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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의 축복 (요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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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규목사 (분당 샛별교회)

<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도 없습니다 >

얼마 전 증권회사 간부가 자살하면서 유서를 남겼습니다. “얘들아! 사랑한다! 아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해서 살아왔단다. 누구보다 빨리 승진했고, 누구보다 빨리 돈을 벌었단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 아빠는 너무나 허전하다. 살아야 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먼저 간다. 너희는 아빠처럼 살지 말아라.”

인생에서 빨리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 없이 빨리 얻은 것은 그만큼 빨리 사라집니다. 살면서 ‘대박’을 노리고 ‘도박’을 하면 대개 ‘쪽박’을 찹니다. 한 청년이 신촌에서 과일빙수 가게를 열었습니다. 엄청나게 손님이 찾았습니다. 전국에 30개 지점을 내면서 대박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선배와 강원랜드 갔다가 도박에 빠졌습니다. 그 도박 빚을 갚으러 사기를 쳤다가 쪽박을 찬 소식을 우리는 얼마 전에 들어 알고 있습니다.

때로 인생이 잘 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예수 안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고 잘 나갈 때는 큰 소리를 칩니다. “나는 늙어서 절대 자식 의지하지 않겠다.” 그러나 늙어서 주어지는 고독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르니까 그런 얘기를 합니다. 늙으면 그때는 자식이 한번 찾아와 주는 것, 한번 전화해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곧 그런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누가 자기 인생을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욥기를 통해서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돈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돈은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둘째, “배우자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혼한 부부들도 한때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셋째, “자식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자식이 우리보다 먼저 갈 수 있습니다. 넷째, “친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참된 친구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다섯째, “건강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대개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이 먼저 갑니다. 우리는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가끔 건강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도 1년에 몇 번은 점검하는데 더 중요한 몸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나 한 사람은 주님의 사명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력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처럼 소중한 생명을 귀찮다는 것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욥기를 통해 배우는 결론은 우리가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없으면 시체인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얘들아”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이디온’이라고 하는데, ‘철없는 아이들’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철없는 행동은 ‘예수님 없이 고기를 잡으려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위로가 있고, 응답이 있고, 문제해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신비한 평화가 임하고, 치유의 역사와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가 노예로 끌려갈 때 신비한 한 분이 물을 주어 살게 됩니다. 결국 노예가 된 벤허는 전쟁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로마 호민관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양아들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형 당하러 끌려가는 한 분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분은 자기에게 물을 주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벤허는 예수님에게 친 듯이 달려가 물을 드렸지만 로마 병정이 채찍으로 치며 물을 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엄청난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는 순간 로마 병정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고, 마음에 구원의 기쁨과 평화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다 나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자 그의 영혼과 그의 가정이 온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벤허 영화에서 십자가 장면을 찍을 때 영화감독은 수천 명의 엑스트라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잘 찍어야 하니까 다른 모든 일은 그치고 10분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배우들은 감독이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10분간 십자가를 바라보았는데 수천 명의 배우들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주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하면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마음에 없으면 인생의 소중한 고기들도 얻을 수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

주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없습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함축적인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그 말씀을 “왼편만 고집하지 말고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는 말씀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전환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생각의 전환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의인이 아니구나! 나는 정말 회개할 것이 많구나! 나는 모르는 것이 참 많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장래 목표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가 바로 진정한 사람이 되는 때입니다.

그 외에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눠주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만사에 형통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 중심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기독교 TV에서 레위기 13장을 강해하면서 문둥병자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방송을 들은 한센씨병 환자들이 ‘한센씨병’이라는 말 대신에 ‘문둥병’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그 목사님 교회를 때려 부수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목사님이 시각 장애인 목사님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성경을 강해하다가 소경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세미나가 끝나고 한 시각 장애인 목사님의 사모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소경이라는 말을 쓰면 그분들이 너무 마음 아파해요. 시각 장애인이라고 하셔야 해요.” 우리가 무심코 한 말이 상대에게 그렇게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 생일 날, 남편이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해줄까?” 아내가 말합니다. “선물은 필요 없고, 두 시간 동안 내 얘기를 들어만 주는 선물을 주세요.” 그래도 선물을 얘기해보라고 했지만 아내는 자기 얘기를 기쁘게 마음을 열고 들어만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하자 아내가 처음 둘이 만날 때부터 남편에게 속상했던 일과 고마웠던 일을 죽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남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여보! 그때 내가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그렇게 며칠이나 잠을 못 잤는지 몰랐소! 앞으로는 조심할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이 그렇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말 한 마디에 상처받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늠름한 모습입니까?

