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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믿음 (히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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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석원태 목사 (경향교회)

성령께서 히브리 기독교인을 향한 이신득구의 논증은 이제 요셉에 이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히브리서의 영감 표현은 창세기 50장 24~26절에 근거하고 나온 말씀입니다. 사실상 창세기 50장 24~26절은 요셉 믿음의 총 결산이었습니다.

Ⅰ. 요셉의 믿음은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의 믿음입니다.

우리 본문 히브리서 11장 22절 상반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요셉의 한평생을 주도하여 임종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는 임종시에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을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50장 24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하나님 사상에는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인생의 유한과 하나님의 영존과 영원을 고백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인격의 신이십니다.

그 두 번째는, 자기의 유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 속에서 다시 자기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 영생신앙의 고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맞는 마지막 임종의 소망과 기쁨, 미래적 환희를 토하는 승리의 고백이 숨어있습니다.

그 세 번째는, 약속성취의 하나님을 알려주는 뜻입니다. 다시 창세기 50장 24절 중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되살렸습니다. 이 약속은 창세기 15장 13~16절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①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고 그 객주를 섬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② 그 기간은 400년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때가 찰 때 그 이방(애굽)은 하나님이 심판(징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④ 그 후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에 이 땅(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4대’만이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낳은 것을 기준하여 나타낸 말로 400년간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지금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 할아버지 이삭,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 시대를 관통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언약(약속)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은 임종을 만나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죽으나 그 살아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그 조부의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위대한 하나님 사상은 요셉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조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최후에도 그대로 작용한 하나님께서 위대한 소망의 근거요 힘이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는 죽지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다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마지막은 자신도 아니고, 애굽도 아니고 하나님, 오직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뿐이라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임종이었습니다.

Ⅱ. 요셉의 믿음은 언약성취를 예언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다시 말하기를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요셉은 전 애굽의 풍요를 누리는 부요 속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존하고 있는 애굽의 권력자였습니다. 영예로운 권력자였습니다. 애굽과 전 세계를 먹여주는 세계의 주와 같았습니다. 실로 그 아비 야곱의 축복의 예언대로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요, 그 가지가 담을 넘는 가지였습니다(창 49:22). 그는 조부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축복을, 이삭의 사랑과 그 축복을, 야곱의 소망과 그 축복을 집성한 아브라함 가의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애굽의 풍요를 한 몸에 지니고 권력을 누릴 때나 임종을 만난 지금에도, 그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삶의 중심은 애굽 고센 땅에 머무는 선민들의 고향을 생각하고 간직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습니다. 창세기 50장 24절에 조부들에게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하신 그 언약성취를 내다보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임종시에 그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취를 믿고, 그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곧 ‘출애굽의 비전(vision)’을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 ‘말한다’는 말은 ‘기억하게 했다’, ‘기억나게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그 출애굽의 비전을 생각나게 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결코 애굽을 기억나게 하거나 자신의 출세와 영화를 기억나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의 땅, 가나안의 언약을 상기시키고 기억나게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셉의 믿음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애굽이 아닌 가나안의 비전을 예언했던 믿음입니다. 오늘이 아닌 내일, 이 세상이 아닌 오는 세상, 저편이 아닌 이편(출 14:19~20), 유한이 아닌 영원, 육이 아닌 영,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원을 기억나게 한 믿음이었습니다.

Ⅲ. 요셉의 믿음은 자기 해골을 두고 동맹서약, 공적서약을 체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창세기 50장 25절에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성취를 말하는 창세기 50장 24절에는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해골에 대한 맹세의 명령을 할 때에는 그 범위를 넓혀서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창 50:25)이라고 ‘온 이스라엘 자손’으로 확대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권고하는 약속성취의 그날이 오게 되면, ‘그때 여기 애굽을 떠나는 내 후손들에게 내 해골을 메고 내 해골도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하겠다는 사실을 맹세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를 명령하였습니다. 자기 시신이 아닌 ‘해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유언적 맹세는 일종의 동맹서약이었고 공적서약과도 같이 준엄했습니다. 맹세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러한 해골을 두고 나타난 동맹서약, 공적서약의 의미가 무엇인가?

