위를 가지고, 또 물질을 가지고 평가하기도 하고 학력으로도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사이는 또 외모로 평가를 많이 합니다. 사람이 어느 나라에 속했느냐? 국적으로도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가 참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소지품을 다 들추어내고 옷까지 벗기는 것을 보면서 “야! 국가 덕을 우리는 참 많이 본다.” 이런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여러 가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많은 사람들은 학점으로 인해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이
들이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저에게 그런 몇 가지 가정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TV가 있습니까? 전화기가 있습니까? 냉장고가 있습니까? 그러면 동그라미를 칩니다. 한 달에 얼마 받습니까? 아파트가 몇 평입니까? 죽~제가 그래서 보냈더니만 우리 집을 중산층이라고 진단을 해 주었어요. 저는 중산층입니다. 어떤 분은 잘 사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중산층이 있습니다. 가난한 분이 있습니다. 또 극빈자가 있습니다. 요사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삼십 만 명의 아이들이 결식하면서 공부한다고 하는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여러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사람을 여러 가지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성경이 보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하느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의 영이 떠났느냐? 모든 것을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천국이 어디입니까? 초막이나 궁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아무리 에덴동산도 저주를 받아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으니까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이 성경이 결정적인 우리 인간을 보는 하나님의 눈이요, 하나님의 평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약하고 신분이 낮고, 학력이 부족하고, 외모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고, 옷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고, 지위를 높이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는 아무것도 어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오히려 이런 세상적인,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다 F학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들을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로 다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 여기에 우리 인간의 가치와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 되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영적 문제 때문에 나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있어도 인간의 문제는 영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지 육적인 치료는 극히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요, 영적으로 터치할 때 영적으로 이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인간의 문제는 완전히 말끔히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축복을 받아야 하느냐?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십년, 이십년 다녀도 별로 복 받은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영적인 축복이 참 된 축복이고, 영적인 은혜가 가장 영원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시간 처음에 우리가 불렀던 주기도문이 얼마나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까? 천 번, 만 번 불러도 우리에게 수 만 전류가 흐르듯이 내 영혼에 큰 기쁨이 흐르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영적인 우리 인간의 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힘인 것입니다.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앞날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때에만이 참 된 보호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가 참 된 축복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여호와가 나의 인도자이십니다. 우리 교인이 주식을 전문적으로 우리나라 전체 주식계에 주식을 관리, 조절하는 정부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저는 주식을 안 합니다.” 왜 그러냐? 그러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왜 하게 하느냐고? 세계가 다 주식을 하니까 그건 하는데 저는 안 합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될 지 안 될지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어느 분야나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지식이 발달해도 우리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인생은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고 불확실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도 이 차가 갈는지 못 갈는지 모릅니다. 결혼을 해도 행복할지 불행할지 전혀 알 수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이걸 믿어야 합니다. 속히 고백을 하고 인정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확실하게 말하셔야 돼요. 이거는 분명해야 합니다. 다른 건 우리가, 밥도 우리가 알고 먹듯이

