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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아 들어라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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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지난 주간 교회의 배려와 성도님들의 기도 가운데 몽골 선교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크 로드 선교회를 지원하고 있고, 제가 그 선교회의 이사로 있는데, 이 선교회는 현재 주로 몽골 선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선교회 이사 12명이 일행이 되어서 그동안 선교 사업에 대한 점검도 하고, 앞으로의 장기 계획도 세우려고 모두 어려운 시간을 맞추어서 선교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을 한번 가졌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동차였습니다. 제법 많은 차가 다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80% 정도가 우리 한국 차라는 사실입니다. 엑셀, 엑센트, 그레이스, 베스타 등등 우리나라 중고차들이 몽골을 누비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에서 제일 큰 상점은 Sky Shopping Center인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이라고 합니다. 안에 있는 상품들은 반 이상이 우리나라 상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 불황이다, 위기다 등등 많은 말들을 하지만, 참 우리 경제가 국제적으로 보면 대단하구나, 몽골이라는 한 나라 경제를 움직이고 있구나 싶어서 자부심이 들기도 하고, 한편 어려운 몽골의 경제 형편이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소득 중 하나는 양을 잡는 광경을 목격한 일입니다. 선교지 교회를 방문하고, 동네 사람들의 잔치용으로 양을 한 마리 잡았는데, 그 장면이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양을 묶지도 않고 그냥 눕혀 놓고 그 가슴팍에 칼을 들이댑니다. 그리고 그 찢어진 가슴 사이로 목동이 주먹을 넣고 그 안의 무언가를 꼭 움켜쥐니 양이 아무 소리 한번 안 지르고 죽는 것입니다.

왜 숨통을 끊어버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이 목을 자른다는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양을 잡을 때, 주인은 양의 가슴을 열고 그 숨통을 눌러 숨을 못 쉬게 하여 죽게 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고통이 적고, 또 평생 양과 함께 살아온 목동이 마지막으로 양을 사랑하는 배려로 양을 잡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양이 죽는 모습을 보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참 닭 잡는 것보다 조용하구만.” 닭은 살려고 푸드득거리기라도 합니다. 그러나 양은 한번도 반항을 하지 않고, 그저 잠간 부르르 떨더니 그만 고개를 떨굽니다. 주인이 먹이를 주면 맛있게 먹고, 초장으로 이끌면 따르고, 칼을 들이밀면 그대로 순종하며 한마디 비명도 없이, 한 번의 저항도 없이 죽습니다.

이 양의 모습을 보면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한 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의 길이라도 묵묵히 걸어가는 그 예수님의 순종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양이 죽는 모습을 바라보니, 참으로 받은바 은혜가 컸습니다.

또 양은 평생 풀만 바라보며 살지만, 죽을 때는 하늘을 바라보고 죽는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눕혀놓고 잡으니 이제 죽을 때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도 그대로 뜨고 죽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은 거룩하기까지도 했습니다. 

일정 중에 특별한 기회가 주어져서 민속 예술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두금(馬頭琴)이란 민속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흐미라는 독특한 노래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말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 같기도 하고, 저는 드넓은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교감하는 노래 같기도 했습니다. 마치 “너희가 이 몽골의 바람소리를 아느냐?” 훈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몽골 초원은 사진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것처럼 드넓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었습니다. 아, 이런 자연 풍광이 저 징기스칸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몽골제국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참 살기 힘들고 어려운 약소국일 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유목 생활이 주 생활이고, 내세울만한 특별한 생산품이 없습니다. 게다가 물이 귀해서 사는 모습이 더욱 꾀죄죄하고 초라했습니다. 하루는 게르라는, 그들의 전통 천막집에서 잠을 잤는데, 말 그대로 한 모금의 물로 양치질하고, 두 모금의 물로 세수를 했습니다.

거러더크라는 지역에 우리 선교회에서 1999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십자가를 달아도 무방합니다. 현재 17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13명이 7월에 세례를 받고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마당 앞에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 올렸습니다. 이 우물 공사는 한 800만원 들였다고 합니다. 이 물을 길어가기 위해 커러더크 주민들이 교회 마당을 밟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물을 사용하는 공동 세탁장과 목욕 시설을 마당 한 쪽에 갖추면 명실공히 교회가 이 마을의 중심이, 센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선교 전략을 세우고 지금 우리 실크 로드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참 열심히 복음 전파와 선교 사업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 부부는 이제 몽골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하도 열심히 돌아다녀서 얼굴도 가무잡잡하게 타고, 몽골 사람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참으로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 사역과 더불어 장기적인 선교 계획 중 하나는, 어려운 몽골의 경제 상황을 돕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으며, 그래서 지속적인 농업 지도자를 양성하려고 합니다. 현재 시범 농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업 전문가를 모시고, 몽골의 유망한 젊은이들을 농업 지도자로 양성하며, 이들을 합숙 훈련시키면서 복음을 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르항이라는 몽골 제2의 도시에 대학을 인수해 운영할 계획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매월 300만원이면 비록 크지는 않지만, 앞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전에 우리 한국에 선교사들이 대학을 세워 그 지도력으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듯이, 이렇게 몽골 사회를 움직여 나갈 큰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실크 로드 선교회는 감당코자 합니다.

