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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스러기의 축복 (막 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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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섭 목사 (세신교회)

(막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막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우리 속담에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티끌이지만 그것이 모여져서 큰 산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요즘은 천리길도 비행기를 타면 불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시대입니다만
과거 부자집 사람이나 말타고 나머지는 모두 걸어다니던 시대에 천리길은 먼길이지만 그 먼거리도 한걸음 한걸음이 모아져서 도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입니다.

어린 시절, 밥을 먹으면서 밥알을 그릇에 조금이라도 남기거나 흘리면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았습니다.
쌀 한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수고가 담겨있는줄 아느냐?
깨끗이 먹어라!
밥을 남기려면 깨끗이 남겨서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먹다남은 것이 많을 때 아버지의 교훈이 늘 생각납니다.
음식상에 먹다남은 반찬을 보면서 저 한가지만 있어도 배고플때 밥 한그릇을 얼마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이 많은 반찬이 남아 버려지는구나!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이 음식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북한에 가난한 우리 형제들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음식문화를 바꾸어서 음식을 남기지 않고 혹 남기더라도 나중에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빵을 먹을 주식으로 먹었는데 우리 말로 번역할 때 떡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이는 능력을 가지셨는데도 남은 조각을 모으게 하셨습니다.

밥한톨, 먹다 남은 빵 조각, 빵을 먹다보면 부스러기가 떨어지는데 빵부스러기 이것들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떡 부스러기 하나를 귀하게 여기셨는데  오늘 본문에도 떡 부스러기 하나를 너무 소중하게 여김으로 큰 복을 받았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 2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막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무대는 갈릴리 지방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데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율법적으로 문제를 삼으며 배척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면 더욱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할텐데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영육간에 피곤함을 느끼셨겠습니까? 조용히 좀 쉬시고 싶은 마음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유대인들이 별로 없는 이스라엘 변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방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했지만 숨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25절,26절을 읽읍시다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한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수로’ 지방의 ‘보니게’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더러운 귀신이 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병든 자녀를 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떻게해서라도 그 병을 고쳐주고 싶다는 마음일것이라는 것은 자녀를 가진 부모는 다 가질 수 있는 공통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이 여인도 자기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완전히 개나 돼지같은 짐승들처럼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만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이방인들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존재이니 당연히 짐승들과 다를바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헬라의 눈부신 문화를 자부하면서 살고 있던 헬라인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모두 다  민족적 우월성에 도취되어 있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사람들이었고 경멸의 대상이요 상대하고 싶지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오직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들의 그토록 경멸하고 적대시 하는 유대인인 예수님께 나아와 그것도 땅에 엎드려 간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자부심이나 체면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겸손과 신뢰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성애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모성애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결합되었을 때 자기의 모든 체면이나 자부심이나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행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서 모성애의 큰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에게도 모성애가 있습니다.
예) '단장(斷腸)'이라는 말의 뜻을 아시지요?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한 유래가 있습니다.
중국 진나라 때의 일입니다.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가 나뉘어 탔는데, 삼협(三峽)을 지날 무렵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그 배를 쫓아 100여 리를 따라오며 슬피 울다가 지쳐 죽었습니다. 군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마음이 몹시 슬프다'는 뜻의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왜 모성애만 이야기 하고 부성애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예) 모성애와 부성애를 표현해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동물학자가 모성애와 부성애 중 어느 편이 강한지 시험하였습니다.
좀 잔인한 시험이었습니다.
타죽을 정도로 철판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철판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를 넣었습니다.
조금 후 가서 보니 어미가 타죽었습니다.
그 위에 새끼 원숭이가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위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비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를 넣어보았습니다.
조금 후에 가서 보니 아비가 새끼 원숭이를 타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끼가 타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생각이 모성애는 부성애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성애보다 더 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2002. 6. 12일자 국민일보의 ‘겨자씨’에 실린 강문호 목사님의 <모성애와 부성애>의 내용)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무 조건없이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고 채찍에 맞으시며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주에서 놓임받고 멸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이요 그 사랑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믿음인 것입니다.

모성애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위대한 힘입니다.
자식을 낳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묻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낳아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여인들이 외적인 아름다움과 부부 둘만의 사랑을 위해 자식 낳기를 과감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서 진정한 사랑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계산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며 그와 같은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딸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체면도 자존심도 모성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딸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존심과 체면을 꺾고 예수님 앞에 달려나와 간구하는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쳐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피곤하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죽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모성애인데 자식을 위해서 한시간 기도하지 않고 자식이 잘되니 잘못되니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문제 뿐입니까? 얼마나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요행적인 생각입니까?
기도하지 않고 축복받으려는 생각은 마치 아무 노력없이 얻으려는 잘못된 생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할 제목이 많은데 왜 기도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염려만 하고 있습니까?

