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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습관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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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모든 사람은 그 생애의 배후에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습관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행동은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은 인격을 만들어서 결국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습관은 후천적으로 반복해서 행동함으로 고정되는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활화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이끌어가게 됩니다.

습관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관습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나 공동체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전통적으로 지켜 내려오는 규칙, 생활 규범,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회 문화라고 말합니다. 어느 개인이나 사회든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습관이나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습관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나쁜 습관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좋은 습관은 사람을 성공적이며 창의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나라의 미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제사행위는 오랜 관습이 문화전통으로 이어오면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문화적 습관은 민족성을 개발하면서 계속 발전해 갑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습관이 있고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건강에도 좋고, 정신적인 면에도 좋고, 인격을 형성하는데도 좋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건강에도 좋고 생활문화도 성공적으로 이끌어갑니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하는 습관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나쁜 습관은 건강도 망치고 인격도 병들게 합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담배 피우는 습관은 건강도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편식을 한다든지, 술 마시는 것이 습관화 되면 정신 건강, 육체 건강을 해롭게 하고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습관을 보면 자기 자신이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 나쁜 습관이다.’ 가령 자녀들에게 폭언한다든지, 아내에게 성질 낸다든지, 악담 한다든지, 이것이 습관화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격이라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는데 이것은 다 고쳐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격의 표본이신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습관을 거룩한 습관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이 형성되었습니다. 거룩한 습관을 형성해야만 좋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습관이 잘못된 사람들은 믿기는 믿어도 자기에게 큰 복이 안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늦게 오는 것이 습관화 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신사적으로 아주 훌륭한 분인데도 예배 시간에 꼭 늦게 옵니다. 그것은 늦게 오는 것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조는 것이 습관화 된 분도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예배 빠지는 것이 습관화 된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좋은 습관을 배워야 됩니다.

습관은 헬라어로 ‘e[qo"’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규례, 율법적인 전통을 의미합니다. 습관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이끌어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문화는 전부 습관 문화입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거룩한 습관 때문입니다. 거룩한 신앙생활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민족을 창출해 낸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린시절의 습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41-42절)
여기 전례라는 말도 ‘e[qo"’ 습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께서 열두살 될 때 절기의 습관을 좇아 예루살렘에 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관습적으로 절기에 참여하는 것을 따라 예수님도 절기를 지키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드리는 습관입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 보면 ‘규례’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여기 ‘규례’라는 말도 ‘e[qo"’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에 따라서 안식일 날 회당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습관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읽은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여기 ‘전례대로’라는 말도 헬라어 ‘e[qo"’를 썼습니다. 예수님을 습관을 따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뭘 가르쳤느냐?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여시면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전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하나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39절)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소년시절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꾸준히 회당에 가셨고 커서도 그 습관을 좇아 회당에 가셨습니다. 이것은 부모가 예수님이 어린시절부터 본으로 보여준 모습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회 가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주어야 됩니다. 이것은 아이의 장례를 위한 비밀입니다. 교회 가는 아이는 마음을 성결하게 합니다. 인격을 바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받기 때문에 비전을 갖습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인물들은 거의가 다 크리스챤들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나라가 바꾸어졌습니다. 사회가 개혁되었습니다. 미개한 나라가 문명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 우상의 나라, 미개한 나라, 폐쇄된 나라, 가난한 나라였던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면서부터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를 미국으로 유학시켜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 거룩한 습관을 심어주어야 됩니다. 거룩한 습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공부 한 두 시간 했다고 그 아이의 머리가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심어주어야 됩니다. 믿음을 심어주면 세계화의 비전을 갖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을 향해서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거룩한 습관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시절부터 가졌던 습관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입었고,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성취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의 삶의 목적을 성취한 기도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밤을 새워가며 철야기도도 하셨고, 새벽기도도 하셨고, 산에 가서 산기도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기도는 겟세마네 기도였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산에 위치한 한 지형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면 겟세마네에 예수님 당시에 심어졌던 감람나무가 있고 거기에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바위터가 있습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그만치 이 기도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 없이는 십자가도 없습니다. 겟세마네 기도가 없이는 승리도 없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가 없이는 예수님이 제자를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하늘이 열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에 가셔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부탁은 ‘제발 너희가 나와 함께 있어다오.’였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시간은 제자들과 함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고민이 크셨던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 그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세 번은 숫자적 세 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의미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졌습니다.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이 기도는 천사가 돕는 기도였습니다. 천사가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도였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그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거의가 다 내 요구를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주여, 이것을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것을 도와주시옵소서.” 전부 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기도는 나의 뜻은 처음부터 포기되고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소원기도나 작정기도 할 수 있습니다. 금식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도는 우리의 문제를 놓고 하는 기도입니다. “주여,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 어떤 때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다 자기 요구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의 기도는 아예 자기의 모든 것을 떠나서 “주의 뜻을 이루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고민 때문에 기도합니다. 사업의 고민, 건강의 고민, 자녀 고민, 직장의 고민 많은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겟세마네의 고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고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민입니다.
예배 가운데 최고의 예배가 겟세마네의 예배입니다. 겟세마네는 ‘기름틀’이라는 말입니다. 당시에 감람열매로 기름을 짜던 틀이 동산 밑에 있었습니다. 감람산에서 감람유를 짜는 곳이 겟세마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 사역이 겟세마네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기도