이 일에 우리 평화교회 성도님들도 동참하고 계십니다. 작은 금액이지만 여러 성도님들이 내 주시는 선교 헌금의 일부가 이 실크 로드 선교회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에 특별히 한국 교회의 손길이 필요한 다른 나라의 선교 현장을 위해서, 참으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을 위해 꼭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이번 선교 현장 방문 일정 중에 강하게 가슴 속에 와 닿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행 일정 내내 이 문제를 안고 씨름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몽골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연 풍광은 사실 이스라엘과 몽골이 신기하게도 비슷했습니다. 몽골도 구석구석에 생명이 살 수 없는 거친 광야가 있고, 이스라엘 남부 광야가 그러했습니다. 몽골의 초원지대는 드넓었지만, 축소하자면 이스라엘 중부 산악지대와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요단강 줄기를 따라 숲이 무성하며 비옥한 지대가 조성된 것처럼, 몽골에는 톨줄이란 강줄기를 따라 제법 아름다운 숲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자연 풍광의 유사함과는 달리, 사람이 남긴 역사의 발자취는 정 반대입니다. 지금 몽골에서 거의 신격화되고 있는 징기스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세웠습니다. 동으로는 우리 고려를 점령하고,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진출한 위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한 때의 짧은 역사일 뿐이요, 오늘날 몽골 국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으며, 세계 인류 역사에 특별히 공헌한 바도 없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지구 한쪽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만, 오늘날 세계 인구의 1/3 이상에게 종교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버티고 있습니다. 한때 나라도 잃고 수 천 년 떠돌이로 살던 민족이지만, 오늘날 그들은 종교적으로, 사상적으로, 세계 경제적으로 참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몽골 국립 역사박물관을 방문한 후에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박물관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었고, 내부에 있는 역사 유물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습니다. 계속 초원을 따라 떠돌이로 살아야 하는 유목민족이라 문화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후손들에게 남겨 줄 유산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세우고도 오늘날 아무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인류 역사상 보잘 것 없는 작은 민족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역사가 있었고, 교육이 있었고,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특별히 쉐마라고 불리워지는 말씀입니다. 쉐마란 단어는 들으라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하다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쉐마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요단강 모압평야 동쪽에서 마지막으로 요단 강을 건너기 직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설교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거든 너희들이 잘나서 여기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택하셔서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 신앙만은 잊지 말아라”라는 설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신앙을 반드시 후손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은 신앙과 교육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신앙을 자기 후손에게 가르치는 교육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고 그들의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이 쉐마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대문 밖이나 문설주 위에 이 성경구절을 써서 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예 새겨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나갈 때나 들어올 때에 그 성경구절을 한번씩 읽습니다. 읽을 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가 잎을 맞춥니다. 그런 예식을 거치고 나서야 집에 들어옵니다.

또 그들은 테필린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가죽박스를 만들어서 그 박스에 이 쉐마를 써서 넣습니다. 그리고 손목과 이마에 그 박스를 묶고 다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내 몸에 붙어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주관하시며, 우리 역사를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들어야 합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듣지 못하는 민족은 결국 망하고 맙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신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하시는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듣되,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이란 히브리어로 우리 인간 지성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즉 내 지식, 지혜, 재능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성품이란 감성과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즐거워함은 하나님 때문이요,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하나님 때문이니, 우리 인격 전부를 다 기울이고 우리 감정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또 힘이란 체력을 말합니다. 내 육체의 힘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쏟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 생활 전부를 기울여서, 사람의 구성 요소인 지정의 그 모두를 기울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교육 이념이요 철학이며, 그 실천이 곧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이 말씀을 네 마음에 새기고.” 그리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즉 사랑하라, 새기라, 가르치라, 이 세 가지가 기본입니다. 여기에 교육이 있고, 역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 역사가 있고, 내일이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그렇고, 민족의 미래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몽골 민족에게는 그들의 글이 없습니다. 지금 러시아 글을 그대로 빌려와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온 세상을 제패했던 민족이 그렇게 허망한 약소  국가가 되고 말았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부지런히 가르쳐 오늘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은 제사장 민족입니다. 지금 통계에 의하면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는 우리나라입니다. 인구밀도로 보면 우리가 훨씬 더 많습니다. 21세기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민족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들으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에 새겨라,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명려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이제 우리 민족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이웃의 그리스도를 모르는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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