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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일생(5) : 위대하신 하나님 (삼상 17:23~27, 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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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다윗 하면 얼른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일학교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이야기이죠. 심지어 불신자들도 잘 알고 인용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너무 유명한 이야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익숙한 나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버리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작은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물 성경공부를 할 때 주의할 사항이 바로 이겁니다. 스토리 중심으로 이해하다 보면 그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인물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다윗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앵글을 맞춰야 합니다. 인간은 다 연약합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위대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을 붙드시고 역사하셔서 위대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위대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활동상을 보기 전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위대한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위대함의 원인이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 위대함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디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위대하신 하나님 때문에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다윗의 겉모습 : 거인 앞에 선 애송이

다윗은 그 당시 군대도 못 갈 정도로 어린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이새의 아들 8형제 중 말째였고, 맨 위로 형 3명만 군대에 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형들 면회 갔다 오라고 해서 음식 배달 차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습니다. 겉보기에 다윗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가 봐도 무시할 만한 존재입니다. 특히 그가 골리앗과 싸워 보겠다고 나설 때 당연히 웃음거리였습니다. 특히 장형 엘리압은 가소롭다 못해 화를 버럭 냈습니다. 28절. “ ...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블레셋 군대에서도 가장 용맹스러운 장수입니다. 4절 보면 그를 가리켜 ‘싸움 돋우는 자’라고 했는데 일종의 대표 선수 즉 간판스타인 셈입니다. 당시 블레셋과 이스라엘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대번에 전면전을 하지 않고 골리앗이 대표로 나와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대표끼리 싸워서 승부를 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의 위용이 대단해서 이스라엘 쪽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왕이 승리자에게 포상금까지 걸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골리앗의 위용이 어땠습니까? 4절~7절. 신장은 2m 80cm(6규빗 한뼘)이었고, 놋투구를 착용했고, 어린갑(물고기 비늘무늬의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57kg(5천 세겔)였고, 놋경갑(다리 보호대, 각반)을 착용하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착용했습니다. 창은 얼마나 큰지 창날만 7kg(600세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방패든 자(호위병)가 앞에서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으름장을 놓으니 이스라엘 군대 중에 누가 감히 나서겠습니까? 모두 다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11절.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한 마디로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등장한 겁니다. 다윗은 기어코 자기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주장합니다. 다윗이 하도 우기니까 누군가 사울 왕에게 보고합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사울은 그를 불러들였는데, 막상 보고는 실망합니다. 33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하지만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냅니다. 드디어 골리앗에게 나아간 다윗! 그런데 골리앗 앞에 선 그의 모습이 가관입니다. 사울이 빌려준 갑옷도 벗어던지고 칼도 차지 않은 채 물매(돌을 던지는 도구), 막대기(일종의 곤봉), 돌멩이 다섯 개만 달랑 갖고 갑니다.(40절)

그 모습을 본 블레셋 사람들과 골리앗이 가소로워 하면서 조롱합니다. 42절.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절~44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이럴 때를 두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인 앞에 선 애송이! 그것이 다윗의 모습이었습니다.

[2] 다윗의 승리 : 거인을 이긴 ‘작은 거인’

이제 다윗과 골리앗이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승부가 싱거우리만치 쉽게 나고 맙니다. 물론 다윗의 승리였죠. 48절~49절.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거인이 이마에 돌을 맞고 꽈당 하고 엎드러집니다. 블레셋 군인들도 혼비백산하여 다 도망했습니다. 완전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작은 사람이었지만 분명 골리앗을 능가하는 거인임을 나타낸 쾌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 봅니다. 작은 거인! 다윗은 거인을 누르고 이긴 ‘작은 거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세계 물매 돌 던지기 챔피언이라서 그랬나요? 물매 돌 던지는 기술이 대단하기는 하죠. 그러나 그 기술 때문이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이전에 담대한 용기 때문입니다. 만일 용기가 없었다면 나설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황당한 일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무모할 정도입니다.

