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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롬 1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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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무대 앞에 드리워졌던 커튼이 제켜지면서 연극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연극의 실제 장면들만을 관심이 있을 뿐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준비과정들이 있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른 생각해 보더라도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려면
극작가가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주제에 대한 극본을 쓰고 싶은 갈망이 있었을 것이고,
그 갈망과 모티브를 토대로 대강의 줄거리가 엮어지고
마침내 대본이 쓰여졌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대본을 토대로 등장인물들의 실제적인 역할 배정이 있고,
안배된 배역을 따라 연습에 연습을 거친 후
비로소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서 연극은 무대 위에서 실연되었을 것입니다. 어찌 배우들뿐이겠습니까?
무대장치, 촬영진 조명 분장 등 수 많은 지원팀들의 지원으로
연극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는 이웃집 김 집사가
내게 예수 믿어라 해서 내가 예수 믿은 것 같지만
복음이 내 귀에 듣기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가사와 같이 고난 길 헤치고 찾아온 복음인 것입니다.
고난 길 헤치고 내게 찾아온 복음에 대해서는 본론에서 말씀드리겠지만 복음 자체로만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얻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0절 말씀같이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이것이 복음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들어야 믿고 시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 로마서 10:14-15절에
복된 소식을 전하여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자의 발걸음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은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을 가진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첫 번째 요건이 무엇이겠습니까? <2>

14절에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그런즉 하는 말은 앞에 말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이 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데 누구든지 예수를 구원을 얻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해주는 자가 있어야 듣고 믿을 수 있지
전하는 자가 없으면 믿을 수도 없고 구원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의 제일 요건은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천사에게 맡기지 아니하시고 먼저 구원받은 우리에게 맡겨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백성으로서
두 가지 직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1) 천국배우라는 직업의식입니다.
일류 영화배우는 대본을 기억함은 물론이고
그 대사에 감정과 표정까지도 작가의 뜻을 100%로 연기합니다.
그러나 촬영 중 NG를 내면
웃음거리는 될지언정 작가의 뜻은 나타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의 배우"로 불러주셨는데
천국대본인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가운데 감정과 표정까지도 천국배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그런데 계속 NG를 내고 있으면 다음에는 배역을 맡기지 않습니다.
2) 천국 마당쇠라는 직업의식입니다.
대감 집의 마당쇠는 대감을 위하여 살아가는 종입니다.
대감의 명령 앞에 언제나 "예"만 있습니다.
종은 두 가지가 없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의지가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인격이 없습니다.
대감의 의지와 인격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마당쇠"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합니다.
[ 저의 의지와 인격은 죽고 대신 저의 안에
예수님의 의지와 인격만이 살아 계십니다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감 되신 예수님만을 전하는 천국 마당쇠입니다.
우리의 대감 되시는 예수님의 의지와 인격에 맞추어 연기하는
일류 천국 텔런트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3>
길과 산울가로 가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고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고 명하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충실한 천국 마당쇠가 되시기 바랍니다.
왜? 천국 마당쇠가 되어야 합니까? 주인이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15절에 [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라고 합니다.
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합니까?

하나님 말씀 가운데도 수많은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신앙의 발자국이 있는가 하면
아름답다고 찬사를 받는 수많은 믿음의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이삭을 바치러 가던 아브라함의 순종의 발자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던 모세의 능력의 발자국.
가나안 땅을 믿음으로 정복하는 여호수아의 믿음의 발자국
삼년 육개월 매마른 땅에 비를 내리고 달려가던 엘리야의 능력의 발자국. 다 아름다운 발자국입니다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전도와 선교는
교회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생명과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신학자 <에밀 부르너>는
교회 존재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불이 타오름으로 존재하는 것같이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

