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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 앞에 설 자의 행복 (잠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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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2004.6.13
이번에 사할린에서 열린 제 11차 CIS(구소련) 한인 선교사대회는 규모는 가장 작았지만 지금가지 열렸던 어느 선교사대회보다도 감동과 은혜가 충만한 가장 알찬 선교사 대회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그리고 후원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사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시간마다 신선한 감동과 오묘하고 충만한 은혜를 받았다고 거듭해서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강사님들을 모시고 간 저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현지인 한인들 중 극빈자 40여명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를 함께 하면서 사랑의 선물을 전달했을 때 모두들 너무 좋아했습니다. 

  우리 다섯 명의 강사들은 함께 여행하고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숲 속을 산책하고 함께 쓰레기를 줍고 함께 대화하고 함께 말씀을 전하면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5일 동안 한 호텔에서 함께 지나면서 거의 날마다 라면과 아이스 크림을 많이 먹어본 일은 평생에 처음이라는 말들을 모두 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한 그릇에 10불이나 하는 비싼 라면을 세 그릇 시켜서 다섯 그릇으로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원기가 왕성한 최성규 목사님은 매일 라면만 먹게 된 것이 김 목사 때문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제가 청교도 윤리의 3대 원리가 정직, 근면, 절제라고 지적하면서 음식을 절제하는 것도 청교도들의 신앙을 본 받는 것이라고 말하자 이중표 목사님은 '아하!' 하며 탄식 섞인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나 키가 제일 큰 이중표 목사님은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인데 제대로 먹지 못하니 낙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볼 일을 보아야 하는 데 볼 일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니 걱정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 수술 후 음식을 적게 드시는 방종순 목사님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라면을 드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전화 받을 일도 없이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산책하고 대화하며 지나는 것이 이적 같은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이제 강사님들이 전한 메시지들 중 중요한 부분을 한 마디씩 요약해서 말씀 드립니다. 박종순 목사님은 아벨과 노아와 야곱이 보여준 제자 중심적 삶과 위로 및 축복 전달적 삶의 모습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간증적으로 풀어서 제시했는데 모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정익 목사님은 소명에 근실하고 충실한 삶의 행복을 구체적인 실화를 들어가며 생생하게 제시했는데 모두 신선한 충격과 도전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최성규 목사님은 효를 통한 하나님 경외의 신앙이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역설했고 또한 하나님의 종들에게 성령 받음이 절대로 필요함을 단순하고 진솔하고 열정적으로 역설했는데 모두 소리 내어 부르짖어 기도하며 성령 받음을 사모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별세 신앙의 관점에서 선교사역을 조명했고 또한 부부 관계와 자녀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했는데 모두 신선한 충격과 도전과 위로를 받으며 자신들의 삶의 현주소를 조망하며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 저는 기독교 복음의 세 가지 특성인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제시했고 그리고 인생은 편지라는 말을 하면서 내가 주고 받은 편지들을 읽어 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선교사대회에 대한 보고는 이만큼 하고 이제부터 오늘 아침 설교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정익 목사님이 전하신 메시지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설교 제목은 "왕 앞에 설 자의 행복"입니다. 제가 조금 바꾸어서 정한 제목입니다. 왕 되시는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왕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가 있습니까? 자기 일에 근실한 자가 왕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여기 “자기 사업에 근실하다”는 말은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일에 공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그 일이 토기를 만드는 토기장이의 일이든지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의 일이든지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나 간호원의 일이든지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하고 공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이야기입니다.