누가 시기하는 말을 해도 넉넉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못났다면 시기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화가 나지만 찬찬히 겸손하게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처럼 잘못된 말도 잘 소화하면 회개의 기회, 성숙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과 평화와 만족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 순종의 축복 >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 말씀을 보면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순종하면 능력이 흘러나오고, 순종하지 않으면 능력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사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에서 오른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는데, 그 장면에서도 깊은 곳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왼편으로 가라고 하면 왼편으로 가고, 주님께서 얕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얕은 곳으로 가는 순종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만큼 축복하시고, 순종하는 자녀를 더 사랑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편애는 나쁜 것이지만 순종하는 자녀가 더 사랑받고, 반항하는 자녀가 덜 사랑받는 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12제자 중에서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축복하실 것입니다.

순종은 쉽게 말하면 ‘듣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순종은 ‘행하는 것’입니다. 역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듣고 끝나는 사람’보다 ‘듣고 행하는 사람’을 더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낫 놓고 ㄱ 자도 모르고, 지게 놓고 A 자도 모르고, 공을 놓고 O 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지만 다 안다고 더 배우려고 하지 않고, 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인간은 똑똑한 것 같지만 참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어떤 분은 건강하겠다고 보약을 먹었는데, 더 쇠약해져서 종합 진찰을 해보니까 그 보약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 간이 녹아버렸습니다. 결국 보약 먹고 2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참 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병균 하나로 죽을 수 있고, 아무리 강건한 사람도 눈짓 하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강해보이는 사람도 때로는 얼마나 한없이 약해지는지 모릅니다. 나폴레옹도 집에 들어오면 고독함과 외로움 때문에 아내 앞에서 종종 무릎 꿇고 울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 중에서 누가 가장 순종하지 않습니까? 바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그 음성을 제자들도 들었지만 디베랴 바닷가에 있는 큰 물고기들도 듣고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 오른편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물을 내리자 그 큰 물고기들은 “주님! 우리는 죽도록 충성할 겁니다.”라고 외치듯이 너도나도 그물 속으로 먼저 들어가 주님의 말씀이 부도 맞지 않도록 순종했습니다.

반면에 사람은 생명을 요구하는 말씀도 아닌 순종하기 쉬운 말씀도 얼마나 많이 부도내는지 모릅니다. 그처럼 인간은 자유의지라는 가장 복된 선물 때문에 가장 순종도 못하지만 그런 중에서 우리가 힘써 주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우리에게는 가장 복된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조치와 섭리에 순종하면 우리의 연약함은 오히려 강함이 되고, 우리의 약점은 장점이 되고, 우리의 실패는 결국 성공으로 가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끔직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가 진정 복된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순종하는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교회에서도 순종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가 복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녀에게 꼭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무엇보다 순종을 하다 보면 ‘순종의 자질’을 얻게 됩니다. 그 ‘순종의 자질’은 험한 세상에서 시험을 물리치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승리의 나무로 올라가는 가장 위대한 자질입니다. 또한 자녀들을 순종할 때 부모가 가장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옛말에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숙종이 밤에 신하 한 명과 함께 민정시찰을 하는데 골목의 한 오두막에서 노인의 울음소리와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숙종이 문틈으로 보니까 한 노인이 밥상 앞에서 울고 있었고, 아들인 듯한 젊은이는 장구 치며 노래 부르고, 며느리인 듯한 여인은 중처럼 머리를 깎은 채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기이해서 사연을 물어보니 그 날이 노인의 생일이라 가난하게 사는 며느리가 효도하려고 머리를 잘라 팔아서 아버지의 생일상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별로 해드릴 것이 없었던 아들 내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아들은 장구 치며 노래를 불렀고, 며느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그 효성에 감격해 노인이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숙종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일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인데 당신도 나와서 과거를 쳐보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과거 시험장에 가보니까 그때 출제된 시험문제가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중은 춤추고 노인은 탄식한다)’이란 문제였습니다. 다른 선비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그 아들은 감동적인 글을 써서 장원급제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것처럼 축복은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때로 고난이 와도 변함없이 순종하면 그 고난은 숱한 유익과 열매를 남기는 내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고난이 될 것입니다.

