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 위를 걸으려면 (마 14:22-33)

  • 잡초 잡초
  • 424
  • 0

첨부 1


- 설교 :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기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많은 기적들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그 기적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들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기적이 계속되는가?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는 방식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그대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기적이 오늘 그대로 일어나기보다는 오늘의 상황에서 필요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필요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때에 따라 다양성있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기적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일어날수도 있지만 일어날 수 없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을 나타내기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기적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당신은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까? 내가 주님의 기적을 맛보는 사람으로 경험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밤중에 제자들이 바다에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그때 다수의 제자들 중에서 그 밤에 물위를 걸었던 제자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베드로는 그 밤에 물위를 걸었습니다.아마도 주님외에는 물위를 걸었던 사람중에 베드로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삶의 현실에서 제자들이 바다에서 맞았던 광풍처럼 우리는 광풍을 맞이합니다. 그 광풍 속에서 우리에게 과연 믿음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삶의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과연 우리에게 그 믿음은 광풍 앞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입술로 머리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삶의 정황이 나에게 주어지고 그런 현실이 부딪치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오늘도 폭풍앞에 제자와 베드로처럼 우리는 다양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많은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도 폭풍앞에 베드로같고 그래서 주님의 기적과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물위를 걷는 놀라운 삶의 기적과 기회를 맛볼 수 있을까요?

1.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29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광풍이 불어올때 지금 제자들은 배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 안은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 시간이 4경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은 새벽3시에서 6시의 기간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서 그들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다위로 무언가 걸어오는 것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더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폭풍이 부는 배안에서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자 제자들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때 호기심많고 욕심이 많은 베드로는 주님께서 광풍 속에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자 “나를 명하사 물위를 오라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기 베드로는 무조건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명하사 나를 오라 하소서” 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라” 하자 배에서 내렸습니다.여기 다른 제자들은 배 안에 있지만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배에서 내렸습니다. 모험이지만 도전한 것입니다. 물위를 걸으려면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물에 발을 담가야 합니다. 배에서 내려서 발로 물을 딛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거는 일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기위해서 배 밖으로 나와서 첫걸음을 내딛는 이 결단이 이 도전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배 안에서 나와서 물에 발을 내딛는 이 결단과 모험이 있을때 주님의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그러나 배안에서 나오기 거부하고 그냥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인물들은 안전한 배안에 있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구약에 모세는 애굽의 궁중이라고 하는 안전한 배안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편안하게 궁중 안에 있으면 그 인생은 왕자로서 결국 애굽의 왕으로서 편안한 일생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궁중 안의 그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믿음의 백성으로서 고난받는 모험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비록 그 일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궁중 안에서 나와서 광야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도구로서 영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안전한 배안에서 배밖의 물을 향하여 발을 내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 이것은 무모한 모험일 수 있고 많은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전한 배안에서 배밖으로 발을 내딛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볼 것입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것입니다.

