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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을 구하는 백성들 (삼상 8: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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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요한 목사 (평안의교회)

세상은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능력있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신음하고 있는 양극화현상의 이면에는 세워진 지도자들이 우리의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적절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요즘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습니다만 선출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가지 못하여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림으로서 그를 선택한 이들로 하여금 깊은 자괴감과 실망감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됩니다.

세계적인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부시대통령도 지난 이라크전쟁을 치루는 명분으로서 내세웠던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제조및 사용 방지라는 것이 허위이거나 조작된 정보였음이 이번 미상원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에서 드러나게 되어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사실상 잘못된 근거에 의한 전쟁참여라는데 동의하고 이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않으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8장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지도자로 인한 고통스러움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장까지는 젊고 리더쉽이 뛰어난 사무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만 8장에서는 그런한 모습은 간데없고 라마에서 칩거하고 있는 은퇴교역자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1절에 보면, ‘사무엘이 늙으매.....’ 라고 표현함으로서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즉 많은 세월의 간격이 7장과 8장 사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요엘과 아비야라고 하는 사무엘의 두 아들에 의해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아비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히 지도력을 상실한 모습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실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잘 하겠지.... 젊으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기다렸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성의 장로들이 라마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사무엘을 찾아가 호소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당신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의 지도를 받을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존경하는 당신의 뒤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할 뿐아니라,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렴치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요구사항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제시한 요구가 무엇입니까?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주십시오" 쉽게 말하여 이방 나라처럼 왕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 왕을 세우면 나라의 모양새가 반듯하게 되고, 영적 도덕적 질서가 잡힐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사기로 시작해 사무엘상 까지 오는 동안 아주 독특한 국가적 지도 개념인 사사라고 하는 지도자에 의해 나라가 이끌어져 왔습니다. 사사란 단순히 예배와 같은 신앙적 행위만 인도만을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의 수장이었고, 전쟁이 일어나면 일선에 서서 군사를 이끄는 군사적인인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서 책임지는 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되는 막중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사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세움을 입었기에 신적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령한 삶과 도덕적 삶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두 아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적절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이 고민 끝에 사무엘을 찾아와 ‘열방과 같이.."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무엘은 매우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향해 자신의 분노와 상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줄로 믿습니다. " 하나님, 저들이 나를 버리고, 저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일이 곧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 보여 주셨습니다.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어라.."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니라" 사무엘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에 대한 도전이요 배신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단히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왕을 세워 달라는 것과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무슨 함수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8절로 가겠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하나의 중요한 삶의 패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이 때때로 하나님을 섬기다가도 우상을 섬기거나 불의를 행할 때, 선지자의 강력한 회개에의 촉구를 듣게 되고 이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용서와 자비라는 새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응답하심이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패턴이 그들의 삶 속에서 싸이클처럼 굴러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패턴을 깨뜨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부르짖어도 내가 응답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절에서 17절은 왕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사무엘이 왕의 제도가 생기면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래도 괜찮은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열가지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들들을 취하여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할 것이다. 뭐, 쉽게 이야기하면, 징병제도가 생겨서 너희의 사랑스런 아들들을 군대로 끌고 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끊임없이 군사훈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택한, 징병한 군사들 중에서 지도자들을 세워서 군대를 유지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게 하고, 추수를 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왕을 토지해서 이제는 자기들의 밭이요, 자기들의 땅이 아니라 왕에게 밭과 모든 것을 내어놓고, 그 밭에서 일을 하면 추수하게 할 것이다. 거기서 열매를 거두어서 왕에게 갔다가 바치게 될 것이다.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창과 칼을 만드는 일에 동원이 될 것이다. 딸들을 취하여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다. 궁녀와 시녀, 그리고 사랑하는 딸들을 데려다가 궁녀와 시녀를 삼을 것이다.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취하여 신하에게 줄 것이다. 토지를 징발해서 왕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원의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신하에게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곡물을 징발합니다. 농사를 힘들게 지었지만, 그들의 좋은 것들을 다 걷어다가 국가를 유지하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다. 의무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17절 너희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뼈 아픈 종노릇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너희가 다시금 그 종노릇을 택하겠느냐? 그런데 놀랍게도 19절에 보면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아니요, 그래도 우리는 왕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 쪽 동네만 웃네요. 이 쪽에는 신문 방송을 안 보나 봅니다. 잘 모르시나 봐요.

사무엘이 권면을 해도 안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도 안 듣습니다. 마지막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워줘라. 저는 이 마지막 절을 읽으면서 마음에 저림을 느꼈습니다. 아픔을 느꼈습니다. 연민을 느꼈습니다.

제가 76년도에 군에 입대해서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군에 가기전에 주변사람들에게 두가지를 충고를 받았어요. 너는 절대로 향도를 하지 마라. 향도라고 하는 것은 부대가 정상적으로 편성되기 전에 정상적인 부대면 내무반장이나 그런 역할인데, 훈련소에서는 향도라고 그럽니다. 맨 앞장 서서 방향을 잡아서 이끄는 사람, 그런 의미인데 우리 학교에서 말하면 반장 같은 그런 역할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향도는 하지마라. 맞아 죽는다. 그래서 마음 속에 꼭 담고, 세상 없어도 향도는 하지 말아야지.