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할까요?
1) 본문에서 인용하자면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율법과 복음에 대한 비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율법에 매여 복음에 눈이 뜨여지지 못하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고 복음은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발은 얼마나 신바람이 나며 아름다운 것이겠습니까?
즉 생명을 구원하는 발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는데 천사를 사용하시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15절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세례요한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그를 가리키어 하시는 말씀이
요1:6절 [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4>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럼 복음이 오늘 내게 전해진 경로를 추적해 보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바울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고
그 복음이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선교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한국 땅 제물포에 최초로 발을 디딘 선교사는 미국의 언더우드 목사입니다.
물론 그 전에 한국선교 준비 기간으로서
1) 1865년. 중국 산동 반도에서 선교 중인 토마스 목사가
황해도 서해안에 와서 3개월 전도
2) 1866년. 영국 선교사 토마스 목사 정식 입국하려다 대동강에서 피살 순교
3) 1881년. 로스선교사가 만주의 한국인 85명에게 세례 베푼 기록
그리고 언더우더 목사가 들어오기 전
4) 1884년 10월 20일에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알렌의사 부부가
개신교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들어와
1886년에 왕실 병원 제중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한 민국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선교사는 언더우더입니다.
언더우드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
1883년 신학교 연맹 모임에서 조선 민족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 지금 조선은 천3백만 민족이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채,
가난과 질병과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드디어 작년에 문호를 열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 민족을 위해 선교사로 갈 것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
알버트 목사님의 호소력 있는 메시지는 많은 신학생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언더우드는 그 당시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선교에 대한 강 한 도전을 받았으나 , 조선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인도로 선교사로 가기 위해
인도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잘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버트 목사님의 조선 선교의 권유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
언더우드는 개인적으로 친구들에게도 권유해 보기도 했지만 <5>
그들은 다 국내에서만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돌연히 강력한 반문의 소리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 너는 왜 못가느냐? ]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주님의 부르심의 메시지였다.
[ 그렇다 왜 나는 못가는가? ]
그는 단 한번도 복음을 못 들어 본 미전도 종족인 조선민족에게
선교의 우선 순위가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인도를 위해 인도말을 배우고 준비해 논 것들을 ,
모두 조선 선교를 위해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 조선을 선교지로 정하고 나서 교회와 선교부에 조선 선교사로 가기로 요청을 하였지만, 두 번씩이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조선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 꾸준히 기도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장로교 본부회의에서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그는 미전도 종족인 , 우리 민족을 가슴에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
한달 여 걸리는 긴 항해 끝에 , 일본을 거쳐
1885년 4월 2일 부산 앞 바다에 잠시 정박하 여,
조선땅과 조선민족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부산을 떠나 삼일 후인, 4월 5일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20년 한국 기독교사의 멋진 장을 연
최초의 선교사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 교회를 시작으로 교회개척사역을 하였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시작으로 하는 교육사업을 통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깨워나갔습니다.
그리고 1912. 9. 1 평양에서 예수교 장로회 첫 총회를 조직하여
초대 총회장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언더우드 같은,
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그 결과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 수 있는 축복의 삶을 허락 해 주신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족은 현재 5대까지 이 나라 위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에 교회가 설립된 것은
대구 제일교회 창립일을 1893년 4월22일로 잡고 있습니다.
그날은 배위량(william M. Baird-베어드) 선교사가
이 고장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배위량 선교사는 미국 북 장로회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복음 선교사로 부인 <안니 베어드>를 대동하여
고종 27년(1890년)말에 부산에 상륙하여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부산에 주둔하면서 경상북도를 순시할 계획을 세우고, <6>
선편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대구에 도착한 날이 1893년 4월 22일 이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방문에서 대구에 체류한 기간이 얼마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얼마의 기간이 지난 후 그는 부산의 선교 기지로 돌아가
1896년 봄에 그를 대신하여
대구에 주재할 <안의와> 선교사와 같이 대구를 다시 방문합니다.
1896년에 평양으로 임지를 옮겨 평양에서 그는 숭실학교를 설립하고
그의 부인을 잃는 슬픔을 당하기도 합니다.

배위량 선교사의 뒤를 이어 대구에 부임한 선교사는
배위량 선교사의 처남인 안의와(James E. Adams) 목사입니다.
그리고 안의와 목사야말로 사실상 대구선교사업의 개척자요,
경북의 모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의 창설자입니다.
1895년 봄, 안의와 목사는 생후 3개월 되는 장남과 함께 내한하여
부산 선교부에서 2년간 어학공부에 전력하였습니다.
그후 선교부를 대구로 옮겨와
1896년 1월 현 구 제일교회의 부지를 구입했고,
1897년 봄부터 대구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안의와 선교사는 대구에 부임한후 1923년 대구를 떠날 때까지
실로 큰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경북도내를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며 선교하고, 제일교회를 창설하고, 계성학교를 위시하여 수많은 학교와 그리고 동산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안의와 목사 역시 일찍 아내를 잃고 자신만의 봉사가 아니라
그의 가문이 모두 한국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장남 안두화 목사는 2대 선교사로 미국 북 장로회 한국 대표로서 계명대학교의 창설자이며,
그의 차남(Rev. Benjamin Adams)은 바로 제일교회 구내의 사랑채에서 나서 안동에서 선교활동을 한 후 미국으로 떠났고,
또 그의 장손은 목사로 미국에서 목회하며,
다음 손자는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서 오래 근무 중에 있다고 합니다.

간략하게 한국 땅에 복음이 전해지고
대구에 교회가 설립된 경로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실로 고난 길 헤치고 찾아온 복음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수 많은 생명을 희생케 하고 고난의 길을 걷게 했습니까?
한 마디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또한 우리의 사명 때문인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전쟁영화가 있습니다.
밀러 대위는 7명의 대원을 데리고, <7>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독일군 지역 깊숙이 들어갑니다.
라이언을 살리고는, 밀러 대위와 대원 전원이 죽습니다.
죽어 가는 밀러 대위가 라이언에게 말합니다.
[ 나는 네가 우리 8명이 목숨을 버리고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나는 네가 내 목숨과 나의 사랑하는 자들의 목숨을 버리고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렇게 고난 길 헤치고 찾아온 복음이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데
이 믿음이 어디서 나옵니까?

