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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토기장이 손 위의 진흙처럼 (렘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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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안창국 목사 (새비전교회)

  새해가 되면 바뀌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달력들이 바뀌지요. 일기장이 바뀝니다. 그리고 흔히들 다이어리(diary)라고 부르는 손에 들고 다닐만한 수첩들이 바뀝니다. 그리고 이 사무용 다이어리에는 새로운 계획표들을 빼곡히 기록합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이 사무용 다이어리에 주소록을 옮겨 적고(물론 요즘은 전자수첩이나 핸드폰의 주소록 기능이 있어서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표시하고, 한 해 동안 해야 할 일들과 목표하는 일들을 기록합니다.

  기록하든 기록하지 않든 간에 사람들은 올 한 해 동안 해야 할 나름대로의 목표와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지는 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말 그대로 “나름대로” 계획표를 짜 나갑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 줄 아십니까? 오늘은 이러한 우리의 교만을 부셔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는 참 교만하게도 하나님을 위해 이것저것을 하겠다고들 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전도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워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이렇게 내가 섬길 것이다. 찬양팀으로서 이렇게 예배에 봉사하고, 집사로서 이렇게 봉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며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웁니다.

  이것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계획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우리들의 계획이 앞서가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어떠한 일을 시작하려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그런데 종이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주인이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일해 간다면 주인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물론 묻지도 않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그만큼 주인을 잘 아는 종이지요. 그러나 충직한 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토기장이의 비유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많이 식어졌습니다. 나태해졌습니다.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있었습니다. 형식에만 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앙의 본질을 찾아가기보다는 “나름대로”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모습을 보게 합니다. 토기장이가 녹로(轆轤; wheel)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진흙으로 그릇의 모양을 만들어가다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진흙을 주물러 부순 다음 다시 주물럭거려 다시 그릇을 빚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토기장이의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교훈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의 핵심 내용은 어떤 그릇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만드는 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4절).
  내가 어떤 일을 하겠다, 무엇이 되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견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계획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4절의 말씀처럼 파상(破傷), 즉 깨뜨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토기장이들이 자기를 구워내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잘 만들어지면 괜찮지만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불에 구워 완성된 그릇인데도 집어던져서 완전히 부셔버리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저 다른 그릇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냥 부셔버리더라구요. 저에게나 주면 요긴하게 쓸 텐데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져 있습니다. 내 뜻대로 우리의 삶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사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예전,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학비를 버느라고 군고구마 장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은 고구마를 구해 와서 아무리 맛있게 고구마를 구워내고, 열심히 불을 지피며 군고구마 하나를 팔려고 해도 잘 팔리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자녀 교육에 대해서 배우고 자녀양육에 열심을 내도 자식이 부모 뜻대로 잘 커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농사를 지었는데도 흉작이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어떠한 계획을 진행함에 있어서 환경과 조건이 모두 좋은데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계획대로만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해의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 인생의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럼, 올 한 해의 계획을, 우리 인생의 계획을, 우리 교회의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1. 먼저 교회를 향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는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님을 봐야 뽕을 따지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하나님의 계획을 들을 수가 있지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어떻게 가지시겠습니까?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깊이 묵상하십시오. 깊이 묵상을 하는 것은 되새기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꾸 곱씹는 것입니다. 가볍게 듣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생각하며 자꾸 내게 주시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설교에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은 설교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집중하여 들으십시오. 가능하면 기록하면서 들으십시오.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과의 정기적인 만남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루하루를 그냥 지나쳐 사는 사람과 경건의 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천양지차가 될 것입니다. 매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과 깊은 교제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그 계획에 우리 교회의 계획을, 내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언제나 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유용한(available),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그물을 버리고 따랐던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그것은 과감한 결단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밥벌이가 되는 그물을 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련하게 자기의 것들을 고집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피조물에 불과한,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의지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욥은 당대의 부자였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욥기 17장 11절을 보면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라고 욥이 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최고의 부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재물과 쾌락과 즐거움, 권력 그런데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3절을 보면 그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권명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9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잠언 19장 21절에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완전해 보여도 결국은 전능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보다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 우리의 계획을 언제든지 조정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 자신이 드려져야 합니다.

  즉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최고 표현은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헌신은 곧 희생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드리지 않습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전적인 위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면서도 항상 일부는 남겨놓습니다.

  여러분, 모두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두 주십니다. 이것은 패러독스(paradox; 역설; 逆說)입니다. 움켜쥐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놓을 때 쥐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everything)을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에 따르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뭔가 잘못될 것 같은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으면 떠오르는 또 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후서 2장 20절, 21절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볼까요?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은 곧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예쁜 커피 잔에 아기의 오줌을 받아낸다고 커피 잔이 주인에게 항의할 수 있습니까?

  21절에 보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그릇이나 은그릇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귀히 쓰인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재질이나 형태에 관계없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주인이 사용하기 힘듭니다.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귀하게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결하고,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귀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히 쓰인다는 말은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게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쓰시고 싶은 데에 시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담고 싶은 것을 포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십니까? 우리의 계획들도 많고, 끔도 많지만 그것들을 하나님의 잣대로 다시 재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감각해진 것을 버리고 민감해 지십시오.
  말씀하시는데 “난 못해,” “난 내 맘대로 할래,” “난 이것이 좋아”하며 조정하고 싶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는 헌신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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