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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질서 (시 10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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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목양교회)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시편 104편은 지은이가 밝혀져 있지 않고 제목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지은이는 다윗인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 앞의 시편 103편에 “다윗의 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104편은 103편에 연결된 시입니다. 두 시의 구조와 형식도 같습니다.

여러분 시편 104편에 제목을 붙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창조의 찬가’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시편 104편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에 대한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시편 103편과 104편은 서로 짝을 이루는 신앙시입니다.
한시의 대련(對聯)과 같습니다.
쌍둥이 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성경주석은 이 두 시편은 다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는데 103편은 특별은총을 노래하고 있고 104편은 일반은총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3편을 보세요. “송축”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송축은 찬송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찬미라고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1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송축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고 2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하였고, 20절에서는 천사들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고, 21절에서는 천군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끝 절인 22절에서는 역시 반복해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가벼운 말인 것 같지만 시편 103편에는 ‘송축 풍년시’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편 104편은 이것을 이어 받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로 시작해서 끝절인 35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하고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송축하라” “송축하라”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을까요?
특히 창조와 연관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을까요?
환경선교주일인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가운데 교훈과 은혜를 얻기 원합니다.

첫째, 창세기 1장을 생동감 있게 읽을 때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자적으로 읽는 일이 많습니다. 글자를 읽는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말인데 이것을 ‘겉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겉으로 읽는다’라는 것입니다.
한자로 적으면 표독(表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표면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유익합니다.
어느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부모님 속을 좀 썩혔습니다. 부모님은 이 아들에게 성경 한 장 읽으면 천 원씩 준다고 했더니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떤 날은 오십 장을 읽었다고 하면서 오만 원을 받아가더랍니다.
이 아들, 처음에는 철저한 겉독을 했겠지요. 그러나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들, 지금 목사가 되어서 대전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말씀으로 읽을 수도 있어야합니다.
성경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며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속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독은 ‘빨리 읽는다’라는 뜻도 있지만〔速讀〕 여기에서는 ‘속을 읽는다’라는 뜻입니다.
속장은 속도들의 속사정까지 알고 기도해야하기 때문에 속장이고 속도들의 겉만 아는 속장은 겉장이라고 해야 한다는데 성경도 속까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속독은 한자로 내독(內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을 읽는다’라는 뜻입니다.

제게 이렇게 새로운 말들을 만드는 달란트가 좀 있습니다. 그런데 잘 유행되지는 않더군요.

방송사에서는 아나운서에게 원고를 주면서 ‘아무개 아나운서, 이거 읽으세요’ 하는 것은 큰 실례로 되어 있습니다. 읽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개 아나운서, 이거 방송하세요’ 해야합니다. 방송하라는 것은 그 원고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나운서가 방송하는 자세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나라에 답답한 일들이 정말 많았을 때의 일입니다. 밤에 창세기를 읽는데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는 말씀이 문득 정말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그 말씀은 예방주사 같은 효과를 냅니다.
지금도 답답한 일이 생기면 창세기 1장 3절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습니다.

설교를 준비 할 때 제일 힘쓰는 것은 본문을 여러 번 읽는 것입니다. 수요일부터 그 일을 시작해서 다른 번역들로도 읽고, 관주성경을 가지고 성경 안에서 관련된 말씀을 찾으면서 읽고, 주석을 참고하면서 읽고, 그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그러면 성경을 통해 받는 은혜가 달라집니다.
같은 본문인데 수요일, 읽기 시작할 때의 성경과 이런 과정을 거친 토요일의 성경이 주는 은혜가 다른 것을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의 경우는 이렇게 대조해서 읽고 그런 것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중해서, 반복하면서, 묵상하면서 읽으세요.
사격 선수들, 목표물을 집중해서 자꾸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 과녁이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고 합니다.
말씀 읽을 때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생동감 있게 읽을 때‘ 하나님을 송축하게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성경을 깊이 읽는 것을 ‘생동감 있게 읽는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4편은 창세기 1장을 시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는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작곡자인 장수철(張壽哲) 박사(1917~1966)가 시편 23편에 그대로 곡을 붙여서 사용했는데 부인인 최봉춘(崔逢春)여사(1917~ ?)가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더 하기 위해서 가사를 지금과 같이 바꿨다고 합니다.
가사를 고치면서 곡도 손질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아까 시편 104편은 지은이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다윗이 지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윗이 창세기 1장을 읽다가 천지창조의 장엄함, 천지창조의 오묘함, 천지창조의 신비함, 이것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이렇게 시로 재구성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절, 위대한 창조주에 대한 찬양의 서곡입니다.
2절에서 4절까지, 창세기의 시작 부분, 창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모습을 시로 바꾼 것입니다.

