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윗의 일생(1) : 크리스천 스탠다드 (왕하 18:3~8)

  • 잡초 잡초
  • 1054
  • 0

첨부 1


-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여러분, KS 마크 다 아시죠? 「Korean Standard」의 약자인데, 정부에서 제시한 기준에 적합한 공업 제품에 붙이는 마크입니다. 이 마크는 정부에서 그 품질을 보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고를 때 KS 마크만 보면 그 제품의 품질을 믿을 수 있어서 마음 놓고 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CS 마크가 있습니다. 「Christian Standard」의 약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준, 성도의 표준이란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이 그대로 성경에 나오는 것은 아니고, 성경의 내용을 기초로 제가 한번 만들어 본 겁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 중에 특별히 하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완전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완전무결한 분은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요, 크고 작은 허물과 죄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Sample, Model)이 될 만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과 인생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물론 우리가 궁극적으로 본받고 따를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엡4:15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며 그분의 모습을 철저하게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중간 모델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허물과 죄악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신앙 안에서 변화 받고 새로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죠. 아이들에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당연히 좋은 모델에 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몇 살 터울의 형이나 언니가 가까운 중간 모델로 유익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의 말도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고전1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 말은 단순히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는 게 아니죠. 모두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데 혹시 막연하게 생각되면 예수님을 열심히 본받고 있는 자기를 따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범적인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사랑과 칭찬을 많이 받은 인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이름의 뜻입니다. ‘사랑스러운 자’ 혹은 ‘총애를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 이름대로 살았던 셈입니다. 행13:22 보면 바울의 설교 중에 다윗이 언급된 내용이 나옵니다. “ ...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l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영어 성경(NIV) 보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 ... a man after my own heart"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은 사람이 아주 희귀합니다. 크리스천의 표준 모델, 하나님의 전속 모델인 셈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람들에게, 오늘의 성도들에게 다윗을 제시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을 봐라!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거야!”

오늘 성경 본문 3절을 보면 그런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본문을 봉독할 때 혹시 이상하게 생각하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거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야기 아냐?” 하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한 사람의 신앙과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 평가 기준으로 다윗을 제시했다는 사실입니다. 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 히스기야는 다윗의 신앙을 그대로 본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스기야의 신앙과 삶에 투영된 다윗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이 말씀과 같이 성도들, 특히 이스라엘 왕들의 신앙과 삶을 언급할 때 항상 그 평가 기준이 되는 인물이 바로 다윗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다윗의 길’ ‘다윗의 하나님’ 이런 표현들이 나옵니다.(대하34:2~3 참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은 ‘다윗의 길’로 갔다고 표현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신앙의 길을 간 사람은 ‘다윗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바른 신앙인의 모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샘플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습은 우리가 따를 신앙생활의 모범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그에게도 실수와 죄악이 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아내와 첩을 거느렸던 일,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살해한 죄악, 자기 힘을 자랑하느라 인구 조사를 했던 일 등입니다. 그리고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던 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게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다윗의 일생’을 보면서 긍정적인 교훈과 더불어 부정적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의 일생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役事, work)를 보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는 ‘다윗의 일생’ 설교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보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고, 다윗에게 역사하셨던, 그리고 오늘도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다윗의 일생에 나타난 개괄적인 신앙적 특징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다윗의 신앙 특징 : 크리스천 스탠다드

3절을 다시 보면, 히스기야의 신앙을 뭐라고 묘사합니까? “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 일관성 있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는 다윗의 그런 신앙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사람마다 신앙에 기복(起伏)이 있기 마련이지만, 꾸준한 게 중요합니다. 냄비처럼 어떤 때는 들끓다가 또 어떤 때는 식어버리는 식이면 곤란합니다. 가마솥처럼 은근하면서도 늘 뜨거운 신앙이 좋은 것입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 같은 신앙이 좋은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늘 정도를 걸어갔습니다. 원칙을 지켰습니다.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가 보여준 신앙의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히스기야에게 전수됐던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 :

5절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 ”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이방신의 산당과 우상을 제거한 것(7절上)과 강대국인 앗수르의 왕을 배척하고(7절下), 블레셋을 공격하는 등(8절) 자주적인 정책을 폈습니다. 이것도 역시 다윗의 신앙을 그대로 배운 겁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는 본래 비천한 목동 출신입니다. 그때는 물론이고, 왕이 된 이후에도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시편에 나타난 그의 신앙 고백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시16:1~2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의 이런 신앙을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게 바로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골리앗을 쳐부순 사건’입니다. 골리앗은 무장을 하고 기골이 장대한 장수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무장도 하지 않은 소년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당당하게 맞서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삼상17:45 보면 그의 담대한 신앙을 엿보게 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 네게 가노라”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고 그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② 하나님과 연합하는 신앙 :

