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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기도를 해야하는가? (약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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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 왜 기도를 해야하는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1장 5-8절>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좀 이상한 생각을 할 줄 압니다.
기도한다고 무엇이 해결 되냐? 아마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사 살아가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자기 원대로 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도 무당을 찾게 되고, 급하면 점쟁이를 찾아가 자신의 운수를 점쳐보는 것이 인간이란 말입니다.

옛날 돈암동 쪽 미아리 미암교회가 있었는데, 제가 어느해 그 교회 제직 수련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쪽 고갯길에는 철학관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난 철학을 연구하는 곳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점치는 곳이었습니다.
김신조가 청와대를 까부시기 위하여 남파되었을 때, <대포집>이란 것을 보고,
그 속에 대포를 숨겨 놓았는가 했다는 생각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대목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대목이 언제인가? 대학 입학시험이 가까워질 때, 국회워원 선거가 공고되었을 때, 그리고 봄,가을 결혼시즌이 되었을 때, 그 때가 대목이라고 합니다.
모두 자신의 미래와 현실의 선택에 대하여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알아보려고 하는 심리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제한된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1. 제한된 존재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무능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우선 사람은 생각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합니다.
지혜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광대한 우주를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왜 기도해야 하나?
그러므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 지식, 경험, 지혜가 다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할 줄 모르면 그것 자체를 모릅니다.
기도를 해야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해야 하나님과 대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걱정이나 근심이나 우울증 해소를 최면이나 정신 훈련이라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런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신 훈련이나 명상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체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일 뿐입니다.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나의 문제를 아뢰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비록 무능한 존재요 제한된 존재들이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의식한 사람이라면 자기 부정에서 긍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 중에 새 힘을 얻습니다.
기도 중에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 힘과 그 지혜는 세상의 지식과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2. 기도 없이 하는 일과, 기도하고 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 안하고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없이도, 잘 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요즘 기도 없이도 잘 나가는 회사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지 않고도 시험에 합격하여 좋은 직장 나가는 사람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기도 없이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에서 드러납니다.
지금 당장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같지만, 골인 점에서 드러납니다.
마라톤 경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뛸 때는 모두 이길 것 같습니다.
처음은 도리어 아마츄어들이 앞장서서 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오는 것 보면,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하나둘씩 들어옵니다.
끝까지 실패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만이 들어옵니다.

이처럼 기도 없이도 시작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 결과에서 현격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에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나간 것은 바로 이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는 것과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싸움에서 사무엘 선지가 오기 전에 그만 급해서 요즘 말로하면 기도 없이 법궤를 메고 전쟁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였습니다.
법궤까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자기의 의사를 타진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계획할 때부터 기도로 계획하고, 기도로 준행하는 자들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비록 어려운 중에서도 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그 택할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25:12 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라고... 공동번역에는 "야훼를 경외하는 자가 누구냐? 바른 길을
그에게 가르쳐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 경제불황인 IMF 때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재산을 날려버리게 되었습니까?
돈이란 이상한 것입니다. 자기 수중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삐꺽하면 겉잡을 수 없이 새어 나가는 것이 돈이란 흉물입니다.
경제란 서로 서로 다 연관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나와 상관하는 사람들쪽에서 누군가 부도를 내버리면, 막을 길이 없어집니다.
그래서들 젊은 사람들도 한강에 몸을 던지거나,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그게 문제 해결은 아니지요.

왜 기도해야 하나?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하던 사람도 이런 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정면으로 대할 기회입니다.
그런데 보면,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지 못하고,
도리어 믿던 사람들 중에도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비 기독교인들처럼 하나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인하면서 술 먹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정말 기도다운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간증들을 합니다.

기도하고 하는 일에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하는 일에는 탐심을 물리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하는 일에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구별할 때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지금 실패한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 정말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이런 때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고 맴돌고 있습니다.
시기, 원망, 저주, 탐심, 분쟁, 미움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그래서 도저히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것을 이겨야 합니다.
마라톤 코-스에 중반을 돌아가는 때라고 보아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육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working)는 기도하는 중에 보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마치 전류의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구를 꽂으면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세속의 욕심과 탐심으로 이끌리어 살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기도하는 중에 뜨겁게 만나게 됩니다.

어느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가난한 농촌교회 교역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신앙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교회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언제나 형식적으로 해 왔고, 그러면서 그래도 대학까지 나와 1960년대 미국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 학생이 거의 없었던 때인고로 학교에서는 유일하게 한국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장학금도 받아 무사히 졸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969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벌써 35년 전이었습니다.
그 해 부활절에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 생겼습니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입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외국 땅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얼마나 절박했겠습니까?
그때 그는 비로소 기도다운 기도를 하였습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이 밤새껏 천사와 씨름하듯이 자신의 자신감과 교만함에 대하여 뼈저린 통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부르면서 "아무개 아무개야! 내가 왜 너의 머리를 상하지 않게 했는지 아느냐?
그리고 왜 너의 팔을 빼어 위골시겼는지 넌 아느냐?"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고는 해석이 나옵니다.
'머리를 상하게 했으면 목사로서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않았고,
'왜 어깨를 뽑아 위골시켰느냐? 야곱을 생각해 보라'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지 전까지 얼마나 잔꾀를 부리며 자신을 믿었는가?'
네 어깨를 상하게 한 것은 이제 너는 다른 일 할 수 없도록 내가 그렇게 만든거야'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에는 이상하리만큼 마음 속에 평안이 숨어들었습니다.
다시 이번에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절로 찬송이 불러졌는데, 그 찬송이 499장이었습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라는 찬송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상도교회 목사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때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격의 눈물이 흘러지곤 합니다.
내 팔은 축도하기에 꼭 알맞은 45도의 각도까지만 올라갑니다.
이 팔로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중에서도 많은 경우에서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 중에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고, 하나님의 뒷모습까지 보았습니다.(출33:22-23)

기도하는 중에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육(肉)이 영(靈)을 체험하면 그 <육>은 더 이상 <육>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그 속에 거하는 <영>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죄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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