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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요 14:12-21,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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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영신교회)

  남편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온 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오랜 기도의 응답이었는지 남편이 같이 교회에 가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아내는 순간 자기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해 걸어가면서 아내의 마음속에는 내심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설교는 무엇에 관한 것일까?’ ‘성경 말씀은 어디일까?’ 혹시 ‘오늘 예배가 지루하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주보를 펴보는 순간 낙심에 빠졌습니다. 오늘 따라 목사님의 설교본문이 창세기 5장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았고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는 성경을 반복해서 읽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창세기 5장에는 복음적인 내용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그녀의 염려와는 달리 성령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남편은 큰 관심을 갖고서 목사님의 설교를 진지하게 경청하였고, 몇 주후 스스로 자원하여 등록카드를 제출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그 말씀이지. 한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데, 나는 그것을 피해 달아날 수가 없었소. 그 '죽었더라' 는 문구 말이오. 그 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소. 그래서 나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앞길이 막혔다고 말하지만 성령께서는 이미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신앙생활은 성령을 떠나서는 한시도 지속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런던의 유명한 샤프츠버리(Shaftesbury)경이 길을 지나가는데, 어린아이가 횡단보도를 지나가다가 자기의 힘으로 걸어갈 수 없으니까 "아저씨 나를 도와주세요."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샤프츠버리 경은 이 아이를 안고 길을 건너가 내려놓았다. 여기에서 샤프츠버리 경은 어린 소년으로부터 위대한 신앙의 교훈을 받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주여, 나를 도와주세요."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소년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가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위로부터 능력이 임할 때까지 이 성을 떠나지 말고 머물라는 것이었습니다(눅24:49). 120문도는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고 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핍박과 위협에도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선교의 사명을 다하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에 수난예고로 인해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고 그로 인하여 너희는 승리할 것이며 그분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 성령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파라는 ‘곁에’, 클레토스는 ‘부른다’는 의미로 “도움을 받기위해 곁으로 부름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상담자’ ‘위로 자’ ‘돕는 자’ 로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 서부지역을 여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관광버스를 타고 길게는 하루에 10시간씩 달린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것이 철로를 지나가는 기차들이었습니다. 동서를 잇는 철로를 기차들은 뒤에 화물칸을 몇 십 개씩 달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것은 80개에서 100개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건널목에서 그런 기차를 만나면 무려 20-30분도 기다려야 합니다.

  도데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을까하고 보았더니 화물칸을 끌고 있는 기관차가 두개 또는 세 개였습니다. 한 개의 기관차로는 그렇게 많은 화물차를 끌 수 없으나 두개나 세 개의 기관차가 있으면 그렇게 많은 화물차들을 끌고도 황량한 들판을 달릴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차를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광야를 지나갑니다. 개인의 짐, 가정의 짐, 때로는 건강의 짐, 사업의 짐을 지고 허덕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짐을 혼자 끌고 가려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주저앉기도 하고 , 비틀거리기도 합니다. 방법은 무엇입니까? 몇 개의 기관차가 인생의 짐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의 짐을 같이 끌고 가시는 기관차가 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옆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인생의 짐을 이끌어주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이제 보혜사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은 거친 인생의 광야를 힘차게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혜사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왜 우리의 인생에 그분이 반드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보혜사는 영원히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본문말씀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잠시 계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후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17절 후반절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0절입니다.“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어두운 곳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엄마, 캄캄해서 너무 무서워요” 하고 아이는 무서워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이를 달랩니다. “얘야, 예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신데 뭐가 무섭니? 밖에서 예수님이 너를 지켜 주실거야”. 아이는 “정말 밖에 예수님이 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의 그 물음에 엄마는 확신있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시지.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너를 도와주신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합니다. “예수님! 거기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세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인생길에 늘 성령으로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28:20)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상담자가 되십니다.

  본문말씀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로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제 성령께서 내 인생의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시며 우리의 인생의 문제들을 가르쳐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앞길이 막막하십니까? 친절한 상담자 되시는 성령께 부탁하십시오.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지난 금요일에도 파주시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생의 상담자가 되신 하나님께 나왔더라면 길이 있었을 텐데 그만 스스로의 목숨을 던지는 일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성령님과 상담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깊은 산속을 등산하다가 길을 잃었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그 산의 속속을 아는 친절한 안내자, 인도자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성령은 바로 우리 인생길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영국의 청교도인 존 번연 목사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수감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존 번연 목사를 존경하는 간수장이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 뵙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옥에서 나와 집으로 얼마쯤 가던 목사님이 다시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느냐고 간수장이 묻기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놀랍게도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간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저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보혜사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일을 하게 하신다.

  본문말씀 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큰일은 질적인 의미보다는 양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회심한 영혼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할 때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5000명이, 그 다음에는 셀 수 없는 많은 무리가 돌아왔습니다.

  또 예수님의 사역은 팔레스타인 유대 땅에 한정되었지만 지금 복음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 13-14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성령님이 함께 하시므로 우리의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한다고 사도바울은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로마서 8장 26절도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여러분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본문말씀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평안은 성령의 열매가운데 하나입니다. 너희에게 성령이 오시면 이런 평안이 임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잠시뿐이요 영원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평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평안하다고 말하지만 성령이 주시는 평안은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인생의 질고와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위로를 인하여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초대교회때 한 크리스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어 순교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집행을 준비하는  집행관에게 이 크리스챤은 “당신의 두 손을 내밀어서 한손은 내 가슴에, 한손은 당신가슴에 대어보시오. 누구의 심장이 더 뛰고 있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크리스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나를 죽일 생각에 이처럼 불안하다오. 그러나 나는 이같이 평안하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버린 이 크리스챤의 마음은 한없이 평안합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이런 평안이 여러분에게 늘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으로 능력있는 삶은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이제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또 성령충만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우선적인 조건은 회개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모셔드릴 때 이미 성령은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하고 불충할 때 성령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고 충만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성령은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품고 있을 때 성령은 소멸되지만 우리가 순종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때 성령은 충만한 은혜로 임하십니다.

  우리의 인도자요 상담자되신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더 큰일을 행하시고 거친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참 평안을 소유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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