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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강퍅함을 극복하십시오 (히 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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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올해 우리는 교회의 목표를 많은 열매맺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이제 한해의 중반기에서 우리가 열매맺는 삶을 맺는데 방해되는 요인들을 지나주부터 찾아 점검하고 있습니다. 우선 낙심하지 말하야 한다고 지난 시간 말씀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열매맺으려면 강퍅함을 극복해야 할 것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열매맺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입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과 인격의 사람으로 우리들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이전에 감사하지 못하던 사람이 감사하는 믿음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못하던 사람이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으로변해지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이 영적이니 사람으로 변해지는 것이 결국 부흥입니다. 그것이 곧 열매맺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보다는 더 변화되어지고 더 성장되어진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토양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몇 년 농사를 짓고 나서 열매가 시원치 않을때에는 농지정리작업을 합니다. 그 밭이나 논 자체로는 더 이상 농사를 지어도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할때에 좋은 흙을 퍼다가 새로운 토양을 준비하는 것을 봅니다. 비싼 돈과 수고가 있지만 그렇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은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없는가 마음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좋은 마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선한 마음이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집은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마음에 말씀에 뿌려질때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이라면 거기에 씨가 뿌려져도 소용이 없습니다.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자해서 맺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행동을 변화시켜보려고 하기 이전에 먼저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강퍅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다른 번역성경에서는 고집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신약성경에서는 강퍅이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원어의 의미는 ‘마르다’는 뜻입니다. ‘해골’혹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라고 합니다. 강퍅함이란 극도로 말라서 딱딱한 상태의 마음을 나타낼때 쓰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수분이 모두 증발되기까지 말라서 돌처럼 딱딱해진 상태처럼 말라버린 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마음을 면하고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강퍅한 마음은 돌처럼 굳은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강퍅한 마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강퍅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만일 이 문제를 그냥 넘겨버릴때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축복의 가나안의 약속을 받았지만 축복을 누리기 못하였습니까?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나타난 문제는 불순종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이 강퍅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강퍅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마음이 강퍅하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이 강퍅하면 삶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1. 강퍅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타락한 후 인간의 마음은 한마디로 강퍅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에레미야 선지자는 렘17:9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마음의 상태는 한마디로 강퍅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죽은 마음에서 새마음이 되었습니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마음은 완전히 새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새마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강퍅한 마음도 있고 부드러운 새마음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단회적인 어떤 회심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과 훈련과 수고가 요구됩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새마음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은혜를 받고 꾸준히 은혜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는 것이 그렇게 금방 되는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농부들이 과수원에서 양질의 복숭아의 열매를 하나 생산해내는 과정을 생각하여보십시오. 좋은 품질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합니까? 한알 한알 봉지를 씌우고 농약을 주고 가지치기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병충해 때문에 병이 들기도 합니다. 또 바람 때문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 햋빛이 충분하지 않아 맛이 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수고를 다 거치고 좋은 열매를 맺게되면 얼마나 농부의 마음은 좋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타가운 것은 정말 좋은 양질의 복숭아 열매는 과수원 전체에서 그 양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복숭아라고 다 복숭아가 아닙니다. 복숭아의 질도 얼마나 수준이 차이가 나는지 모릅니다. 전에 시무하던 교회사택 뒷밭에 사람들이 말하는 개복숭아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숭아맛은 나지만 크기도 색깔도 맛도 황도복숭아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값도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양질의 수준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수준이 있습니다. 격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성도들이 정말 양질의 복숭아열매처럼 양질의 고급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양질의 수준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버려야 할 마음이 강퍅함입니다.
먼저 진리에 무감각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알 수 잇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마음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알고도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의 의지에 항복하지 않고 불순종합니다. 강퍅한 마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소위 말해서 세상에서는 그것을 고집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강퍅하면 고집이 강합니다. 내 고집이 강한 사람들은 떠났던 죄로 다시 돌아갑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삼키는 것처럼 과거의 죄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편하다라고 여깁니다. 자기의 욕망대로 사니까 자기에게는 편합니다. 그래서 강퍅한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자기 고집대로 불순종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강퍅한 마음의 사람은 점점 치우친 주관적 소견으로 왜곡된 신앙의 틀로 빠질 수 있습니다.여러분 왜 이단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너무 한쪽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단들은 너무 종말에 빠져서 이단에 됩니다. 어떤 이단들은 너무 구원문제에 병적으로 집착하여 이단이 됩니다. 어떤 이단들은 귀신에 너무 빠져서 이단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단들은 율법에 너무 빠져서 이단이 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너무 주관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균형을 주고 복음은 우리에게 다양성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부드럽고 열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사람들은 다양한 영적인 하나님의 요구들을 따르고 순종합니다.

