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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보좌 앞에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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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신약성경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천국을 구경하고 쓴 책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4 장에는 하나님이 계신 보좌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 4:1-4>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 같이 우렁찬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렸습니다. 요한이 올라가 본 것은 하나님 보좌의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보좌는 하나님이 앉아 계신 의자입니다. 이 보좌를 둘러 이십사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각기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좌 우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고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이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은 보좌를 향해 엎드려 경배하고 있습니다. 또 엎드린 채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천만만 천사들과 성도들이 그 보좌 주변에서 역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국은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이 우주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보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고 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이 보좌로 나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본문 16 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감히 쳐다 볼 수 없습니다. 그 보좌는 너무나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어찌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보좌를 둘러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천만만 천사들과 허다한 성도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있습니다.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습니다. 쉬지 않고 경배와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자리입니다. 왕은 그곳에서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심판하고 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의 보좌를 두려워합니다.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에게 주권을 잃었던 시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만의 흉계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침 이스라엘의 딸 에스더가 왕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왕후 에스더도 함부로 왕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보좌 앞에 나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보좌도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보좌는 그보다 위엄이 넘치는 곳입니다. 감히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우리를 그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보좌에 나아가면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그 보좌 앞에 나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계시록 3:21 말씀에 그 약속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을 시켜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특히 라오디게아교회에 주신 약속입니다. 주님은 승리하는 교회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서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놀랍게도 우리에게 그 자리를 함께 앉도록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보좌의 권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왕의 통치권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간만 한 번씩 보좌에 앉아보는 것입니까? 우리가 만약 청와대에 견학을 간다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그 의자에 한 번씩 앉아 볼 수 있습니까? 사실 그것도 허락되는 일은 아닙니다.

경복궁에 가면 조선시대 임금들의 보좌에 잠간 앉아 볼 수 있습니까? 사정전이라는 건물이 왕의 집무실입니다. 그곳에 왕의 보좌가 있습니다. 경비들 눈을 피해서 왕의 보좌에 잠간 앉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앉아서 기념 촬영이라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걸려서 망신당하는 것은 제가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보좌를 세세토록 영원히 앉도록 해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5>

여러분 저 천국에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보좌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받고 천국백성 되어 하나님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아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는 이런 영광의 선물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영광은 장차 누릴 영광입니다. 이 땅에서 미리 이 영광에 취해 있으면 안 됩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거만하게 이 땅에서 왕 노릇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섬기는 사람은 없고,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지적하고 꾸중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고전 4:8>

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도록 보장되어 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광보다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합니다. 시험거리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좌에 앉는 영광은 잠시 뒤로 두어야 합니다. 보좌의 영광은 우리 장래의 소망입니다. 지금은 보좌에 앉기보다 겸손히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보좌 앞에 나아가 겸손히 엎드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감히 나아갈 수조차 없는 우리들이지만 그 보좌 곁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 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15 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래서 누구보다도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히브리서 2:18 절 말씀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은혜를 얻도록 우리를 보좌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이 은혜의 보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에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담대히 전하다가 모함으로 공회에 잡혔습니다. 그러나 공회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은 자들이 이를 갈면서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교의 고통 속에서 스데반은 하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행 7:54-56>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스데반을 위해 응원하고 계셨습니다. 스데반은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무릎 꿇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기도와 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순교의 자리에서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치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우리가 보좌를 바라보려면 먼저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늘이 열리는 광경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야곱이 집을 떠나 빈들에서 잠을 잤습니다. 꿈을 꾸는데 하늘이 열리고 사다리가 내려왔습니다. 천사들이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보니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야곱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베게 하였던 돌을 세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하늘이 열렸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열리면 거기 보좌가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6 절을 다시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때나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교회는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개척하면서 지금까지 새벽기도회는 썰렁합니다. 제가 모질지 못해서 새벽기도회를 나오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제 자신이 새벽기도회를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입니다. 늦게 잠들기 때문에 새벽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고역입니다. 그래도 저는 목사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힘든 일을 성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아서 나와 주시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저는 이 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새벽기도회를 나오시도록 강권하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사실 어느 성도님께서 새벽기도회를 잘 나오시다가 요즘 힘들어 하고 계십니다. 새벽기도회를 했더니 건강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건강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기도회를 안 하다가 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은 자기가 조절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그만큼 줄여야 합니다. 잠이 부족하면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오히려 운동을 하면 짧은 수면으로도 충분히 보충이 됩니다.

여러분! 깊은 잠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와 건강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입니다. 어찌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던지 땀이 피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혼신을 다해 기도하는 것은 진액이 빠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있었기에 주님은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중간에 기도를 끊고 제자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2:43 말씀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여러분 하나님이 도우시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예수님의 체력으로 한계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지쳐서 더 이상 기도하기 어려울 때, 기도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에 40 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금식하는 동안 마귀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굶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셨습니다. 그런 중에 마귀는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시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 예수님을 도우셨을까요?

마귀의 시험이 다 끝나고 난 다음입니다. 마태복음 4:11에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힘이 남아 있을 때는 돕지 않으십니다. 우리 힘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을 때 도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를 경험하는 때입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힘이 듭니다. 피곤이 쌓이고 건강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것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여러분 새벽기도회 나오면 쓰러집니까? 그런 음성이 들립니까?
“너는 새벽기도회 나가면 쓰러진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일까요?

여러분 이런 음성은 안 들리십니까?
“제발 기도 좀 해라.”

이 음성에 끌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음성에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세벨에게 쫓기던 엘리야가 탈진해서 로뎀나무 아래 지쳐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한 병의 물과 떡을 구워 먹이셨습니다. 어루만지며 잠을 재워 쉬게 하셨습니다. 또 깨워서 먹이고 재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력을 얻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얻으려면 내 능력 이상의 넘치는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늘이 열리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안을 열고 하나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몸이 아프고 연약합니까? 새벽기도회 나올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자녀들을 축복하고,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새벽에 성전에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세상의 계산법으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풀면 틀림없이 기적의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멋진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새벽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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