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우리는 무섭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빛이시요 생명이시요 능력이시요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간이 커서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야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그 발걸음과 삶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어디에서도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초등학교 학생이 그렇게 주사 맞는 걸 싫어하고요, 예방주사 맞을 때마다 울고 피하고 안 맞으려고 하는 아이가요, 하루는 주사를 맞는데 너끈하게 맞는 거예요. 담담하게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얘, 너 왜 오늘 안 우냐? 너 왜 오늘 그렇게 주사를 잘 맞냐? 그랬더니 애가 빙그레 웃었어요. “나는 겁 안나요.” 그래가지고 손에 무슨 큰 종이를 쥐고 있어서 그게 뭐냐? 그러고 보니까 ‘보이 스카웃은 용감하다’ 이게 딱 적혀있는 거예요. 자기가 보이스카웃 들어가서 훈련받으니까 거기에서 잠깐 훈련을 받고 나니 주사야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보이스카웃은 담대하다. 이러니까 얘가 완전히 바뀌어진 거예요. 교회 나와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내가 믿는 분이 만물의 창조자요, 어디든지 무소부재 하시고, 무소불능 하시고, 창세기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가 믿는 그 야훼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믿는 그 야훼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홍해도 광야도 건너고, 바로도 이기고, 풀무불도 이기고, 사자굴도 이기게 하신 이 능력의 하나님을 말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날마다 읽고 듣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보이 스카웃은 용감합니다. 성도는 용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볼 때에도 우리는 예수 믿기 전의 그런 눈으로, 그런 지식의 눈으로, 경험의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안 될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고 넘어지는 것도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사방으로 우겨 싸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넘어질지라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야훼의 눈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인 눈으로 우리는 사건을 보고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 가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니까 우리 학교 출신 한 분이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전도사님이신 데 임신을 했어요. 임신을 했는데 전도사님이 그 사모님을 보고 늘 강조하는 거예요. 임신한 것은 행복하다. 임신과 입덧은 무관하다. 임신과 밥맛은 관계없다. 밥 갖다 놓고 막 올라올 때도 임신은 잘 먹을 수 있다. 임신은 행복하다, 계속 말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나는 잘 먹으리라. 어떻게 해도 괜찮다, 늘 이렇게 하고 계속 6개월을 했더니만 다 넘어갔다는 거예요. 계속 잘 먹고. 여러분, 말의 능력이 얼마나 있습니까? 음식 가져다 놓고 아이고, 올라 올 거야. 올라 올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하고, 아니야, 올라오는 것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지도자 가가와 도요히꼬는 아시아 최고의 지도자이시고 기독교의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지 모릅니다. 이 분은 20살에 폐병에 걸려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믿고 좋은 일 하다가, 선한 일 하다가 죽겠다. 그러고 신앙으로 선한 일 하고 남 도와주고 믿고 기도했습니다. 폐병은 나았습니다. 50년 동안 더 살면서 오히려 그 폐병을 통하여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영적인 눈을 뜨고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경직 목사님도 폐병 요양소에 가서 3년을 지낼 정도로 끝난 인생이었지마는 의사가 진단해 주는 대로 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자기를 진단하고 나는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 이런 마음으로 일어설 때 한 목사님은 100세까지 사셨고, 아흔 아홉까지 사셨고, 우리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모든 지도자들이 순탄하게 아무 일 없이 만나서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에디슨도 귀가 막혔지마는 놀라운 발명을 한 것처럼 더 많이 기도하고 그래서 뭐, 하나 발명할 때마다 만 번 기도했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하고, 경외할 때에 인간의 장애물은 다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믿음의 입으로, 믿음의 가슴으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이런 삶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군에 많이 가는데 여러분 보시는 대로 주일 저녁이면 내가 꼭 안수기도를 해주고 여기서 유학도 보내고 군에도 보냅니다. 많을 때는 한 주일에 15명, 20명씩 군에 들어갑니다. 많은 아이들이 갑니다. 여기서 기도해 준 것이 너무너무 모두 감사해 가지고 편지들을 자주 보냅니다. 어제도 내가 편지를 보면서 참 내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나는 이제 제대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정말 도와주십니다. 훈련소에서 믿음의 생활 지금 잘 했습니다. 얼마나 그런 사건을 많이 기록하고요, 이 분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이 학생은 첫날 들어가던 그 이틀 지나 가지고 주일날인데 교회 못나가게 하더래요. 그래서 기도했대요. 원래 입소해 가지고 훈련소에서 첫 주간은 교회 잘 안 보내요. 그런데요 막 교회 가도록 기도했는데 대대장님이 가라 그러더래요. 실수로 그만 가라 그래가지고, 첫 주일부터 결석하지 않았다. 그럽니다. 또 훈련소에서 유격훈련이라는 게 있어요. 이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이 세상에 유격훈련보다 더 어려운 건 없어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부러운 게 하나도 없는데 유격훈련 안 받는 거 그게 부러워요. 이 세상에 그거같이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유격훈련을 내일 받는데 얘가 또 그랬대요. 하나님아버지, 내일 눈이나 펑펑 와 가지고 유격훈련 좀 안 받게 해 주십시오 기도했는데 정말 그 다음날 진주에 눈이 오는 데요. 30년 만에 처음 왔대요. 진주는 눈이 안 온대요. 