5절에서 9절까지, 땅과 물을 구별한 창조의 셋째 날을 시로 바꾼 것인데 여러분은 5절에서 9절까지를 보고 계시기 바랍니다.
제가 창세기 1장 9절과 10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러분은 오늘 본문 밖의 14절을 보고 계시기 바랍니다.
제가 창세기 1장 11절과 12절, 그리고 29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먹을 거리가 되리라

시편 104편이 ‘제2의 창세기 1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즘 제2차 111 전도운동을 위한 세 이레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전도의 빛에서 본 창세기’입니다.
첫날 창세기 1장 26절에서 28절까지를 본문으로 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보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복음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청년부가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제 청년들에게 설교하면서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도록 하는 일이 바로 전도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창세기 1장을 생동감 있게 읽을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도 깨닫기 바랍니다.

창세기 1장을 잘 읽어보세요. 읽는 가운데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면서  오늘 본문 가운데 2절에서 4절까지가 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말 빛의 옷을 입고,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고, 물에 누각의 들보를 놓으시고, 구름을 수레로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고, 바람과 불꽃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시고, 땅에 기초를 놓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정말 하나님을 송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그와 같은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창조세계 안에 있는 질서를 발견할 때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세요. 거기에는 놀라운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7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이 떨어지기 이전에는 물이 땅에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물이 강과 바다로 도망을 가서 있을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바다와 육지가 모두 제자리를 잡고 경계가 분명하여졌습니다.(9절)
산, 골짜기, 샘, 질서 있게 제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19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달〔月〕로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설, 추석, 이런 절기들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6월에 망종이 있고 단오가 있는데 이런 절기들도 음력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기들도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일에 맥추감사주일을 지켰는데 이것도 달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삼대 절기인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다 달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부활절도 그렇지요. 부활절은 매년 춘분 지나고 첫 번째 맞이하는 보름달 다음의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밤과 낮을 질서 있게 정하셨습니다.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 이 말씀은 해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해가 ‘나 오늘 좀 피곤해. 일찍 들어갈래’ 하고서 오후 서너 시쯤 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29절 뒷부분은 “주께서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언제인가는 숨을 거두고 먼지로 돌아가는 것도 창조질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에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셨고, 40절에는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천지창조 작업부터 정말 질서 있게 하셨습니다.

이 질서는 아름다운 질서입니다.
위대한 질서입니다.
신비한 질서입니다.

이 질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늘 설교제목을 ‘아름다운 질서’라고 했습니다.

35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고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죄인들이 있고 악인들이 있습니다. 시편 104편이 하나님의 창조를 찬미하는 시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여기서 말하는 죄인, 여기에서 말하는 악인은 바로 이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엄하게 처벌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이 질서를 깨뜨리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불량만두 파동이 온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흔히 ‘쓰레기 만두’라고 부르는데 한 신문을 보니까 ‘잘 살펴보면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은 좀 지나친 것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매스컴은 문제가 되는 것을 너무 과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센세이셔널리즘, 선정주의라고 하지요.
지난 번 탄핵보도가 일방적으로 그런 성격이 강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불량만두 파동은 시편 104편 14절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시는 양식을 주셨도다

라는 말씀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먹거리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이 기쁘고 얼굴이 윤택해지고 힘있어져야 하는 것이 창조질서인데  그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먹거리가 걱정거리가 되었고 건강을 해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이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즘 이 질서를 너무 많이 깨뜨리고 있습니다.
계절의 질서도 많이 깨져서 이상기후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까 오존 경보가 발령되는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고 합니다.

