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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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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로 목사 (효민교회)

보지 못하는 눈먼 소경이며,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말 못하는 벙어리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중고의 역경을 헤치고 훌륭한 여류 작가가 된 헬렌 켈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내용에“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놀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우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삼일이 아닌 수십 년으로 이어진 긴 세월동안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대자연을 항상 바라보면서 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감사의 절기가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 명령하신 맥추감사절이 다음 주일입니다. 한해의 첫 열매인 밀과 보리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가운데 올해에 밀과 보리를 보신 분들이 얼마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에 가 보아도 밀과 보리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보다 훨씬 수익률이 높은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보리밥이 별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이처럼 풍성한 가운데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옛날 보리 고개 때처럼 절대적인 빈곤의 상황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하나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전기 불을 주시고, 전기 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늘나라를 주신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기를 1년에 세 번의 절기는 반드시 지키라 하셨습니다. 무교절 즉 애굽에서 해방된 광복절과 맥추감사절과 수장절 즉 추수감사절이 그것입니다.


Ⅰ. 왜 절기를 지키라 하셨을까요?

1.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건망증이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가정주부는 전화 수화기를 냉장고 속에 넣어두고 전화기를 찾아 야단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받은바 은혜를 잊어버리는 은혜에 대한 건망증입니다. 은혜에 대한 건망증은 있는데 원함에 대한 건망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를 가리켜 “반역적 기억작용”이라고 합니다. 기억해야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성격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아시기에 받은바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감사의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찬 예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잊지 않도록 하시고자 정하신 예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1:23-26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은혜에 대해 신경이 무뎌져서는 안됩니다. 은혜에 대해 익숙해지면 안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파렴치한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2. 감사함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의 말씀에“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하셨습니다. 말세의 황폐해진 인간의 타락상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은혜를 망각하여 감사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속에 물든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곧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는“마귀는 만성적인 불평불만 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 비춰 볼 때 마귀에게 미혹되지 아니한 사람, 그리고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은 은혜에 민감한 반응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되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3. 감사함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은 오천 명이 넘는 큰 군중 앞에서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앞에 두시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셔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6:1-13)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감사는 어떠한 의미의 감사입니까? 조건을 초월한 감사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에 드린 감사입니다. 모든 여건을 초월한 있는 그대로에 대하여 드린 감사입니다.

넉넉하게 채워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내어다보며 드린 미래 지향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이 곧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며,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감사의 본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나는 흑인으로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인 죤 밀턴은 한창 일할 나이이며, 정치계에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44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밀턴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를“주께서 내 육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볼 수 있도록 신령한 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맹인이 된 후에 남긴 작품이 그 유명한“복락원”과“실락원”입니다.

영국의 신학자인 메튜 헨리 목사는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나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빼앗겼습니다. 그 날 밤 메튜 헨리 목사는 기도하기를“하나님! 제가 그전에는 강도 맞지 않은 것을 감사하오며, 강도가 내 지갑을 빼앗아 가도 나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이 감사하옵고, 그들이 강도질을 했지만 그것이 대단치 않은 것이었기에 감사하고, 끝으로 내가 강도를 만난 것이지 내가 강도질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은 성숙한 성도는 모두 감사했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드린 감사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설자인 죤 웨슬레는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라고 했습니다.


Ⅱ. 이 절기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맥추절이 되면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양을 잡고 고운 가루를 드려 정성껏 제사를 지냈습니다(레 23:9-14). 오늘날 예배가 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며 기뻐하며 지킵니다. 우리는 백일, 첫돌을 기억하며 기뻐하며 지킵니다. 조상들의 세상 떠난 날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거나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지키라 하신 이 절기이겠습니까?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2.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15절에“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심령과 우리 후손들의 심령을 위해, 우리의 이웃의 심령들을 위해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영혼이 아름다워지며, 아름다워진 심령들은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인간들의 물질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삶에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일조 예물도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말라기 3:10-12의 말씀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세계적 부호 록펠러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록펠러는 어머니로부터 1주일에 20센트씩 용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약 240원) 그때 어머니는 록펠러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20센트 중 2센트는 하나님의 몫이란다. 오늘 교회에 가서 먼저 2센트의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록펠러는 그날부터 9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철저한 십일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훗날 질문하는 기자에게 부자 되는 비결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어머니로부터 굉장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것은 신앙이라는 유산입니다. 나는 사업에 대한 모든 꿈을 기도 중에 얻었고, 정성스런 십일조를 어김없이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합작이므로 하나님이 망할 수 없는 분이기에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건하게 살았는데, 남을 비난하지 않았고, 술과 담배를 철저히 금했으며, 평생 동안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토록 성경을 애독했는데, 90세가 넘자 시력이 약해져서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사람을 고용해서 성경을 읽게 하여 귀로 성경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 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7말씀에“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하셨습니다.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은 감사하되 형식적인 감사가 아니라 넘치도록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되“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하셨습니다.


Ⅲ. 감사함의 결과

1.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크신 능력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욥은 큰 부자였으며, 자녀도 칠 남 삼여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7000마리의 양, 3000마리의 약대, 500겨리의 소, 500마리의 암나귀와 수많은 종들을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어느 날 거센 돌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그 집안에서 식사하던 열 남매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욥이 기도하기를“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1-22) 하셨습니다. 이 기막힌 형편에서도 욥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에게 축복하셔서 그의 재산은 지난날의 갑절이 되게 하셨고, 자녀는 잃은 자녀보다 더 아름다운 열 명의 자녀를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타나 있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바벨론 나라의 총리였습니다. 그는 충직한 사람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다른 신하들의 음모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6:10)고 하셨습니다. 사형 받을 죄를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극형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니엘을 사랑하셔서 천사로 하여금 사자들의 입을 봉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아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발은 착고에 채워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사도는 밤중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뻐하며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홀연히 지진이 나며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매인 착고는 다 벗어지는 신비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속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사랑하며 즐겨 찾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을 즐겨 찾으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깊이 깨달은 바울사도는“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
가 전서 5:18)“항상 감사하라”(에베소서 5:20)고 했습니다.

은혜에 익숙하면 안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져서는 안됩니다. 감사에 민감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곳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있습니다.


2. 감사함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주신 귀중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바라는 꿈이 모두 다 이루어졌을 때일까요? 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를 정복하고도 더 차지할 땅이 없어 서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행복이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고생하는 것을 늘 불평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 불평을 버리고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겪고 느낀 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어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이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만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 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해진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느끼지 못합니다. 새 신발을 샀을 때는 감사하면서 두 발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새 장갑을 산 것에는 즐거워하면서 손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옷을 산 것에 기뻐하면서 그 옷을 입을 수 있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은 마음의 욕심을 비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3. 감사함은 건강의 비결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저녁에 유난히 피로를 느낀다면 원인은 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낮에 일을 열심히 했거나 종일 화를 내고 불평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불평할 때 우리의 건강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정상적인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암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이루게 되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미움이나 증오 불만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게 되면 체내의 정상적인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정 중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시키는 것이 증오라고 합니다. 평안한 마음과 기쁨이 넘치는 삶,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만물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인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 치유력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면 감사와 건강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감사하는 곳에 기쁨이 있고, 건강이 있습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본분입니다. 감사함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증거입니다. 감사하는 심령위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임하시게 됩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욕심 없는 소박한 마음으로, 지금의 형편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만 바라보지 마시고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날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내 삶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승리하도록 하는 성도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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