지난겨울에 눈이 많이 왔잖아요. 나무 가지가 막 떨어지고 이 남쪽으로 눈이 왔는데요. 얼마나 와 가지고요, 하나도 안 받고 그냥 방 안에 있다가 유격훈련 끝났다는 거예요. 자기가 또 기도했대요. 하나님, 나 서울 명성교회 가까이 가서 믿음생활 하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성남 비행장으로 왔대요. 여러분, 어린 학생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하는데 다 커 가지고 신앙 간증도 하나 못하고 집사가 되가지고도 하나님이 임마누엘 한 거 하나도 말 못하는 거 집사가 아니에요.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전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예요. 영적으로 살았어요. 영원히 구원함을 얻었어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제는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피곤하지 않습니다. 안 될 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넉넉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라헬이 아들을 낳다가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너무 슬퍼합니다. 내가 젊은 나이에 이래 죽으니 내 아이가 다른 어머니 밑에서 얘가 살겠나? 이런 비참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러면서 그 아이 이름을 지어 주고 죽습니다. 그 아이를 남편 옆에 있을 때 “여보, 얘 이
름을 베노니라고 지으세요. 슬픔의 아들, 불행한 아들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세요.” 그럴 때 옆에 믿음이 있는 야곱이 뭐라 그러죠? “여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거지 아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이 아이와 같이하는데 왜 이 아이가 불행하냐?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자고.” 이름을 부인은 베노니라고 하고 돌아갔는데 그 자리에서 여보, 베노니가 아닙니다. 베냐민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의 아들, 하나님이 이 오른손으로 잡아주면 이 아이는 성공할 것입니다. 베노니가 축복을 받습니다. 승리합니다. 사람을 볼 때, 사건을 볼 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속상해도 안 돼도 절대로 믿음으로 말하면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장학관에 전국에 장학관이 있는데 어제 그
런 보고가 왔어요. 지방 장학관에 있는 여학생이 대학에 금년에 1학년 다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지난주에 가정불화 일어나서 싸우다가 불을 질러 가지고 둘 내외분이 다 타 죽었대요. 자기 부모님이 다 타죽었는데 나는 이제 공부를 못하니까, 얘가 돈을 이제 부모가 안 대주면 공부를 못하니까, 우리 기숙사는 대학생일 때만 있게 되어 있거든요. 졸업하든지 대학에 안 다니면 못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공무원 시험이나 쳐 가지고 이제 대학은 못 다니니까 어디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시험공부를 하도록 기숙사에 한 1년 만 더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 신청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뭐 저렇게 예외지마는 있던 아이가 어려움을 당했는데 있어야 되지 않겠나, 공부하도록 저 아이 길을 잘 열어주도록 해라.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속상하면 싸우고, 불 지르고 그러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세상에 동물들도 안 그러는데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이 꼭 어려운 일 하나 못 참고 죽고, 자살하고, 그러면 되겠어요? 믿음으로 보면 이겨낼 수 있는 거죠. 산을 등벽 하는 분을 보면요, 여의도 63빌딩도 줄 타고 올라가는 분이 있거든요. 미국에는 100층 올라가는 분 늘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을 보면 손가락 하나 들어가는 자리만 잡으면 올라가는 거예요. 발가락 하나만 들어가면 이 몇 백 미터 벽을 올라가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요만한 거 하나 걸려도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다 무너져도, 다 안 돼도, 요만한 가능성만 있으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걸 믿어야 되는 거예요. 왜 그래요? 하나님이 함께 하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니까. ♪인생 길 험하고 마음 지쳐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너 홀로 앉아서 낙심치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오시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도우시리. 예수님은 나의 기쁨,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아래, 예수의 품안에 안기어 인생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함께 하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열두 제자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기도해라, 기다려라, 마가의 다락방으로 들어가라. 주의 말씀을 듣고 사랑하는 제자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이면서 교회가 탄생되고, 기독교가 탄생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은혜 받은 그 몇 명 안 되는 무리들이 오늘날 2 천 년 동안 온 세계를 주름잡고, 전 인류를 복되게 한 믿음의 조상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이 다락방을 찾은 분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영적인 길을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
