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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신앙은 건강합니까? (고후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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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아주 연세가 많으신 어떤 충청도 출신의 할머님이 어느 날, 교회에서 어르신 초청 온천 여행이 있어서 온천에 갔습니다. 넓은 대중탕에 들어가서 교인들과 목욕을 하고 있는데, 미국인 아주머니가 거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할머니가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왔시유?" 그러자 미국인 여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잠시 당황하더니 금방 밝은 웃음을 머금으며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왔시유?" 그러니까 할머니가 "What see you?"라고 질문하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인 아주머니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미러!(Mirror)" 자신은 지금 거울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친절합니까? 미국인 아주머니가 "미러"라고 하니까 이 충청도 출신의 할머니가 "미러? 아, 자기 등뒤를 밀어달라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국인 아주머니의 등뒤를 밀어주려고 이태리 타올을 가지고 다가갔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미국인 아주머니는 괴로운 미소를 지으며 도망을 가고, 등뒤를 밀어준다는데 왜 피하는가 이상해 하면서 충청도 할머니는 뒤를 쫓아갔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때로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부담을 느끼든 말든, 일방적으로 생각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혹여 나 자신이 그런 유형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모습이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살아오면서 힘이 들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셨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 분, 하나님을 힘입어서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어 가실 그 약속의 성취를 믿었습니다. 물론 나의 실수도 알고 허물도 압니다. 나의 부족함도 다 압니다. 그래도 나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오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힘입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데 교회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데 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루디아의 수도였던 사데는 섬유산업과 보석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아주 멋을 부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사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쾌락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데 지역에 세워진 사데교회는 아름다운 건물과 엄숙한 의식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변화된 성도가 적었습니다. 전도와 성도의 교제에 관심이 없었던 너무 세속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데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어떠한 칭찬도 듣지 못했던 부끄러운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교회는 사데 교회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사데 교회의 교인들보다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게 되면 죄가 사해지고 의로운 자로 선언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그리스도의 친구가 됩니다. 이것은 완전히 신분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도 변하고 행함도 변해야 합니다. 언어도 변하고 추구하는 삶의 목적도 변해야 합니다. 삶이 완전히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으로 변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서 사이비 변화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종교꾼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이비 변화를 거부하십시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발 종교꾼이 되지 마십시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건강한 교회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변하지 않는 한 이 땅의 변화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변화의 불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땅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는 작은 불씨가 되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면, 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강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 같이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기적을 이루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끝없이 한탄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서 믿음의 매력과 기쁨과 감격을 발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흑암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사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자기 믿음을 선언하십시오. 사람을 섭섭하게 해도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가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어느 시대에서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시인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만 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을 감상하고 명상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머리 속에서만 맴도는 이론적인 사상가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 가십시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신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꿈을 꾸면서도 고치 속을 떠나지 못하는 나방과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각 속에서만 머물고 있습니다. 내 육신의 자아를 깨트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거룩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생활이란 구별되게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의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이 땅에 일천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치 이 땅에 하나도 없는 것처럼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지 못하고 적당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신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다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여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성경은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냄새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냄새도 결국에는 두 가지로 구별될 수 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와 역겨운 냄새입니다. 아름다운 냄새와 더러운 냄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도에게서는 다른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야 합니다. 향기는 만질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무게를 달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향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이 향기는 내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길만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아 악취만을 풍기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냄새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생명을 지배하고, 차지하셨기에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아름다운 향기도 건강한 곳에서 날 수 있습니다. 병들고 시든 나무에서 아름답고 싱싱한 꽃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죽은 나무에서 향기를 발할 수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결국 건강하고 생명력이 있어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합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까? 쉽게 말해서 오늘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그래 저 모습이야, 나도 저 삶을 닮고 싶어.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한다면 마땅히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은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 있는 죄를 이겨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 14절의 말씀입니다.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이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남과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는 정욕이 불타고 있습니다. 탐심과 이기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죄의 유혹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는 한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고 아무리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바로 죄악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할 바를 미리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면 다 주시되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죄악이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5장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러한 죄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하지 마십시오. 