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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은 조각을 거두라 (요 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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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현 목사 (한광교회)

  오늘은 환경주일입니다. 교회가 왜 환경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하고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환경이 아프면 인간도 아픕니다. 환경이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환경이 나쁘면 몸이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환경이 나쁘면 믿음이 병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환경이 좋으면 믿음이 건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환경이 나쁘면 인간의 정신이 아프게 됩니다. 인간은 환경적인 동물인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갈리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 편으로 가셔서 쉬고자 하셨을 때였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큰 무리가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그들이 본 까닭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원근각처에서 몰려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시간은 많이 흘러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전에 듣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선생들과는 다른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말씀이었으며 꿀송이보다 더 단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신령한 은혜에 흠뻑 젖어 시장기를 전혀 못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다 듣고 돌아갈즈음이 되자 그들은 비로서 허기를 느끼지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허기진 모습을 보셨습니다. 배가 고파 기진맥진하는 것을 보시고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엄청난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한 아이의 한 끼 식사 밖에 안 되는 아주 적은 양을 가지고 마 14:21에 보면 여자와 아이 외에 장정만 오천 명이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오병이어로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만 명이 족히 넘는 배가고파 허기진 군중들을 배불리 먹였던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모시려고 까지 했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그 이적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흥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힘을 얻어 살아가도록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죽어서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주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이런 이적쯤은 얼마든지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함이나 곤란에 대해서 낙심하지 말고 더욱 강하게 주님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많은 주제로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예수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배부를 때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모두가 배불리 먹은 무리가 흩어져 가려고 할 때, 그의 제자들을 불러 매우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남은 조작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전에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만 명이 넘은 사람들을 먹이셨던 능력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런 위대한 주님이 먹다 남은 떡조각을 버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뜻밖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먹다남은 음식찌꺼기가 환경오염을 시킬 위험성도 전혀 없을 때인데도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는데 또 만들면 되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실게 뭐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무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그들이 먹다 남긴 부스러기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모은 조각들이 12바구니에 넘치도록 풍성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참 간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배고플 때는 보잘 것 없는 음식에도 감지덕지 하면서도 정작 배가 부르면 그런 음식이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부스러기쯤은 안중에도 없이 내버리기 쉽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무리들도 예외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곱게 싸가지고 갔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싸가는 것을 야멸차게 빼앗아서 모으라고 하셨겠습니까? 분명히 무리들은 먹다남은 음식부스러기들을 소홀리 취급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셔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스러기를 담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곧 배고픈 자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낮아지고 가난해진 마음입니다. 예수님, 저로 하여금 배부를 때도 베고플 때의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저로 하여금 병상에 누웠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저로 하여금 처음 주님을 섬기려고 교회에 출석할 때 그 두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부스러기라도 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만드신 것들이기 때문에 원하시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딱딱하게 굳어지고 위생문제도 있고 한 그 부스러기에 불과한 조각들을 버리지 말고 모두 거두라고 하셨겠습니까? 온전한 덩어리도 아닌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먹다가 남은 부스러기라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유의 주인이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것을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낭비가 죄악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보면 연말이 되면 하지 않아도 될 공사들을 하는 곳들을 종종 봅니다. 이미 책정된 예산을 소비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소비해 버리지 않으면 다음 예산이 증액이 되지 않고 감소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말이 되면 많은 교회들도 그리고 교회의 기관들도 남은 예산을 써버릴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부스러기라도 모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를 갈 때는 바리바리 싸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쉽게 버리고 옵니다. 

  좀전에도 언급했습니다만,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하심은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정도의 문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적으로 받은 축복의 떡이기에 부스러기라고 해서 버린다면 은혜를 경홀히 여기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부스러기를 거두어들이면서 내가 하나님의 것을 귀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기적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조각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삽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 마땅히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절약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스러기라도 모아서 버리는 것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그 어디를 봐도 흥청망청 낭비해도 좋다고 말하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만유의 주인되신 예수님은 먹다 남은 떡부스러기조차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아끼고 보존하는데 앞장서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부스러기 같은 사람들도 귀히 쓰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스러기 시간도, 부스러기 물질도, 부스러기 건강도, 아끼고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스러기를 모으고 아낀다고 욕하면 욕먹을 각오를 하십시오. 왜 그렇게 천박스럽게 쪼잔하게 그러느냐하고 해도 화를 내지 마십시오. 누가 그러라고 하더냐 하면 예수님이 그러라 하셨고, 교회 목사님이 그러라고 했다 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낭비해서 오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절제하고 아껴서 오는 나라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4장 25절을 한번 읽어 보십시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했습니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 부부에게 "예수 믿는 도"를 전하였는데 세 가지를 전했습니다. 첫째는 의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시여 "구원을 받으시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서 총독 각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절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시여 "그런데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절제하셔야 합니다. 가진 것을 절약하여 선한 일을 위해서 쓰며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장차오는 심판을 말했습니다. 벨릭스총독이시여 "만약 제가 말한 앞의 두 가지를 따르지 않으시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결단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벨릭스와 별로 다르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미루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아멘, 할렐루야" 하지만 "구원을 받은 자라면 절약하고 절제하면서 살아야 됩니다"라고 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적게 쓰고,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자족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정상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곧 "눈에 보이는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구원"을 나타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과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둔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그 나라의 완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낭비하는 것보다 절제하여 절약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의롭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남은 조각은 또 다른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신령한 자산이 될 것이기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큰 것만 귀한 것이 아니라 조각도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조각인들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떡 부스러기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같이 주인의 상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귀함을 아는 좋은 믿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두로와 시돈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서 그곳으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따라오면서,"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예수님께서는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고 아무 대답이 없었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민망해서"아 저, 여자가 지금 부릅니다. 어떻게 말씀해서 보내세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보냄을 받은 것은 잃어진 이스라엘의 양을 찾으러 보냄을 받은 것이지 이방 사람을 위해서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냉정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왔습니다. 발 앞에 엎디어서 하는 말이 "내 딸이 귀신이 들려서 죽게 되었으니 내 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다시 하시는 말씀이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이 여자는 듣지 않고 이어 맞받아 하는 말이 "주여 옳습니다. 그렇지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 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담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물론 풍요로운 세상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한 현실에서 절제가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려는 것 다 하려하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약간은 불편한 것 약간은 입에 쓴 것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는 것입니다. 약간불편하게 살고 약간 입에 쓴 것을 먹는 것이 바로 환경운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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