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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우리에게 기적을 (요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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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대근 목사 (송악교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하나님의 기적을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하나님의 기적이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제 아내의 고모님께서 급성 척추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진단을 받은 지 불과 3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고모님께서 투병중일 때, 저희 부부가 병실에 들러서 정말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의사의 손과 의학의 방법이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 상황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이미 다 이루어졌는지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저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경험한 바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가 왜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지를 생각하면서 실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참되신 분이라고 고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기적이 없느냐고 따져 묻기라도 하면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도 대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워서 민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저 옛 사람들이 꾸며낸 신화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해석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신화에 불과하다면, 그리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능력이 인간들에 의해서 부풀려진 것이라면, 우리가 그를 구세주로 믿고 경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가 기적의 역사이듯이, 기독교의 역사 또한 기적의 역사였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아 위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나라와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축복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그 어떤 불가능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기적이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원리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불가능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절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이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기적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큰 무리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때마침 유월절이 가까워오고 있어서 예루살렘으로 예배드리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남자만 오천 명이었으니, 여인과 어린아이를 합치면 약 2만 여명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이들이 모두 굶주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의 기사에 보면 이들이 예수님을 따른 지 3일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치유와 고침을 받기 위해서 3일간이나 먹지 못하고 따르는 무리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먹일 방법이 없는지 제자인 빌립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 즉시 수학적인 계산에 착수했습니다. “당장 이 무리를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께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른 제자 안드레가 머뭇거리며 예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군중들을 자리에 앉게 한 후에 보리떡과 물고기를 들고 축사하신 후에 나누어주셨는데, 저희가 원하는 만큼을 먹고도 넉넉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해 요한이 소개한 네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기적의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헌신입니다.

8절과 9절을 읽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님은 안드레가 발견한 한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오병이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떡과 물고기를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기적의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헌신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작지만 자신의 귀한 것을 내어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예수님은 기적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빌립과 안드레의 모습을 통해 발견되는 참된 헌신의 자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셔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떡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즉시 계산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만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은 필요할 것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예수님께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빌립은 수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이미 불가능이라는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좌절하는 자리는 바로 수학적 계산을 앞세우는 자리입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계산하고 많이 연구하면 방법이 나올 것 같지만, 오히려 방법이 막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빌립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빌립이 계산하는 동안 안드레는 열심히 기적의 재료가 될 만한 것을 찾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기적은 일어난다는 믿음으로 찾았습니다. 그 결과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던 어린아이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그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오병이어는 작지만,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을 예수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큰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자세가 기적을 일으킨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과소평가하는데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소유, 건강, 달란트, 지식..., 이 모든 것을 다 드려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작고 초라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숫자를 가지고 따지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광대하신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믿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안드레와 그가 찾은 어린 아이의 작은 헌신이 기적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헌신은 기회입니다. 기적의 기회입니다. 축복의 기회입니다. 헌신의 열매는 언제나 풍성합니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가루 한줌과 기름을 엘리야를 위해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흉년 중에 굶어죽지 않도록 매일 마다 그의 항아리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헌신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헌신의 기회가 왔을 때, 빌립처럼 계산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최선을 다해서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지만 기적의 재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2. 순종입니다.

10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니라”

모든 기적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앉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떡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명하신대로 사람들을 앉게 하고 예수님에게서 떡과 물고기를 받아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다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손에서 떡을 떼면 또 떡이 생겼습니다. 물고기를 나누어주면 또 생겼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넉넉하게 먹고도 남을 만큼 생겨나고 또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성경에서 기적의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곳에는 반드시 순종이 있었고, 언제나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엘리사는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의 부하에게 “선지자가 그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여도 해야 할 것인데,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어 깨끗하게 하라는 말을 순종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충고를 듣고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문둥병이 사라지고 어린아이 살결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왕하5:1-).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여섯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명령에 아구까지 채우고,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명령에 망신을 당할 각오를 하고 항아리의 물을 떠다 주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종들의 행동을 통해서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요2:1-11).

이처럼 모든 기적의 현장에는 언제나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적의 자리는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순종은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장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이 축복을 선언하시면서 2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즉, 순종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때, 지금도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삶이 기적이 됩니다.

3. 감사입니다.

1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 원대로 주시다”

기적의 세 번째 비결은 감사였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과 물고기를 들고 축사하셨습니다. 축사라는 것은 감사 기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보리떡은 가장 값싼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로 가난한 서민들이 많이 먹는 음식입니다. 부잣집에서는 짐승의 먹이는 사료로 쓰일 만큼 보잘 것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역시 아주 작은 것입니다. 갈릴리바다에서 흔히 잡히는 피라미나 멸치 정도 크기의 물고기인데, 거친 보리떡을 먹을 때, 목에 걸리지 않도록 짠 소금에 절인 밑반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음식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왜 이것밖에 없느냐고, 불평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작고 초라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작고 초라한 오병이어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신 예수님의 손에서 오천 명이 먹고도 넉넉히 남기는 기적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사를 잊지 않은 자의 손에서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감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더 풍성해지고 넉넉해지면 그만큼 감사할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텔런트 김혜자 씨가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지난 11년 동안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생생한 기록들을 남긴 책이 “꽃으로도 대리지 말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 세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살 가치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먹는 것이 두렵고도 감사합니다. 사실 이 민족이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작은 것에 대해서 감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작고 초라한 음식을 보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싼 음식 앞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음에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말 이 나라가 어려웠던 30,40여 년 전에는 밥상을 받으면 영양가 있는 음식이 제대로 없었지만 눈물로 감사를 드린 부모님들 밑에서 자녀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사가 회복되어야 다시 한번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시편 50장 23절에서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의 거친 도시락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처럼, 우리들도 일상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살 때, 하나님의 기적을 매일 맛보며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이 기적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기적을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교육관 건축을 앞두고 빌립처럼 계산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아무리 계산하고 따져 보아도 5,000만원이 생길 것 같지를 않았습니다. 복권을 살 수도 없고, 구걸을 할 수도 없고,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기적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헌신과 순종과 감사의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헌신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제일 먼저 10분의 1을 제가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들고 매일 감사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손에 있는 오병이어를 주님의 손에 드립시다. 주님의 손에 드려진 오병이어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저와 여러분, 우리 송악교회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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