죄악의 냄새를 날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 있는 죄를 이기십시오.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로, 죄와 싸워서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나 돌아서기가 무섭게 죄를 범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서 속담을 들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보십시오. 교회에 와서 회개를 하는가 싶더니 세상에 나가면 또 나쁜 짓을 합니다. 예수 안에서 내가 죽어야지 하면서도 다시금 성질을 부리고, 금방 또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에 내 안에는 거룩하게 살아갈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이길 때에 우리의 몸에서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품위 있는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모든 죄악으로부터 승리하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는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될 것입니다. 죄악으로 썩어서 악취가 나는 이 땅에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내 가정을 복음화 시키고,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기에서 '혼잡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타락하다, 품질을 떨어뜨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전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명확하고 정확하다는 뜻이요, 성실하고 진실하여 불순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진짜이며 거짓이 섞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순수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꾸밈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타락시키지 않고 순전함으로 지키는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보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코람데오의 삶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코람데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목전에서'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살아왔다면, 또 살아가고 있다면 오늘 우리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거룩하고 아름다워졌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건강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에서 '몸'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입니다. 몸이라는 것은 바로 현실을 말합니다. 마음만이 아니고 몸을, 정신만이 아니고 생활 전체를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예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 바로 되면 가정생활, 사회생활 혹은 자기를 다스리는 생활, 윤리생활도 다 바로 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생활을 바로 하십시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생활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예배만 바로 되면 분명한 것은 하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배만 바로 되면 우리는 보다 성숙되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주일은 참으로 귀한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림으로 축복을 받게 되는 이유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국은 예배가 있는 곳이고 지옥은 예배가 없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수주일을 분명히 하십시오.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 우선 순위는 바로 성수주일입니다. 우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던 목적도 성수주일을 지키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순교자적인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하고, 그 희생의 대가를 내가 당하더라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순교자적인 신앙이 없으면 예배에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그 만남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오늘 주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귀한 날에 여행을 가야 한다면 그 여행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순교자적인 신앙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초대교회 성도들의 그 순교 정신으로 예배를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를 회복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배를 바로 드려야 영이 바로 살고 가정과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의 동력선이 끊어진 성도는 바다에 좌초된 배와 같이 이미 힘을 잃고 죽은 상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의 믿음을 타락시키기 위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갑자기 사업이 바빠지든지, 사고가 나든지, 시험에 들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타락시킵니다. 과거에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교회생활을 등한히 하다보면 믿음이 사라지고 저절로 불신자가 됩니다. 교회에 나오다가 현재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기독교인이라 말하면서도 불신자와 똑같이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도 주일마다 교회에 오려고 하면 얼마나 방해가 많은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교회 출석을 결심해 보십시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열심히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다 보면 은혜 받을 기회가 많아질 것입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이 살아날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 믿음이 점점 좋아지고 신앙생활도 성숙하고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 앞에는 언제나 우선 순위 1번에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언제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에도 주일이 되면 워싱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 주로 내려가서 교회학교 교사로 헌신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카터의 모습만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을 하다가도 주일이 되면 내가 섬기는 예배당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모든 계획의 중심에 예배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중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배가 중심 되지 못한 삶은 흔들리며 휘청거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삶의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전혀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손에 붙들려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휘청거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언제나 예배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삶을 움직여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주님 앞에 드리는 이 한 시간의 예배가 최선을 다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예배드릴 때에 찬송이 여러분의 찬송으로 고백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어 진다는 감격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내 예물을 받으신다는 기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저 말씀은 내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으로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가게 하지 마십시오.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예배에만 집중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진짜 같은 가짜가 있고, 가짜 같은 진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모양은 경건한고 거룩한데 속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경우가 진짜 같은 가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거짓된 종교인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름다운 향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역겨워서 토하여 버리고 싶은 그런 냄새만 날 뿐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옷을 찢고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내 신앙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합니까? 혹여 외식하는 신앙은 아닙니까? 우리의 건강하지 못한 신앙 때문에, 이 땅에 잘못된 신앙으로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 당할까 무섭습니다. 외식하는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의 촛대를 다른 사람에게로 옮길까 심히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인데, 과연 우리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혹시 외적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었으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없는 무익한 신앙인은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병든 신앙을 고쳐야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사이비형 신앙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신본주의 신앙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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