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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은 이후의 삶 (롬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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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하는 말이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 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하나님 섬기는 삶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섬긴다는 것이 먼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건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킵니까?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장까지는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12-16장까지는 그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삶의 궁극적인 문제의 답입니다.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구원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1절에서 그러므로 하는 것은 1-11장 까지의 말씀을 받아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접속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가야 성공된 삶을 살고 다 산 후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예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배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는 예배하는 삶으로 시작하여 예배하는 삶으로 마쳐야 합니다.
예배 없이 시작했어 예배 없이 마치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성경에 우리의 믿음의 모델이 되는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볼 때 아브라함도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가더라도 그곳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발걸음과 산업을 지켜주었듯이 우리의 삶과 모든 발걸음을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반면에 예배가 중심이 되지 못한 삶 보세요.
세상적으로는 에서와 같이 유능한 사업가가 되어 성공한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못난이>가 되고 맙니다.
두 주일만 예배없이 살아보세요. 그 입에서 엉뚱한 소리 나오지요.
예배는 우리의 삶의 중심입니다.
예배는 우리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저력입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어머니의 태와 같은 것입니다.
예배를 떠나면 생명줄이 막히기 때문에 삶이 시든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화분 몇 그루를 기르는데 귀한 식물일수록 며칠만 물을 주지 아니하면 잎이 시들고 마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예배 없이 살면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시든 화초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하고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예배를 드린다면 내 속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 즉 부정적 사고나 패배감이 물러가고 승리감과 부요의식으로 충만하여 죽음과 저주의 세력들이 사라지고 생명력으로 충만히 채워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예배는 바로 영적 예배입니다.
영적 예배란 어떤 예배를 말합니까?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
여기에 몸이란 우리의 삶 전체를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사란?
나를 죽여서 하나님께 희생의 재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내 생각 내 의지 내 자아 내 주장이 살아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마치 구약에 재물을 드릴 때 각을 뜨서 완전히 죽여서 드리듯이
예배란 내가 완전히 죽는 시간입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죽어야 만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살아가는 것이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애벌레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날 수 없습니다.
나방이로 변화가 되어야 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부패한 마음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변화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마음먹는다고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변화를 받기 위하여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럼 내가 변화를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가?
빌2:15절에 이 세상은 [ 어거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 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기준에 볼 때 비뚤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세상 풍속 유행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련되고 지성적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사탄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기준 삼은 사람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못합니다.
겔36:26절 [ 내 신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면 우리의 굳은 마음이 허물허물 무너지는 것 있지요.
이런 역사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예배를 통해서 특히 설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까?
바로 이 세상을 본 받는 세상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받는 하나님의 스타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스타일이 뭡니까? 바로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하심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변화를 체험한다면 내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3-8절 까지 말씀은 바로 여기에 대한 답을 말해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영적예배를 드려질 때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섬김 즉 봉사입니다.
봉사를 낳지 못하는 예배는 참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왜 예배를 영어에서 Servise 라고 합니까?
예배는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또한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봉사할 때 꼭 유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할 때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3절 [ 내게 주신 은혜대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믿음으로 봉사해야지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으로 봉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는 말씀입니다.
엡4: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 .

창49:28절에 야곱이 그 자식들에게 축복하되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직임을 맡기시는데, 우리의 재능을 따라, 우리의 능력을 따라,
또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 맡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가? 
이것은 봉사의 본질이 무엇인냐를 알 때 저절로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으면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봉사를 해야합니다.
섬기는 삶의 출발점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봉사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14절 부터는 사회에서 봉사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봉사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봉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혹 교회 안에서 봉사 제대로 하지 않는 교인이 교회 밖에서 봉사한다고 명함들고 다니는 교인들 있지요
나중에 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냄새를 피우게 됩니다.

4-5절에서 봉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우리의 봉사는 무엇과 같으냐는 것입니까?
먼저 교회 안에서 봉사를 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부자유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봉사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건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지체들끼리 봉사가 이뤄어져 건강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의 원리는 우리 몸의 지체를 생각하면 됩니다.
지체의식 없이는 교회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체의식 없는 봉사는 도리어 교회를 분리시키거나 성장에 지장을 가져옵니다.
오늘 한국교회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인들은 많지만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지체의식이 결여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하라고 하면 잘 합니다. 그러나 함께하라고 하면 서로 미룹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서의 지체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를 통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봉사할 때 효율적인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봉사를 하기는 하되 도움이 못되는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왜? 제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할 때 더 효율적으로 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알아서 은사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를 주셨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잇습니까?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교회 안에서 바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고전12:29절에
[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
[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 합니다.
마치 몸의 지체가 각각 다른 것같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었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느냐?
개발과정 401반 은사배치사역에 보면 은사강요 은사교만 은사부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은사강요란 말은 다 같은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은사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사교만이란 자기만이 남다른 은사를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은사부정이란 나는 아무런 은사도 받지 못했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각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 잘 분별하여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알아 봉사해야 합니다.

6절 이하에서는 교회 봉사를 위한 은사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외에도 27가지 이상의 은사가 나옵니다.
이런 다양한 은사를 잘 분별하여 교회 안에서 더 효율적인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예언은 미래의 일을 알아 맞추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요즘말로 하면 설교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목사에게 필수적인 은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 가운데서도 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말씀으로 잘 양육합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 힘있게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 속에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뢰심을 말합니다. 즉 자기가 믿고 확신하는 메시지를 전해야지
자기도 믿지 못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7절에 [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 합니다.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일을 주도적으로 하라고 하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다른 지도자 옆에서 협력할 때 자기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양쪽에 아론과 훌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의 경우에도 항상 그의 옆에는 찬양사역하는 생키가 있었고 문서정리나 신학적인 뒷받침이 되어주는 토레이 박사가 있었습니다.
혹 섬기는 은사를 가졌다고 확신되어지면 섬기는 일에 주력하면 꼭 자기의 능력 이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 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섬기는 자는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듯이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전4:13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교사들은 그 일에 착념해야 합니다.
우리 교사님들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세요. 그럴 때 변화가 나타납니다.

