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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교회시리즈(3) - 순결한 믿음을 지키라(버가모교회) (계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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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계속되는 일곱교회 시리즈 말씀이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에 보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당시 버가모에는 우상 숭배가 심한 곳이었다. 6개의 그리스 신전과 이집트 세라피스 신전이 있었고 로마 황제들의 신전도 많아 이방 종교의 중심지이었다.

버가모에는 의과 대학이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힙포크라테스가 일을 하였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를 숭배했다. 이 신의 도움으로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이 신은 뱀으로 상징되어 지금도 뱀의 모습이 담긴 돌 기둥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아직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병원이나 약국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뱀을 표시하고 있다. 병원에 가면 가끔 뱀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버가모에는 여러 신들이 있어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아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칭찬하고 계신다.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들을 고쳐 주실 때에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다. 고쳐 주셨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백부장의 집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향하여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하인이 고침 받았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이 많은 우상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그 믿음을 지킬 때에 칭찬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를 칭찬해 주시고, 주님께서 앞 길을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 “순결한 믿음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계신다.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이것은 주님께 책망을 받을 일이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한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짜낸 포도즙으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처음 쉬어 가는 곳에서 통을 운반하는 사람이 갈증을 달래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샘으로 가서는 자기들이 마신 포도즙만큼 물을 떠서 붓습니다. 그 다음 마을에 가면 포도주 애호가들이 몰려들어서 조금씩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도 조금씩 따라줍니다. 이렇게 해서 없어진 포도즙만큼 물을 따라 붓는 일이 계속 되풀이되고, 결국 로마에 도착해서는 그 포도즙이 본래 포도원에서 출발할 때의 원액과 상당히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도 이와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물을 타는 일이 진행됩니다. 조금씩 진리는 포기해 하고 그 빈 자리에 사람의 견해와 사색과 이상들을 가져다 채웁니다. 그러니 그들의 포도주에는 물이 혼합된 것이고, 그것이 최상의 포도즙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곧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했는가? 사도 요한은 발람의 교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행진을 거의 마치고 가나안 땅에 도달하게 된다. 그 과정에 모압 땅을 지나가야 하는데 모압의 왕 발락이 발람에게 요청한다. 발람이 모압 땅으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저주의 말을 하라는 요청이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재물을 줄 테이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저주의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이다.

결국은 발람이 실패하고 말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계속해서 탐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몰락시킬 다른 꾀를 생각한다. 베드로후서의 말씀에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결국에는 이러한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 유다서의 말씀에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이같이 발람은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한 대표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을 향하여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오늘날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너희에게도 있도다. 물질이 주는 힘이 있다. 물질은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치며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좋아한다. 그러나 순결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질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더욱 소중하다. 물질보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더욱 소중하고, 물질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 상급을 받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충만하여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든 물건을 같이 사용하였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함께 나눠주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를 팔아서 일부를 감추어 두었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알고, “아니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렇게 한 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나니아는 죽고 말았다. 성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이 더욱 소중하여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아나니아와 같은 경우도 발람처럼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지시하셨다. 아말렉과 싸울 때에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하나도 갖고 나오지 말라. 그런데 하찮은 것들은 진멸하고 양과 소와 모든 좋은 것은 남겨서 갖고 나왔다. 사울왕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양과 소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졌다. 재물 앞에서 순결한 믿음을 잃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도다.”

우리는 순결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 물질의 욕심 때문에 발람의 후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 있다. “네게도 니골라 당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죄 짓는 자유를 주셨다. 죄를 짓고 또 용서 받으면 된다. 우리는 지금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용서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죄를 짓고 용서받으면 된다. 그렇게 죄를 계속 지어야 하나님도 용서하실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죄를 지을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럴듯한 논리이다. 우리를 생각해 볼 때에 우리도 니골라당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니 하나님이 용서하옵소서. 이러한 생활이 반복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자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라는 명목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가? 이것은 순결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해서 핑계를 대고, 변명하는 기술만 늘어가는 것 같다. 나름 대로 합리화 시키는 방법만 고도로 발달하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순결한 믿음을 지키라.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순결한 믿음, 오직 주님의 말씀데로 살아가려는 순결한 믿음의 노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이렇게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어떤 상급을 주시는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에 먹었던 음식이다. 광야생활의 근본적인 양식이다.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나를 주신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풍요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신다.
두 번째는 새로운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신다. 당시에 흰 돌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봐야 한다. 흰 돌은 당시에 유행하던 전염병이나 재앙을 막기 위해 하나의 부적과 같은 것으로 그 돌 위에 재앙을 이길 신의 이름을 기록한 후에 몸에 지니고 다녔다. 또한 흰 돌은 재판소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무죄 판정이 난 피고인에게 준 것으로 사용하였다. 세 번째는 연회석에서 초대받을 사람의 이름을 흰 돌 위에 기록하였다. 이 돌을 가지고 온 사람은 연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흰 돌은 경기장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그의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는 것이었다.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약속하셨다. 죄의 용서받은 자요, 천국의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인생의 최후의 승리자로서의 삶을 약속하셨다.

인생의 승리와 성공은 부자에 있지 않다. 인생의 승리와 성공은 권력에 있지 않다. 인생의 승리와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다.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진다.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새로운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승리의 징표를 우리에게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순결한 믿음을 지키며 살아보자. 우리는 부족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순결한 믿음을 지키며 살아보자. “하나님 순결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나에게 더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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