상에 무엇이 있으면 잘 되는 줄 알고 세상 걱정 세상에 있는 것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알 바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그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할수록 사람은 약한 사람입니다. 권력 의지할수록 성경으로 보면 죄가 많은 사람이 이런 걸 자꾸 의지하는 거예요. 자기의 약점을 가리우고, 어떤 권력이나 물질의 보호를 받으려고 자꾸 이런 걸 의지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권력이 오히려 가까울수록 싫습니다. 높은 사람 만나자. 그러면 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호와 야훼의 힘으로 살아야지, 오늘 얼마나 권력을 의지한 사람들이 그 이후에 얼마나 당하는 것을 끊임없이 보면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십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여호와를 의지하여 영원히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큰 약속이 세 개 있어요. 하나는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메시아를 보낸다는 약속이에요. 두 번째 약속은 뭐예요?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이에요. 세 번째는 뭐예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에요. 한 가지는 안 이루어졌고, 두 가지는 이루어졌어요. 이것이 성경의 가장 큰 약속이에요. 가장 큰 축복이에요. 그리고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해요. 예수만 믿으면 되지, 왜 또 성령 또 받아야 되냐? 이런 말하는 거예요. 잘 아셔야 돼요. 예수를 믿는 것은 부부가 예수님과 우리가 결혼하는 것과 같아요. 부부가 결혼해서 사는 것과 같아요. 성령은 뭐냐? 결혼한 이 부부가 잘 살도록 사랑을 만들어주고, 이해와 관용과 기쁨을 주고, 이런 마치 컴퓨터로 말하면 하드웨어가 있는가 하면 소프트웨어가
있듯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도 성령이 안 도와주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안 생겨나는 거예요. 주님의 좋은 마음이 없어지는 거예요. 교회 나오셔도, 예수를 믿어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교회가 짐이 되고 무거워요. 성령이 우리의 삶에 기쁨을 주고 힘을 주어서 좋은 일을 잘 감당하게 하고 불행한 일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이 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성령을 히브리말로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 ‘루아’라고 해요. 바람이에요. 행복의 바람을 주는 거예요. 부부간에 밥 먹다가도 나쁜 바람이 불면 싸워요. 그런데 좋은 바람, 성령은 거룩한 영, 하나님의 영, 우리 아버지의 영이니까 우리 아버지로부터 오신 영이니까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기쁨을 주고, 자유를 주시는 줄
로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습니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신 은혜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름과 같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안 되듯이, 성령은 기름이에요. 초가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안 되듯이, 성령은 우리에게 기름 역할을 해주는 거예요. 할렐루야! 성령은 우리의 삶에 힘이 되는 거예요. 모든 일에 힘이 되는 거예요. 오늘 나오신 모든 성도들, 어느 날은 성령으로 같이 하고, 어느 날은 성령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항상 성령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스승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앞날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이 실패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어떤 분은 돈만 있으면, 좋은 집만 있으면, 몸이 아픈 분은 건강하기만 하면 그러죠. 건강하다고 잘 삽디까? 건강하다고 믿음으로 삽디까? 잘 산다고 하나님 뜻대로 삽디까? 가난하나 있으나 없으나, 신분이 누구든지 성령이 같이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서부터 보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육으로 살아갑니다. 육으로 살아가는 삶은 헛된 삶이에요. 우리는 다락방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교회는 우리의 다락방입니다. 교회 와서 말씀을 들으면 성령이 충만해 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평가를 건물이 얼마냐, 예산이 얼마냐, 교인이 얼마 모이느냐, 목사가 누구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교회 위에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이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우리 교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지라도, 그 안에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자랑할 거 아무것 없을지라도 우리 교회 위에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요, 살아있는 교회요, 축복 받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늘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 가면 좋습니다. 교회 가면 행복합니다.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거둡니다. 이것은 영적인 길이기 때문에, 영적인 삶이요 능력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지나놓고 보면 교회 다니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가서 마지막 임종을 맞이했을 때에 물었어요. "당신의 인생에 가장 보람된 일이 어디 있느냐?" 고.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세계를 적어도 가지고 놀았으니 그 어마어마한 영광을 누렸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 많겠어요? 그럴 때에 뭐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전쟁하다가 저녁에 조그마한 전선에 있는 교회가 있어서 거기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 예식을 참여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순간이 내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그랬어요. 많은 분들이 감옥에 계신 분들도 내게 편지를 보내고 하는데요. 내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교회에 몇 년 다녔던 순간이라는 이런 편지는 똑같습니다. 어디를 다니십니까? 빨리 빨리 교회 잘 다니고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나중에 끝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남은 생애가 20년인지, 30년인지 모르지마는 빨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좋은 일 많이 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마귀에게 놀아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보험회사에 보험 든다고 전화해서 “선생님, 빨리 보험 들게 해주세요. 