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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혀를 다스리는 신앙인 (약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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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보통 사람처럼 세상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삶의 가장 큰 표시는 입술의 사용입니다.

이전에 원망과 불평, 조소와 욕설, 비방과 저주를 늘어놓던 입에서 감사와 찬송, 격려와 칭찬, 기도와 축복이 터져 나온다면 그는 분명히 새로운 삶의 길로 접어든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혀는 지금 어떤 내용을 담아내고 있습니까? 자동녹음기로 요즈음 여러분의 말을 녹음해서 분석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요?

지난 주일 우리는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신앙인의 혀의 통제 문제를 원론적으로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혀를 다스리는 신앙인’#이란 제목으로 신앙인으로서 혀를 다스리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봅시다.

사람은 모두 실수합니다. 그래서 실수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용서는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매사에 실수를 하지만 어떤 실수보다 빈번한 것이 말의 실수입니다. 달리 말 해 혀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일 이 문제를 원론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번 주일에는 하나씩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열두 절을 한번 분석해 보십시오. 처음 두 절은 전체적인 선언입니다. 3-5절의 상반 절까지는 혀의 위력에 대해서 설명하고, 5절 하반 절부터 8절까지는 혀의 속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9절부터 12절까지는 혀의 기능을 말해 줍니다.


#1. 우선 혀의 위력부터 살펴봅시다.# 조그만 혀가 가지는 엄청난 위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야고보 선생은 여기 두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입니다.# 말이 길길이 날뛰지만 일단 그 입에 재갈을 먹이게 되면 마부는 그 말을 통제 할 수 있게 됩니다. 말의 덩치에 비해서 입에 물리는 재갈은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마부는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혀도 그와 같습니다. 작은 혀를 통제하면 온몸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혀를 재갈 먹이지 못할 때에 인생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야생마와 같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말의 입에 재갈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재갈을 물린 말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통제된 혀는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 할 수 있습니다. 삶에 커다란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비유는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배를 상상해 보십시오. 엄청난 크기의 배라도 #선미에 붙어 있는 작은 키#로서 그 배의 방향을 움직입니다.

광풍이 부는 바다에서도 나아갈 항로를 결정하게 하는 것은 배 뒤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키입니다. 그 작은 것을 가지고 큰 배가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키로서 사공은 큰 배의 방향을 자기 뜻대로 결정합니다.

인생의 항로도 그와 같습니다. 인생 항로도 결정적인 수정이 여러분의 입안에 있는 혀로서 가능합니다. 어떤 인생은 혀를 잘못 사용해서 난파선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인생은 혀로 인해서 쉴만한 항구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든지 네 말로 정죄함을 받든지 할 것이니라”#

여러분의 인생 항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익숙한 죄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는 그 길로 치 닫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는 그 길로 치닫고 있습니까? 아니면 키를 사용해서 선채를 돌려보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험한 풍랑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삶에는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는 안식의 포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키로서 사공은 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혀로서 여러분의 인생 항로는 수정될 수 있습니다. 태어난 그대로 본성을 따라 살면 파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만이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키로 큰 배의 항로가 수정되듯이 지극히 작은 혀의 고백으로 인생 항로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품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내 뜻대로 항해하는 길은 외롭고 고달픈 항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진로가 수정된 사람은 복되고 평안한 포구로 나아갑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순간에 여러분의 인생 항로는 바뀌어 집니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되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의 입에 재갈처럼, 큰 배의 키처럼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해 냅니다. 인생 항로 전부가 수정되기도 하고 난파 할 수도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큰 유익을 가져오지만 잘못 사용하면 그보다 큰 비극은 없습니다.

혀를 잘 다스리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혀의 위력을 알아야 합니다. 혀는 전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 혀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악 해야만 합니다.# 본문 5절 하반 절에서 6절은 그 혀의 속성 일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꽃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큰 수풀을 태우는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혀는 불과 같고 악으로 가득 찬 세계와 같습니다.# 혀는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전 생애를 불태우며 끝내는 혀 그 자체도 지옥 불에 타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 성경은 #혀의 파괴적인 위력#에 대해서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워 버리는 것처럼 한마디의 말이 많은 인생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가져다줍니다.

미친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은 그래도 낫습니다. 가까이 가는 사람만 다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으로 내뱉은 한마디의 말은 그 현장에 없는 사람도 다치게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한 마디의 말로 그동안 세운 것을 허물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고란 수고는 다하고, 희생이란 희생은 다하고 나서 참지 못하고 뱉은 한마디의 말 때문에 그 동안에 세웠던 공든 탑을 다 허물어 버립니다.

