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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일이 있습니까? (약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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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우리가 날짜를 셀 때에 지난날은 어제 그제 그리고 그저께라고 하였고 미래는 내일 모레 라고 하였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만났습니다.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모기가 인사하기를 하루살이야 내일 만나자.  그리고 같이 즐겁게 놀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내일이 없단다.  오늘이 마지막이란다.  그러더랍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분명히 내일이 있습니다.  즉, 영원한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내일이 있다는 말은 1)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이 있습니까? 하는 것은 희망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배우자는 세상을 떠나고 자녀들도 없어 홀로 외롭게 지내는 사람입니까? 배움이 없어 다른 이들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입니까? 건강하지 못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긍긍하면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한 마디로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즉,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에스페런스(Homo Esperans)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희망이 있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희망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삶의 용기와 힘이 솟아 넘칩니다. 모든 불행을 치료하는 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근자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00년도에 1만 1,794명이 자살하였는데 2003년에는 1만 3,005명이 자살하였다는 경찰청의 발표입니다.  더구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검찰수사를 받고 나오면 자살하였다는 소식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2000년도에 100만 명이 한해에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매 4초마다 한 사람이 자살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도 의문의 자살 수가 수없이 발생하여 사회적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홍콩에서도 자살수가 급증하여 자살 방지 대책기구를 발족하여 적극 대처해 나간다고 합니다.  홍콩에서 내세우는 자살대책을 보면 1) 생명존중 운동 전개 2) 자기 행동에 책임지게 하고 3) 가정과 학교에서 대화하게 하고 4) 열 사람이 조를 이루어 대화 훈련을 하게 하고 5) 다른 사람과 희노애락을 공유케 하며 6) 자살하겠다는 심리를 포기하게 한다는 등이 있습니다.  대학교수, 의사, 예술인, 작가, 젊은 학생, 비교적 사회의 지도층의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아니 오죽하면 살기를 포기하겠습니까? 자기가 자살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애통하며 울겠습니까? 그런데 왜 자살합니까? 사회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이 설명하는 자살 동기를 보면 개인의 욕구불만, 직업에 대한 회의적시각, 가족들과의 불화와 관심 결여, 주변 친지들로부터의 소외감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내일이 없다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자살에 대한 대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즉 내일이 있다면 결코 자살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어두움 때문에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어두운 밤은 내일의 새벽을 위하여 반드시 통과하여야 할 과정입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오늘이 있다고 하면 미래의 천국의 희망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  힘있게 살아갑니다.

내일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일이 있지 않아요? 왜 낙심합니까? 내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낙심은 영혼에게 재앙입니다.  낙심하지 않는다.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수없이 다짐한다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나요? 일이 되지 아니하는데 여러분들 중에 하는 일들이 계속되지 않더라고 가정해 보세요.  낙심되지 않을 수 있나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느 전도사님이 믿음 좋은 여자와 결혼을 했답니다.  사모님이 통 하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데 이 통만은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그러더랍니다.  20년 동안 목회 하던 중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통만은 열어보지 말라고 하였으나 20년이 지났으니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은 게 사람 심리 아닙니까? 가만히 통을 열어 보았습니다.  무엇이 들어있나? 계란 3개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돈 20만원이 들어 있습니다.  사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통을 열어보지 말라고 하였으나 궁금하여 열어 보았더니 별 것도 아니구먼 왜 그랬느냐? 계란은 무어냐? 그랬더니 사모님이 당신이 설교할 때 내가 졸았을 때 계란 하나씩을 넣었다고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아니 내가 설교하는 중에 20년 동안에 세 번 밖에 졸지 아니하였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사모님이 은혜 받았다 하면 그 목사님은 설교에 대가 인 셈입니다.  그래 여기 돈 20만원은 뭐야 그때 사모님이 하시는 말 계란 판돈이에요.  설교 잘 못한다고 하면 목사님은 죽을 맛입니다.  그런 말이 들리면 목회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 비난합니다.  그런다고 낙심합니까?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은 말합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핍박을 받아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고 외칩니다.(고후 4:7~8) 

여러분! 다른 사람들이 비난합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그것은 삶에 함정입니다.  패배하게 하려는 사단의 모략입니다.  오늘이 힘듭니까? 내일을 기대하세요.  내일이 있지 않나요? 어느 신문 칼럼을 보니까? 남성들이 갖는 일곱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어머니에게 매이는 마더 콤플렉스이고 2) 능력이 뛰어나야 조직사회에서 처지지 않는다는 능력 콤플렉스 3) 남자는 무조건 커야 한다는 크기 콤플렉스 요즈음 말하는 몸짱 콤플렉스입니다.  4) 고구려 온달처럼 처가 덕을 보려는 기대심리가 있는 온달 콤플렉스 5) 아내와 자식들에게 존경받아야 한다는 가장 콤플렉스 6) 지위나 금전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허세 콤플렉스 7) 한 여성만이 아닌 여러 여자들을 알고 싶어하는 카사노바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됩니까? 집을 나가면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나는 능력이 모자라는구나.  나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구나 라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면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때에 아내의 따뜻한 위로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집에 들어오면 바가지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무능한 줄 몰랐어요.  실망했어요.  그것은 남편보고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때 여보 우리는 내일이 있잖아요?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위로와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내일이 있는 사람은 힘있게 삽니다.

2.  내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나 연극에서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습니다.  조연이 더 잘함으로 그 영화나 드라마를 더 좋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조연은 주연하는 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그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죽지 아니 합니다.  주인공이 죽으면 영화는 끝입니다.