빨리 오세요 빨리 우리 집에 오세요. 보험 들게 해주세요.” 아니, 다 절차가 있는데 뭐 그리 급하십니까? 아니, 빨리 오시라니까요? 빨리 보험 들어야 됩니다. 어디십니까? 아이, 빨리 오시라니까요. 빨리 보험 들어야 됩니다. 그럼 이리 오세요. 그렇게 급하면 이리 오세요. 아니 갈 틈이 없어요. 빨리 보험 들어야 됩니다. 왜 그러십니까? 왜 못 오세요? 올 시간도 없어요? 갈 시간이 없어요. 지금 불이 났어요. 내가 갈 틈이 없어요. 빨리 보험 들어야 보험금 타는 거예요. 빨리 들게 해주세요. 여러분, 불나기 전에 보험 들어야지 불이 타는데 보험 못 든 걸 후회하고 빨리 들어주세요. 예수 믿으면서 어려운 일 당할 때 주여 살려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은혜 주세요, 그러지 말고 진작 하나님 기회 주실 때 은혜 받고, 능력 받고, 자유함을 얻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부모이십니다. 성령의 품 안에 안겨야 평안이 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의 생각은 평안이라 그랬어요.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정결하게 합니다. 온갖 더러워진 우리 몸과 마음을 항상 성령은 샘솟는 은혜로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참 자유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교독문에 읽은 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과 만날 때 자유함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미국은 민주주의니까 가서 자유. 아닙니다. 미국 가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우리 교민들이 너무너무 많고요, 자살하는 사람 너무너무 많습니다. 여기서보다 몇 배나 총으로 서로 죽이는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왜입니까? 우리 인간의 자유는 국가에서 주는 것 아닙니다. 물질이 주는 것 아닙니다. 법이 주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과 만날 때 내 영혼에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못하는 참 자유가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기쁘시게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날마다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락방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성령의 인도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승리하는 성도가 됩니다. 그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회와 이 시대가 심히 어려운 시대에 이렇게 어려운 시대이지마는 성령으로 충만 하는 성도는 이 시대를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세상으로 알고 행복하게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가장 큰 능력, 인간의 뿌리에요.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왜 담대한 것입니까? 보이 스카웃은 용감합니다. 성도는 용감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이 같이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분은 몸만 건강하면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몸이 건강해야 일을 많이 합니다. 모든 일은 몸이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어디의 지배를 받습니까? 100%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몸도 사흘만 고민하고 밥 안 먹으면 10kg 줄어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무병하고 건강한 사람도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면 암에 저절로 걸려 버립니다. 병이 다 마음에서 오니까 정신에서 오니까. 그러면 마음과 정신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의 지배를 받습니까? 영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 마음에 자유함이 오고, 믿음이 오고, 기쁨이 오고, 감사가 오고, 소망이 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안 받
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악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이 내 마음을 지배하면 마음도 무너지고, 그 마음이 지배하는 몸도 무너지고, 몸이 모든 삶을 주관하는데 그 삶 전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장하면 성령은 거룩한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생명의 영이요, 은혜의 영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도 무한한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되고 능력이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전혀 부작용이 없는 그 몸에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삶에 무한한 축복을 가져다주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이 병든 것도 교회 나와서 성령 충만하면 마음 치료를,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가정의 치료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든 문제를 치료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십니다. 한 번 저를 따라 하십시오. “이 더러운 병마야 물러갈지어다.” 교인은 적어도 이 정도 말은 한 번씩은 해야 합니다. 한 번 해 보십시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능력 있는 삶을 한번 활용해 보십시오. 보이 스카웃은 용감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성령 충만하여 용감하게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주의 전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영적인 배고픔이 없고, 영적인 헐벗음이 없고, 영적인 무지함이 없도록 주여! 우리를 복 내려 주옵소서. 영적으로 자유함이 주어지고 평안이 주어지고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를 성령으로, 우리 성도들을 성령으로, 우리의 가정이 믿음의 다락방이 되어서 모두 기도하는 성령 충만한 가정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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