< 기독교는 풍성한 삶도 약속합니다 >

본문 6절에서 제자들의 고기가 많이 잡게 된 장면은 우리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주님은 영생도 주시지만 삶의 풍성함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 앞에 놓인 큰 사명 앞에서 고기 많이 잡은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도 주님은 먼저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살게 하면서 사명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풍성한 삶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큰 꿈을 가지십시오. 될 수 있는 한 그물을 크게 짜십시오. 기독교는 영생도 약속하지만 풍성한 삶도 약속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대학 때 불교에 심취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명한 효봉스님이 입적했다고 합니다. 효봉스님은 원래 판사였는데 어느 날 재판에서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 후에 진범이 붙잡혔습니다. 그 뒤 참회의 나날을 보내다가 금강산에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된 후, 열심히 불도에 정진하여 한국 불교계에 큰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효봉스님이 입적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無)’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많은 친구들은 모두 감동했습니다. “확실히 큰 스님이야. 스님은 정말 달라. 인생은 ‘무’지 뭐...” 그런데 김진홍 목사님은 그 ‘무’란 말에 오히려 회의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도를 닦았으면 마지막에 무엇인가를 찾아서 ‘유(有)!’라고 해야지 ‘무(無)!’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무’의 종교가 아니라 ‘유’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잘 믿으면 ‘보다 풍성한 삶’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장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근거 없이 무조건 일본보다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일본에게 배울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건전한 종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문제가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에 저는 우리나라가 더 장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눔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 >

우리는 기독교의 풍성함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눔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교정신’으로 무장하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선교에 동참할 수 있을까를 항상 신앙생활의 최대 관심사로 두어야 합니다.

저의 목회에서 가장 큰 비전은 한국에 ‘C&MA 선교센터’를 짓고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찬송가 중에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이외에 5개의 찬송가를 쓴 A.B. Simpson 목사님이 창설한 C&MA(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기독교 선교연맹)는 역사가 120년이 되고 현재 파송된 선교사만 천 명이 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선교 단체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선교에 대한 엄청난 노하우와 정보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꽤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지만 대부분 선교 열정만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교현장에서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도 C&MA와 같은 조직적인 선교훈련과 선교시스템이 필요합니다. ‘C&MA 선교센터’는 그 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선교센터의 꿈을 언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씩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그 비전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요삼일육선교회(John316 Mission)의 말씀선교 사역을 처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어떤 한분은 지금까지 3년이 넘도록 매달 지극히 작은 금액이지만 ‘선교센터 건축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정성이 믿음의 오병이어가 되어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생겨 혼자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분당 넘어 오포에 있는 작은 언덕에 올라가서 “하나님! 선교센터의 비전을 기억해주소서!”라고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부동산을 하는 한 집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분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 형편으로 그곳에 선교센터를 짓는다는 것은 산을 옮기는 믿음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교회로 돌아오면서 스가랴 4장 6-7절 말씀을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함을 이웃과 나누려는 비전만 잃지 않는다면 ‘큰 산’은 반드시 평지가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나눔을 위해 부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하나의 발전소, 즉 탁한 공기를 마시고 산소를 내주는 산소발전소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이기심의 공기가 넘치는 환경에서 이기심의 공기를 마시고 나눔의 산소를 내주는 산소발전소가 되기를 힘쓴다면 언젠가 우리의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은혜가 우리는 살리고,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모든 것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로 작정한다면 지금부터 변화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첫째 하나님 중심적으로 순종하며 살고, 둘째 남을 생각하며 살고, 셋째 자신을 격려하며 살 때, 우리의 삶에는 풍성한 행복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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