내일의 주인공은 분명한 삶에 목표가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지 아니합니다.  과거를 돌아봅니다.  왜 역사에 비극이 왔던가? 서로 물고 먹고 파당의 골이 깊어지고 복수하는 정치가 있을 때 잘되지 않았다.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미래 내일의 주인공들은

(1) 가슴이 희망과 사명으로 뜨거운 사람입니다. 

(2) 역사의 주인공들은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3) 그리고 항상 큰 그림을 그립니다.  설계도가 커야 큰집이 되듯이 마음에 비전이 커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아니 합니다.  자신이 배신을 당해도 내일을 위한 설계와 방향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5) 무엇보다도 정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즈벨트 대통령하면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의 대공황을 뉴딜 정책으로 극복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미국의 유일무이하게 4차례나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어릴 때에 소아마비로 인하여 휠체어를 타고 자유세계를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미국 사람들의 머리에 남은 것은 가장 정직한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내일이 있다면 그 날에 주인공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삶에 분명한 의지가 있는 이들입니다. 

(6)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하는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열정은 사명과 흥미가 포함되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병들었어도 자식을 대학교 졸업 시켜야 한다는 열정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질병에서도 이것을 극복하고 성취해 가는 이들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고난도 슬픔도 개의치 않고 전진하는 이들입니다.  오늘의 어두움에서 내일의 광명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워 가는 이들이 바로 내일의 주인공입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역사의 무대 앞에 꼭 바로 설 수 있는 내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내일이 있는 사람은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날마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즐기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미식가들은 어디에 무슨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찾아다닙니다.  종말의식을 가진 이들은 철저한 준비를 하고 삽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요? “주님 감사합니다.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을 위한 철저한 준비는 무엇입니까?

1)예수 믿고 구원받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때 나는 천국 갑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이 오면 구세군 자선 남비가 등장합니다.  유명한 대학교의 총장이 크리스마스에 구세군 자원 봉사자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그가 자선 냄비에 돈을 넣으려 하자 자원 봉사하는 여인이 물었답니다. “선생님 구원받았습니까?” 그는 “아마 구원받았을 겁니다” 라고 대답하는데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다시 묻습니다.  “제 말은 주님께 전적으로 삶을 드리셨나?” 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자 총장은 자기 신분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러 이러한 대학교의 총장입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녀는 묻습니다.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구원받으실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증거가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는 자녀의 권세로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아십니까? 아시겠지요.  그런데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분을 “나의 구주” 라고 시인하십시오.  예수는 나의 구주입니다.  예수를 구주라고 시인하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주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나는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으로 모시어 들여야 합니다.  그때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십니다.

2)분명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친 죄의식을 갖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어떤 이 는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회개해야 하지요.  회개하였는데 용서받은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일이 잘못 되면 나는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되나 하는 죄책감을 갖는 이가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죄로 인하여 환란이 오거나 질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라는 사인입니다.  즉시 회개하면 더 큰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회개는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죄는 즉시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를 태양처럼 밝고 명랑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되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미래의 꿈을 무너뜨리거나 자신감 상실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한 죄는 다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받았기에 범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라도 죄를 품고 잠자리에 들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회개는 전에 내가 좋아하고 즐기던 일을 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거룩한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 죄를 비통하게 생각하고 주님께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한 죄된 행위를 다시는 그런 행동을 말고 새로운 교회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루를 마감하면 더 좋은 일이 있어질 것입니다.

3)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주님 앞에 갈 때에 주께서는 두 가지를 물으실 겁니다.  “너는  믿고 구원받았느냐” 하는 것과 두 번째 질문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라는 행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는 흔히 행위 심판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건강하십니까? 건강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지금 소유가 있습니까? 그 소유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내일이 있기에 꿈이 있습니다.  그 대신 내일에 대한 목표도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람은 사명적인 존재입니다.  사명을 다할 때에 가치 있는 삶이 됩니다.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면서도 노력하지 아니한다면 결과는 없습니다.  미래에 꿈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 한 게 없다면 꿈이 없는 사람과 같아집니다.  미래가 없다 꿈이 없다는 것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전이 있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면 같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비전(Vision)과 프로 비전(Provision)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 성장하는 교회는 비전과 더불어 노력과 희생을 투자합니다.  꿈(dream)이 있어야 하고 땀(dedication)과 그리고 힘(dynamic)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에 헌신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집중적인 헌신을 하여야 합니다.  내일 주님을 만날 때에 “잘 하였도다” 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겁니다.  내일이 있는 우리가 오늘 할 게 무엇입니까? 성실하여야 합니다.  잘해야 합니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이발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발이나 하고 가자 생각하면 이발소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 앞에 글이 써있습니다.   내일은 무료입니다.  이걸 본 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내일하자 내일은 공짜다  하루동안 기다렸다가 다음날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합니다.  다하고 나니까 주인이 요금은요? 라고 말합니다.  아니 내일은 공짜라고 하여 어제 왔다가 다시 온 겁니다.  문 앞에 써있는 글은 무어냐 라고 항의하였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식으로 이발소 주인은 손님을 밖으로 끌고 가서 글을 보게 하였습니다.  여전히 내일은 무료입니다 라고 써있습니다.

내일은 공짜로 살라고 주어진 게 아닙니다.  오늘 사명을 수행합시다.  의미 있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 그 날에 주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삶이 되게 합시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그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자랑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나약한 삶이 아닙니다.

내일의 주인공이 되는 준비를 바로 합시다.  내일을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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