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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왕상 8: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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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하시모토 목사 (할렐루야교회)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경애하는 할렐루야 교회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고베 루터신학교 학생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자매들 간의 교제의 나눔들, 한국교회에서 섬기고 있는 여러 분들의 아름다운 섬기는 모습들, 그리고 기도에 열심인 신앙의 모습들을 배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할렐루야교회의 따뜻한 환영과 그리고 일본어예배를 섬기는 미와노부오 목사님과 일본어부의 따뜻한 호의로 지난 4일 동안 저희들은 매우 즐겁고 유익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참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한국어를 못 하지만 한국말을 들어보면 일본말과 굉장히 가깝구나 하는 인상과 느낌을 받습니다. 어제는 저희들이 민속촌을 견학했는데, 거기서 저는 ‘일본문화가 한국 문화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 양국간의 역사를 보면 우리 일본국민이 한국국민에게 끼쳤던 많은 고통에 대해서 큰 죄책감과 아쉬운 마음을 갖습니다.

저희들은 신학생이고, 세계 2차대전 때는 대부분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이 일본이라는 땅에서 생명을 받아 일본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깊은 유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국민 여러분들의 넓은 마음과, 한국에 있는 많은 크리스찬들의 따뜻한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렇게 제가 설교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받게 된데 대해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는 김상복 목사님과는 오랜 친우로서 ATA에서 동역해 왔는데, 김 목사님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저를 맞아 주시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불행한 과거 역사는 한국국민에게만 불행했던 역사가 아니라 많은 일본사람에게도 똑같은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특별히 할렐루야 교회 이사례 권사님께서 종종 일본을 방문하셔서 몸과 간증으로 일본사람을 향한 용서와 사죄의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의 깊음과 크기를 저희들은 느끼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저는 다른 졸업생들을 데리고 할렐루야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때는 대성전이 아직 공사 중이었는데, 올해 와서 보니 많은 진척이 있어 곧 준공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교회 여러분들의 희생과 노력과 섬김으로 이 교회를 완성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보고 저는 큰 감명과 감동을 받습니다. 주 안에서 여러분의 헌신과 사랑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설교자로 선 것을 큰 영광과 감동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일본 교회는 숫자도 아주 적고 교인 수도 적습니다. 보통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30-40명 정도이며, 100명이 모이면 대형교회인데 별로 없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서 아름다운 찬양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천국에서 드릴 예배를 지금 드리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이 예배에 참석한 것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느끼며 영광으로 여깁니다. 내년에도 여러분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한 번 방문하기를 원합니다. 그 때는 여기가 아니라 대성전에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될 텐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축복하기를 간절히 기 원합니다.

저는 신학교 교장이며 또한 작은 교회의 협동목사로도 사역하고 있습니다. 대략 예배참석수가 20명 안팎이며, 예배당도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이런 기도를 드림으로 교회 예배를 시작합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절규할 때 제 맘속은 성령의 큰 감동이 흐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작은 예배 작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은 큰 기적입니다. 저는 보통 느낌으로는 이 느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지극히 작은 곳에도 미천한 곳에도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이 성경 말씀은 그러한 놀라운 경외감이 담겨져 있습니다. 솔로몬이 살던 당시의 궁전은 아주 화려하고 멋있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이 거하실 하나님의 성전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에게로부터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기를 원하는 그의 간구는 사실 그의 아비 다윗이 하나님에게 간구했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가 네 손이 아닌 네 옆구리에서 날 네 후손에게 하나님의 전의 건축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후계자 문제가 정리가 된 이후에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큰 지혜의 인물이 되었으며, 나라 전체가 평화와 안정을 얻을 때 하나님의 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것은 연약한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심과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많은 백성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은 당시에 엄청난 궁전과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권좌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솔로몬을 이르기를 지극히 큰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고귀함과 부귀와 영광을 누렸던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권자요, 하나님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이시요, 하나님만이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서 모든 백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만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기도할 때에 그런 마음을 먼저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힘과 능력이야말로 솔로몬이 가지고 있는 지혜요, 힘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힘도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셔서 우리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힘이며 권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에 붙잡혀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솔로몬이 드렸던 그의 기도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과 그리고 그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겸손함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권력을 잡게 되면, 힘을 얻게 되면, 재력을 많이 모으게 되면 제 스스로가 아주 위대한 사람이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권좌 위에 올랐던 솔로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와 닿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인가 하는 것을 그가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23절).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한 신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영원한 하나님인 것을 그는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2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이 하늘, 그 위에 하늘위의 셋째 하늘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물며 제가 건축한 이 땅에의 재료로 만든 이 전에 하나님이 거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인간이 최고의 정성과 최고의 것으로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장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세운 그 성전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표현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이름을 두신다’ 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임재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은 집을 택해서 그 곳에 거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가 알면 알수록 바로 이와 같은 곳에 거하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경외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으로 부르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사 우리를 강하게 하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채우시며 더욱 더 주를 닮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그 아름다움, 우리는 비록 죄인이기는 하지만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들의 어떠한 연약한 모습이라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하는 이 땅에 오시는 그 모습과 형태는 우리에게는 전율이요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서 우리의 현실의 삶 속에 들어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화려한 궁전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목수로서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것들을 체휼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사는 그 곳에 직접 찾아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그 당시 최고의 간악함과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전능하시며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우리 위에 오셔서, 우리를 군림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천한 땅에 오셔서, 우리를 섬기는 그 분 속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영광이, 그 사랑의 영광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우리 인간은 십자가를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하신 그 분의 영광을 낮고 낮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경륜의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깊고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자신의 영광을 자신의 몸을 버리는 것에 드러내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지은 성전에 두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기억할 때에 큰 전율과 경외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그리고 그 성전 안에 계실 것을 솔로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전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리고 이 성경으로부터 자신의 말씀, 생명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말씀과 우리 안에 거하셔서 이 성전을 통하여 우리와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는 이 낮은 곳에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죄사함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열왕기상에 보면 아주 긴 솔로몬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기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는 주제는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질그릇이라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부족한 인간임을 그는 고백했습니다. 도대체 이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랜 동안 이 일에 참석함으로 습관이 되어서 당연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진홍 같은 죄가 하나님 앞에 씻겨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설 수가 없는 질그릇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죄 사함을 선물로 허락하셨습니다. 이 죄 사함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믿는 우리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것을 기뻐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회개시키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사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나에게 돌아와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삶을 영생을 살라고 말씀하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은 심판과 저주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몸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그 사랑에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회개시키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셨던 우리 하나님, 자신을 낮추시며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의해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는 인침을 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이 땅을 살아야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모습을 증거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정말 자신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쉬운 망각의 동물입니다. 형제자매들의 실패와 허물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연약함들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다시 한번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자신의 적이며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용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십자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 십자가의 낮은 곳까지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는 배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지금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힘과 능력으로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기쁨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지금 있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함을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되겠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겸손하게 서로 연약한 것을 용서하면서 이 땅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할렐루야교회’라고 하는 이 아름다운 성전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시고 더욱 더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력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비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주시기를 제 마음으로부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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