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려움을 극복합시다 (사 41:10)

  • 잡초 잡초
  • 351
  • 0

첨부 1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일제말기 저는 아주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울다가도 순사가 온다.  그러면 울음을 그쳤습니다.  순사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서운 게 호랑이 였습니다.  공자가 하루는 제자와 함께 길을 가는데 한 여인이 무덤가 에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원인을 들어보니까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자기 남편도 변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후 아들마저 그러면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왜 이곳에서 계속 살고 있느냐 물으니 이곳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걸요.  그러더랍니다.  근자에는 세금도 무서운 거라는 말입니다.

오늘에는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질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두려움 가운데서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입니다.

  1.  왜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까?

두려움은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론가인 나폴레옹 힐이라는 사람은 두려움은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고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한 상태로 이끌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쟁을 하는데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때문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형들을 면회간 다윗은 골리앗이 선민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정의감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적장 골리앗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항복하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전쟁에서 항복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전쟁에 참여할 인물이 없습니다.  그때 다윗이 말합니다.  형님 제가 나가겠습니다.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 필요한 게 용기입니다. 

두려워하지 아니할 때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건강에도 유익이 없습니다.  두려움이란 성능 좋은 현미경으로도 잡히지 아니 합니다.  두려움은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합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심장병, 불면증 같은 병을 줍니다.  불안과 공포 즉 두려움은 인류의 적입니다.  무서운 질병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심각해지면 미치거나 가장 빨리 늙게 하기에 최고의 염산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용기에서는 근심은 눈을 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욥 17:7)  잠언 17:22절에는 “두려움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두려움이 병을 부르며 또 병을 더욱 심하게 발전시킨다고 말합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환자의 90%가 사전에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에 병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눈이 쉽게 어두워집니다.  두려움과 근심 많이 한 사람은 머리칼이 변합니다.  가옥에 기둥이 썩으면 집이 무너지고 마음에 평안이 없고 두려움이 가득하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을 하면서 죽은 사람이 100만이 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듭니다.  사울과 다윗을 보면 사울은 어른입니다.  그리고 임금입니다.  그러나 누가 더 영웅같이 보입니까? 무서워하는 사울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다윗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이 두려워하다가 스스로 올무에 걸린다고 하였습니다.(잠언 29:25)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지혜자가 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현실을 겁내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반드시 발생한다.  심리학자 칼 융이라는 이가 말하기를 잠재의식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실현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움은 영적 생활에도 커다란 방해가 됩니다.  두려움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듭니다.  정력을 쇠하게 하고 정열을 식게 합니다.  두려움이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이 기도 잘할 것 같습니까? 더욱더 안 합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이 귀에 들어오던가요? 서로 사랑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합시다.

  2.  왜 우리는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에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여 숨었었습니다.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부정한 돈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하는 시비가 있습니다.  나는 받은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자신감이 없어 보입니다.  죄를 범하고는 담대할 수 없습니다.  죄를 범하면 양심이 나를 고발합니다.  너는 나쁜 사람이야.  그럴 수 있느냐? 범죄하면 두려움이 거머리 같이 따라 다닙니다.  범죄는 물론 심판입니다.  그러나 심판이전에 마음에 형벌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8:11절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이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 벌벌 떨고 있습니다.  주님은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여인은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간음한 여인이 범죄 하였을 때는 얼마다 두려워했겠습니까? 바울이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죄의식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죄 의식도 가져야 합니다.  죄의식만 가지고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입니다 라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주께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이것을 기억하고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아멘)

왜 두려워하게 됩니까? 인간의 무능력 때문입니다.  영어실력이 없는 사람은 미국사람 앞에서는 두렵습니다.  상대방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면 좋겠는데 자꾸 말을 걸어오면 곤란하겠다 하는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단순하지 않습니다.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내가 부족하기에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아멘) 내 힘이나 방법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하였는데 안 됩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사업이 계획대로 100% 다 잘되던가요? 어쩔 수 없이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능한 존재입니다.  의지도 약합니다.  옳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약하다고 생각할 때 주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어린아이를 혼자 학교에 보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언제 납치범이 우리 아이를 해꼬지 할까? 혹은 왕따가 되지 아니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이 가자고 하면 가지 말라 그럽니다.  안 갈 수 있습니까? 사람이 두렵습니다.  어떤 이는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두렵답니다.  그가 어린 시절에 어느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 있어서 남편을 대할 때마다 그 남자 생각이 나서 두렵답니다.

어느 여자가 결혼에 실패하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뛰고 가슴이 항상 아프다고 해서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았습니다.  전 의료진을 동원하여 진찰해 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유를 물어 상담하였습니다.  원인인즉 그 남자가 너무나 잘해줍니다.  먼저 남편도 자기에게 잘해주었는데 병사하였습니다.  재혼한 남편도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고생하였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두려운 게 많습니다.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병이 두렵습니다.  건강이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21세기 세계에서 인류를 괴롭히는 세 가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피로 증후군(CFS) 그리고 로이츠펠트 야콥병(CJD) 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암 그리고 샤스 여기에다가 광우병이 있습니다.