1988년, 서울 장애자 올림픽 대회에서 수영에서 무려 금메달 4개를 딴 선수가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였는데, 두 팔 다 없고 또 다리도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한쪽 다리는 다른 쪽 다리의 반밖에 되지를 않습니다.그런데 수영에서 금메달을 그것도 4개씩이나 땄었습니다.팔이 없어도 물에 뜰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다리도 한쪽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후 그녀는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가 되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바로 레나 마리아라고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그 부모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레나마리아가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중증 장애자임으로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아무리 부모라고 하지만 망설이지 않을 사람 있겠습니까?평생 사람 노릇 못하면서 살게 될 텐데... 평생 짐이 될 텐데... 차라리 나라에 맡겨서 키우게 하는 것이 낫지... 그러나 레나의 부모들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지 않는가? 그런데 이 아이는 오른쪽 발가락을 빨았다고 합니. 아이들이 우유병을 들고 빨지 않는가? 그런데 이 아이는 오른쪽 발에 우유병을 매달아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두 팔이 없고 다리도 한쪽은 반밖에 안 되어 평생동안 휠체어에 앉아서 지낼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레나에게 3살 때부터 운동을 시켰다고 합니다.그래서 운동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애자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4개나 따내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또 레마마리아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였기 때문에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가면 "어이, 외다리!"라고 골리면, 이 아이는, 안녕, 양다리... 하고 맞받아 쳤다고 합니다."너는 왜 팔이 없니? 무척 불편하겠다" 그러면 "그렇지 않아. 난 손이 없는 대신에 발이 있잖아" 하면서 오른 발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고 합니다.결국 그녀는 피눈물 나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 지금은 피아노도 잘 치고--상상이 안 되지 않는가?--혼자서 밥도 하고 요리도 하고 운전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수영도 하고, 성가대 지휘도 하고... 다 발로 하는 것입니다. 발로 밥도 먹습니다.커피도 타서 마십니다. 그리고 발로 화장도 합니다. 누가 따라 다니는 사람 없습니다. 도와주는 사람 없습니다. 발도 한쪽밖에 성하지 않은데, 손이 하는 일은 그 발로 다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스펠 가수로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주고 삶의 의욕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자 하는 어떤 것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여러분 레나마리아가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베드로가 배안에서 배 밖으로 나와서 도전할 수 있었습니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도전하기에 앞서 우리는 선택하고 도전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명입니다.주님의 음성과 뜻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무조건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모험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를 오라 하소서“ 주님께 물었습니다.그러자 주님께서 ”오라“하자 소명을 듣고 도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도전하기에 앞서 모험하기에 앞서 확인해야 할 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특히 고난의 한 중심에 있을때 막다른 상황에서 무언가 선택해야 할 때 우리를 향하여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분명한 음성을 듣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주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경험을 누릴 것입니다.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자들과 경험하지 못하는 자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도전하는 자들이 주님의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모든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소명대로 도전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뜻 때문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지금 어떤 위기가 있습니까? 그 위기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보시면서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위험이 인생의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

30절 “바람을 보고 무서워빠져가는지라 소리 질러”
여기 베드로가 배위를 걸어갈 때 그는 얼마정도 걸어가다 결국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바람을 보고 무서움 즉 두려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내 소리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주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배 안에서 나와 물위를 걸어갈 때 물에 빠지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세상에서 의욕적으로 믿음의 도전을 하다가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실 이세상에 두려움보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반복하여 우리에게 하는 명령이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공교롭게도 두려워말라는 말씀이 366번등장한다는 것입니다. 1년 365일에서 윤년까지 위한 개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같이 믿고 의지해야 할 말씀이 두려워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배안에서 용기있게 나와서 도전했지만 그 앞의 현실은 광풍이었습니다.
그의 믿음과 광풍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지금 베드로 앞에는 주님도 있지만 광풍이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안에서 나와서 물위를 걸어갈 때 당장 현실은 광풍이 더욱 문제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광풍으로 인해서 ‘나는 걸을 수 없어’‘이 광풍 때문에 나는 죽을꺼야“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발자국도 앞을 향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현실은 자신감의 상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영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도전을 했지만 여전히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는데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2학년때 강에서 한번 수영을 하다가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절대로 깊은 강이나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것은 스스로 포기합니다. 저의 작은 경험은 이것으로 다행이지만 인생에서 만일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낭패인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교회 속에서 모진 결단과 믿음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큰 광풍같은 현실을 만납니다. 순간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은 현실을 극복하기에 너무나도 무력하고 힘이 없는 것을 경험하면서 무너져내릴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광풍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의 광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물질의 광풍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의 광풍이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당하는 배신과 상처의 광풍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각자가 말로 할 수 없는 인생의 두려움들을 경험하면서 그냥 현실 앞에서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깊은 실패에 깊이 빠져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차라리 도전하지 말고 차라리 가만있었으면 더 좋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하였다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욱 삶에 상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일까요?
현실의 삶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를 향해 공격하여 오는 숱한 광풍 앞에서 우리는 ‘난 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두려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연약해집니다.그러나 많은 경우에 진정한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실패라는 교사처럼 큰 교사가 없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베드로는 실패의 대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뿐만 아니라 그는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가서는 주님께 십자가를지지 말라고 하였다가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면서 책망을 받는 실패를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기도하러 겟세마네동산에 갔다가 기도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붙잡혀 십자가를 지실 때 3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베드로는 실패를 딛고 위대한 사도로서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베드로대성당이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베드로가 누구보다도 위대한 사도로 인정을 합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많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대사도로 주님 앞에 교회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실패를 허용하십니다. 실패를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일까요? 가령 공부를 하는 학생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이길 수 있습니까? 공부의 실패를 통해서 공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의 실패를 통해서 운동을 배울수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사업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실패를 통해서 믿음을 배웁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광풍 앞에서 두려움을 갖았을때 그는 믿음에서 실패했습니다. 기적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이와 같은 증거와 체험을 통해서 그는 주님을 체험하고 기적을 체험하는데 있어서 온전한 믿음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진정 위대한 성도여 본받아야 할 사람입니까?
종종 두려움의 상황을 만나면 2종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우선 소극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지금 배안에 가만히 있는 11명의 나머지 제자들입니까? 이들은 두려움의 상황에서 포기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아무런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조금도 일어서지 못하고 박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어떻게 보면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적을 맛보지 못합니다.