여러분, 과연 그 엄청난 용기가 어디서 생겼을까요? 이것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즉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윗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가 믿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앙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위대하셔도 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신앙은 능력이 흘러들어오는 통로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수원지에 물이 엄청나게 많아도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지 않으면 그 많은 물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늘 위대하시지만 불신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신자라고 할지라도 신앙이 흐리멍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좀처럼 나타나질 않습니다. 히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갔다 내려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동안 산 아래서 머물던 제자들이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사연인즉슨 한 사람이 간질병 걸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채 절절 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와서는 한심해 하시면서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셨고, 간질병이 곧 나았습니다. 나중에 조용해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은 왜 못 했나 질문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다윗은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신앙 때문에 그는 담대한 용기로 나설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연약한 인간이요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그의 신앙이 ‘큰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3] 다윗의 신앙 :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다윗은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까? 그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골리앗이 대단해도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의 신앙 고백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 36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 37절.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 50절. “ ...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오직 다윗의 무기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늘 살아계셔서 자기와 동행함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시편에서도 나타납니다.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20: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그랬기에 다윗은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은 다윗에게 닥쳐온 첫번째 시련이며 위기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꽃이 피기도 전에 꺾여버리는 나무처럼 비참한 운명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이 그 위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위기는 ‘위대한 기회’입니다. 신앙의 결단으로 반응할 수만 있다면 위기는 엄청난 축복과 영광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가 닥쳐올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가 나타납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

진정한 신앙은 결단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하나님께 올인(All-In)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어떤 난제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천하무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능력이나 세상 것들을 의지하는 사람은 백전백패입니다. 하나님의 수학 공식 1 + ∞ = ∞, 1 - ∞ = - ∞를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1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작은 존재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면 무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인간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무한 실패입니다.

[4] 우리의 신앙 결단 : 위기 앞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기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 중요한 신앙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① 최선을 다하되 세상을 의지하지 맙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앙은 불로소득이 아닙니다. 인간의 최선을 다하되, 그것으로 불충분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되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할 때가 옵니다. 나의 조건을 자랑하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다가와서 나를 무시합니다. 그러면 나는 멸시당하고 망하는 겁니다.

사울의 예를 보십시오. 그는 백성 중에서 키가 크고 준수한 인물입니다. 정쟁에서 승리한 경험도 많습니다.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골리앗이 나타나니까 쪼그라들고 두려워합니다. 세상 자랑은 별게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세상의 인간이나 재물을 의지하자 말라고 당부합니다. 잠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시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잠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②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한 용기를 가집시다!

하나님이 가장 크시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담대한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어느 초등학생 이야기입니다. 평소에 동네에서 덩치 큰 중학생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동네를 지나갈 때는 늘 불안해서 떨며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도 검은 띠 삼촌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함께 동네를 지나가다 그 중학생을 만났습니다. 하나도 안 무서웠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 꼬마가 중학생에게 다가가더니 손바닥으로 등허리를 탁 칩니다. 중학생이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우람하게 생긴 검은 띠 삼촌이 함께 있었거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우리의 배경(빽)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빽 없어도 가장 큰 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되는 겁니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더욱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조차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

③ 연약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하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때때로 연약해지면 두렵고 답답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때가 오히려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날 기회입니다. 육체의 가시로 시달리던 바울이 기도하다가 응답받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래서 바울은 완전히 태도를 바꿉니다. 고후12:9b~10 “ ...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약할 때 강해진다는 원리, 이것은 오직 신앙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묘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동서남북 사방이 막혀있어도 제5방향은 열려 있습니다. 곧 하늘입니다. 어느 집사님 댁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불신앙이었을 때 한번은 부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잘 되던 사업이 갑자기 기울었고, 이제 다음 날이면 부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숨만 쉬며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사방이 다 막혀도 하늘은 열려 있잖아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다 해봤잖아요. 이제 하나님 바라봅시다!” 놀랍게도 그 말이 남편의 가슴에 꽉 박혔습니다. 그 후로 신앙이 생겼고 사업도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실진대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합시다. “하나님 살아계신데, 뭐 ~ ”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약할 때는 오히려 겸손하게 무릎 꿇을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사실 위험할 때는 형통할 때입니다. 교만하게 하나님을 멀리 하다가 크게 망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인간은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비록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위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위대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 모시고 위대한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위대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 동일하게 역시 위대한 인생,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부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래서 항상 승리하시고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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