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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절기의 의미 (겔 4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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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원 목사 (대광교회)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이 지키는 3대 절기중의 하나입니다. 맥추절(麥秋節)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리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라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맥추절은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특히 오순절은 신약에서 성령이 강림하신 날로서 맥추절은 신앙과 관련해서 어떤 절기보다 친근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주셨습니다. 절기는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키라고 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절기를 잘 지킬 때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절기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무서운 진노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율법보다 당시 백성들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옛날처럼 그렇게 절기를 지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절기를 주신 하나님의 뜻과 절기에 담긴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절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첫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기 하면, 늘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기억’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겔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멸망’과 ‘바벨론 포로’라는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비참한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유다의 심판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특히 절기의 회복에 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킨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갔지만, 다시 회복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은혜롭게 절기를 지키게 될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절기에 있어서 왕과 백성이 지켜야 할 성전 출입에 관한 규정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선적으로 11절을 보면, 이들이 절기를 지키러 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를, 그리고 기름 한 힌씩을 가져와 하나님께 ‘소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소제는 곧 감사제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오고, 특히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상기시켜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맥추절을 포함한 모든 절기의 첫번째 귀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처음 맥추절을 지키라고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졸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베푸신 은혜를, 받은 사랑을, 과거의 경험을, 능력의 흔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기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가리켜 흔히 ‘망각의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잊어버리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것은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다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것은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정신건강을 위해서, 육신건강을 위해서, 물론 영적건강을 위해서도, 지울 것은 지워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치유된 사람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컴퓨터는 우리가 입력하는 모든 것을 미련하리만큼 기억합니다. 쓸데없는 것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워버리지 않으면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자주 고장나고 다른 새로운 것을 입력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쓸데없는 것을 빨리 지워야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타락한 인간의 습성가운데 이런 것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기억할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역사에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후손을 복되다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모세를 통해 극적으로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할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먹을 것을 주었고, 입을 것을 주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고, 추위와 더위로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평생 기억할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은혜는 잊었습니다. 오히려 잊어야 할 과거의 생활에 집착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이 좋았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며 원망과 불평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모두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는 않습니까? 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잊지 않습니까? 잊지 말라고 절기를 주셨습니다. 늘 기억하라고 절기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주신 사랑을 더듬어 보십시오. 받은 복을 한번 세어 보십시오. 은혜를 잊지 않고 늘 정성을 다해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질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절기를 지키러 나오는 자에게 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이것이 성전에서 절기를 지키는 규례였습니다. 북문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면 북문으로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것은 질서입니다. 질서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이 규례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우왕좌왕하다가도, 정신없이 준비하다가도, 심지어는 성전에서 제사를 위한 제물을 팔다가도, 절기가 시작되면 반드시 그들은 질서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이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모든 엉클어진 것이 정돈되었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건물도, 제사도, 의식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질서정연한 아름다움 속에 그들의 명절인 절기를 기쁨으로 지키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절기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에 새겨야 할 의미입니다. 질서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혼돈에서 이제 질서를 잡고,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사역에서 그 오묘한 질서를 찾습니다. 칠일동안 만드신 천지창조는 한마디로 질서의 정돈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말합니다. 무질서한 카오스의 세계를 질서의 세계로 정돈한 것이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세계의 흐름을 보십시오. 한마디로 질서의 향연입니다. 꽃이 피고 집니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순환됩니다. 비가 오고,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붑니다. 지금처럼 태풍도 옵니다. 이런 것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모두 다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자연과 삶의 질서를 따라 세상은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선언한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신앙생활, 교회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질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도 큰 소리로 방언을 하고, 신앙의 기준도 신령한 것으로만 평가되고, 인간관계에서도 서로를 미워하며 갈등하고,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따로 지내는 등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선언한 것입니다. 질서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듣던 표어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정말 보기가 좋고, 평온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타난 모든 부정과 혼란은 대부분 질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질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질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신앙인은 질서를 따라가야 합니다. 절기는 이런 의미에서 필요합니다. 엉클어진 것, 어지러운 것, 혼란스러운 것을 정돈해야 합니다. 혹 자리에서 이탈해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무엇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합니까? 규모 없이, 의식 없이,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이제 어지럽고, 엉클어진 내 삶의 질서를 잡으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전진입니다. 9절 말씀의 끝 부분을 다시 보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 지며...” 이 말이 12절에도 같은 의미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절기를 지키기 위해 와서 결코 되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앞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규례를 따라 성전에 와서 되돌아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면서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 기다리는 시간이 지속되어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들에게는 앞으로 향하는 문만 있었습니다. 그 문을 향해 전진하며 나갔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왕도 이 규례를 따랐습니다. 왕은 혹 기다리다가 뒤로 나갈까봐 들어온 뒤에는 문을 닫으라고 더 강하게 명령을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절기의 마지막 귀한 의미를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우선 ‘과거집착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늘 과거만 생각하고, 과거와 비교하고, 향수에 젖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그는 화려한 과거가 있던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확실한 조건을 갖고 출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점점 나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과거에 매여 한발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둘째, ‘현실만족형’이 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대로 영원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발전이 없고, 개발이 되지 않습니다. 모험심이나 야망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그는 현재만 알았지 내일을 몰랐습니다. 오늘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게 있는 것이 다 뉘 것이 되겠느냐’

  셋째는 ‘미래지향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를 잊지 않되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감사하되, 거기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속한 인물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을 성공한 인생, 승리의 인생으로 만든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신앙과 삶의 자세가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존경받고,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좋은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 전진할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서만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질서’를 따르겠다고 다짐만 해서도 안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단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맥추절이 한해의 복판에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리 좋은 과거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악한 과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족할 만한 현재라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능성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 미래를 기대감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대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늘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보는 것이 부모의 즐거움이요 기대인 것처럼, 우리가 기대를 갖고 전진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지, 이번 주간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실 지, 2004년도 후반기에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은 어떤 능력을 펴실 지, 기대감으로 이 자리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절로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절기를 주시며, 절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깊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마음에 담아야 할 단어는 ‘기억, 질서, 그리고 전진’입니다. 이 말에 담긴 귀한 의미를 깨닫고, 이번 한 주간도 믿음 안에서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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