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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궁극적인 해결법 (빌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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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여의도제일교회)

어느 대학원에서의 일입니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는데 담당교수가 칠판이 문제를 적으면서 연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이 문제들을 잘 보십시오. 아주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동안 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했으나 도무지 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1시간동안 이 문제들과 씨름해 보십시오!」

교수의 의도는 문제를 풀어보라는 뜻 보담 학습태도에서 씨름할만한 열정을 주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끙끙거리며 풀기를 애쓸 때 한 10분 늦게 들어온 연구원이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 연구원이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풀 수 없는 문제이다」했던 담당교수의 설명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1) 부정적 시대

우리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방법이 없다」고 한 적이 너무 많습니다.
요즘은 더욱 그런 시대입니다.

◦ 시국이 좋지 않다.
◦ 경제가 어둡다.
◦ 희망이 없다 등등…….

이러한 부정적 탄식과 평가는 전 사회에 미치고
결국 좌절과 실망만 엄습합니다.

한 예로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이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져서 자살률 14% 넘는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러한 때에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 길 있습니다.
◦ 방법 있습니다.
「막연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식이 아니라 구체적 해결법이 있으니 용기와 희망을 갖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과 사회에
◦ 평안의 메신저!
◦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야 됩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사도바울의 「희망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유라굴라 라는 큰 태풍을 만나 모두가 죽게 되어 구원의 소망이 없을 때
오직 사도바울만이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행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니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희망이 무엇입니까?
평안이 무엇입니까?
희망은 하나님이시오
평안은 성도라는 신분입니다.

이 희망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 평안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2) 탁월한 기독교

여러분은 우리의 기독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아니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까?

◦ 기독교란?
  하나님께서 내 안에 혹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이 땅위에서 이루시는 능력의 활동입니다.

즉 이러한 활동은 인간 편에서의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선하신 활동들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누가는 이 활동을 사건으로 보았고 복음으로 기록했던 것입니다.

  눅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이것이 기독교가 여느 종교와의 차별이고 우월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그리스도인들은 여느 종교인들과 엄격히 다릅니다.
저들은 어떤 자신들의 종교적 이론이나 교훈을 따라 자신들의 실천적 의지로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과 활동을 믿음을 따라 받아 드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모든 것을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느 종교에 비해서 적극적이며 사실적입니다.
즉,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 관계를 맺은 것이고
◦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그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일치와 연합을 의미합니다.

3) 실제적 증거

여기에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마치 잉태한 산모에게는
산모만이 갖고 있는 잉태 비밀이 있고,
산모만의 입 덫과 태동의 증거가 있듯이…….

하나님 생명 주입과 예수님과의 연합 증거가 꼭 있는 것입니다.

  요1서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1서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방법이 없다고 합니까?
왜 절망을 느끼고 낙심합니까?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마귀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성도는 살 희망을 갖고 마음을 갖습니다.

  빌 4:7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해 마십시오.
문제 해결은 아직 안 될 수 있고
기도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먼저 하나님은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평강」으로 지키고 채워서 희망 속에 인내하며 최선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얼마나 세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루시는지요!

똑 같은 빌립보감옥에서
어느 죄수는 창살을 보고 절망을 느끼지만,
어느 죄수는 창살 너머 하늘을 보며 희망을 느꼈습니다.

똑 같은 위기의 폭풍 속에서 사공과 군인들은 깨어지는 배를 보며 죽음을 느꼈지만,
그 틈에 묶인 성도는 곁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내일을 보았습니다.

이 특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느 특정인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이 도둑맞고 경황이 없어 본성적으로 의왕좌와 할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할 수 있는 이 사람,
하늘 가족이며
하늘 시민권자 입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따라서 이들에게만 천국경호원이 붙습니다.

  히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4) 보장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언뜻 들으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의 고백은 당돌하고 교만함으로 비추어 집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한다면 가장 겸손한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고백은 가장 당돌하면서도
      가장 겸손한 만큼
기독교의 대표적 생활 고백이고 모든 성도들의 실천고백이어야 합니다.

물론 나 혼자라면 약하고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그러나 능력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말은 혼자서는 닭도 겁내고 개에게도 쫓깁니다.
그러나 마부만 앉으면 군대를 향해서 돌격하고 강도 건넙니다.
제일 용맹한 동물이 됩니다.

지금 우리네가 당면하는 국가적 상황은 나쁩니다. 점점 어둡습니다.
또한 개인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낙관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이렇게 나아간다면 비천에 처할 수 있고 궁핍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런 해결법이 없습니다.
오직 평강의 하나님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만이 일체의 비결이 되십니다.

이 비결에 붙잡히고 머무는 일은 「주안에 거하는」인격이며 삶입니다.
그러므로
① 주님을 떠난 자는 돌아와야 됩니다.
주님과 더 접촉하고 더 교제 유지를 힘쓰는 일입니다.

② 삶의 경건을 이루서야 합니다.
건강에도 규칙과 비결이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적게 잡수고 많이 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규칙보다 평소 바른 생활이 있어야 되듯이
주안에 거하는 능력의 삶에는 능력 받기를 원하고 금식 기도하는 영적 규칙보다 평소의 영적 바른 생활입니다.

  빌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등

미국의 남북전쟁시
남군도 승리를 위해서 기도했고,
북군도 승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서로가 하나님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승리는 북군이 했습니다.

링컨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하는 믿음 외에 「우리는 하나님 편이다」하는 믿음을 앞서 갖고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온갖 세상만사의 궁극적인 해결법이 무엇입니까?
「주 안에」온전히 거하는 일입니다.
이 모습은
나는 가만히 있고 주님 혼자 활동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힘을 갖고 주님 안에서 내가 헤쳐 나가는 멋진 일입니다.

우리 삶의 후원자는 주님이시고 개척자는 나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빌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고백은 단순한 희망 고백만이 아니고 실제 경험된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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