  3.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해 봅니다.  물질만능 시대다 돈이 우선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모아봅니다.  돈이 되는 거라면 무엇이나 자기 손에 장악하려고 합니다.  돈은 복이 될지는 모르나 행복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쾌락으로 두려움을 극복해보려 합니다.  자유 연애, 동성애 같은 것이나 록 음악, 마약 또 명상종교에 의하여 성적 문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성적인 쾌락으로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보험을 의지하는 이가 있습니다.  생명보험, 암 보험(의료보험), 생활안정보험, 교통상해보험, 노후생활대책보험 등입니다.  이런 방법이 두려움을 해결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첫째,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좁게 보기에 두렵게 보입니다.  예전에 시골길은 캄캄합니다.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사람같이 보이기도 하고 귀신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보고 산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좁게 보고 좁게 생각합니다.  수탉이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자칭 인도주의자가 말합니다.  저렇게 고개를 올렸다 숙였다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참으로 측은한 일입니다.  그 말을 현실주의자가 듣고 하는 말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목을 쳐들지 아니하면 그나마 한 방울 물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잘하는 일입니다.  이 말을 옆에 있던 크리스천은 조용히 말하기를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감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물도 감사하고 사는데 두 분은 어떠하신지? 그러더랍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 주변에 문제되는 일이 있습니다. 두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더 넓게 생각하면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너무 조급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킨드 박사가 쓴 『재촉 받는 아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아이』 라는 논문에서 오늘의 청소년들이 성인들로부터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 게 재촉 받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빨리 해라.  이제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한글 수학 영어를 잘하기를 기대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지금 자라고 있고 재미있게 놀고 성장해야 할 아이들을 데려다가 학원에 보냅니다.  영어학원, 음악학원 태권도학원에 가서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학원에 보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더 잘 해야 하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나쁘냐 라고 다그치면 그 아이는 그때부터 기가 죽어 공부에 노이로제가 걸리게 되는 겁니다.  공부가 무서운 것입니다.  여유 있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닙니까? 여유 있게 생각하면 두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철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불신앙일 때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으십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보세요.  분명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신앙이란 말씀 그대로 수용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을 보면 바울 일행이 아드라 뭇데노 라는 무역선을 타고 갑니다.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 옵니다.  살 여망이 없습니다.  모두들 죽는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때 바울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던 바울은 안심했습니다.  먹고 자고 편안하게 여행을 하게 됩니다.  광풍의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었던 바울 같이 믿었으면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보세요.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그러면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입니다.  함께 하신다는 말씀보다 더 좋은 말씀은 없습니다.  큰 사명을 주실 때에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선교의 명령을 하실 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모세에게도 출애굽기 3:12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령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합니다.  두려울 게 전혀 없습니다.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어린아이가 캄캄한 밤길을 가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 청년운동을 시작한 미국의 롤링박사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라고 세 번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믿습니다” 라는 말은 신앙고백입니다.  누가 얼마나 믿어지지 아니하면 주여 믿습니다 라고 하느냐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끔이라도 내가 당신을 지독하게 사랑해요 라고 매일 해보세요.  그것이 기분 나쁜 일입니까? 사랑을 고백하듯이 신앙고백을 하는 게 나는 믿습니다 인 것입니다.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입니다.(사 41:10) 약하기에 넘어집니다.  약하기에 시험에 듭니다.  굳세게 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굳세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강건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할 이유가 있습니다.  강하시고 능력의 하나님이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신앙이 뭐냐 라고 설명하는데 종이를 붙잡고 주먹으로 치라 하였습니다.  종이가 찢어집니다. 다음에는 벽에다가 종이를 붙여 놓고 주먹으로 치라 하였습니다.  종이는 절대로 찢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주먹만 아픕니다.  우리는 약하나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았으니 해할 자가 없습니다.  찢겨질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붙들어 주시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아멘)

또 약속이 있습니다.  너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도와 주는 자가 있었습니까? 부모님 외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형편입니다.  도와준다고 해도 조건적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아멘 하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있으면 서로가 위로와 도움이 됩니다.  서로 경계하면 멀어집니다.  이스라엘 족장시대에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요셉을 만났습니다.  형들이 심적으로 두렵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때 요셉은 위로합니다.  형님들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앞서 보내셨습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추방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불안과 공포의 철학이라고 한다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와 용서의 신앙철학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담대하게 됩니다.  두려워 말라는 음성을 들으세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범죄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담대하게 삽시다.  시야를 넓히세요.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말씀을 믿고 나를 붙들고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붙잡으세요. 그리고 사랑하며 사세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움을 추방하고 복되고 복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