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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두 기둥 (행11:27- 30,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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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덕 목사 (내일교회)

안디옥 교회가 세워짐으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인란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이제 주인의 명령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있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제 모습을 나타내자면 두 개의 기둥이 그 교회를 바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두 기둥은 바로 구제와 선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안디옥 교회는 우리에게 교회의 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배경을 살펴보면

1) 안디옥 교회는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피난민들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19절 [ 때에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 ]
때에 하는 말은 예루살렘에 스테반 집사의 순교로 시작하는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피난민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세운 교회입니다.
신앙은 어디서 자랍니까? 진정한 신앙은 환난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 한국교회만 하더라도 6.25 이후 북에서 피난와서 세운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변할 만큼 성장하고 부흥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서울 충현교회 영락교회입니다.
빈손 들고 시작한 교회들이 완전히 부자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이 교회들이 순위가 바뀐 것 있죠
고난의 일 세대가 물러가니 교회가 점점 신앙이 해이해 지는 것 같아요 나라나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동안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잊어버리면 곧 무너지고 맙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겪은 사람들이 전한 복음 듣고 예수 믿기 시작한 안디옥 교인들이 얼마나 잘 믿었든지 그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해 보니 안디옥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했든지 바나바가 더 할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대로 신앙생활 잘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다소에 있는 사울 즉 바울을 데리고 와 함께 안디옥 교인들을 일년간 가르쳤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안디옥 교회가 행11:27절 이하에 구제하는 교회로, 행13장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의 두 기둥이 있다면 바로 선교와 구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안디옥 교회는 가장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일본에서 개최된 한 집회가 열렸는데 집회의 주제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 였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한 소녀가 주제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어느 봄날 나의 어머니는 작고 보기 흉한 검은 꽃씨를 조금 가져 와 심었습니다. 그 꽃씨는 자라나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그 꽃을 본 이웃 사람이
'이 꽃은 너무도 예쁘군요. 꽃씨를 좀 주시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 이웃 사람이 꽃씨만을 보았다면
그녀는 결코 꽃씨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꽃이 아름답게 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씨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

기독교의 진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환난만 당하고 끙끙 거리고 있었더라면 그 모습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난을 먹고 자란 안디옥 교인들이 구제하고 선교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구제와 선교에 모범을 보일 수 있어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나바가 사울이라고 불리웠던 바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와
26절 [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안디옥 교회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말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답게 성장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성장하였으며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안디옥 교회는 처음부터 지도자를 잘 만나 처음부터 바로 배웠던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어떻게 배우는가? 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24절에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가 안디옥 교인들을 어떻게 훈련시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무리가 더 했고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것은 지금 말로 표현한다면 교인들이 제자훈련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로버트 쿨만>이란 사람이
[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책을 썼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 보면 아주 기본적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물을 꼭 내려라.
균형잡힌 생활을 하라.-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매일 적당히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밖에 나가서는 차조심하라 등등입니다.
그러면서 로버트 쿨만은 이런 말을 합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이란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다. 내가 배운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
안디옥 교인들은 처음부터 즉 예수 믿을 때부터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교회가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이 당연히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1절 말씀같이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하여 은혜를 보여주는 교회였습니다.
구제와 선교는 교회의 두 기둥일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끔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문명의 발전 차이가 20년 난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거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을 갔다 온 후로는
일본 사람들의 공중도덕 특히 친절 면에 있어서 그 말을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20년이 제품 차이가 아니라 정신적 성숙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교육을 새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수 많큼 덩치 값을 못하는 것은 순교신앙을 그대로 전수해 주지 못하고 기복신앙만 전수 해 주어서
복을 많이 받은 한국교회지마는 구제하고 선교하는 일에는 아직 미숙한 한국교회입니다.
사랑하는 내일 가족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구제와 선교라는 나무로 자라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그럼 안디옥 교회가 세우자마자 구제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구제를 하였습니까?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개척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가 부흥한다는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시찰 나온 선지자들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겠다 라고 예언을 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흉년이 들어서 유대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구제헌금을 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전달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면서도 이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어떻게 개척교회가 모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우리 마음을 더욱 감동하는 것은 저들이 힘대로 구제를 위하여 헌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제는 이렇게 힘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요일 철야기도회 때 이훈 목사님이 이런 말하데요
[ 사랑은 두 개중 한 개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한 개를 반쪽 나누어주는 것이다 ]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교수가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번에 걸쳐 기념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그는 돌아가기 전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 몰트만 교수님, 지난 시절을 회고해볼 때 과연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 인생이란 사랑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사랑가운데 거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

성경에 구제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면
결코 남을 유익하게 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잠11:24-25절
[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
행10장에 보면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사람으로서 고넬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운 모델 중요한 인물입니다.
고넬료는 바로 오늘 이방인인 우리의 모델입니다.
행10:4절에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통해 응답하시기를
[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
즉 하나님 앞에 상달될 만큼 구제를 했다는 것입니다.
일년에 수해 나서 구제 한 번 한 것을 말하겠습니까?
성탄절 때 구제헌금 한 것까지고 말하겠습니까?
이것은 고넬료가 기도 중에 성령의 감동이 오는 데로 구제한 것을 말합니다.
구제하는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

1) 성령님이 감동하는 데로
28절에 아가보 선지자가 성령으로 말했다는 것은
바로 안디옥 교회가 아가보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따랐다는 것을 말합니다.