이정익 목사님이 군인 장교의 훈련을 받고 중위로 그리고 군목으로 임관한 후 부대로 배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2명의 장교들 중에서 이정익 목사님만이 최전방 부대로 배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인제와 원통과 거진을 거쳐 최 전방 철책 선이 있는 곳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기도때문에 할 수 없이 목사가 되었고 그리고 주님이 시켜서 할 수 없이 목사로 헌신을 했는데 왜 하필 나를 최전방으로 보내십니까?" 이렇게 투덜거리며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방 부대의 부대장인 00 중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그 부대장이 이정익 목사님을 만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곳에 잘 오셨습니다. 항상 죽음의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곳 최전방에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는 지난 25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면서 군인 생활을 한번도 후회한 일이 없습니다. 한번도 불평이나 원망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 말에 이정익 목사님은 뒤 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고 너무나 부끄럽게 보였습니다. 그 부대장의 말과 삶의 자세가 이정익 목사님의 삶의 자세를 완전히 뒤 바꾸어놓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그것이 질그릇을 굽는 토기장이의 일이든지, 그것이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이의 일이든지, 그것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일이든지,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일이든지, 자기 일에 근실하고 성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성스러운 사람이고 향기로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이정익 목사님에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원이 찾아왔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로 선교하러 가기로 작정을 했는데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에이즈 환자가 득실거리는 곳에 처녀의 몸으로 의료선교사로 간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이즈 환자의 몸에 꽂혔던 주사 바늘 하나를 잘못 다루면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잘 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후 그 간호원은 우간다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어느날 우간다로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또박또박 쓴 편지의 편지지에는 이곳 저곳에 눈물 자국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 간호원 선교사가 어느날 죽어가는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방을 밝히고 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발전기가 멎고 방이 캄캄해졌습니다. 그 간호원 선교사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촛불, 촛불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하나님,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촛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거의 불가능한 어려운 수술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죽어가던 환자가 의식을 되 찾고 살아났습니다. 그 간호원 선교사가 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목사님, 오늘 밤은 저의 생애의 최고의 밤이었습니다. 저의 사역에 대한 최고의 자부심과 감격을 느낀, 가장 행복한 최고의 밤이었습니다." 우간다로 간 그 간호원 선교사는 자기 일에 근실하고 성실했습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자기 일에 근실했고 최고의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왕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호와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야기입니다.

신촌 성결교회에 지성인 집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려대를 나온 몸이 건장한 엘리트 집사였습니다. 예배 시간이 거의 다 되든지 예배 시간이 조금 지나서 예배당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당 뒤 좌석에 앉아서 소위 지성인의 모습으로 예배를 ‘보곤’ 했습니다. 예배 시간 전에 일찍 나와서 앞 자리에 앉는 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인 집사가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그 지성인 집사가 죽어가면서 담임 목사를 불렀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시면 예배 시간 훨씬 전에 일찍이 교회당에 가서 맨 앞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지성인 집사는 그 다음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담임 목사인 이정익 목사는 한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인 예배 드리는 일에 근실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하고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후회하며 죽어간 소위 지성인 집사의 죽음을 바라보며 담임 목사는 한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정익 목사님은 교역자는 물론 장로님들이 교회에서 최우선적을 해야 할 일이 바로 예배라고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교역자들이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느라고 여기 저기서 서성거리는 것을 자기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무 장로님들은 예배 시간 전에 일찍 나와서 안내를 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선교사대회에서 박종순 목사님도 시간마다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예배와 제사였습니다. 목사와 장로는 물론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제사라고 했습니다. 아벨의 삶이 그러했고 노아의 삶이 그러했고 야곱의 삶이 그러했다고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예배와 제사를 바로 드릴 때 그 삶의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복을 끼치는 향기로운 삶이 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세상에서 살면서 할 일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소명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하고 달란트라고도 사업이라고도 하고 합니다. 그 일은 자기가 처한 처지에 따라서 주님의 뜻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이 귀한 사람이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성스러운 사람이고 향기로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근실하고 성실하고 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가정에서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에 근실하고 교회에서는 교사의 일과 성가대의 일과 집사의 일과 권사의 일과 장로의 일과 교역자의 일에 근실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일과 봉사의 일과 전도의 일과 선교의 일에 근실한 사람들이 되십시다. 사회에서는 우리가 처한 일터에서 맡겨진 일에 근실한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서 향기가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스러움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왕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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