참지 못하는 한 마디의 말은 여러분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수년간 걸리는 작업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파괴시키는 것은 한마디의, 한 순간의 말로써 충분한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지간도 그렇고 어머니와 딸 관계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형제지간, 친구지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친척 관계도 보십시오. 수고라는 수고는 다했고 명절, 기일, 좋은 날, 나쁜 날 모두 다 찾아 봤지만 한마디의 말로서 그 관계가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서로 참지 못하고 내뱉는 한마디의 말로서 겉잡을 수 없는 불길 속에 인생을 내던질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지 못하는 한마디의 말은 그 깊은 관계까지도 종지부를 찍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관계가 절제하지 못한 혀에서 나온 한마디의 말로서부터 끝장을 봅니까? 부부 관계가 파괴되고 가족 관계가 허물어 내리고 모든 인간관계가 무너져 내립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숲을 태우듯이 여러분의 한마디의 말이 여러분의 생애에 두고두고 타오르는 재앙의 불길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생의 바퀴를 태운다고 표현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전인격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의 더러운 말은 여러분 자신을 더럽힙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내뱉는다고 생각 하지만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는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여분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폭로시키기 때문입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쉬지 않는 악이며, 죽이는 독이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절제하지 않는 혀는 끊임없이 쏟아 붇고 있는 악과 같습니다. 그저 오물이 강으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더러운 말이 입에서부터 튀어 나올 때는 그건 악의 출구입니다. 악의 원천입니다.

그것이 생의 바퀴를 불사릅니다. 생의 바퀴란 인생 전부를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인데 출생해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마지막 죽음에 이르는  전체 인생을 다 허물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전 생애가 한마디의 말로 인해서 불타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불은 지옥에서 치솟는 불길이라고 말합니다. 지옥에서부터 옮겨 붙은 불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혀까지도 태우고 마는 지옥 불’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혀의 속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이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온갖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바다 생물은 사람에게 의해서 길들여지고 또 길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짐승들을 어떻게 길들였는지 여러분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서커스에서 가서도 볼 수 있고 해양 전시관에도 가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돌고래가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물고기가 얼마나 조종에 의해서 날렵하게 움직이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덩치의 코끼리도 길들여지고 사자도 길들여지지만 혀는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독 인간의 혀만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바람이 불 때에 타오르는 불길을 한번 보십시오. 누가 그것을 감히 제지할 수 있겠습니까? 분이 가득해서 내 뿜고 있는 악담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것을 감히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정말 쉬지 아니하는 악이란 표현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만난 배우자를 향해서 저주하는 욕설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자기가 낳은  자녀를 향해 퍼부어 대는 저주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정말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3. 마지막으로 혀의 기능을 살펴보십시오.#

혀를 하나님께서 왜 주셨을까요? 물론 혀를 가지고 밥 먹는데도 씁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지요. 혀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혀를 먹을 때만 쓰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말 할 때도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혀로써 말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상한 특권 아닙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도 말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 생각을 담아 낼 수 있습니다. 입 다물고 있으면 2등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입을 열면 속의 생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등도 할 수 있고 꼴등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을 바깥으로 담아내는 도구가 됩니다. 말은 안에 있는 속사람인 자기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가장 고차원적인 혀의 사용은 하나님을 칭송하고 노래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복되다고 찬송하는 그 입으로 하나님 모습대로 지음 받은 동료 인생을 향해서 욕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혀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혀 가지고 외롭고 고달프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료 인생을 향해서 격려하고, 축복하고, 세워주고,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이 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서로 돕도록 주셨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향해서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을 향해서 욕하는 것을 들어보셨지요? 들어보기만 했습니까? 그렇게 행동하기도 하셨지요?

혀는 정말 쉬지 아니하는 악입니다. 인간의 모든 수양과 교양은 자신의 혀 하나도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적인 기능 대신 혀로써 온갖 역기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마디 말을 잘못해서 가정만 파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가 시끄럽고 나라간의 전쟁도 터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더러운 욕들을 제거하십시오. 찬송하는 입에서는 욕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찬양대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한 주간 살면서 입에서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악보만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하는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기도하고 여기서 찬송했다면 나가서 살 때에도 우리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등산하다가 목마르면 샘물을 찾지요. 그러나 어떤 샘물도 더러운 물을 뿜어냈다가 좋은 물을 뿜어냈다가 그러지는 않습니다. 지상에 온갖 종류의 수목들이 있지만 한해는 감이 열렸다가 다음에는 배가 열리고 그런 나무는 없습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어떤 무화과나무도 거기 무화과 열매를 맺는 것이지 거기 감람 열매가 맺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열매가 맺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그 나무를 이름 짓지 않습니까? 감이 열리면 감나무라고 부르고, 배가 열리면 배나무라고 부르는 것 아닙니까? 포도가 열리면 포도나무라고 그러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 그것이 여러분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입의 말에 따라 결정됩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표현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오는 말이 깨끗해야 됩니다. 쓰는 글이 깔끔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아담의 죄로서 더럽혀져 있다면 튀어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입에서 욕이 나온다는 것은 상습적으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오는 욕이 내뱉은 후에 여러분 자신을 괴롭히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먹칠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기 때문도 아닙니다.