다음은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베드로는 적극적으로 두려움의 환경에 반응하였습니다.여기 진정 우리가 보아야 할 사람은 배밖에서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성공한 실패입니다.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믿음으로 일어서 도전하기를 바랍니다.나는 자신감도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감도 없고 나는 할 수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일어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성경의 말씀들이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두려워말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분명 “두려움의 폭풍‘앞에서 주십니다. 분명히 눈으로 보면 두려움의 상황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앞에는 거대한 아낙자손이 있고 두려움의 환경이 있는데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 중에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어서 고난의 환경을 보고도 두려워말라고 합니다. 폭풍소리를 듣고 폭풍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믿음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지하는 것들의 실상입니다.주님을 바라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바라는 대로 의지하는대로 우리의 삶에서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고 있는 주님은 어떤 크기의 주님이십니까? 큰 믿음의 사람은 주님이 세상에서 제일 크게 보입니다. 작은 믿음의 사람은 주님이 세상에서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적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주님이 때로는 돈만원보다 적게 보이기도 합니다. 바람보다 적게 배보다 적게 보이기도 합니다.
광풍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어떤 믿음입니까? 주님이 배보다 크시고 바다보다 크시고 광풍보다 크시고 온 천지보다 크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다를 다스리시고 파도를 다스리시고 모든 자연을 다스리시는 분 주권을 가지시는 만유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삶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의 삶에 기대할 수 없는 폭풍이 밀려와도 그 폭풍을 주님이 다스리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폭풍이 주는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3.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지만 물위에서 죽지 않는 것도 기적입니다.여기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바다에 빠졌습니다.그때 상황은 광풍이 불어 역사하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베드로가 그 위기로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위험 속에서 실패 속에서 주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베드로가 그 자리에서 주님께 구한 모든 도움이 바로 기도입니다. 어떤 광풍의 자리에서도 기도하고 기다리면 기적을 낳습니다. 어떤 삶의 어려움의 자리에서도 기도하고 기다리면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도가 기적과 기회를 낳는 통로가 되는 이유가 왜 그렇습니까? 바로 우리 주님은 기도하는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녀들을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바로 주님은 긍흉히 여겨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동정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라고 하면서 기도의 어려움을 말을 합니다. 여러분 기도란 ‘주님께 도와주세요“라고 구하는 것입니다.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드리는 것입니다.그럴때 주님이 찾아와 주시고 주님이 만나주시고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필요를 따라 주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릴때 기도하면 기적을 과연 맛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바다에 죽을 목숨이 주님의 도움을 통해서 살아났습니다. 가령 내가 양식이 없을때 그 필요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 기도하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당장 양식을 내려주십니까? 물론 완제품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시고 양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는가? 기적을 맛보는가?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베드로의 경우에는 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즉시로 응답하여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급할때에는 비상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때에는 아주 늦게 응답하실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기적이든지 어떤 어려움이든지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기까지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고 기쁘게 기다리는 사람이 기적을 체험합니다.

한 부인이 대 오페라 공연 극장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말하기를 지나간 밤 공연장에 갔다가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 브로우치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지배인은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수색 작업 끝에 그 브로우치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전화기로 갔을때 그 여인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는 그 여인이 전화를 다시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라고 말하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와 같은 태도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께 고하고 나서 “수화기를 붙들고 기다리지”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응답받을 때의 기쁨을 놓치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보상과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종종 늦추십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다했는데도 우리가 바라던 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때문입니다.. 우리가 침울해 있거나 죄의속성인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서는 안되며 그가 완전하게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우리의 간구를 그의 모든 지혜 안에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쁘게 기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가는 말 ) 때로 우리 인생에 단 한걸음만 믿음으로 내딛으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 한걸음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일생에 크신 주님의 도움과 기회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