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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와 함께 함이니라 (사 4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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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 특별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우리 삶에는 때론 어려움이 있습니다. 위기가 닥칩니다. 고민이 있고, 죄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데, 이 하나님이 우리를, 바로 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은 오늘도 말없는 실천으로 우리 가운데 놀라운 구원을 이루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 명칭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십니다. 하나는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종이라면 요즈음 자유를 누리는 민주 시민에게는 좀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한편 주인은 종을 전적으로 돌봅니다. 그 삶과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집니다. 이런 귀한 관계가 곧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돌보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의 택한 야곱아”라고 하십니다. 특별히 14절 말씀을 보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지렁이가 무엇입니까? 땅 속에 있거나 땅 위를 꿈틀꿈틀 기어 다니다가 흔히 사람의 발에 짓밟히는 천한 것이 지렁이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 그를 하나님께서 구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본디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간사한 사람이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그 지렁이 같은 야곱, 그를 구원하여 이스라엘로 삼으셨습니다. 부끄러움에 처해있던 저들, 그 민족을 높여서 오늘 같게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줄 믿습니다. 

또한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벗이라는 것은 굉장히 귀한 말씀입니다. 만일 부산 시장이 나를 찾아와 당신의 나의 친구입니다, 당신의 도움을 부탁합니다, 하면 큰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대통령이 와서 나를 보고, 당신은 나의 벗이지요, 하면 대단한 영광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너는 나의 벗이라고 부르십니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당신의 위치로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벗,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선언하십니다.

읽을수록 힘이 나고, 들을수록 용기가 나며, 생각할수록 소망을 북돋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가 귀 기울여 듣고, 다시금 힘을 얻어 세상을 이겨나가도록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음성입니다.

첫째,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두려워 할 일을 없애 주시겠다 함이 아닙니다. 두려움이라는 내 마음의 심리적 현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두려워 할 일이 계속 일어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깨닫고, 두려움을 이겨 나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자가 되시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동로마 제국에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마차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서는 자기도 마차에 태워달라고 합니다.

마차에 태우고 보니까, 이 할머니 너무 흉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요?’ 물으니, 나는 호열자 귀신이요, 대답합니다. ‘당신이 그 무서운 호열자 귀신이요? 그런데 우리 성엔 왜 들어오려고 하시오? 당장 내리시오’ 소리 쳤습니다. ‘나는 내릴 수 없소. 당신 가만히 있는게 좋을거요. 나는 성에 들어가서 꼭 다섯 사람만 죽이겠소. 그 이상은 안 죽일테니,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그러는 동안에 마차는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내리자마자 어느 집으로 들어갑니다.

벌써 그날 저녁부터 소문이 나는데, 이 집에서 호열자에 걸렸다, 저 집에서 호열자가 생겼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이틀이 못되어 5천명이 죽어 나갑니다. 마차 주인은 대단히 노해 드디어는 호열자 귀신을 찾아 담판은 짓습니다.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소’하니 할머니가 말합니다. ‘나는 실제 5사람밖에 안 죽였소.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무서워 죽은 것이요’ 하더랍니다.

실제 세상에는 무서워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서워서 심령이 죽고, 두려워서 육신도 죽고, 염려로 사업도 실패를 하고, 미리 겁먹어 경기하다 지기도 하고, 무서워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여 이 액을 피할 수 있을까,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미신을 섬깁니다. 그래서 영혼까지 죽습니다. 이 무서움, 공포, 두려움이 우리 인생에 주는 해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상황이 좋아져서가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 되어서도 아닙니다. 갈등이 없어져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길러본 어머니는 잘 압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곁에서 자다가 밤에 깨어보니 캄캄합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는 두려워서 웁니다. 무서워서 웁니다. 어두운데 혼자 있는 것 같아 공포를 느끼고는 웁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아무리 캄캄해도 엄마가 옆에 있다가 그 아이의 가슴에 손을 대고 두드려주면서 “얘, 엄마가 여기 있다, 엄마가 여기 있어. 어서 자거라”하면 그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평안한 마음으로 조금 후 다시 잠이 듭니다.

무엇이 아이의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까? 그것은 엄마가 옆에 계시다는 확신입니다. 엄마가 함께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중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재물입니까? 부귀, 영화, 권세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한 말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무서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 나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갑자기 건강이 무너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사업에 어려움을 만났다거나 등등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때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도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능히 이겨 나갈 수 있으므로, 놀라서 좌절하거나 실망하여 주저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천당 가는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은 천당 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다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 기차에는 KTX, 새마을 열차, 무궁화 열차 등등이 있습니다. KTX를 타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빠른 시간에 가고, 또 편안히 갑니다. 하지만 3등 열차인 무궁화 열차를 타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얻기는 얻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삼등 차 타고 천국 갑니다. 어떤 사람은 특급 열차를 타고 갑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내 구주로 믿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으니 천국가기는 다 갑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분명히 의지할 줄 몰라서 두려운 마음, 근심과 걱정 그대로 가지고 예수를 믿으면 곧 3등 열차를 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기고 십자가에 맡겨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천국 가는 사람은 곧 특급 열차를 탄 것과 같습니다.

믿는 것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며 간구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기왕이면 3등 열차가 아니라, 특급 열차로 바꿔 타시기를 바랍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분명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 아멘하면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하십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하십니다. 그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 굳세게 승리하라고 하십니다.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은 절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 채 만한 파도가 오면 더 좋아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 즐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이들은 그 어떤 거센 풍랑이 인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붙들어 주셔서 모든 풍랑을 이겨 나가도록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미래를 바라볼 때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틸리히라는 신학자 이야기를 드리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폴 틸리히 교수는 독일에서 목사 집안에 태어나 명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중, 나찌 정권의 박해로 교수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그 뒤 미국으로 망명하여 세계적인 명문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이 분이 1933년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에 처음 부임하였을 때, 그는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자신은 심혈을 기울여 강의를 하는데, 자유분방한 미국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기 때문입니다.

틸리히 교수는 점점 의기소침해져 갔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가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이 자기를 비웃는 소리를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루하루 지내기가 너무 힘들었고 괴로웠습니다. 우울증 직전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교수님 방문에 예쁜 카드 한 장이 꽂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사랑하는 틸리히 선생님, 우리 모두는 교수님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가끔 웃는 것은, 교수님의 강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다만 교수님의 독일식 발음이 낯설어서 웃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교수님을 사랑합니다. 진정 존경합니다. 교수님, 힘내세요!”

당시 나이 47살, 엄격한 독일식 교육을 받았고, 이지적인 조직 신학자이며, 185Cm의 거구인 폴 틸리히 교수는 그 카드를 읽고 책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설교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날 그 카드를 받고 울었습니다. 깊이 위로받은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이름모를 한 학생의 편지 한 통이 내 영혼에 놀라운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분출하는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다 멀쩡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 같아도, 누구나 모두 외롭습니다. 사는 것이 힘듭니다. 남모르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작은 사랑을 베풀어도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도우시고 사랑해 주신다니, 어찌 우리가 힘차게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성도님 한 분 한 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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