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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믿음의 사람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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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택 몫 (종로교회)

지난 23일 김선일씨의 살해 사건으로 온 국민이 비통, 분노하고 있습니다.
고 김선일 씨의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어느때 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전도운동을 하고 새 신자들이 생겨나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자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주님으로 믿는 자들은 그 믿음이 날마다 성장해야 합니다.

생명을 가진 몸은 자라나야 합니다. 생명체의 특징은 성장에 특성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성장합니다. 우유를 먹던 아이가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기어다는 아이가 걸어 다니고.달려 다닙니다. 만약 성장이 멈춰서 있다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든지 아니면 문제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신앙도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는 오래 믿었어도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태어남이 없는데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또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어딘가 병이 들어 있으면 자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 믿은지 오래 되었는데 나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서 있다면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누가 나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지 아니합니다. 자신이 힘을 써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앞에 바로 서는 결단과 다짐이 없이는 오래갑니다. 날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결단하시고 노력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 일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왔습니다. 많은 문물을 약탈해 갔고 1만명의 젊은이들은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 포로 가운데 25세의 젊은이 에스겔이 함께 갔습니다. 그의 나이 30이 되던 해, 그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노예생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였다면, 아모스가 정의의 선지자였다면, 에스겔은 소망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또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예루살렘의 임금 시드기야를 잡아 두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손발을 묶고 말에 매달아 끌고 다녔습니다. 비참하게 끌고 다니다 처참히 죽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제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에스겔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 소망을 선포하던 에스겔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에스겔은 이런 아픔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귀를 막고 있던 백성들이 에스겔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금시대 영적 인도자로 손꼽히는 헨리 나우웬 「상처입은 치유자」에 보면 상처를 입고 상처의 아픔을 아는 치유자가 참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말로 상처를 입기 위해노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상처입은 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약할 것 같지만,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훌륭한 치유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 에스겔이 백성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에 강력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었던 에스겔은 고통받은 동족을 위해 더 진실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의 위로와 격려 희망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환상입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사자가 에스겔을 데리고 생명수 강이 흐르는 곳으로 갑니다.
에스겔이 가 보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제단 곁을 통하고 점점 흘러서 물이 성전 밖으로 흘러 내려가서 마침내 큰 강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흐르고 있는 물 속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서 그 물 속에 들어가 보니까 물이 발목만큼 올라왔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들어가 보니까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습니다. 세 번째로 들어갈 때에는 물이 허리가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들어갈 때에는 물이 가슴이상 올라와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헤엄을 쳐야만이 건너 갈 수가 있었습니다.

또 에스겔이 강을 돌아서 강 건너편의 나무를 보았는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인하여 나무마다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 강물에는 수많은 고기 떼들이 놀고 있었어요. 이 물로 인하여 바닷물이 소생되어 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이 아주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이 환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의 환상입니다. 소망의 환상입니다. 다시 회복도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지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성전에서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으라

