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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예수님의 감사 (요 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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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예수님의 생애는 감사로 충만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감사로 생애가 시작되었고, 감사하는 삶을 사셨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언제나 그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감사하며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진 자만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만물을 보실 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꽃 한송이 공중 나는 새를 봐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큰 기적의 사건을 우리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무덤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부활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신 기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속에 흐르고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감사로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명절이 가까워올 때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셨는데 어린 아이 손에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하늘을 향해 축사하시고 앉은 무리에게 나누어줄 때 오천 명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였습니다.

축사라는 단어 속에는 감사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예표하는 감사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한다면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때 삶 전체가 복이 됩니다.
감사는 은혜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말과 감사라는 말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그 마음이 감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예수님은 축사하실 때 하늘을 우러르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렀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뜻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원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헌금도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찬송도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나 감사없는 기도는 곧 자기의 독백입니다. 헌금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헌금은 물질 거래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헌금하고, 찬양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습니다. 꽃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은 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꽃을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도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 무덤 속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기라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모든 관계를 감사로 연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감사로 깊은 교제를 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아도 깊은 교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모가 가장 깊은 교제는 어린 자녀들과 이루어지고 있고 또 어린 아이는 전적으로 자기 부모를 의지하면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얘기한다고 다 교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얘기하면서도 딴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제가 안됩니다. 사람을 만난다고 교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야 됩니다. 많은 지식과 교만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깊은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시는데 열 명의 문둥병자가 멀리서 소리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과 가까이 할 수 없는 이 사람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은 ‘네 몸이 낫는다’는 약속입니다. 저들이 제사장을 향해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열명이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돌아가고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자의 확증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믿기는 했지만 자기 속에 구원받은 확증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어떤 때 교인들이 별세설교를 듣고 수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예수 믿으면 변화되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조그만한 이권만 보여도 그것이 예수보다 더 크게 보이고 평소에는 은혜받은 것처럼 보이나 유사시에는 그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천당은 누가 가느냐? 믿는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 된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사례한 문둥병자와 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리면 구원의 확증을 상실한 것이 됩니다.
하박국 선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선지가 기뻐하는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지 무엇인가 얻었다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감사가 바로 구원받은 확증입니다. 여기에 영광이 있으며, 하나님의 교제가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품으려고 믿는 것이지 믿어주려고 믿거나 천당 가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천당이 땅에서도 오고 죽어서도 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감사는 나누는 것인데 물질을 나누기 전에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인격을 나누는 것입니다.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국경으로 자르고, 사유 재산으로 자르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늘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하늘은 모두의 것입니다. 하늘은 쳐다보는 자가 임자입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땅이 나누어 가집니다. 이슬을 내리면 나누어 가집니다. 햇빛을 나누어 가집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분이기 때문에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나눌 수 없는 탐욕이 있습니까 이 사람은 이미 하늘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것이라면 벌벌 떠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사람은 믿기는 믿어도 하늘을 소유하지 못한 자입니다. 감사를 혼자 독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 오늘 복 받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감사를 착취하는 것입니다. 받은 복을 감사하면서 혼자 누리는 것은 감사를 횡령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된 감사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감사를 착취하는 사기꾼들이 너무 많습니다. 감사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감사는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 감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나누어야 할 것이며, 필요한 자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가난할지라도 나누어 먹는 형제는 우정이 있고 사랑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쌓아놓고 혼자 먹으려고 하는 형제는 탐욕과 독성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먹어도 소화가 안됩니다.

여기 ‘축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eujcaristhw’라는 말인데 이 말은 성만찬을 뜻하는 ‘eujcaristhvsa’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수많은 무리들에게 단순히 떡을 먹인 것이 아니요, 육신의 양식으로 배불린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성만찬과 같이 자신의 생명이 나누어짐으로 저들의 양식이 될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감사는 나눔으로 하늘의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한 후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에게 떡을 주면서 자신이 생명의 떡인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사 속에 자신의 희생을 내포시켰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나누는 것이요, 생명을 나누는 것이며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정신으로 로마의 숱한 박해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떡과 잔을 나누며 감사로 신앙을 고백했고,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감사를 드렸으며, 자기들을 죽이는 자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와 찬송을 했습니다.

새 인생의 창조

감사는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그렇게 저희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면서 모두를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적은 것에 감사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기적을 보인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만족시켰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심령이 풍성해집니다. 가난한 가정에 풍성한 복이 쌓입니다. 이 세상이 바꾸어집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자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납니다. 못난 남편과 살면서 감사하면 남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못난 회사 사장을 잘 받들면 사장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못난 아내와 살면서 감사하면 아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부를 만나는 것입니다. 꽃을 보면서 감사하면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성경은 감사하는 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기적으로 삶을 바꾸는데 운명을 바꿉니다. 운명을 바꾼다고 하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 머릿속에 떠오릅니까 그것은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물질의 생산을 확대시켰을 뿐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운명을 바꾼 것 아닙니다. 회사에서 지위가 높아졌다고 운명을 바꾼 것 아닙니다. 인기 스타가 되었다고 해서 운명을 바꾼 것 아닙니다. 인격이 변화되어야 운명을 바꿉니다. 예수님이 예수님 된 것은 예수님의 감사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스데반 된 것은 스데반의 기도와 스데반의 감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관되게 그의 삶 속에서 예수를 만들어갔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이것이 예수의 인격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돈 많이 벌어서 옷 잘 입고 잘 산다고 운명을 바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성품을 닮아야 운명을 바꾼 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할 때 무엇으로 낫다고 생각합니까 인물이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집이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돈 많이 벌어서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사에서 지위가 올라가서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예수를 등지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영광스러운 존재, 행복한 존재, 창조적인 존재가 뭘로 됩니까 감사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하라”
송명희 시인은 역사에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내 속에 감사가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면서 “내가 감사로 너희생명의 떡이 되노니 너희도 들어가는 곳마다 감사로 생명의 떡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을 감사하는 가정으로, 직장을 감사하는 직장으로 만들어 그 삶 속에서 풍요와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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