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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격시대 (왕하 18: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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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구원 목사 (갈보리교회)


애굽(이집트)에 이어서 등장한 앗수르(앗시리아)제국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사르곤 2세의 아들로서 B.C 705년에 왕위에 등극하여 B.C 681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B.C 701년경 대원정을 실시하여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지역을 정복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1, 2차에 걸쳐 공격해왔습니다. 앗수르의 역사 문서에 의하면 1차 공격 때 견고한 성으로 둘러싸인 46개의 성읍과 주변 작은 마을을 탈취했고 유다의 넓은 지역을 멸했으며 유다 백성 20만 명을 포로로 붙잡아 갔습니다. '나의 멍에를 히스기야에게 메웠다' 라는 구절이 있어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산헤립은 1차 공격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2차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산헤립의 명을 받은 군대장관 랍사게는 히스기야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와 군사력의 열세와 종교적인 명분등을 내세워서 유다 백성들을 유혹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랍사게는 히스기야 왕을 공격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개혁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산당을 파괴한 일까지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군대장관인 랍사게가 유다 대신들에게 한 말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매우 유혹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탄의 공격 방법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Ⅰ. 사탄의 공격 무기는 현실 합리화(合理 化, rationalization)입니다.

합리주의(rationalizatism)는 실천의 지침을 이성의 원리에서 구합니다. 오직 어떤현상을 이성적으로 고찰, 사유, 판단하여 나타나는 현상과 접목시킵니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현실적이며 철저히 논리적, 과학적으로 인정되는 것 외에는 모두 부정합니다. 계몽시대에는 종교비판의 대표되는 사상이었습니다. 실존주의는 나타나는 현실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현실을 현실로 해결하는 것은 불신자의 방법입니다..나타나는 현실을 반드시 계시 의존사색에 의해 준

1)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담대하게 공격합니다.
본문 18장 19절에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依賴)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왕 산헤립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라기스에 와 있는 산헤립에게 전령을 보내어 우리가 잘못했으니 철수만 해 주면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왕하 18:14). 그러자 산헤립은 은 삼 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주의 성전과 창고에 있는 은을 다 주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을 모두 벗겨주었습니다(왕하 18:15-16).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앗수르왕 산헤립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주어서 라기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히스기야를 치게 했습니다(왕하 18:17). 많은 병력들이 예루살렘 윗 저수지의 수로 곁에 있는 빨래터로 나는 큰길가에 포진하고 의기양양하게 히스기야를 불렀습니다(왕하 18:17-18). 이때 힐기야의 아들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저들을 맞으러 나왔습니다(왕하 18:18). 앗수르 왕의 장군 랍사게가 히스기야에게 전하라고 한 말은 당돌하고 자신만만했습니다.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왕하 18:19). 전쟁할 힘도 없고 군사도 없으니 입으로만 전쟁을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애굽은 너희가 의지할 나라가 못되는 마치 갈대 지팡이와도 같다고 했습니다(왕하 18:21).
혹시 너희가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했지만 히스기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 앞에서만 경배해야 한다고 하면서 산당과 제단들을 모두 헐어 버린 것이 바로 너 히스기야가 아니냐고 했습니다(왕하 18:22).

이같이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욕되게 함으로 히스기야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 이천 필을 주어본들 그 말을 타고 싸울 사람이 있느냐고 했습니다(왕하 18:23).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그러한 신앙 상태를 꺾기 위해 보낸 여호와의 사자라고까지 했습니다(왕하 18:25). 유리한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신권에 도전하는 참으로 오만하고 방자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격리시킵니다.
본문 18장 29-31절에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城)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나타납니다. 랍사게의 말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정반대 되는 말이었습니다(왕하 19:6-7).
역대하 32장 7-8절에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랍사게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유리한 현실과 영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술책입니다.
역대하 32장 19절에 『저희가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훼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백성의 신들을 훼방하듯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Ⅱ. 사탄의 공격 목표는 인간의 생의 수단 을 목적으로 삼게 합니다.