다음은 8절에 [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 합니다.
권위란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권하고 위로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나바 같은 교인입니다.
남을 일으켜 세워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권위하는 은사가 아니라 상처주는 은사를 받은 교인도 있습니다.
말을 해도 꼭 부정적이고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바나바같이 싹이 노란 사람도 세워주는 권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 합니다. 구제하는 은사를 받은 교인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꾸준히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구제은사 받으신 분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꾸준히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이삭같이 마침내 거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 합니다.
칼빈은 신약의 장로의 기원으로서 바로 이 구절을 듭니다.
교회에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장로 직분 감당하려고 하면 새벽기도도 하고 교회도 돌아보고 심방도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고난 당할 때 함께 나눌 줄 아는 은사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저주고 어려운 사람 잘 챙겨주는 교인 교회 안에는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합니다.
긍휼을 은사를 받은 사람은 즐거움으로 할 때 상대방이 감동을 받고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다른 지체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을 통해서 크신 은사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든지 간에, 받은바 은사대로 맡은 소임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하고 강조한 것은 바로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괘종시계에 달려서 움직이는 시계추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계추가 다른 부품들과 함께 조립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립탁자 위에는 여러 부품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 시계추 옆에는 그와 함께 일하게 될 큰 톱니바퀴가 있었습니다. 시계추는 그 큰 톱니바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야 내가 저 큰 톱니바퀴가 다 달아서 없어질 때까지 내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할 텐데.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될까?
일 분이면 60번, 한 시간이면 3,600번, 한 달이면 그것의 24배, 일 년이면 또 그것의 365배…
아이고, 끔찍해! 나는 도무지 지겨워서 그런 일은 못 할꺼야!' ]
그러면서 시계추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시계주인은 시계추의 한숨소리를 듣고서 시계추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 시계추야, 너무 끔찍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네게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할 수 있는지 한번 대답해 보아라.
네가 움직일 때마다 그저 딱 한 번씩만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 줄 수 있겠느냐? ]
시계추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계주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물론,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러자 시계 주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 그래, 네가 하는 일은 그것만하면 돼. 그러면 너의 일로 인해서 시계 전체가 언제나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을 거야. ]
그래서 그 때부터 시계추는 시계에 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딱 한 번씩만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시계추의 똑딱거리는 소리에 시계 전체는 언제나 활기차게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시계추도 그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금도 변함없이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괜스레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지레 짐작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은사를 주셨든지 간에, 맡은바 소임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하는 일로 인해서 교회 전체가 언제나 활기차게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은사를 주셨든지 받은바 은사대로 각자가 맡은 소임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봉사할 때 봉사의 자세가 어떠해야겠습니까?
이것을 저는 봉사의 기본자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 봉사는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9-10절에 [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이 말은 봉사를 하되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133:1-3절에서 다윗 왕은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401반 은사배치 사역 교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봉사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쁨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고 사람 없는 봉사는 의무감, 체면 나의 유익 자기 과시로 한다고 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충고합니다.
[ 그대여, 진정 행복과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그 빈곳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채워라.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분노와 탐욕은 눈처럼 녹아내린다 ]

2) 열심히 해야 합니다.
11절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여기 "열심을 품고"란 말은 헬라어로 "프뉴마제오"인데 이 말은 "성령"이라는 뜻의 "프뉴마"와 "물이 끓듯 열정적이다"는 뜻의 "제오"가 합쳐진 말로, "성령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열심이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기도생활도, 교회봉사도,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체험하고, 열정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애인을 찾아 헤매다가 지옥에 내려갑니다.
지옥에 가 보았더니 지옥에서는 '먹고 싶다' 생각하면 먹을것이 있고 '어디 가고 싶다' 하면 그 곳에 가 있고,
뭐 수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지옥인가 했더니 그곳이 예수는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착하게 산 사람들이 와 있는 지옥 일등 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받는 벌은 할 일이 없어 권태로움과 지겨움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9:10절의 말씀과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라 ]


3.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기도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12절에 [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
물론 열심히 주를 섬겨도 고난과 어려움이 옵니다.
그래서 육신은 피곤할 수 있고, 우리의 헌신과 봉사는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피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피곤하면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시간 내 영혼이 험한 산을 뛰어도 피곤을 느끼지 않은 젊은 사슴처럼 주님의 비전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유럽의 백만장자 4천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 분석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적인 대답이 나왔습니다.
첫째, 뚜렷한 목표를 가져
둘째, 마음에 꿈을 가져라.라.
셋째,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복음 사역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을 통하여 마음으로 복을 누려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실천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03장 3절 [ 이 세상에 모진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 할까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봉사해야 합니까?
봉사는 행동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해야합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합니까?
13절에 [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1)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지체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지체의식을 가질 때 섬기고 있으면서 의식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손 대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손 대접은 단순한 나그네 대접이 아니라
당시 순례 전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말로 하면 목사 선교사들을 잘 대접하라는 말입니다.
부교역자 선교사님들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린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삶은 교회 안에서 봉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할 때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영적은사와 병행하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 받아 내게 주신 은사를 잘 분별하여 하나님께 영광,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열매가 있는 봉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할 때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받은바 은사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대로 봉사하되 사랑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 받아 뜨거운 열정을 품고 열심히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렵더라도 참고 기도하며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요12:26절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

200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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