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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물의 벳세메스길 (삼상 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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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요한 목사 (평안의교회)

사무엘상 말씀을 나눈지도 벌써 석 달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들의 영적 상태는 분별하지 못한 채 전쟁이라고 하는 삶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법궤만 가지고 나가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과 편견을 철저히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존귀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자신들의 전리품인양 취급하는 블레셋 방백들과 백성들에게는 무서운 독종재앙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재앙을 멈출 유일한 방법은 법궤가 있던 이스라엘 본처로 돌려 보내는 것이라고 믿고 한 번도 수레를 끌어보지 아니한 소 두 마리에게 새 수레를 끌도록 하였습니다. 수레 역시 새수레였습니다. 부정한 어떤 물건도 싣지 아니한 새 수레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정성을 최대한 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7개월 동안이나 빼앗겼던 법궤가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국경도시 벳세메스 사람들은 들에서 일을 하다 말고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이제야 법궤가 돌아오는구나......." 다시 말하면 이제야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설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벳세메스 사람들은 가슴 벅찼을 것입니다.

다섯 도시를 순회하면서 법궤로 인한 재앙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이 재앙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인정하고 본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왕이면 정성을 다하여 보내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번도 부정탄 어떤 것도 운반한 적이 없는 새 수레를 만들어서 거기에 법궤를 실어 보내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물런 법궤를 운반하는 방법에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긴 하지만 이방인인 그들로서는 알길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돌려보내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엉뚱한 생각들이 개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지금까지의 재앙이 우연인 것을 괜히 호들갑 떤 것은 아닌가? 한 번 더 테스트 해보자" 그들은 수레를 운반하는 소를 선택하는 일에 송아지가 딸린 젖나는 소를 선택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만약에 젖나는 소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벳세메스로 가면 지금까지의 재앙은 하나님의 손길이고, 소가 벳세메스로 가지 않고 울고불고하며 어미소를 찾고 있는는 송아지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면 이 재앙은 우연으로 여기자며 어처구니 없는 잔꾀를 짜 낸 것입니다.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뜨면 우연이고, 서쪽에서 뜨면 하나님의 손길로 인정하겠다는 아전인수격인 방법으로 시험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젖나는 어미소가 새끼 송아지 한테로 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송아지는 젖을 먹어야 하기에 절대로 어미소를 떠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10절에 보면, 사람들이 어린 송아지들을 집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강제적으로 송아지를 어미에게서 떼어낸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미 소가 제대로 갈 길을 가는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사람들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잘 대변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순수해야 하는데 때로는 복선을 깔고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또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조차도 이런 경우가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두 마리의 암소가 벳세메스길로 바로 향하여 대로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지금 암소들은 새끼 송아지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레를 끌고 가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소가 우는 모습 보셨습니가? 전 소가 우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로 주먹만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울며불려 어미 소를 찾고 있는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는 어미소가 얼마나 슬펐겠어요? 송아지는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격리시켰지만 참으로 처절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미 소들은 새끼송아지의 어미를 찾는 애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대로로 갔다고 했습니다. 밭으로 논으로 새끼 송아지를 찾으러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두들겨 맞고 강제적으로 벳세메스로 끌려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에게 내려진 재앙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이 어미소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사명자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 사명자들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울면서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지역장을 하거나 선교회장을 하면서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사회적 조직이 아니기에 진정으로 겸손과 온유함이 필요하고 더구나 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회원여러분, 몇월 몇일 아무개 성도 가정에서 월례회로 모입니다" 그러면 25명 회원이 다 모입니까? 임원이라고 척척 협력해줍니까? 그 사람은 집사니까, 그 사람은 권사니까 회비는 잘 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회비는 잘 내줍니까? 얄미울 정도로 안 내는 사람도 있지요? 5,000원 회비도 안 내는 것이 임원이라고... 그런 생각 들때가 많지 않습니까?

제가 본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일입니다. 부친께서 교회 비품이 필요할 때마다 성도들께 광고를 하셨습니다. "이번에 강대상이 필요한데 대략 300만원 정도가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헌신하실 분은 예배 후에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면 대개는 그 날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성도들 중에 ‘목사님, 오늘 광고하신 강대상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작정하곤 했습니다. 그런면 목사님께서는 저녁예배때 감사한 마음으로 광고를 하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은혜로우니까 성도들 생각에는 목사님이 광고만 하면 언제나 다 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장로님들조차도 목사님이 광고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어느 날 관리부장을 맡고 계신 장로님이 그러더래요. ‘목사님 오늘은 제가 광고할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더니 관리부장 장로님이 ‘오늘 무엇이 필요한데 봉헌하실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창하게 광고를 했어요. 그런데 일 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요.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목사님을 찾아 왔어요.