어느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 우리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외출할 옷도 없고, 아이들 과외비도 없다 ] 고 불평을 하니 남편이 하는 말이
여자가 뭐 그리 말이 많노 [ 돈 없다 ] 고 한 마디만 하면 되지 하더랍니다.
가끔 믿음 없는 교인이
[ 자기는 살 재미도 없고, 교회 생활에 기쁨도 없고.
기도도 하기 싫고, 감사한 것도 없다 ] 불평합니다.
이 분이 여러 가지가 없다고 하소연했지만,
이 분의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기쁨도, 기도도, 감사도, 구원의 확신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다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없다면 다 없는 것이요,
믿음이 있다면 다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
고 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믿음 어디서 옵니까?
17절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어야 구원을 얻고 구원을 받은 성도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들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8>
구원을 얻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나 가슴아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8-20절에서 말하는 내용은
5. 사도 바울이 18-20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계시하였지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입니다.
그러고 보면 구원이란 게 참 가깝고도 뭔 것인 것 같아요.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복음이
내가 듣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바로 친구가 권하는 복음을 듣고도 거절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천 주안에서 목회 하는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인천 주안에 있는 제일 신용금고 이사장이요 그 큰 빌딩 주인이
고등학교동창으로 같은 반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집이 가난해서 목사님 집에 와서 밥도 먹고 잠도 같이 잤습니다. 그는 성공하기까지 양복대신 점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느지막하게 괌으로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다
직계가족 한사람도 남지 않고 아들 딸 손자까지 다 죽었습니다.
평소에 목사님이 만날 때마다 전도를 했지만
그는 돈이 제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산이 몇 천 억 인지 저는 모르지만
이젠 번 돈으로 좋은 일을 하라고 권했지만 알았다 하면서 웃고 넘겨버렸습니다.
결국은 그 돈 한 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괌 칼기 사고 때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도 기억나는 것은
그 사위가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 친척들이 소송을 하여
사회적 관심거리가 된 적이 있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내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요 축복 중에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 일으켜
이방인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도 복음을 들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9-20절에 이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었고,
하나님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문의하지도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에게 전도자를 통하여 찾아가셨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거절한 복음을 이방인인 우리가 대신 받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9>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을 벌리고 계십니다

21절 [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복음을 믿어야 되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 대해서도 항상 손을 벌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을
우리도 쉽게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내일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시기 바랍니다.

국민일보에서 펴온 글입니다.
상계동 ㄱ교회 여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제일 부끄러운 것이 전도하지 아니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하려고 해도 용기도 나지 않고 할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서
[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 ] 는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나는 [ 가진 재물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 어떻게 나누어주지 ] 라는 생각에
한동안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네게 있는 것 중에서 나누어 주라 ] 는 두번째 음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 외에는
결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미리 내게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 빚는 솜씨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달란트를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예쁜 조끼를 짜서 선물했습니다.
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살포시 쪄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과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던 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쪽에서 먼저「아줌마, 교회 다니시죠. 저 좀 데려가 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생애에 가장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집으로 가자고 해서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며 말씀으로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10>
일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우울증은 말끔히 치유되었고,
이제는 그녀도 남편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내가 가진 지극히 작은 것을 나눔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들이 주님과 친숙하게 살아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길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7월 선교의 달을 맞이하여 나의 신앙생활에
전도 지향적, 선교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일의 가족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나라와 함께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영국교회가 선교를 감당했을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아니하는 나라로 축복을 받았고,
미국교회가 선교를 감당했을때, 미국은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로 축복을 받았다. 이제 한국교회가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선교의 사역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과 함께하시고
우리 교회와 함께하시고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줄 믿는다.

가이드포스트는 2003년의 인물로
88세의 흑인 노파 <오세올라 매카티>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녀는 미국 미시시피주 <해티스버그>에서 평생을 손빨래로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열 두 살 때 자기를 양육해준 이모가 병들자 6학년에서 학교를 중퇴하고 소녀가장이 되어 어머니 때부터 이어온 가업인 세탁소를 이어받아 기계세탁이 아니라 손으로 빨아 다려서 납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늘 즐겁게 찬송을 부르며 빨래를 하고 다리미질을 했습니다.
심한 신경통이 손에 와서 일할 수 없게 될 때까지
12세부터 86세까지 74년 동안이나 남의 빨래를 하였습니다.
매카티 할머니의 기쁨은 두 가지였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는 교회에 나가 매 주일 선교 헌금을 바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에 들러 약간의 저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74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예금을 찾지 않고 저금만 하였는데
금년에 예금 전액을 찾아 교회에 선교헌금으로 바쳤습니다.
매카티 노인은 금년도 <대통령의 장한 시민상>을 받게되어 <11>
생전 처음으로 미시시피주 밖을 여행하여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났고 UN의 초청을 받아 뉴욕을 구경했습니다.
매카티 씨는 <감사할머니>라고 불리웁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고 그 심한 노동과 가난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매카티 할머니는 잠자리 들기 전 늘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이 땅에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데 나를 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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