첫째 의미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약속, 역사 속에 유효한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뜻이 됩니다.

둘째 의미는, 요셉 자신의 언약신앙을 확증해주는 뜻이 됩니다. 조부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요셉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의미는, 애굽 땅에 머무는 히브리 선민 공동체의 미래적 소망을 확고히 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코 여기 애굽은 히브리 선민들의 영주지가 아니고, 객이 된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히브리 선민에게는 애굽이 아니고 가나안이 그들의 땅이라고 하는 소망의 비전을 던져주기 위함입니다. 넷째 의미는, 애굽 땅에서 히브리 선민 공동체의 단결을 촉구하는 유언적 호소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로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임종을 앞에 두고, 그 형제와 자손들에게 ‘위대하신 하나님’과 그 언약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은 살아있어 언제나 유효한데, 그것이 출애굽의 역사로 성취될 날이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확신을 공동서약조로, 애굽 땅에 묻혀 버릴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야 된다고 하는 맹세를 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약 200년 이후에 성취될 히브리 선민 역사의 미래를 확실히 내다보고 확신하면서, 저렇게도 힘 있는 역사의 장래를 예언하는 믿음의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영혼은 임종시에 결코 애굽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의 육신이 잠시 애굽에 묻히는 것은 허용하였으나, 그의 영혼은 가나안을 거쳐 영원한 가나안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실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가 된 것입니다.

역사의 놀라운 교훈은,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고 조상조들에게 약속한 출애굽의 거사를 진행시킬 때,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출 13:19)고 하였습니다. 그 후 광야 40년의 유랑길에서 요셉의 해골은 이스라엘의 행군 가운데 있었습니다. 광야 40년의 유랑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수 24:32)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실로 감명 깊은 영감의 기록입니다.

Ⅳ. 요셉의 믿음에서 받는 현대적 교훈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입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은 ‘절대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사상’입니다. 창세기 50장 26절에 보면 요셉은 110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곁에서 17년을(창 37:2), 그리고 애굽에서 93년을 객으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의 93년 중에 13년은 옥고를 치렀고, 나머지 80년은 애굽의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임종하는 시간에 그에게 있었던 것은 하나님, 오직 하나님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족장들의 신앙의 특징이요, 저들 신앙의 동맥이요, 힘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자신들의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가운데 아브라함을 선택하사 그와 그 백성을 통하여 인류의 구속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생애는 하나님 편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 편에서 아브라함에게 친히 약속하신 생애입니다. 예를 들면 ① 하란을 떠날 때(창 12:1~3), ② 롯과 작별한 뒤 헤브론에서(창 13:14~17), ③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구원한 후에(창 15:1~5), ④ 그가 99세 되었을 때(창 17:1~10), 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창 22:16~18)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의 주요내용은 땅의 축복, 자손의 축복 - 메시야의 축복, 구원의 축복 등입니다. 이것은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었고, 그것이 요셉시대에 이르러 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으로 반복된 언약사상은 요셉 때 와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 사상입니다. 저렇게도 요셉은 하나님 사상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 하나님 사상을 하나님의 언약에다 뿌리를 두고 나타냈습니다. 그가 임종하는 시간에 그에게는 하나님밖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조부들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언약이 그 자신에게 전 존재적 기업이요, 유산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삶의 터전이요,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삶의 전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신령한 가나안을 계시하는 예표적 약속이었습니다. 신령한 가나안의 약속은 오실 메시야로 말미암아 성취될 구원이었습니다. 그 구원은 메시야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인류 구속의 대 사건입니다. 메시야 구속의 완성이야말로 만물이 새롭게 갱신되는 새 하늘 새 땅의 세계요, 인류가 불사의 몸, 영생의 몸을 입고 영화로운 상태에 이르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 자신은 죽으나, 죽음을 모르면서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자신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 언약신앙의 부요함이여!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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