6절上을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에게 연합된 신앙인이었습니다.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 ” ‘연합한다’는 말은 ‘꼭 붙어있다’는 뜻입니다. 즉 밀착되듯이 긴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늘 영적으로 깊은 교제를 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영적으로 연합한 삶을 살았습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며 침상을 적시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특히 그의 신앙이 배어 있는 찬송과 시는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수금을 켜는 명연주자이며, 시편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를 지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건 생활에서 그의 영성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영적으로 충만했고, 생동감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③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 :

6절下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신앙인이었습니다. “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다윗이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수동적 능동주의’입니다. 좀 이상한 표현 같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무조건 능동적, 적극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된 열심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것 같지만 승리의 근본 요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영적 조율(spiritual tuning)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뜻을 알고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뭔가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길을 방해하는 것으로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죠. 하나님의 말씀은 보호 조치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조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다 내 뜻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자기 뜻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시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큼 안전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불리하고 손해 보는 일이라도 순종했습니다. 삼상24:1~7 보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있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굴에 들어갔는데 마침 낮잠을 자고 있던 사울 왕과 조우하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절호의 찬스입니다. 단칼에 목을 베면 모든 상황이 끝나는 겁니다. 고달픈 망명 생활이 끝나고, 왕으로 등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절대 행치 않았습니다. 왕을 세우고 폐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사항이므로 자기가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는 번번이 그 원칙을 지켰습니다. 결국 사울이 전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연스럽게 왕이 됩니다. 다윗은 이런 식으로 늘 순종하고 승리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번은 어머니의 생일 파티를 열고 지인들을 초대했습니다. 그 자리에 프랑스 관리 한 사람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가 워싱턴의 어머니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아드님을 이렇게 훌륭하게 잘 키우셨나요? 비결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비결이랄 게 뭐 있나요? 다만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고 늘 강조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 인생의 승리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④ 돌이켜 회개하는 신앙 :

본문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윗의 중요한 신앙적 특징 또 한 가지는 돌이켜 회개하는 신앙입니다. 다윗도 인간인지라 이런 저런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자기 잘못을 발견하는 즉시 돌이켜 회개했습니다. 그게 그의 훌륭한 점입니다. 사람이 실수하지 않는 게 좋지만, 실수해도 정직하게 시인하고 돌이킬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죄악을 사하시고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9 참조)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성화되는 것입니다.

용수철의 예를 생각해보죠. 용수철을 당기면 늘어납니다. 다시 놓으면 복원됩니다. 그런 특성을 탄성(彈性)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탄성 한계를 벗어날 만큼 힘을 너무 세게 주면 늘어난 것이 복원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를 가리켜 물리학에서 ‘영구 변형’(永久變形)이라 부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무슨 죄든지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게 중요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치 않은 채 고질화되면 곤란합니다. 죄 가운데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집회에 참석한 술집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집회에서 복음 듣고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집 앞에 간판을 붙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는데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 어제 저녁부터 예수 믿기로 했소. 오늘부터 영업하지 않소.” 하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결단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이 성군(聖君)이 된 것은, 그리고 크리스천 스탠다드가 된 것은 그가 100% 완전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돌이킬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 : 이생의 형통과 천국의 영광

① 이생의 형통 :

7절上을 보면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가졌던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고,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 세상 살 동안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게도 고난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늘 함께 해 주시면서 도와주심으로 결국은 승리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의 일생을 간단히 이렇게 한 구절로 요약했습니다. 대상29: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죽기까지 형통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② 천국의 영광 :

다윗에게 주어진 축복은 이생에 한정된 게 아니었습니다. 마1:1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 타이틀에 다윗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 구약의 숱한 인물들 중에 대표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더불어 당당히 그 이름이 뽑혔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것은 이생에서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천국의 영원한 영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 선두주자(先頭走者)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한 성도의 표준, 크리스천 스탠다드(CS)였습니다. 그는 비록 약점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를 중간 모델로 삼고 그의 신앙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 앞에 우리 자신도 크리스천 스탠다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산 증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