또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가지 마라. 군에서 교회 다니다가 매 맞아 죽는다. 군대는 그저 3년 건강하게 자기 몸 하나 챙겨 나오면 그거 수지 맞는 거다. 그런 충고를 듣고 가서 얼마나 마음에 염려가 있어요. 나는 교회를 가야 하는데, 신앙생활 해야 하는데, 훈련소에는 의무적으로 다 왔다갔다 하니까 교회 가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자대에 딱 배치를 받았습니다.

이등병 달고 가니까 아래는 아무도 없고, 오직 위만 보입니다. 주일날이 다가왔는데, 교회가는 거 소집하는 거 기다립니다. 훈련소에서도 신자집합 한 시간 전에 그랬으니까 부대에서도 그러겠지. 정말 한 시간 전에 주번 하사가 호루라기를 불더니 신자집합 그럽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뛰어 나갔어요. 그런데 암만 기다려도 나오는 사람이 없어요, 저 혼자 였어요. 내무반장님께 인사를 거창하게 붙이고, ‘교회 다녀오겠습니다.’ 그랬더니 육군 김하사가 하는 이야기가 ‘갔다 와. 갔다 와. 교회 가니? 갔다 와.’

그래서 저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부대를 떠나서 영회에서 한 30분 정도 걸어가야 교회가 나오는데, 가는 동안 저는 휘파람을 불면서 세상에서는 맞아 죽는다고 교회가지 말라고 그러더니, 우리 부대에서는 내무반장님이 교회 갔다 오라고 그러는데, 세상에 나는 정말 복을 받았어. 부대 잘 온 거야. 그리고 교회를 갔더니, 병장, 상병 고참들이 존댓말 해 주지요. 오리온 초코파이 주지요. 성가대 하라고 그러지요. 점심 먹고 가라고 그러지요. 그래서 1시까지 점심까지 먹고서 부대를 들어갔더니 인사하니까 ‘어, 갔다 왔어?’ 야, 너무 좋았어요.

저녁예배가 있지 않습니까? 한 시간 전에 불러야 하는데, 신자집합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무반장님께 ‘저녁예배 갔다오겠습니다.’ ‘어? 저녁예배도 있어? 갔다와’ 그래서 너무 좋아서 휘파람을 불었잖아요. 교회를 가니까 고참들이 ‘야, 어떻게 저녁에도 왔냐?’ 그러면서 참 반겨주었어요. 성가대 연습까지 마치고 들어오니까 주일이라 일찍 취침을 했어요. 다 누워 있습니다. 한 이월쯤 됐는데 저는 지금도 내복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만은, 그 젊을 때에도 내복을 거의 입지 않았어요. 팬티와 메리야스 하나만 입고 있는데 딱 저는 머리가 베개가 닿으면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요즘 목회 하면서는 잠이 들기가 어려움이 있지만, 젊을 때는 그냥 누우면 잤어요.

딱 누워서 잠이 깜빡 들려고 하는데, 제가 그 머리를 툭툭 치는 거예요. 눈을 떠보니까 따라오라는 거예요. 느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 팬티 바람으로 2월달이지만 영하로 내려가 있는 그 추운 지역에 나가서 벌벌 떨면서 아주 단련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그 때 상병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너가 교회가 간 사이에 부대가 비상이 걸려서 전부가 집합이 되어가지고, 우리 부대에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애가 하나 와 가지고 교회를 가니까 우리 부대 이제 완전히 큰일났다. 그러니 이제 그 아이 교회 가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상병에게 책임을 준 것이고, 못 막으면 너는 끝장이다. 그렇게 그가 위협을 받은 것입니다.

달래기도 하고, ‘야, 군대생활은 몸 건강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면서 달랬다가 아니면 위협을 했다가 제가 그랬잖아요. ‘아니, 저는 내무반장님께 교회 간다고 보고를 하니까 갔다 와. 그렇게 그러시던데요?’ 고문관이 왔다는 거지요. 그게 교회 가라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아니, 교회 가라시던데요?’ ‘그게 교회 가라는 이야기냐? 이 멍청한 녀석아~’

어이가 없으니까 상병, 병장도 못 가는 교회를 이등병 주제에 교회 간다니까 하도 기가 차서 ‘어, 갔다 와. 교회 가니?’ 그런 거를 제가 그제야 정신이 드는 거예요. ‘야, 잘 못 왔구나. 너 교회 가려면 거기 서 있고, 안 가려면 들어와서 자라.’ 갈등이 생겼잖아요. ‘너 꼭 교회 가야 되겠니?’ 그 때 그 상병에게 고백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팬티 바람으로 고백한 ‘저는 밥은 안 먹어도요. 교회는 가야 됩니다.’ 그 때 제가 그 자리에 그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상병이 이해할 수 없지요. 밥은 안 먹어도 교회는 가야 한다니까 그러면 너 거기 있으래요. 그래서 제가 밤새도록 추위에 떨면서 팬티 바람으로 그 화장실 앞에 소위 군댓말로 이사종 창고 앞에 거기서 밤새 떨고 서 있었습니다. 생각을 하다가 ‘아니야 내가 여기서 지면 끝장이지.’

