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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별설교] 숨겨진 칠천명을 보라 (왕상 19.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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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목사 

숨겨진 칠천명을 보라 (고별설교)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 권사님이 오셔서 슬퍼하며 목사님 떠나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아쉬어 했습니다. 목사는 다음에 부임할 목사님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목사님이시니 염려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권사님 왈,

“목사님 그거 거짓말이죠?”

“왜요 권사님, 목사가 거짓말 하는 것 봤어요?”

“봤지요, 목사님 전에 계시던 목사님께서 떠나실 때, 똑같은 말을 하셨는데.... 제가 보니까 거짓말이더라구요”(일동 웃음)

다행히 전 전임자가 없습니다(웃음). 그래서 다음에도 전임자 없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웃음).

그런데 인사가 아니고 다음에 오실 이병일 목사님은 제가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주실 분이십니다. 저는 앞으로 치고 나가고 새 일을 벌리고 그런 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일은 그 벌어진 일들을 내실 있게 잘 관리하면서 살찌우는 것입니다. 처음에 일을 벌릴 때보다 별로 낮도 나지 않고 생색도 없는 일이지만 이병일 목사님은 특유의 뚝심과 낙천성으로 모든 것을 알차게 열매 맺도록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에 나오는 “밭”이란 시입니다. 한 농투성이가 자기 며느리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형식의 시입니다.

아가
새아가
강 건너 저 밭을 봐라
저게 저렇게 하찮게 생겼어도
저게 나다
저 밭이 내 평생이니라
저 밭에
내 피와 땀과 눈물과 한숨과
곡식 무성함의 기쁨과 설레임과
내 손톱 발톱이 범벅되어 있느니라

저는 이 농투성이에게는 비록 한 떼기 밭이지만 그 밭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표현하고, 그 한 떼기 밭을 통해 자기 인생의 모든 꿈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면 그 농부는 정말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제 동료목사들이 저를 보고 인사하기를 “김목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용감하게 나갈 수 있는 목회, 목사에게 참 행운이지요. 교우들이 정말 한 마음이 되어 목사를 사랑하고 목사는 교우들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교회-목회자에게 그것 이상의 목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동안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일도 저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지해 주시고 함께 그 길을 달려오신 여러분들에게 정말 마음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아닌 동지로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지극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저 혼자서는 이런 목회를 꿈조차 꾸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영원히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우리교회가 비록 작은 교회이고 숫자로 보아 정말 얼마되지 않는 규모이지만.....

이게 비록 작고 하찮게 생겼어도
바로 이 교회가 나였고
내 삶의 전부였고
이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내 피와 땀과 눈물과 한숨과
새 일을 꿈꾸어가는 기쁨과 설레임과
내 손톱 발톱이 범벅되어 있느니라

저도 그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 교회를 통해 송파, 강동 지역사회를 보고, 나아가서는 민족과 세계를 보고, 그리고 새 인간과 새 세상을 내다보았습니다.

강남향린은 우리 모두의 세상을 보는 창이고, 우리들의 공동의 꿈을 펼치는 그루터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강남향린교회의 더욱 아름다운 완성을 위해 우리가 가진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임무를 가지고 지류로 갈라져 흐르게 되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교계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큰 물결을 이루어 큰 바다를 밀고 가며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엘리아의 이야기 입니다. 엘리아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단신으로 맞서 운명의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성서에 이 갈멜산의 승리만큼 드라마틱한 승리의 장면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후, 새 세상이 오리라고 생각했던 엘리아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왕비인 이세벨은 야훼 예언자들에게 대대적인 보복을 펼치고 혈안이 되어 엘리아까지도 죽이려고 찾아다닙니다. 극적인 승리와 숙청의 결말은 대규모 역 숙청을 낳고 그 마저도 도망가야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밤낮 사십일을 걸어 엘리아가 도착한 곳은 시내산 이었습니다. 시내산은 갈멜산에서 지도상 직선거리로만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고 광야 땅, 끝없는 돌산에 꼬불 꼬불 길을 따라가면 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급히 도망쳐온 엘리아는 맨손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내어 놓는 행군이었습니다. 물 한방울, 그늘 하나 없는 땡 볓 사막길을 40일 주야로 아무런 동행자 없이 걸어서 마침내 시내산에 당도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왜 이렇게 죽기를 무릅쓰고 시내산 행을 감행했을 까요? 시내산이 뭐길래?... 그러나 구약의 역사를 보면 시내산은 메마른 돌산으로 볼 품 없는 산이지만 그럴만한 산이었습니다.

오경의 주요한 전승은 출애굽 전승과 시내산 전승입니다. 출애굽 전승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해방과 민족형성의 원초적 체험으로 자리잡는 이야기들인데 바로 그 출애굽 전승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시내산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호렙산(시내산의 다른 이름)에서 모세는 불붙는 가시덤불의 경험을 하고 하나님께 히브리민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성산에서 출애굽의 웅지가 싹트고 그 출애굽은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다시 시내산에 다달아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으므로 완성됩니다.

또한 시내산은 시내산전승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내산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계약을 맺습니다(출 19장). 그 계약의 내용이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으로 시작하여 레위기를 거쳐 민수기 10장 까지의 광대한 법률전승으로 이어집니다. 이 모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형식으로 주어지는 광범위한 법률자료들 입니다.

오경의 핵심인 두 전승이 모두 시내산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도 목숨을 내걸고 시내산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비상한 결단을 필요로 했습니다. 모든 힘이 소진한 엘리야는 어떤 확신이 필요했고, 모세에게 보여 주셨던 그래서 이 민족을 불러내셨던 그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만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바람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불, 지진, 바람...... 이러한 상징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출 19장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시는 현현의 장면 의 재현입니다.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으시는 장면을 보십시오.

