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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집사 (엘 2:28-32, 행 7: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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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화림 목사 (신안교회)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 목사가 하루는 깊은 묵상과 함께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천국 문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가 그를 맞이합니다.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를 않고 문간에서 베드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자기와 감리교 운동을 하다가 먼저 죽은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천국에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묻기를 나와 함께 감리교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 왔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베드로가 명부를 한참 뒤적거리고 나서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는 장로교 교인들은 몇 사람이나 들어왔습니까? 베드로는 한참 살펴 보고나서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더 놀랬습니다. 그는 겸손히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우리가 한 종교 개혁운동은 대단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가지 더 ane겠습니다. 그러면 천주교인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베드로는 천주교인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더욱더 놀라서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 천국에 들어옵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예수님을 참으로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사람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들어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요한 웨슬리는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사도행전 7장에는 대표적으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에 나타난 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높이 존경 받은 그리스도인이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짧은 기간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존경스럽고 너무나 부러운 신앙의 선배입니다. 성령 충만함의 속성과 그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분이 스데반집사입니다. 55절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라고 했고, 사도행전 6장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치 당치 못하였다고 했고, 사도행전 7장 55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고, 사도행전 2장 4절에 보면 오순절에 다락방에 있었던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8절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고, 사도행전 11장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고, 사도행전 13장 52절에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집사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충만이란 말의 헬라어 뜻은 체험적 신앙을 말하고 합리적 이해를 말합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차서 철철 넘치는 것이 충만 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에 완전히 사로 잡혀서 자기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나약함도 이기고 슬픔과 탄식도 이깁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의 극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느껴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핍박자나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 합니다.

오늘 읽은 스데반집사의 순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충만함의 뜻이 무엇인지를 만족하게 알 수 있습니다.
54절에 보면 사람들이 스데반집사를 향해서 이를 갈며 성밖으로 내치고 돌을 던졌습니다. 초대 교회때 먼저 순교한 사람이 사도가 아니고 스데반집사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데반집사가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집사는 갈릴리 촌 사람이 아니고 헬라파 유대인이고 지성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할 때 같은 동료 전에 같은 친구였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용납하지를 아니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껴서 법을 어기고 돌을 던져 스데반집사를 때려 죽였습니다.

스데반집사를 죽인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도 친구였던 사람들입니다.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돌을 던졌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오해도 많고 문제도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스데반집사는 그걸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55절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집사는 땅을 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로마황제 시저가 암살당할 때 칼로 자기를 찌르는 친구 앞에서 네가 나를 하면서 무릎을 꿇고 쓰러졌습니다. 스데반집사는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네가 이럴수 있느냐? 네가 어찌 이럴수 있느냐? 하지 아니하고 네가 나에게 돌을 던지다니 이런 생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생각지도 아니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앞이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옆도 막혔으면 이제는 위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떤 사건 어떤 상황에서든지 먼저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요.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기본자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늘에 있는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에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먼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 다음에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안하고 그 외의 아무것도 안본다는 뜻입니다. 집중적으로 주목해서 하늘만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 어서 올라오라고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만 우러러 볼 때 집중적으로 볼 때 예수님을 보게 되고 그 예수님께 생명을 바쳤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예수님을 우러러 보며 예수님께 자기 생명을 바쳐 버리고 자기 미래를 바쳐 버리고 자기 영혼을 맡겨 버렸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걱정 중에 가장 큰 걱정은 죽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입니다. 감기만 걸려도 이러다 죽지 않을까 하고 종합검진을 받을때마다 또 무슨 중한 병은 걸리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합니다. 어차피 죽을 것 죽는 문제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스데반집사는 죽음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했습니다. 죄의 문제, 불안과 공포의 문제. 세상에 대한 미련 다 접고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위탁해 버렸습니다. 여기서 스데반집사는 그 영혼이 자유하게 되었고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 그 원수들을 용서했습니다. 용서할 뿐만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원수사랑은 기본입니다. 가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할 때 원수를 사랑하다니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 그것은 특별한 성자들이나 예수님이나 바울이나 스데반집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단 말입니까? 하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구든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자신이 살 수 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면 미워하고 있는 동안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도 진실도 건강까지도 다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빨리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에 매어 있어 헤어나지 못하면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기본이고 기초적인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사도행전 6장 15절에 보면 스데반집사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사를 본 적이 없지만 천사의 얼굴이 어떠할지 짐작은 합니다. 천사의 얼굴은 변화한 얼굴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사람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고 원수를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사람이 젊었을때는 예쁜 것이 있습니다. 더 예쁘고 덜 예쁘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50이 넘고 보면 다 비슷 비슷합니다. 별 차이가 없고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이 있습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밝은 얼굴이 중요합니다. 밝은 얼굴은 마음에 원수가 없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이 천사가 되면 얼굴도 천사가 됩니다. 얼굴이 밝아집니다.