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는데 물은 무엇을 뜻합니까?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생명의 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피의 90%가 물입니다. 뇌의 80%, 살의 75%, 심지어 뼈의 25%는 물입니다. 또한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비타민 등 영양분을 운반하고 배설물을 처리합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육체에도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세계는 물 고갈에 대해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물은 많지만 정작 마실 물, 좋은 물, 믿을만한 물은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좋은 물이 난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마다 물통을 들고 줄을 서서 그 물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물도 그러하거니와, 하물며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신령한 생명수가 흘러 넘치는 이 성전이야 말로 우리 모든 심령들이 사랑하고 사모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AD 200년대의 초대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이렇게 신앙생활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 속에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활동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살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는 인생은 살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 보면 목마른 자들을 물로 초청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요,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다른 것으로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수로만 시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이여, 주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시원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물은 생명의 강물을 말하며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37-39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신 것처럼 강물을 성령으로 비유합니다.
이 물이 성전에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이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교회를 말합니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성령이 충만히 임하니까 제자들이 나아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지 않습니까? 이 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를 가더라도 성전을 중심으로 가고..., 멀리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면 더 좋습니다.
어찌하든지 성도는 성전을 가까이할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배할 때, 기도 할 때, 찬송할 때. . .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전을 가까이 해야만 합니다. 성전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전을 통해서 양식을 공급받아야 성숙한 믿음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성전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시험들게 합니다. 성숙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 .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갓난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자랍니다(벧전2:20). 먹지 않고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자주 자주 먹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와서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주일동안 금식하고 주일날 한번 먹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아예 말씀과는 상관없이 삽니다.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드시기를 바랍니다.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97)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 119:148)
학생이 실력을 성장시킬려면 주어진 교과서에 충실해야 합니다. 참고서만 봐서는 안됩니다. 문제집만 보아서도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잘 안읽고 간증 테이프만 열심히 듣습니다. 신앙서적만 열심히 봅니다. 다른 세미나에만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심으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밥도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가서 먹어 보세요. 건강에 유익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으로 충만해야 영적으로 건강한 성숙한 신앙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중요성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측정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하는 것인데 예배생활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든지. 아니면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인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별로 기대감이 없다면 신앙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것은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오늘날 성도들에게 찾아온 신앙의 위기는 예배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목숨을 걸고 주일을 성수합니다.
예배 생활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러 단계의 성도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처음에는 물이 발목까지 오르지요. 두번째 물이 무릎까지 올라옵니다. 그리고 허리까지 올라오고, 또다시 물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나옵니다.
이것은 성도의 영적성장 단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에서 나온 물이 처음에는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 허리를 적신다(겔47:3-4)
교회에 여러 종류의 신자들이 있는데, 발목신자와 무릎신자, 그리고 허리신자와 수영신자가 있습니다.
1) 발목신자는 교회의 행사가 있을 때만 나오는 사람입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졸라대니까 성화에 못 이겨서 나오는 피동적인 성도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나온 것으로 만족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2) 무릎신자는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발목신자보다는 조금 발전한 성도의 형태입니다. 이들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기도나 들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치가 못합니다.
3) 허리신자입니다. 허리를 굽혀서 겸손하게 봉사하며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이지요.
4) 수영신자입니다. 이 사람은 성령에 충만히 젖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롬14:8)”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에는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발전해가는 것이 성장의 원리 이듯이 . . .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라나지 않고 그 단계에 머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안됩니다.
신앙은 처음에는 아주 얕은 물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깊은 물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얕은 물가에서만 있어도 안 됩니다. 얕은 물에만 있다보니 겁이 많습니다. 감정에 치우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니 시험에 빠져 넘어지는 것입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원리, 즉, 깊이 있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성령의 능력이 늘어납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이 임하지 않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에는 넓이도 중요하지만 깊이도 중요합니다. 신앙생활 오래한 것, 많은 사람을 아는 것,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모두 넓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아는 것, 기도를 깊이 하는 것은 깊이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 깊이 입니다. 신앙의 넓이는 힘이 없고 깊이가 힘이 있습니다.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십시오. 땅에 스며들었다가 발목까지 오고 허리까지 차오릅니다. 이것은 성령체험과 동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발목에 차도 성령충만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리까지 차도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물이 창일하게 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내가 물을 건너는 것 보다 물에 빠지는 것이 더 자유합니다. 성령을 조종하는 것보다 성령안에 빠지면 자유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강물에 빠지십시오. 여러분도 성령안에서 자유해 지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령충만한 믿음은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시작되어서 팔레스틴의 저지대인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바다에 이르게 되는데, 생명수가 가는 곳마다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죽은 바닷물이 다시 살아나는 내용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보다 낮아지고 겸손하기만 하면 주님의 물줄기가 나를 사로잡고 촉촉히 적셔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생명의 물'이 어디로 흘러갑니까?
8절에보면, 물은 성전에서 흘러 동방으로 향하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아라바란 사막같은 천박하고 메마른 못쓰는 땅을 말합니다. 생물체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아라바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잠자는 교회와, 영이 없고 생기도 없는 교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아라바로 간 것입니다. 메마른 곳에 생명의 물길이 터졌다는 말입니다. 물이 닿으니 닿는 곳마다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살아나자 열매가 맺고 생명이 생겼습니다. 물이 지나가면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라바를 지난 물이 바다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바다는 사해바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해바다란 죽은 바다라는 뜻입니다. 물이 들어가기만 하고 나가지 못하니 이일이 장기간 되는 동안에 소금이 많아지고 광물질이 25%나 되어 생물이 전혀 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해와 같이 죽은 교회도 이 생명의 물이 들어가므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물이 바뀌면 거기에 새 생명이 나타납니다.
이 물이 오늘 여러분의 심령을 반드시 흘러서 지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6-7절을 보면, 생수가 강물을 이루고 좌우에 수목들이 무성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물을 통하여 좌우에 무성한 나무들이 자란 것처럼, 거룩한 성전에서 흐르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큰 기둥이 되고 재목이 되는 일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한 8절에 보면, 낮은데로 내려가면서 점점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충만할수록 점점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 9절에서는 생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의 충만한 운동이 일어날 때, 바다 같은 이 세계에 생명과 축복이 조성될 것을 상징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4) 10절 말씀에 보면, 어부들이 각처에 있고 고기들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생수가 넘치는 곳마다 교회와 성도가 떼를 이룰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이 강가에 어부가 서고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까지 약 40Km 되는 거리를 그물을 치고 어부가 마음대로 고기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이 어부는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추수꾼'입니다.
마가의 다락방 문지방에서 성령의 운동이 일어나니 베드로의 입을 통해 말씀의 물이 흘러가니 3천명, 5천명의 고기들을 마음대로 잡았지 않았습니까? 이 역사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5) 또한 12절 말씀에 보면, 실과가 많고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각종 실과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 실과가 끊이지 않았으며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히 흘러내리니 온 성도들이 흡족히 받고 싱싱해지면서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잎사귀는 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치료하고 영을 치료합니다.
가정을 치료하고 교회를 치료합니다. 세상을 치료합니다. 그리고 새 기운이 역사합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죄를 씻어내고 치료하여 병을 고치시고 소경을 보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며 문둥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회복시키시고 바다를 잔잔케하며 죽은 자를 살리시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고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들과 부패하고 썩었던 온갖 병이 치료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중요한 것은 11절에 보면,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땅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 내리는 물,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거부하는 땅과 그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펄과 개펄은 걸어 갈수록 자꾸 빠집니다.
(진펄: 진창으로 된 넓은 들. 개펄: 갯가의 개흙이 깔린 벌.)
신기하게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충만히 받는데,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고 진펄과 개펄이 되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은 현실적으로는 망상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현재 상태가 포로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한지 70년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야에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을 보란 듯이 재건하였습니다. 그들은 포로의 생활속에서도 성전을 대신하여 회당을 지어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이 물이 내 심령에 넘쳐서 은혜의 강물에 잠기는 신앙의 성숙이 있기를 바랍니다. 깊이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달마다 생명의 열매들이 맺히고, 여러분의 인격의 열매가 맺히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열매들을 통해서 수많은 생명들이 소성하길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여러분의 가문이 살고, 사회가 살고, 민족이 사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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