욕이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욕이 나오면 여러분 안에 더러운 것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제되지 않는 혀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와서는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고 집에 가서는 형제 자매를 향해서 심한 말을 내 뱉는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부른 찬송이 진실한 것이라면 예배 후에 나오는 말들이 깨끗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말이 바뀌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얼마나 성숙한 성도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하나님 내 입에다 제발 파수꾼을 하나 세워주십시오” 나쁜 말, 더러운 말 나가지 않도록 초병이 앞에 서 있으면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초병 하나 세워주십시오. 그것이 시인의 기도였습니다. 얼마나 고민이 되었으면 “내 입에다가 파수꾼을 세워주십시오”그랬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입에 나오는 말 때문에 고민해 보셨습니까?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십시오” 이게 성도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고민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사람입니다.

밖에 나와서는 신자처럼 처신하고 집에 가서는 마귀할멈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회중에서 기도하던 그 거룩한 입술로 집안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격려하고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도 듣기가 민망한데 자신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말을 내뱉는다면 스스로 유치한 신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정말 어떤 때는 심방 가서 그런 상황이 부딪히면 제 낯이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목사 앉혀놓고 아이들한테 욕을 막 하는데 내가 저 사람의 목사 맞나?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찬송한 입으로 저주하고 악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 쪽으로 가야 됩니다.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오늘 우리는 #‘혀를 다스리는 신앙인’#이란 제목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결론은 짠물은 단물을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에게서 더러운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아직 안이 더러워 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인생은 깨끗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둘 다 튀어나오면 한편은 착하고 한편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아직도 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혀를 다스리기 위해서 여러분은 먼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모든 축복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나오는 말이 복된 말이 됩니다. 하나님이 엄청 내 삶에 축복 해 주셨다는 것을 알면 옹졸했던 우리의 마음이 좀 넓어집니다. 그리고 남을 향해서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복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게 되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향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예배하면서 찬송한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혀를 복되신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복되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복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그 은택을 감사하는 일에 여러분의 혀를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이제부터는 혀로써 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래 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그 역할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욕하도록, 저주하도록 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축복하도록, 감사하도록, 격려하도록 하나님이 우리 혀를 주셨습니다. 그냥 화를 냅니까? 우리가 화가 날만 하니까 내지요. 화가 나니까 나쁜 말이 튀어나오는 거죠. 다 사연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 한번 참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참아보세요. 그러면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찾아오게 됩니다.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이 말을 내 뱉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들것입니다. 생각난 대로 내뱉으면 시원할 것처럼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지만 내 뱉아 보세요. 시원한가.

그때부터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주일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못한 사람이 겪어야 되는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싶었지만, 정말 한마디만 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참아보십시오. 그리고 좋은 말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변화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 신문의 댓글을 보면서 대한민국 수준에 대해서 참담한 기분이 듭니다.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말들만 쏟아놓는지. 그건 다 거짓말쟁이, 더러운 말을 하는 마귀의 자녀들의 짓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실명이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좋은말 하세요. 세우는 말 하세요, 격려하는 말 하세요, 축복하는 말 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그 일은 대통령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국회의원들이 입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 마음속에 자리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서 새롭게, 세상을 향해서 아름답게 새로운 영향을 끼쳐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화가 나면 나쁜 말이 생각이 납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한테 심한  말을 해서 엄마가 놀래서 물었습니다. “너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그랬더니 “화가 나니까 생각이 나잖아요” 화가 나면 나쁜 말이 생각나는 것은 IQ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때에 떠오르는 말을 하지 않는것, 이 말 해서 듣는 상대방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말만 하고도 살기에 짧은 세상입니다. 잠시 잠깐 동안 지나가는 삶을 살면서 여러분 때문에 힘을 잃었던 사람이 새로 힘을 얻는다고 하면 여러분 때문에 격려를 받는다고 하면, 여러분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 여러분의 하루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의 혀를 위로의 도구로 쓰십시오. 격려하는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지친 자가 힘을 얻고,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 속에서부터 새로워 질 때에 새로운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하늘의 빛이 있을 때 빛에 속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혀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서 더 넓게 더 깊게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로 가득해 있을 때에 결코 악담이 튀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이 가득해 있으면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다운 말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인 예수께서 여러분의 안에 거하시게 되면 여러분의 말이 사랑의 말이 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말들이 여러분의 입술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왜냐하면 짠 물은 결코 단물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단 샘도 결코 짠 물을 내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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