제가 아는 어느 교회는 특별한 전도 활동이 없습니다. 목사의 목회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을 사람들이 얼굴이 밝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잘 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 예수 믿더니 낮빛이 밝아졌어하고 그 사람 따라서 그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천사의 얼굴을 가지면 전도가 됩니다. 천사의 얼굴은 진실로 가장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이 사울로 있을때 사울은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한몫했습니다.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집사가 바울을 사로잡았습니다. 바울 신학을 연구한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이 회개한 것은 스데반집사의 마지막 설교와 얼굴에서 감동을 받아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스데반집사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유토피아란 책을 쓴 토마스 모어가 교수형을 당할 때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성경에 보면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때 옆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기도하고 용서하고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었는데 결국은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고 한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해서 하나님나라에 가서 서로 만나 영원한 친구로 행복하게 삽니다. 내가 오늘 당신의 손에 죽지만 언젠가는 당신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 영원한 친구로 함께 살 것을 믿소 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여러 가지인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해 줍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되는데 성령님께서 믿어지게 하십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란 말입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가 없는데 성령님께서 믿게 역사하므로 믿어지게 됩니다. 이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으면 아주 마술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고 예수 믿자마자 싹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확 켜지는 것처럼 되기를 바라지만 인격적인 것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인격적으로 변화합니다.

독일 유학 갔다가 서로 친해져서 결혼해서 자식도 낳은 후에 한국에 와서 사는데 개성이 강해서 팽팽히 맞서서 늘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둘이 도장을 찍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남편이 갑자기 회사에서 외국으로 6개월간 출장을 가게 되어서 출장을 가면서 이혼은 갔다 와서 하자고 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남편이 이혼하자고 할 때 도장은 찍었지만 남편이 없고 보니 굉장히 허전해서 술도 마셔보고 춤도 추어보고 별짓 다하다가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답답하니까 새벽에도 나오고 저녁에도 나오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오면서 큰 위로를 받았고 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어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6개월 후 남편이 돌아오는 날 그는 차를 가지고 공항에 나가서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데 이혼할 사이여서 할말이 없어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남편이 아내 보고 너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긴 무엇이 달라졌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도 속상해서 교회 좀 나갔어 그래 예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 얼굴 달라진 것 보니 뭔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교회좀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으니 이혼 잠깐 보류하자 그리하여 부부가 계속 교회에 나와 함께 세례 받았습니다. 교회 잘 나오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고 성령의 역사이고 거룩해지는 역사입니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
미국의 대선주자들이 꼭 대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정말 거듭났느냐 하는 말입니다. 찰스콜슨은 닉슨 행정부때 닉슨대통령의 보좌관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고뇌하고 기도하던 중에 친구가 넣어준 시어즈레이스가 쓴 크리스찬이라는 책을 읽다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경험을 거듭남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썼습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러면서 거듭남이라는 말이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거듭난 사람인가를 묻게 되었고 이것은 그때 이후 대선주자들이 거쳐야 되는 첫 번째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거듭나게 됩니다.

넷째, 성령님은 우리로 복음을 전파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마두마세라는 여학생이 등교해보니 학교가 떠들썩 했습니다.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흑인 단체회원들이 학교에 들어왔는데 그 여학생이 강의실로 들어갈려고 할 때 그 단체의 한 사람이 학생의 팔을 잡고 왜 너 나를 보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들어오느냐 하고 시비를 합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웃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그 학생은 늘 성령이 충만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는데 이런 위기를 당해 기도했더니 마음속에 그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을 보고 웃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다fms 사람이 갖지 못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보고 항상 웃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 흑인이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기쁨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2천년전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악과 불의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흑인이 그러면 나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기쁨을 얻을 수 있느냐? 당신도 이제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구원을 얻고 나와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흑인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흑인은 그 즉시 동료 흑인들을 모아 학교에서 물러가게 하고 하루 만에 그 단체의 간부 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예수 안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을때 잘못되면 한 평생 수고 한 것 다 망가지고 맙니다. 스데반집사의 장엄한 순교를 깊이 깊이 생각하고 기억합시다. 스데반집사의 순교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였습니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예수님의 영접을 받는 스데반집사를 기억합시다. 스데반집사는 성령이 충만합니다. 스데반집사에게는 원수가 없었습니다. 스데반집사에게는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습니다. 오직 밝은 마음과 밝은 얼굴 소망과 영광과 용서와 기도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엘선지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부어주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무리들에게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요엘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시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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