3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하나님이 질서 있게 만드신 이 세계가 그 질서를 유지하면 하나님이 즐거워하십니다.
환경선교는 바로 이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피조물이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복을 받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질서, 아름다운 질서, 위대한 질서, 신비한 질서를 발견하시고, 느끼시고, 그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나도 그 질서의 한 부분이 되고, 그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셋째, 주님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는 일에 동역할 때 주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서 그것으로 끝났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창조하신 천지를 잘 관리하시는 분입니다. 애프터서비스를 철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창조의 계속’이라고도 하고 ‘재창조’라고도 하고 ‘섭리’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세요.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103편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시편 103편 4절에서 5절까지를 보세요.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며

그 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다윗은 시편 103편을 나이가 많아서 쓴 것이 분명합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들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해 지은 시입니다.
나이가 많은 다윗이지만 다윗은 자기를 청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면 여러분, 늘 청춘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연세 많은 분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병든 분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이 말씀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시편 103편에서는 하나님은 인생을 새롭게 하는 분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04편에서는 하나님은 자연을, 모든 피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분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는 일에 동참해야합니다.
집을 청소 다 해 놓은 다음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같이 청소해야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남선교회가 식당봉사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장로님들이 봉사합니다. ‘차려주는 식사 먹기만 하지 않고 우리도 함께 봉사하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서울 마포에 난지도가 있습니다. 한강 하류에 생성된 삼각주인데 난초의 향이 그윽하다고 해서 난지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울시가 이 섬을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서울시의 온갖 쓰레기들을 이 섬에 갖다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난지도에는 삼다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제주도의 삼다는 돌과 바람과 여자인데 난지도의 삼다는 파리와 악취와 먼지입니다.
먼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쓰레기 실은 차들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난지도 파리들은 마포 성산동과 망원동 일대의 주택들에까지 날아왔습니다. 여름에 창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 곳의 집 값이 매우 쌌습니다.
쓰레기가 쌓여 높이 98m의 산이 생겼습니다. 자유로를 타고 일산으로 오갈 때 이 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가 이 난지도를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난지도는 모습을 바꿨습니다.
지금 난지도는 생명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
지난 주일에 한 신문이 ‘생명 되찾은 난지도’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화보와 함께 보도하였습니다.
그 기사의 일부분은 이렇습니다.

난지도가 생명을 품는다. 새가 돌아왔다. 먹이를 찾아 나선 족제비가 풀숲을 뛰어다니고 맑은 물에는 피라미가 알을 낳는다. 자연의 복원력과 인간의 노력이 죽음의 섬을 생명이 꿈틀대는 생태공원으로 살려낸 것이다. 공원으로 몸단장한 105만 평의 난지도에는 식물 438, 곤충 241, 조류 53, 포유류 11, 파충류 13종 등이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중앙일보」6월 4일 자)
 
저는 마포에서 목회한 일이 있어서 예전 쓰레기 동산이던 난지도의 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아,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이 일에 동참하는 사람의 노력으로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업계획들 가운데  지금 교회가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서 아직 착수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동막천 사랑운동이 있습니다.

요즘 교회에 일들이 참 많지요. 행사들이 너무 많아서 플래카드 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오를 저녁에 일일 전도학교가 있어서 플래카드를 붙이려고 했더니 자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플래카드는 붙이지 못했지만 여러분, 저녁에 빠짐없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힘써 노력하면 동막천도 아주 아름다운 하천으로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의 양재천이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이 지면을 새롭게 하는 일에 힘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송축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일하는데 어떻게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일하며, 특히 피조세계를 새롭게 하며 33절의 말씀,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이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교훈은 두말할 것 없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이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이웃의 범위를 넓게 잡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북한동포들도 우리의 이웃으로 삼아야합니다.
슈바이처는 이 이웃의 범위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으로 잡고 생명경외를 강조했습니다.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는 공중의 새, 짐승, 들의 꽃도 이웃으로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오늘 묵도 가운데 읽은 로마서 8장 19절에서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바울은 모든 피조물을 이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세계가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것을 사랑하여야합니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합니다.
창세기 1장을 생동감 있게 읽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새롭게 느낄 때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창조세계 안에 있는 질서를 발견하고 그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할 때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면을 새롭게 하는 일에 동역할 때 주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모든 피조 세계가, 자연환경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 피조세계를 사랑하며 가꾸는 가운데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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