본문 18장 31-32절에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을 향한 간교한 회유책입니다. 각각 우물물을 마신다는 표현은 대단한 풍요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랍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그곳에서 나오라고 말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랍사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을 외면하게 만들고 거짓으로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앗수르 왕들의 정책은 피정복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고 다른 민족을 정복지에 이주시켜서 혼혈을 만들었습니다. 랍사게도 이러한 수단을 이용하려했던 것입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앗수르 왕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정도는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왕하18:31-32). 여호와 신도 다른 신과 마찬가지로 앗수르 대왕 손에서는 속수무책이라고 공갈협박을 하고 있습니다(왕하 18:33-35).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수단과 목적을 바꾸어 놓으려고 쉬지 않고 회유(懷柔)를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삶의 수단을 가지고 목적으로 삼게 만듭니다. ① 사탄은 의, 식, 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합니다. ② 사탄은 육신의 건강 자체에 인생의 목적을 두게 합니다. ③ 사탄은 명예 그 자체에 생(生)의 목적을 삼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의 다양한 삶들을 수단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게 해야 합니다. 목적이 없는 부나 명예나 건강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수단 그 자체를 가지고 절대를 삼게 합니다.

목숨을 걸고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다양한 일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운동을 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손에 쥔다고 해도 하나님의 법을 떠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의 일과 육의 일이 있고 일시적인 것이 있고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일만을 고집하는 자들은 이미 사탄의 유혹에 빠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무엇을 한다는 그 자체를 축복의 기회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유혹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내려갔을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것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기회가 아니라 유혹입니다(욘 1:3).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간(수 7:1-15),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1-6)가 당시에 자신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마는 그것은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의 결과는 멸망과 부끄러운 한 날이 준비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인(全人)건강을 의미한다는 이른 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 being) 문화를 절대 생의 목표로 삼지 아니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유토피아(Utopia,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느니라는 의미의 소어)건설을 목표로 하지 아니합니다.
영원한 우리의 이상국가 천국은 이미 예수님께서 확보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삶의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Ⅲ. 사탄의 공격 목적은 하나님을 인간 과 대등한 관계에 두게 합니다.

본문 18장 35절에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고 하는 랍사게의 말은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침략에 아무런 저항없이 쉽게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 것은 사마리아의 멸망이 앗수르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랍사게는 몰랐습니다. 마치 닭이 울기 때문에 새벽이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이 왔기 때문에 닭이 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신명기 4장 34-35절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랍사게는 현실의 유리한 환경을 볼모로 잡고 하나님의 능력을 비웃었습니다. 앗수르가 그 동안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북왕국 이스라엘도 그들에게 멸망당했고 유다까지도 많은 성읍들을 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징벌에 의해서 앗수르를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랍사게는 하나님도 앗수르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바벨론 제국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 능력입니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사 27:1).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라고 했습니다(시 59:11).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다고 했습니다(시 89:10).
하나님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통치하심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독생자를 보내사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성령을 통하여 택자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의 교회운동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았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수요장단과 화복길흉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한 말은 시대 상황을 볼모로 잡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유다 백성을 향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본문 18장 36절에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백성들이 랍사게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하면 그것을 꼬투리로 잡아서 자신의 목적을 극대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말도 되지 않는 일에 상종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를 쫓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보이는 현실을 최대한 합리화하여 인본주의에 빠져들게 합니다. 현실을 절대가치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사탄은 쉴 사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과 영합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무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탄의 유혹에 속지 맙시다. 사탄은 결국 우리를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일밖에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실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격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에덴동산 때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은 유혈이 낭자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마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공중권세를 잡고 이 세상을 앞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도록 합니다(벧 2:2).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미혹하여 하나님과 격리시켜 놓으려고 합니다(고후 4:3-4).

성도들에게 일시적이나마 실족하게 하여 치명타를 입힙니다(마 24:24). 마귀는 사람 속을 공략하여 병을 일으킵니다(마 8:28; 9:32). 성도들이 믿음이 없으면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유린당합니다(약 9:18, 28, 29). 믿음은 마귀를 쫓는 능력입니다(마 16:17).
그러나 사탄은 이미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마귀는 공격할 자와 공격할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사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는 현실 복지와 인간의 감각적이고도 관능적인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물질의 번영입니다(창 3:6).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합니다. 아간(수 7:1-15),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1-6),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11-17)등이 여기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에 넘어가지 아니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마 4:1-6).
또한 욥은 사탄의 물질적 공격에 넘어가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면 욥에게 있어서 물질(부)은 삶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의 감언이설에 귀를 막고, 핑크 빛 약속에 마음을 닫고, 화려한 진열 앞에서 눈을 가리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과 같을 수도 없고 능욕의 대상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1절에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도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이때를 위함입니다. 갑옷으로 무장하지 아니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는 개인의 멸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자체를 위기로 만들고 맙니다. 마귀를 대적합시다.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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