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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맛 잃은 소금. 안돼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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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맛 잃은 소금. 안돼 (마5:13)



(마 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불행한 공전

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꼬리를 뒤쫓으며 저것만 붙잡으면 뭔가 대단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개는 강아지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불행한 공전이다.

너는 꼬리를 잡기 위해 뛰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위해 뛴단다. 내가 마땅히 내 할 바를 좇아가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 자기 꼬리를 붙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어린 강아지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을 나로 잡아서는 결코 꼬리를 붙들 수 없는 어린 강아지처럼 아무리 나를 위해 살아도 진정한 행복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보통 행복을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착각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창조의 목적대로 돌아간 삶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삶의 의미를 상실한 때도 없고 요즘처럼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두운 시대가 도 없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요즘처럼 어두운 시대가 없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요즘처럼 그리스도인이 요구되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소금은 맛을 낸다. 정말 소금 없는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소고기이든 생선이든 소금을 뿌려서 구워  먹으면 얼마나 군침이 도는가?
소금, 모든 음식에 들어가 제 맛을 내어주는 신기한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주님은 맛 잃은 소금은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히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맛, 意味있는 삶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미 있는 삶을 부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면  소금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하여 내가 소금처럼 녹아져야 한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어둔 세상에 빛을 발하고 의미를 상실한 세상에 소금으로 을 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오늘 읽은 주님의 말씀은 천국의 복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천국백성의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1. 너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지만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애굽에서 있었고 광야에서 있었듯이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세속주의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피하고 떠나서 사는 도피주의나 은둔주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불교는 속리산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교도 도시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거꾸로 지금 기독교가 자꾸 산으로 갑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 17: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우리는 세속주의를 거부하지만 은둔주의도 거부해야합니다. 주님도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세상에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우리의 있을 곳은 더러운 세상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대하여 낙관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사단이 지배 하에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이는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두 가지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금이고 하나는 빛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2. 너희는 소금이니....그렇다면 소금의 사명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소금은 무엇보다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김치는 소금으로 갈무리를 해서 먹는 것입니다. 생선은 소금을 처서 저장하여 오래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요즘같이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 근동 지방 같은 더운 나라에서 소금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했을까요?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부패하였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크리스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인들은 약속을 하고 변하지 않기를 바랄 때 그 약속을 소금언약이라고 합니다. 충성스런 사람 신실한 사람을 소금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러한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칭찬과 박해 두 가지를 함께 받았습니다.
한 신학자는 말합니다. “정상적인 크리스챤은 칭찬을 받든지 박해를 받든지 해야 합니다.”우리가 예수를 모시고 사는 참 복된 성도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칭찬을 받던지 핍박을 받던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사도행전의 성도들과 같은 삶의 맛과 향기를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있나요?

소금은 짠 맛이지만 음식물에 들어가 고유한 맛을 창조합니다. 저는 고등어를 잘 먹습니다. 그렇지만 소금을 넣지 않았다면 저는 구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닭곰탕도 좋아 합니다.  그러나 소금을 넣지 않았다면 한수저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콩나물, 미나리를 잘 먹습니다. 그러나 만일 소금을 넣지 않았다면 어떤 요리를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겁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14:34) 소금이 음식물에 들어가 맛을 내듯이 크리스챤은 어디서나 삶의 맛을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의 진가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 속에 기쁨의 싱싱함이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에 평화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 체형가운데는 소금을 안주어 사람으로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월말이 되면 우리는  월급을 받습니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감격이 얼마나 큽니까? 월급을 샐러리라고 합니다. 월급쟁이를 샐러리맨이라고 합니다. 샐러리란 영어로 Salt money 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옛날에 중동지방에서는 월급을 소급으로 줄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소금처럼 부패를 방지하는 사명과 맛을 내는 사명이 있습니다.

1) 이 소금의 사명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금의 역할은 그 소금이 음식물에 들어가 녹아야만 합니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짭니다. 국에 들어가든 콩나물에 들어가든지 시금치에 들어가든지 고등어에 들어가든지 들어가 녹아져야 맛을 냅니다. 여러분도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서 녹아져야 합니다.(참여해야 합니다)

2)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요?

오늘 주님은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그리고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쓸데가 없다.’고 하시고 ‘버리게 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그 선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와 매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어떤 차별화를 나타내고 있나요? 충격과 도전을 주고 있나요? 당신은 세상에 소금으로 맛을 내고 있나요?  혹시 당신은  아무쓸데 없어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히며 사는 맛 잃은 소금은 아니지요?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삶의 맛을 내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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