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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다윗의 일생(4) : 전천후 감사(全天候 感謝) (시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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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모작을 했습니다. 그 중에 첫번째 추수를 하면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는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기에 동일한 마음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매년 7월 첫 주일에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깊이 감사함으로 우리의 신앙과 인생에 큰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다윗의 일생 네 번째 시간입니다. 특별히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다윗의 감사 생활’에 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사 신앙’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고난이 참 많았던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서 막내였지만 귀염둥이가 아니라 천덕꾸러기로 양떼를 돌보며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고 차기 왕에 예비되었지만 왕이 되는 과정에서 10년 이상 핍박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때때로 어려운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굳세게 지켰고, 특별히 감사하는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신앙이 약화되고 감사치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 전체를 두고 볼 때, 그는 분명 감사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고난의 때에나 형통의 때에나 그는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개는 고난의 때에는 낙심하거나 원망하기 쉽고, 형통의 때에는 교만하거나 방자하기 쉽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신앙의 수련을 통해 환경이나 조건을 초월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신앙을 이렇게 명명해 봅니다. 전천후 감사 신앙!(All-Weather Thanksgiving Faith)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이 행복했던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이 왕이 됐고 부자였기 때문에 행복했으리라 지레 짐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왕이라고 무조건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죠. 환경 조건이 화려하다고 당연히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말이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해서 아우성입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이 멀리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감사하면 어느덧 행복이 바로 내 앞에, 내 곁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풍요로워도 감사할 수 없으면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이다."

이 시간 다윗의 ‘전천후 감사 신앙’에 관해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그런 신앙을 터득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환경 조건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행복해지고, 일생토록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의 시행착오 : 낙심과 교만에서 전천후 감사로 ...

다윗도 처음부터 늘 감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환경 조건에 따라 휘둘리고, 그의 마음이 흐렸다 갰다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낙심했습니다. 그리고 형통할 때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을 수련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편인데 그런 과정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는 형통할 때에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교만했죠. 그러다가 고난을 당했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6절~7절 보면, 그는 과거 형통할 때에 영원히 그 인생이 요동치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장담했습니다. 6절.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7절.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잘 나갈 때 자기 능력과 지혜로 되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늘 그럴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잠시 얼굴을 돌려버리니까 큰 환란을 당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고민하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8절~10절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1절~3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감사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읽는 독자들과 성도들에게 간증하며 함께 감사하는 신앙을 갖도록 권면합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이제 다윗은 고난의 때에도 형통할 때에도 영원히 감사하리라고 결단합니다. 12절. “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약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감사하는 신앙으로 변화되는 ‘신앙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전천후 감사 신앙은 이렇듯 고난의 과정을 통해 연단된 아름다운 신앙이었습니다.

[2] 전천후 감사의 비결 :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

구체적으로 전천후 감사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윗이 연단되었듯 성숙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이 없으면 환경 조건을 초월해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입니다.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이란 모든 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감사 신앙과 관련해서 중요한 두 가지만 소개해 드립니다.

 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믿는 신앙 :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비로소 주제 파악이 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티끌과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이 이만큼 축복하시고 세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내 인생의 모습은 전적인 하나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와야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감사하게 되고, 그게 성숙한 신앙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된 줄로 착각하고 방자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심스럽게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런 문제였습니다. 광야에서는 차라리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기 쉬웠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만나가 내려오고 물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 안정된 환경 가운데 혹시라도 백성들이 착각할까봐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 ”

다윗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인생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 겁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그의 이런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12개 절 가운데 하나님의 칭호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10회, ‘주’라는 칭호는 13회나 나옵니다. 그만큼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천신만고 끝에 왕이 된 후 고백한 내용을 보면 그의 이런 신앙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삼하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자기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고 아무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주셨다는 겁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에서 감사가 우러나올 수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리차드 백스터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자 친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훌륭한 저서들을 남겨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공헌을 하였다고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니올시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펜(pen)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바울도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미국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 중인 최희섭 선수를 아실 겁니다.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는데 경기에 앞서 개회식을 할 때면 고개 숙여 겸손히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경기 중 안타가 치거나 홈런을 치면 특유의 세
리머니를 합니다. 양쪽 주먹에 키스를 하고, 양쪽 검지를 하늘로 향합니다. 기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주먹에 키스를 한 것은 기쁨의 표시이고, 검지를 하늘로 향한 것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키스한 겁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이 있을 때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는 신앙 : 우리가 인생 살다 보면 때때로 고난이 닥쳐옵니다. 그럴 때 자칫 잘못하면 왜 이런 고난이 오는지 의심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선한 목적을 이루시고자 때로는 고난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시고자 부단히 일하십니다. 이게 곧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5절.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바울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대로 고난도 형ㅌ오함도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뤄지며,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서 결국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음악 평론가가 악성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해설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내면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고, 천재성을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시대의 무미건조함이나 범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귀머거리가 된 것이 순전히 비참한 일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고난을 통해 베토벤을 연단하시고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라는 신앙이 있으면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3] 전천후 감사의 축복 : 영원히 행복한 인생

전천후 감사 신앙이 있으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동행해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시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어 함께 해 주시면 언제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항상 행복한 인생입니다. 푸른 초장을 지날 때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나 만족할 수 있고, 영원한 천국 집에 들어갈 소망으로 감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신앙의 수준이 문제입니다. 환경 조건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책을 보니까 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륙할 때 액 300미터 상공을 통과하면서 가장 심하게 요동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높이 올라가면 오히려 고요해진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신앙이 미숙할 때 요동합니다. 신앙이 성숙해지면 무슨 일을 만나도 요동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고도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한 인생을 소원합니까? 그러실 겁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아무쪼록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다윗처럼 감사 신앙을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환경과 조건을 좀더 낫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인생에는 늘 환란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좋았다가다 나빠지고 나빴다가도 좋아지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닙니까? 우리 신앙이 그럴 때마다 요동하는 수준이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늘 흐렸다 갰다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환경 조건이 변화되지 않더라도 마음을 감사로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도 인생이 확 달라집니다. 김치 한 가지에 식음 밥 한 덩이라도 감사하면 잔치 상이 됩니다. 누추한 초막이라도 감사하면 궁궐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이 상태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로에서 생각을 시작해 보십시오. 적신으로 왔을진대 뭐가 있네 없네 해도 있는 만큼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영 죽을 인생이었기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영혼 아닙니까? 죽어도 천국 아닙니까? 그러므로 지금 당장 감사하고 지금 당장 행복하십시오.

또한 우리가 감사하며 살다보면, 때때로 하나님이 기적의 역사를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리더즈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실화입니다. 트레일러 운전기사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시력을 상실했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낙심이 됐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씨름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40일간 매일 감사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겁니다. 40일째 되는 날 그분은 시력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닥쳐올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감사로 정면 돌파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고 다윗의 전천후 감사 신앙을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행복하시고 주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한 길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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