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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의로운 세상을 위하여 (신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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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대홍수로 쓸어버리신 후 새로 허락하신 인간사회가 그의 뜻대로 유지되게 하기 위해 명하신 첫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내시고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후 주신 십계명 속에서도 "살인하지 말라" 하는 계명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과 함께 인간관계의 계명들 중 으뜸의 자리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정신이 여러 가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우들에 있어서 어떻게 지켜져야 할 것인지를 모세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 보는 한 가지 특수한 경우를 언급하셨습니다. 즉 1절 하반절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했듯이 누가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는지 알 수 없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경우에 이스라엘백성이 취할 행동들을 지시하셨습니다. 첫째는, 3-4절에서 보듯이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거기서 송아지의 목을 꺾는 것입니다. 둘째는, 6-8절에서 보듯이 장로들이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잔인하게도 보이고 기이하게도 여겨지는 이 행사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경우에 있어서 피살된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8-9절은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함으로써 이 경우의 살인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피살된 사람이 어쨌든 무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도 "무죄한 피"라고 했고, 9절에서는 "무죄한 자"라 했습니다. 둘째는, 그렇게 무죄한 자가 피 흘리고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 백성 전체의 죄이며 그 죄는 반드시 사함을 받고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송아지의 목을 꺾고 그 위에 손을 씻는 등의 행위는 무고한 죽음에 대하여 이스라엘백성 전체의 속죄를 하나님께 비는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체가 들에 엎드러져 있고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사람에 대하여 이런 의식을 행하게 하셔서 그 땅과 백성을 속죄하게 하시는 뜻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공동체 전체로 하여금 무죄한 피 흘림이 얼마나 중한 죄인지를 깨닫게 하고, 이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그런 죄악의 재발을 방지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3절에 보면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라" 했습니다.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과 법을 관장하는 재판장들이 나서게 한 것은 무죄한 자의 죽음이 공동체 전체의 관심사이고 책임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잊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피살된 사람의 시체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성읍들 사이의 거리를 정확하게 재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읍으로 하여금 속죄의 의식을 행하게 하는 것은 성읍마다 서로 "내 책임이 아니다. 우리 소관사항이 아니다" 하며 무관심하거나 외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드시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해 공동체 전체가 해야 할 도리를 누구든지 대표로 책임 있게 행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누구의 죽음이든 억울한 죽음은 결코 어물쩍 넘어가게 내버려둘 수 없는 일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3-4절에 보면 속죄행위를 위하여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라 했습니다. 왜 굳이 한 번도 멍에를 메고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암송아지와 물이 항상 흐르고 경작한 적이 없는 계곡을 지명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어린 암송아지나 항상 흐르는 물이나 경작된 바 없는 계곡은 순수하고 나약하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음과 썩지 않고 깨끗함을 상징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피해자의 순진무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무고함을 밝히고 그런 무고한 피를 흘린 죄의 극악함을 더욱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암송아지의 목을 꺾는 잔인함도 무고하게 피 흘리고 죽은 이의 억울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6-7절에서 보는 대로 장로들이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라고 말하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고 따라서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뒤따르는 8-9절의 말씀을 그 기본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단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즉 항상 흐르는 물로 손을 씻는 것은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있게 하지 마시라"는 뜻이며, 목이 꺾인 송아지 위에 손을 씻는 행위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제해주시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 하나는 한 무고한 죽음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돌릴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삼는다는 사실입니다. 한 무고한 죽음을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인식하고, 하나님의 죄 사하심을 간구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해결되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송아지의 목을 꺾고 그 위에 흐르는 물로 손을 씻는 의식 자체에 속죄의 마술적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식의 효력은 그것을 받아주시고 사죄를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 속죄의 의식 속에서 사실상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할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했습니다. 그것은 무고한 자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단지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1절 첫머리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라고 했듯이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동참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5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처리에 신앙적 가치가 부여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임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죽는 죄가 없어야 하는 공동체의 문제는 신앙적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끝으로 생각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8-9절에서는 그를 무죄한 자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누가 죽였는지 알지 못하는 살인사건입니다. 누가 죽였는지를 모른다면 왜 죽였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무슨 일로 죽임을 당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죽은 사람이 무죄한 피를 흘린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죽은 사람은 무죄하다는 것은 사실은 누가 왜 죽였는지 알거나 목격한 사람이 있지만 발설을 안 하고 있을 뿐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암송아지의 목을 꺾은 장로들이 그 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는 것은 정말 살인의 광경을 본 눈이 하나도 없으므로 자신들의 무혐의를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 누군가 본 사람이 있으면서도 말을 할 수 없는 공동체,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고 용감하게 고하는 사람이 없는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을 드러내며 용서를 비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악이 발생하는 사회는 악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런 죄악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방치하는 사회는 더 악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일체의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억울함과 불이익과 인권침해와 생명경시 행위들을 활발하게 고발하고 사법당국과 정치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통감하며 성실하고 정확하게 그 사건들을 처리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억울하고 부당하게 생명과 권리와 행복을 유린당하거나 침해받거나 위협받는 것을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공동체의 일원 모두가 이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사회를 만들려고 힘쓰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때에는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밝히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해주시고 허락하신 이 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나라가 정의로운 세상이 되도록 지키고 이끌어갈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서게 하신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 제사장들에게도 그리로 가라 명하셨던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결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정치인들과 법관들만의 일이라고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의 문제를 우리의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함께 고민하며 함께 문제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 만드는 일은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나 세상적 이념이나 방법으로 이루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행하려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무고한 죽음에 대한 속죄의식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 의식행위의 궁극적 목적 자체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사하심을 얻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하며 하나님의 사하심을 얻지 못할 사회정의운동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헛된 것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기 전에 먼저 교회 안에서부터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억울한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근거 없이 모함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의 억울한 사정을 모른 척 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부당하게 정죄 당하고 치리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잘못된 일을 보고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무관심과 무책임과 비겁함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교회, 정의로운 세상을 위하여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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