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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근심 (창 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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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로 목사 (효민교회)

집 나간 방탕한 아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누가복음 15:11-3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타락한 인간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러한 근심과 고뇌에 찬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본문에도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5절~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한탄하시며 큰 근심을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한탄하시며 근심하신 하나님은, 끝내 회개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것이 대홍수 심판이었습니다. 온 천하가 물에 잠겼습니다. 향락과 죄악에 도취되었던 사람들을 비롯한 동식물 전체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롭게 살았던 노아의 가정 식구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6장~9장까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노아 때의 대홍수 심판에 관한 흔적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86년에 발견된 미국 레브라스카의 서북지방 산악에 각종 동물들의 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 약대와 멧돼지, 새와 바다의 물고기 뼈들이 한데 섞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바다와는 거리가 먼 산속에 산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죽었겠습니까? 또한 중국에서는 높은 산속에서 소금을 캐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창세기 8:5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아라랏 산이 지금은 터키 남부지방에 만년설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 산의 높이는 5177m나 됩니다. 어름산 속에 거대한 선체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1955년 7월 5일 프랑스의 탐험가 페르낭 나바라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가 성서의 정확함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Ⅰ. 당시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2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인간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불신앙 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풍습에 물들고 정욕을 따라 살아갔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물인 자신의 육체를 방탕함과 쾌락의 도구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근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향에 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몸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이 고귀한 육체를 타락의 도구로 전락시킴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기록된“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는 말씀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케 합니다. 까마득한 옛날인데 이 외모의 아름다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경건한 가정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이 결혼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데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로 알고, 외적미모만 보고 결혼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사람의 외모를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집을 사려는 사람이 건물의 견고함이나 구조는 보지 않고 건물에 칠해진 페인트 색상만 보고 집을 사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야 인간의 본능인데 그것 자체가 죄악일 수는 없습니다. 내면적인 인간다운 모습에는 관심이 없고 외모에만 치중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세계에서 화장품 장사가 가장 잘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화장품 업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외모의 아름다움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3-4)

노아 때의 타락한 사람들을 가리켜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세기 6:3)하셨습니다. 이 육체란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인격 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육체 즉 짐승처럼 육신의 욕망만을 좇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이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라디아서 5:19-21) 라고 하셨습니다. 노아 때에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까지 이처럼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의 사회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38-39) 하셨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며 먹고 마셨다는 지적은 결혼을 죄악시 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죄악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욕망만을 채우며 세상 향락에 도취된 그들의 짐승 같은 생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워지면 노아 때의 타락상이 다시 재현 될 것을 예수님은 예언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노아 때를 방불케 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육체적 향락의 거대한 물결이 지금 이 사회는 뒤덮고 있습니다. 노아 때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한탄하시며 근심하실 것입니다.

괴테는 말하기를 “향락은 인간을 천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이 몰락해 갈 때에 나타나는 특징은 성윤리의 붕괴이다.”라고 했습니다. 노아 때 대홍수 심판전의 사회상이 그리했습니다.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이 아름다운 여인들에 눈이 어두워 미모의 여인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왕궁으로 끌어 들였는데 그 숫자가 1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솔로몬의 지혜는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미모의 외국여인들까지 비빈으로 삼다보니 그들을 위해 수많은 궁궐을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살림살이는 어려워져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에 물들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후 깊이 깨달은 솔로몬은 참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도서 1:2, 2:1-11)
육욕을 좇는 삶은 바람을 잡는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이에 깊이 깨달은 솔로몬은 말하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3-14)고 했습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은 음란 했을 뿐만 아니라 본 문 5절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은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창세기 6:11)고 하셨습니다. 패괴하다는 것은 수치심이 없이 공개적으로 범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양심이 마비된 비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런던에 살고 있는 네 살짜리 한 소녀가 잘못하여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손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엄마에게 부러진 손목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보세요. 엄마, 내 손목이 참 이상하게 구부러졌어요.”그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통증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소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병원에서는 넓적다리에 금이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열 네 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놀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다리에 금이 갈만큼 부주의한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손등에 물집이 생기거나 화상 자국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녀는 고통에 완전히 무감각했던 것입니다. 내과 전문의 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의 병을 고쳐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병은 오늘날 “겡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고 부르는 치명적인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치명적이고 위험한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무감각증”이라는 병이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이 병에 걸린 자들을 가리켜“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딤전 4:2)이라고 전한바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은 한탄하시며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Ⅱ. 타락한 이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본문 3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범죄한 사람, 세속에 물들어 썩어진 사람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 하십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는 곳에는 무서운 저주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주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는 곳에는 영원한 멸망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을 자아내었던 사람들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마치 쓰레기나 오물을 버리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쓰레기를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듯, 타락한 그들을 쓸어버리시되 물속에 흘러 보내듯,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무분별한 인간관계와 무절제한 생활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타락하게 하여 짐승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의 삶을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편 1:1-4)하셨습니다.

길이라 하여 아무데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리라 하여 아무데나 앉는 것이 아닙니다.
책이라 하여 아무것이나 읽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이라 하여 아무것이나 입에 넣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소유라 하여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 하여 아무나 가까이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자연의 구조가 악이 선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성질을 퍼드림에 있어, 악의 힘이 선보다 더 크도록 되어있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더러운 물 한 방울은 컵 안의 깨끗한 물 전체를 더럽힙니다. 그러나 한 컵의 맑은 물은 한 방울의 더러운 물을 맑게 하지 못합니다. 썩은 과일 하나를 그냥두면 상자속의 썩지 않은 과일 전체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상자속의 썩지 않은 전체 과일은 썩은 과일 하나를 다시 회복시키지 못합니다. 전념성이 있는 한 사람의 질병은 여러 사람의 건강을 해칩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의 건강은 환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처럼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의 마음을 고치기보다는 악한 자의 악은 선한 사람을 속히 타락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불신이웃이나 악한 사람을 대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언행을 본받지는 말아야 합니다. 배가 물이 없으면 안 되지만, 물이 배안에 들어와도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Ⅲ. 타락한 시대에서 우리의 할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놀랍도록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점점 더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은 어떻습니까?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퇴패적인 향락은 날이 갈수록 노골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범죄는 점점 더 강폭해질 뿐만 아니라, 퇴패 향락을 비롯한 모든 범죄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말기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하셨습니다.


2.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속의 물결에 휩싸여 떠내려가는 안타까운 심령들을 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시기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1-2)하셨습니다.

왜 전해야 합니까? 구원의 과정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로마서 10:13-14)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약속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다니엘 12:3)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외면만 보지 말고, 내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극도로 타락한 노아 때를 방불케 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근심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후서 3:10) 하셨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은 세속을 이기며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전하되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음의 빚을 갚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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