복음성가)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열매를 맺어야 그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과 같은 기도의 사람도
(삼상 12:23)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늘 기도하셨는데
눅22:44절에 보면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같이 부족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기도없이 성공할 생각 꿈도 꾸지 말고
기도없이 잘될것이라 생각도 하지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기도로 심는 자에게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에 힘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을 기념하며 지키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연속기도회 작정표에 이름을 쓰고 작정하시고 교회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면 가장 좋습니다.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교회입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사순절 동안에 기도를 작정하고 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도 하루에 3번씩 작정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작정하고 편리한 시간에 교회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을 때 그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부흥되기를 원하시는 여러분들 교회에서 기도하시기를 바라고 정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집에서나 일터에서 교회를 향한 마음의 창을 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0분이라도, 30분이라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름을 쓰고 기도하는 것과 쓰지 않고 마음으로만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면에서 반드시 차이가 있습니다.
왜 학교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수업시간마다 부릅니까?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도 작정표에 이름을 다 쓰시고 기도에 힘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대답은 듣는 자의 귀를 의심하게하는 대답이었습니다.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어야 할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개와 같은 이방인인 너에게는 떡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대답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 당신 만은 그럴줄 몰랐습니다.
나는 당신이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자비를 베풀어 주실 분으로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군요.
실망스럽습니다. 하고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이 예수님께로부터 칭찬과 여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게한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막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막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여기에 이 여인의 훌륭한 믿음이 빛나고 있습니다.
곧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부스러기만 주셔도 나는 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은 부스러기라도 나는 족합니다.
겸손한 믿음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는 낮은 자리에 임합니다
부스러기의 축복을 믿는 믿음은 겸손한 믿음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은 부스러기라도 자기에게 던져진다면 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부스러기의 축복을 믿는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요 그 믿음을 겸손히 사모하며 구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스러기의 축복을 믿었던 사람들 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예)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던 가버나움의 한 백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마 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 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마 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말씀 한마디만 해주시면 내 종이 낫겠습니다!
이것이 부스러기의 축복을 믿는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 깨끗이 고침을 받았던 기사가 나옵니다.
(막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예수님의 하시는 한 말씀 때문에 집에서 병으로 고통하고 있던 종이 고침을 받았고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만 대었어도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통하던 여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그림자만이라도 내 앞에 지나가면 나의 병이 고침을 받겠나이다’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한 말씀만으로도 나의 병이 고침받겠나이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겠나이다’
세우신 종을 통해서 나에게 이 시간 한 말씀만 해주세요.
은혜를 주세요.
길을 열어주세요.
깨닫게 해주세요.
하나님!
꿈에서라도 주님 능력의 손으로 나에 연약한 부분에 얹어주세요.
꿈에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세요.
        십자가를 붙들게 해주세요.
        주의 종을 보내주세요.
        종을 통해서 말씀하여 주세요.

이 종도 기도하며 이 단에 섭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종들가운데서도 비록 부스러기 같이 못나고 보잘 것 없는 종이라도 마른 막대기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만 진다면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내는 줄 믿사오니 이 시간 종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부스러기라도 좋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축복입니다.
주님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이 시간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양들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병든자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상처난 심령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실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옵소서. 가난한 자에게 부요를 주옵소서.
실패한 자에게 성공을 주옵소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사업에 복을 주옵소서.
직장의 축복을 주옵소서.
성도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대로 허락해 주실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엘리야가  구름 한조각이 하늘에 뜰 때까지 기도했는데 그 한조각 구름이 삼년 반동안 메말랐던 이스라엘 땅의 가뭄을 완전히 그치게 하였던 것을 봅니다.

부스러기의 축복을 믿는 자에게 이시간도 하나님은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주시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은 아무리 세미하여도 그 역사는 큽니다.
주님의 말씀은 아무리 경미한 것 같지만 그것을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주님의 손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겸손과 순종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한 주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구하십니까?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주님! 부스러기라도 좋사오니 주님 한 말씀만 주옵소서.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겸손하게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믿음생활 중에 나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 올때에 결코 물러서지 말고 더욱 간절히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십시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주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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