"마침내 셋째날 아침이 되었다. 번개가 치며 천둥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산양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자, 진에 있는 모든 백성이 두려워서 떨었다.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진으로부터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산기슭에 세웠다. 그떄, 시내산에는 주께서 불가운데서 그곳으로 내려오셨으므로, 온통 연기가 자욱했는데,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나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니, 하나님이 음성으로 그에게 대답하셨다(출 19, 16-19)"

엘리아는 모세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내 주시기를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증거들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 지진, 불 그 어느 증거들 가운데도,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그 증거들, 그 표적들은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목숨을 건 순례를 하면서 기대했던 극적이고 장엄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실패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표적을 요구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증거들을 요구합니다. 그런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나서 나의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고 확신을 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엘리아도 그런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과거 시내산에서 계명을 주셨을 때와 같이 그만한 확신을 얻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엘리아는 세미한 소리,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를 들었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엘리아의 마음 깊숙한 곳에 마음에 심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아에게 따지듯이 묻습니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9절)

네가 일해야 할 곳은 네가 도망치듯 버리고 온 바로 그 땅이다. 여기있어 봐야 뭐 새롭고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돌아가라 가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의 왕으로 삼으라'(열상19, 15-16)고 하십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자기 목숨 하나를 건지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엘리아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십니다. 지금 엘리아의 꼬락서니를 보면 도저히 그 일을 이룰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앞에, 끼니를 거르기를 밥먹듯하는 민중들 앞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내 문제도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는 우리의 존재 목적이고 우리의 삶의 목표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게 될 때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헤아려 더하여 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구하는 것은 그 순서가 되 바뀐 것이 많습니다. 제게 이것을 해주시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이런 조건을 달고 협박하듯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엘리아에게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고, 게다가 이웃나라의 왕까지도 새로 세우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아니 하나님, 저는 제 목숨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모든 나라의 왕을 모두 새로 세우는 엄청난 거사를 하라고요?" 엘리아는 반문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그에게 한 가지 숨은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직 내가 바알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 칠천 명을 남겨 놓았다. “가라! 엘리아야”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칠천 명은 상징적 숫자입니다 숫자로 칠천 명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루는 완전 숫자로서 칠천 명입니다. 엘리아는 하나님께 “이제 나만 홀로 남았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10절).”라고 하소연 했었습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할 동지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 엘리아에게 하나님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엘리아야! 너를 도울 칠천 명을 내가 남겨 놓았다. 아직 바알에게 머리 숙이지 않은 칠천 명을 보아라. 엘리아야 이제까지 네가 정당히 행한다면, 네가 하나님 안에 올바르게 하였다면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은 항상 네가 헤아리지 못하는 숨은 칠천 명을 아니 칠만 명..... 칠천만 명을 네 뒤에 남겨 놓으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엘리아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고 돌아갔습니다. 후에 엘리아는 그의 제자인 엘리사를 통하여 이 말씀을 현실로 이루게 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향린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다 자기도 향린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 봤자 향린교회가 3-4백 명의 작은 공동체인데 자기가 교인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다 수용하려면 수만 명 되는 교회여야 가능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중 몇 사람은 제가 교적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실제 향린교회 등록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오고가며 집회에 한번 참석했다던가 인터넷을 통해 보았다던가 하는 모든 사람들이 향린교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의 주장대로 향린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향린교회의 역사의 몫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Potential insider(잠재적 내부자)라는 사회적 현상임을 나중에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교회가 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행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잠재적 내부자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직접 이 교회의 교인이 되는 일은 힘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받아라”하고, 매일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다른 교회와는 달리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신앙생활 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끝까지 올바른 길을 가고 예수의 얼굴을 닮은 교회를 만들어 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뒤에 숨겨진 칠천 명, 아니 칠천만 명을 내어 놓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교회들, 어마어마한 규모의 교회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습니다. 숫자로 볼 때 강남향린은 보이지도 않는 교회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회들이 건강하고 참 좋은 교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같이 담임목사를 벼슬인 듯 세습이나 하고 온갖 부정과 비리로 상식이하의 길을 간다면 수십 년 후에는 아무도 내 놓고 ‘우리 아버지가 그 교회 장로였고, 우리 어머니가 그 교회 권사였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장대하나 그들이 도덕성을 정당성을 상실한다면 지금은 내부에 사람들이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Potential outsider(잠재적 외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역사의 평가는 모든 것을 뒤 바꾸어 놓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당히 행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올바르게 행한다면 눈에 보이는 백여 명이 우리의 숫자가 아닙니다. 이 안에 이 자리 사이사이에 하나님의 백성 칠천 명이 함께 하고 있고, 칠만 명이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 흐름이 마침내는 기독교 전체를 그리고 이 세상의 물결을 바꾸어 갈 것 입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설교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여러분 저의 마지막으로 드릴 이 부탁을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제 부탁을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회중이 “예”하고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고 항상 저를 믿고 무조건 들어 주겠다고 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파송해 주실 동지들과 함께 새 교회를 열심히 세워갈 것입니다. 숨겨진 칠천 명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용기있게 이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드릴 저의 마지막 부탁은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교회를 잘 지켜 주십시오. 지금까지도 잘해오셨지만 지금 보다도 더욱 갑절의 참여로, 배의 헌신으로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이 교회를 세워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여러분의 꿈이 되고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의 설레임이 되고 가슴벅참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교회가 바로 나이고 내 인생이고 내 신앙이니라 라고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에 걸맞는 여러분의 교회를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저의 온 마음을 모아 여러분에게 드리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파송)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정당하고 올바르게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감에 있어 당당하십시오.
우리 일신의 편안함에 빠져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묻어놓지 마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엘리아를 부르셨던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숨겨진 칠천 명을 보고 그 약속을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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