2) 롬12:8절에 [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
즉 구제는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구제 은사를 주신이에게는
재물 얻을 능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래 구제는 기독교에서 처음 실시한 것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라는 배경에서 시작하면서
구제 신앙은 그대로 물려 받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구제는 신앙생황에 최고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유대 경전 토빗서에는
[ 구제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임이요 ] 할만큼 유대교에 있어서 주제는 신앙생활의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동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데 있어서 유대인 만한 민족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교의 회당에는 상례즉인 관습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회당 안에는 구호 징수원리라는 두 직원이 있었는데  금요일 아침이면 시장과 일반 가정으로 돌아 다니며 일부는 돈으로 일부는 물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호품을 거두었습니다.
그 거두어 들인 것은 당일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구호기금을 <쿠파> 즉 <광주리 기금>이라 불렀습니다.
그밖에 긴급구호자들을 위하여 매일 축호모금이 있었는데 이것을 <탐후이> 즉 <쟁반기금>이라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관습을 그대로 받아드렸습니다.
갈2:10절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에게 이방 선교하는 일에 동의를 하면서 한가지 권고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일을 부탁받았는데 이 때 바울이 하는 말이 [ 나도 본래 힘써 행하였노라 ] 고 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문제가 발생했는데
바로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구제를 한 했어가 아니라 구제가 너무 많아서 집사 일곱을 뽑아 구제 전담반을 세웠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안수 집사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집사직의 유래는 구제에서 출발한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선교의 가장 모델적인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렇게 선교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선교라고 하면 먼저 돈을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선교할 때 국가나 교회니 개인에게 경제력있는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러니 선교는 결코 먼저 돈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할 때 경제력 있는 백성이 됩니다.

1. 선교는 무엇보다도 Misso Dei

즉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선교는 교회가 하지만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2절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 고 합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 하나님의 지시로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교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한다는 것은 넉넉해서 여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의 기능이 선교라는 것입니다.
선교신학자 <뉴 비긴>은 [ 선교 비젼을 상실한 교회는 더 이상 그 자신을 신약교회라 칭할 자격이 없다 ] 고 역설합니다.

지금 미국에 스타박스라는 커피 전문점이 급성장하여 기업사상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를 세운 <데이빗 슐츠> 회장은 회사의 성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우리 회사는 항상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 직원들에게 가치관을 새롭게 하고 함께 동반자가 되어 손님들에게 가장 좋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 힘쓴다 ]

이것은 교회의 존재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1) 우리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구제와 선교입니다.
2) 가치관을 새롭게 하여 - 구제와 선교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3) 이 목적의 성취를 동반자가 되어 힘써야 합니다.

2. 3절「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
선교는 기도 없이는 되어질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사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성도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영혼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기 대문입니다
3) 선교는 영적전투이기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교사가 되어 현지에 나갈 수 없더라도
특히 기도로 선교의 동반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의 모델이 된 배후에 <8>
안디옥 교회가 선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다는 것 선교를 바로 이해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유능한 선지자 교사들이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했다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유능한 인물들이 있지만 담임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선교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선교를 남는 여력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는 먼저 하는 것이요 귀중한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이 있어야 합니다만
선교에 대한 확고한 소명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도 순교의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러는 열정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 선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결코 남는 여력으로 하는 선교가 아니라 가장 귀중한 것을 바쳐서 하는 선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 후 순위로 두면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가 선교를 시작할 때 지난번 교회를 지을 때였습니다.
그 때 선교구호를 기억하시죠.
「우리교회 건축하는 힘으로」
「내 혈육 파송한 것 같은 마음으로」
이런 자세 이런 마음이 아니면 선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두 기둥은 구제와 선교입니다.
이 말은 나의 신앙을 바치고 있는 두 기둥도 구제와 선교라는 말입니다.
구제와 선교에 있어서 꼭 구체적인 자기 원칙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1) 구제에 있어서 구체적인 자기 원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난한 여인이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구원의 기쁨을 체험한 뒤에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너무나 문제 투성이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 자기는 이사를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그녀를 잠시 쳐다 본 후에 하시는 말씀이
[ 만일 시청에서 더럽고 추한 거리에 있는 가로등불을 모두 없애고 부유하고 잘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가로등을 세운다면 당신은 시청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목사님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잠시 후에 그 여인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서 대답하였습니다.
[ 나는 지금 이 거리에서 내가 할 일을 알았다. ] 고 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지금 이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을 알았다
나는 지금 이 거리에서 내가 할 일을 알았다
깨달음과 사랑의 수고가 있는 내일의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로 선교를 했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으로 선교를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와 나의 귀중한 것으로
선교에 자기원칙을 가진 내일의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섬기는 마음으로, 내 혈육 선교사 파송한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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