겟세마네 기도는 자기를 비우는 기도입니다. 승리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동안 많은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기적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에서는 기적도 사라지고, 권능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모든 권능을 다 포기합니다. 자기를 비웁니다. 일반 기도는 문제 해결 기도라고 말한다면 겟세마네의 기도는 자기를 비우고 자기와 싸우는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공은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성공은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패배하고도 인격이 높아지는 사람이 있고 성공하고도 인격이 낮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비우기 위해서 산을 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갔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산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갔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산입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 갔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산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하기 위해서 감람산에 갔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산입니다.

자기 속에 숨어있는 인간성,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짜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뭡니까?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데도 자기와 싸워 이겨야 됩니다. 친구가 “오늘 날씨도 화창한데 우리 청계산으로 놀러 가지” 그러면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가 골프 치러 가자고 할 때 “안된다. 나 교회 가야 한다.” 하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절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김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권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로마와 싸우지않았습니다. 빌라도와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자기와 싸웠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자기와 싸워 이기는 삶의 극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를 이기는 것은 신앙인의 승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이 나에게 사기쳤다고 나도 사기칠 수는 없습니다. 남이 나에게 악담했다고 나도 악담할 수 없습니다. 남이 나를 모함했다고 해서 나도 모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자기를 이겨야 됩니다. 자기를 이기는 비밀이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살찌는 것이 큰 고민입니다. 그래서 살을 빼려고 운동을 합니다. 육체의 땀을 빼고 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내 속에서 끊임없이 짜내야 됩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부정한 것들을 짜내는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짜내고, 예배를 드리면서 짜내야 됩니다.

드리는 기도

겟세마네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는 받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기도는 주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왔습니다. 60만 장정과 어린 아이, 여자까지 합쳐서 2백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몇 명입니까? 몇 명 못갔습니다. 몸은 애굽을 떠났지만 마음이 애굽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몸은 홍해를 건넜지만 마음이 애굽에 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광야에서 헤매다가 죽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나의 모든 과거가 청산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헌금할 때도 겟세마네 헌금을 드려야 됩니다. 겟세마네 헌금은 자기를 짜야 나오지 짜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일생동안 주님을 위해서 한번도 안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겟세마네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땀도, 눈물도, 피도 다 드립니다. 그리고 인류를 살려냅니다. 다른 기도는 아무리 해도 살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만 살림이 일어납니다. 가정도 살고, 사회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우리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겟세마네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자기를 비울 수 있고, 자기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를 죽여서 나도 살고, 가정도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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