군 생활에서의 신앙의 간증의 이야기를 하기가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그 생각이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화악 떠올랐어요. 그 내무반장이 제가 교회를 가겠다고 하니까 갔다 오라고 아주 웃으면서 얼굴의 웃음을 띠고 갔다 오라고 두 번 세 번 반복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기분 좋게 부대를 나섰는데, 알고 보니까 부대는 비상이 걸리고, 저 이등병 하나 못 잡으면 너희는 끝장이라고 그 시간에 부대는 난리가 났었어요.

저녁까지 갔다가 온다니까 그들이 기겁을 한 것입니다. 아, 그래서 이 부대가 주일날 신자를 집합하는데 한 명도 나오지를 않았구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나중에 이야기지만, 그 부대원, 그 중대원 중에 청년회장 하고 온 친구도 있고요, 성가대원 하다고 온 친구도 있고요, 교사 하다가 온 친구도 있었어요.

나중에 제가 물어봤지요. 그런데 왜 교회는 안 가셨습니까? 몸 하나 챙겨야지, 나중에 십이중대 중하기 중대를 전도를 얼마나 했는지, 절반이 넘는 병력이 주일이면 교회를 가서 중대장님이 부탁을 했어요. ‘야, 좀 만 데려가. 부대 병력 반 이상을 가져가면 아무리 휴일이지만 문제가 있다.’ 그렇게 제게 사정 할 정도로 나중에는 전도의 열매가 풍성해 진 줄로 믿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시는 말씀, ‘사무엘아, 저들이 왕을 원하면 세워주어라. 저들이 열방의 방법대로, 세상 방법대로 하겠다고 하면 하라 그래.’ 지금 주님은 피를 토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이 속상 했지만, 알고 보니까 주님이 더 마음 아파하고 계세요. 저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왕의 왕으로써, 만왕의 왕으로써, 나를 찬양하고 예배하던 백성들이 나를 버린거야. 너도 속상하겠지만, 사실은 내가 더 속상하지.

월터 프로그만이라고 하는 콜롬비아 신학대의 구약학 교수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을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 것인지, 세상의 방법대로 살 것인지 너희들 스스로 선택하라. 선택권을 주신 말씀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바른 판단을 기대하시면서 선택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왕의 제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제도 중에 이제 앞으로 가서 느끼지만 사울이라고 하는 용모가 출중한 사람을 왕으로 택해서 제1대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 사울은 길르앗 전투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교만하고, 하나님 앞에 도전하고, 주의 종에게 도전하는 삶을 살다가 길르앗 전투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블레셋 사람의 손의 창에 찔림 받아 죽었습니다. 불행한 왕의 제도에 제1대를 마무리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무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거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잘 못된 삶을 살고, 때때로 우리가 실수를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회개하고 부르짖고 돌아오면 응답해 주셨던 그 하나님과의 관계. 이제는 그 싸이클이, 그 패턴이 깨져 버렸어요.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연결되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그래서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곧 신학적인 문제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삶은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고, 그들의 삶은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기에 왕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제도를 바꾸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부는 곧 이스라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는 주님의 메시지를 우리가 깨닫기를 원합니다. 부르짖을 때에 응답받는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알지 못하고, 구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주님이 아시고, 채우시고, 도우시던 하나님이셨는데, 이제는 그 응답의 고리가 끊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너희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의 말씀에 우리의 귀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왕을 구하는 백성들의 모습, 오늘날 이 시대에 때때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서는 사업이 되지 않아요, 말씀대로 살아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면서 때때로 세상에, 세상의 제도에, 세상의 사람들의 방법에 따라가고 유혹받을 때가 많아요.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사무엘에 의해서 권면을 받고, 하나님에 의해서 권면을 받으면 돌아와야 되는거 아닙니까?

끝까지 사무엘과 하나님의 권면을 물리치고, 오죽하면 사무엘이 열가지의 왕에 제도가 주는 문제점과 고통스러운 점을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의 말을 거절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들어주어라.

저들이 왕을 원하면 왕을 세워주고, 저들이 세상의 제도를 원하면 세상의 제도를 하도록 들어주고, 오늘 이 주님의 안타까운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를 향한 그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서의 새로운 다짐이 되는 복되고 귀한 시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전 역사에서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때때로 곁길로 갔지만, 깨닫고 돌아와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다시금 용기를 얻고, 다시금 새 삶을 얻었던 이스라엘의 삶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내가 응답하지 아니하겠다는 주님의 고통스러운 말씀을 듣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왕의 제도를 들어주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아픔을 기억합니다. 주님, 주님의 음성을, 주님의 심중을 헤아리는 지혜로운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세상을 바라보며 육신의 제도를 따라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게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중심의 삶에 부족함이 없어, 때때로 환란과 역경 속에서 있을 지라도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게 하여 주옵소서.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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