‘목사님 참 이상합니다. 목사님께서 광고하면 척척 다 되던데.... 제가 광고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 자원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지요?‘ 그 때 목사님께서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그 광고 하시기 전에 얼마나 기도 하셨나요? " 아니 광고하는데도 기도하고 합니까? ‘장로님, 목사가 광고하면 척척 이루어지니까 그냥 광고만 하면 되는 줄 아셨지요? 그 광고 하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도와 준비가 필요한 줄 아십니까?"

그제서야 장로님은 깨달았습니다. 목사님께서 광고 한 마디 하실 때에도 얼마나 기도로 준비하시는지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감동된 성도들이 자원하며 응답하는 줄로 믿습니다. 영은 영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쓸 데가 없어서 그렇게 자원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이 그들을 헌신의 자리로 인도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벳세메스로 가는 이 두 마리의 암소는 눈믈을 흘리면서 갑니다. 송아지가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인지상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미소는 울면서도 대로를 향해 벳세메스로 간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입니다. 눈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희생이요 섬김인줄로 믿습니다. 내가 온전히 사명 감당을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주일날은 11시, 12시까지 늘어지게 자는 날인데, 오히려 성도들은 더 바쁘지요. 아침 식사하기도 바쁘기에 설거지는 엄두도 못내고 교회로 와야합니다. 자연히 남편 쳐다보면서 미안한 마음 가지기 마련인데, 그럴 때 남편이 ‘여보 걱정하지마. 설거지는 내가 알아서 할 께.당신은 늦지말고 교회학교일이나 챙겨....’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명이 쉽지는 않지만 그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순간 순간 행복은 넘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꼭 실천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14절을 보겠습니다. 수레가 벳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도착을 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 이스라엘의 도시 벳세메스로 7개월만에 돌아왔습니다. 제사장들과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법궤를 인계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일은 수레를 부수어 번제단의 쏘시게로 삼았습니다. 수레를 끌었던 두 마리의 소를 번제물로 삼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의 체면과 사명을 회복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늘 교회학교 교사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릴 때 부터 감사하는 생활, 십일조하는 생활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돈을 받지만 거기서도 십일조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만원을 받으면 천원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다음에 축복받아서 큰 사업을 하여 천만원을 벌어도 십일조를 온전히 할 것 아닙니까? 문제는 어릴 때 그런 훈련이 안 되니까 어른이 되어가지고 돈 좀 벌었어도 온전한 십일조 드리기가 힘들어 벌벌 떨지 않습니까?

그러나 십일조 헌금보다 더 귀한 헌금이 있습니다. 감사헌금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오히려 감사헌금을 더 가볍게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헌금은 헌금 중 최고의 헌금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이름이 매주일 감사헌금의 명단에서 빠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장로님의 이름, 권사님의 이름, 집사님의 이름이 매주일 감사헌금 명단에서 빠져서는 않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눈물의 벳세메스길은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우리에게 결론으로 말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실패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거예요. 과거 예수 믿으면 무조건 형통하다고 하여 교인들을 많이 모았던 교단이 있었습니다만 혹 우리 성도들 중에 그런 생각과 기대로 계신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스 브레이크'되어야 합니다. 아이스는 얼음입니다. 브레이크는 깨뜨린다라는 뜻입니다. 얼음같이 딱딱하게 고착된 우리의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무조건 형통한다는 잘못된 편견과 오만을 아이스 브레이크 해야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만 가지고 오면 형통하리라고 했던 잘못된 형상을 스스로 깨뜨리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아이스 브레이크 하신 것입니다. 법궤를 가지고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법궤를 가지고 온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은 당신의 백성일지라도 제한 받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무슨 법궤라는 상자 안에 갇혀있는 분입니까? 그래서 성전 안, 지성소에 모셔놓고서 1년에 몇 차례 필요할 때마다 면회하고 가는 것입니까? 혹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일주일에 한번씩 하나님을 면회하는 심정으로 오신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속에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시지, 우리가 이용할만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여러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브시게 하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예배에 실패하지 않는 영적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마음대로 이용하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금 진정한 예배자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눈물과 희생이 없이는 사명의 길을 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울면서 벳세메스 대로로 나아갔던 암소와 같이 우리 평안의 사명자들에게도 이길을 기꺼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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