2. 어떻게 강퍅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피차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됨을 면하라
언제 사람이 강퍅해집니까? 홀로 있을때에 강퍅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혼자 예술하는 사람이 고집이 셉니다. 혼자 독학하는 사람이 고집이 셉니다. 물론 이말은 보편성을 적용할 때 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대의 사람을 비교할 때 누가 강퍅할 것같습니까? 과거에는 우리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개인주의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점점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점점 자기에게 집착하기 쉽습니다. 혼자 있으면 그래서 자기 고집이 발달하기 쉽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강퍅을 이깁니다. 인간은 서로 마음을 내놓고 교제할 때 마음이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왜 인간은 만남과 교제가 있을때 강퍅함을 피할 수 있습니까? 서로 권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에게 권면을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는 권면의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권면할 수 있는 입장도 되어야 하고 권면을 받을 수 있는 입장도 되어야 합니다.사람이 남의 권면을 받을지 모르면 망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애굽의 왕이었던 바로였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낼때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때 왕의 신하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그래서 바로에게 권면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이 사람들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할 줄을 알지 못하니나이까?” 그런데 바로는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로는 끝까지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서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람들의 권면을 듣지 않아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지도자일수록 남의 권면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역을 하거나 앞에 서서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치우칠 수 있는 위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역을 함께 나누고 도울 수 있는 좋은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일을 해갈 때 어느날 장인 이드로가 와서 혼자서 너무 고생하는 모세를 보았습니다. 200만 이상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혼자서 이끌기에는 너무 무리였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어느날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방문하엿다가 그 모습을 보고 권면합니다.당시에 모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 재판하느라고 너무 고생이었습니다. 그때 이드로가 권면합니다.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이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장인의 권면을 듣고 실행합니다. 천부장,백부장, 오십부장,십부장을 결국 그대로 적용하여서 얼마나 모세도 듣고 공동체도 좋았습니까?
교회는 서로 격려하기도 하고 서로 권면하여 주기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권면하는 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면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18: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고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때로 우리의 삶을 바로잡아주는 권면이 들어갈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을 열고 그 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나를 친다”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소리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지도자를 통해서 권면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가정에 부모들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서로 권면을 통해서 강퍅함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끝까지 말씀을 마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14절 우리가 시작할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하게 잡으면
우리의 마음은 자꾸 강퍅하기 쉽습니다. 처음에 순전한 마음으로 시작하였는데 자꾸 마음이 강퍅할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살아가면서 많은 인간의 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이 흔들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처음에 그들은 모세가 말하던 것을 듣고 꿈을 갖고 가나안을 향해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마음이 강퍅하게 변했습니다. 시작할때에는 모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 음성은 모세의 음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점점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 나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몇 명이 되겠습니까?

대부분 광야에서 1세대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 나온 사람 중에 끝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너무나 소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공식적으로 소개되는 인물 중에는 여호수아 갈렙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이들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좇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왔가 갔다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말씀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 생각 뜻을 감찰한다고 합니다. 여기 마음은 정서적인 측면이요 생각은 이성적이 측면이고 뜻은 의지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아무리 굳어있고 강퍅한 마음일지라도 자꾸 말씀을 듣게 되면 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이요 방망이입니다. 반복하여 자꾸 마음으로 듣다보면 어느 새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또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설득시킵니다.그래서 설득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들이 새롭게 깨달음을 얻게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은 주관적이던 나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보게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깊이 생각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의지를 키워줍니다. 하나님의 의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강퍅함을 극복하려면 순종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히4:18을 보십시오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여기 강퍅함의 외적인 결과는 불순종입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지도자들에게 불순종합니다.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퍅한 마음 때문에 광야에서 모세의 말에 불순종했습니다.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즉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죄란 한마디로 불순종입니다.죄라는 원어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불순종이란 마치 화살이 과녁을 비커가듯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행동이 죄입니다.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너무나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한번의 불순종의 결과 그들의 마음은 점점 더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하나님의 뜻도 아닌 행동인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기의 하체를 가리우는 행동을 합니다. 불순종의 결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닌 부끄러운 마음을 끌어들기고 두려움을 끌어들이고 결국 삶에서 행복을 잃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회복할 때 내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외적인 접근도 필요합니다. 행동을 고치면서 마음도 고쳐집니다. 행동을 바르게 하면 마음도 바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때로 기쁜 노래를 자꾸 부르다보면 마음도 기뻐집니다. 반대로 슬픈 노래를 자꾸 부르다보면 마음도 슬퍼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순종부터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많이 순종할 것이 있지만 강퍅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당장 가장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은혜받는 자리,은혜받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점점 말세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당시에 이미 교회의 문제 중에 모임 참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세상은 점점 홀로 있는 문화가 발달되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문화는 같이 있는 문화입니다. 천국도 독방이 없습니다. 같이 있는 곳이 교회요 같이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은혜받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백성들은 같이 있어야 편합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강퍅할수록 같이 있으면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대표적인 자리가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기도의 자리는 우리의 마음을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주를 닮게 됩니다. 매일 하나님과 기도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단 몇분이라도 주님과 만나 대화를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은혜와 평화가 임하게 될줄 믿습니다.

다음은 예배의 자리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만날수록 우리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은혜를 받을수록 우리의 정서는 부드러워집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께 예민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에 쉽게 굴복합니다. 마치 빳빳하던 배추가 소금에 충분히 절여지면 결국 순이 죽고 맛있는 김치가 되듯이 우리도 은혜 아래 깊이 거하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기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강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사람으로 열매맺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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